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문명4> OST Opening - Christopher Tin <Baba Yetu>
정승연(문탁네트워크)
세상엔 여러 종류의 게임이 있다. 축구, 농구, 야구처럼 운동장에서 각자가 맡은 역할에 따라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는 스포츠들도 게임이고, 어떤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서 수익성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투자'도 일종의 게임이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게임'이 아닌 게 없다. 그런데, 보통 '게임을 좋아한다'라고 하면 대개는 '비디오 게임'을 뜻하게 되고 말았는데, 그렇다 나는 비디오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이건 어릴 때 꽤 흔하게 보급되었던 '페미컴(한국 출시명 훼밀리)'을 가져보지 못해서 생긴 결핍감에 대한 반동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고로 결국 나의 첫 게임기는 엄마가, 내 속셈을 잘 모르고,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니까' 사주었던, 펜티엄PC였다. 그 조차도 또래들에 비해 3-4년쯤 늦게 얻어낸 것이었다. 나는 PC가 생기자마자 그동안 하고 싶었던 '게임'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 게임들이란 주로 <삼국지>, <대항해시대> 같은 이른바 전략 게임들이었는데, <문명> 시리즈는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그야말로 '갓겜'이었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선 정착지를 찾아 헤매는 '개척자'로 시작해서 십수 개의 대도시를 거느린 '문명'을 발전시켜 가는 설정부터,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고, 백성을 먹여 살릴 식량을 보급하는 등 게임의 과정까지 어느 것 하나 매료되지 않은 게 없었달까? 어쨌든, 그렇게 열다섯인가, 열여섯 살인가 즈음에 만난 그 게임 시리즈를 무려 사십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노래는 그 <문명>시리즈의 네번째 작품의 오프닝 테마곡 <BabaYetu>다.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초로 상을 받은 게임음악인데, 들어보면 알겠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외국어가 아니다. 이곡의 노랫말은 스와힐리어 '주기도문'인데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합쳐져 묘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 때문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구성도 대개 다인종, 다성별 구성으로 하는 편이다. 거의 대부분의 버전이 그렇다. 오히려 맨 위에 올린 영상이 특이한 편인데, 사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건 노래도 노래지만, 첫버전에 나오는 한국 악단 '플래직 게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소개하고 싶어서다. '게임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악단명에 걸맞게 찾아보면 문명 뿐 아니라, 스타크래프트의 테마곡들이나 디지몬 어드벤쳐의 곡들을 연주한 영상들을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의 예술이 '사진'의 등장과 함께 크게 바뀐 것처럼, 20세기의 예술의 정점에 '영화'가 있었던 것처럼 현대 예술은 아무래도 '게임'과 관련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원래 이런 일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는 법이다. 다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오늘날 인류가 겪는 여러 가지 갈등과 문제들, 기술적 발달의 결과들, 일상적 감수성의 구성 등 인간 삶 전반의 주요한 논점과 테마들이 게임-세계 안에서 마치 축소판처럼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나 예술의 형식적인 면에서나 '게임'은 정말이지 음악-미술-문학-행위의 종합 예술이다. 그런 와중에 '플래직 게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같이 게임음악을 전문으로 연주하는 악단까지 생겨났다니, 오랜 비디오게임 팬으로서 어쩐지 좀 뭉클하기까지 하다(흑).
오늘 소개하는 곡 <Baba Yetu>의 경우 플래직 게임 심포니의 버전 말고, 정말 다양한 버전들이 있으니 시간 날 때 한번씩 들어보길 바란다. 각 버전마다 다른 맛이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신을 생각하면서, 독실한 무신론자라면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기면서 들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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