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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노래

[지금, 이 노래] 돌림판처럼 돌아가는 나의 삶, ‘머쉬베놈’

by 북드라망 2025. 9. 26.

돌림판처럼 돌아가는 나의 삶, ‘머쉬베놈’

머쉬베놈 – 돌림판 (Feat. 신빠람 이박사)

 

우현(문탁 네트워크)

 

 

 

오늘 소개할 래퍼는 ‘머쉬베놈’이다. 머쉬베놈은 2019년에 <쇼미더머니 8>에 출연하여 처음 이름을 알렸다. 1차, 2차 심사를 통과했음에도 유명 래퍼들만 비추는 편집 방식 때문에 통편집을 당하다가 3차 심사 때는 편집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Positive) 무대를 선보인 것이다. 머쉬베놈은 충청도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왜이리 시끄러운 것이냐’라며 마치 선비가 읖조리는 듯한 가사와 플로우를 선보였다. 심지어 3차 심사는 1대1 대결이었고, 그 상대방은 당시 시즌의 우승자였음에도 전혀 꿀리지 않는 아우라를 풍겼다. 그 화제성 덕분에 그의 싱글 ‘왜이리 시끄러운 것이냐’는 <쇼미더머니 8>이 끝난 이후에도 대성공을 거두었고, 다음 해에 이어진 <쇼미더머니 9>에서는 준우승까지 거머쥐는 기염을 토한다. 그 전까지 전혀 알려진 바 없는 무명 래퍼였던 걸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당시 머쉬베놈의 성공은 단순히 ‘신선함’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이미 완성된 듯한 실력과 센스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되려 왜 이제야 주목을 받았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쇼미더머니 9>이 진행되던 시기부터 코로나 19로 인해 후속적인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고자 한 래퍼에게, 그것도 라이브에 강점을 갖고 있는 래퍼에게 오프라인 공연을 못한다는 건 매우 타격이 컸을 것이다. 짐작컨대 그때부터 방향성을 포함한 여러 가지 내부적인 시행착오를 겪었던 게 아닌가 싶다. 준우승을 했음에도 5년 동안이나 (싱글 몇장을 제외하면)활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머쉬베놈이 5년만에 정규앨범으로 돌아왔다. 앨범 제목은 <얼>. 그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제목이다. 그는 유년 시절을 충청도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의 플로우는 충청도 사투리와 선비스러운 말투가 섞인 듯한 독특한 느낌을 준다. 그는 이를 일종의 ‘얼’, 그러니까 ‘자기 정신의 토대’로 삼는 것으로 보인다. 여태까지 발표한 곡들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와의 추억, 혹은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 부분에서 얼마나 그가 유년시절을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이 앨범은 피쳐링 진에서부터 그의 ‘얼’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듣고 자란 뮤지션들로만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신빠람 이박사’, ‘거북이’, ‘코요태’. 재미있게도 ‘래퍼’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는 머쉬베놈의 ‘얼’이 ‘힙합’이라는 장르에 갇혀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그는 오히려 유년 시절부터 자신을 즐겁게 해주고, 스스로 다져온 음악적 즐거움, 말하자면 ‘흥’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도 ‘신빠람 이박사’와 함께한 타이틀곡 <돌림판>은 정말 압권이다. 

돌려 돌려 돌림판 이제 나의 보너스 타임
보니하니 본의 아니게 이뤄져 버린 나의 삶


<돌림판>은 전혀 의미 없이 흥을 돋우기 위한 가사들로만 꽉 채워져 있다. 그러나 딱 한 줄, ‘본의 아니게 이뤄져 버린 나의 삶’만은 이 <돌림판>이라는 곡을 인생에 비유하며 자기가 흐르는 대로 살아온 삶, 반대로 말하면 어찌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낙관과 유감을 잘 표현한다. 이는 아마 자기가 성공하기 이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 성공한 직후에도 코로나로 인해 꼬여버린 상황들, 5년 간의 공백기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을 함축하여 드러내는 듯하다. 물론, 이 가사 한 줄에 대한 감상을 제외하더라도 머쉬베놈과 이박사가 만들어내는 ‘흥’은 정말 듣기 좋다. 촌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멋! 래퍼들도 다 비슷비슷하게 랩을 하는 요즘에 정말 보기 드문 한국 래퍼이니, 한 번 들어보는 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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