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소중합니다
- 제이통 – Pinecone Rock (Feat. 로다운30)
송우현(문탁네트워크)
나는 최근 힙합 공연을 거의 가지 않았다. 힙합 자체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중학교 때부터 워낙 많이 다닌 탓에 ‘힙합 공연’이 전해주는 신선함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작은 공연장에서 열리는 공연은 그 규모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공연마다의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제이통’이라는 래퍼의 ‘Vegetable Day 2’라는 공연에 관심이 갔다. 제이통은 내가 중학생 때부터 참 좋아하던 래퍼인 데다가, 공연의 주제가 ‘모두와 야채 스프를 끓여 먹는다’였기 때문이다. 오늘은 래퍼 ‘제이통’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대부분의 미국 래퍼들은 자신의 음악, 인터뷰 등에서 자신의 출신지를 거듭 강조한다. 이는 가난했던 과거와 현재의 자신이 가진 경제적 수준,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자신이 가난하던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따라서 ‘에미넴’이나 ‘켄드릭 라마’같이 더 가난한 지역의 출신일수록 가사에 자신의 출신지를 더 많이 드러내는 경향이 있으며, 소위 ‘금수저’처럼 자란 래퍼들은 오히려 자신의 출신지를 숨긴다. 그러나 이런 감성은 한국 힙합에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는데, 미국에 비해 좁은 국토를 가졌고,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차이를 제외하면 도시마다의 빈곤율이 극단적으로 차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1년, 자신의 데뷔 앨범 제목을 ‘부산’이라고 지은 래퍼가 나타난다. 2010년도 한국 힙합 최고의 루키로 손꼽히던 ‘제이통’이다.
사투리 섞인 가사와 특유의 걸쭉한 발음, 무엇보다 손목에 ‘부산’이라는 타투를 새기고 자신의 태도와 신념을 ‘정상까지 가져가겠다’(제이통 – 구구가가 中)는 젊은 래퍼의 에너지는 모두의 관심을 받기 충분했다. 그러나 너무 특출났던 그의 재능 덕분에 오히려 여러 회사가 엮인 계약 분쟁이 있었고, ‘표현의 자유’를 표방하고자 시도했던 곡이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자, 제이통의 커리어는 점점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음악 산업에 대한 문제의식을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표출한다. 그는 아티스트보다 유통사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가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음악 유통 구조에 분노했고, 이에 자신의 앨범을 독자적으로 개설한 페이지를 통해 스트리밍하거나 독자적으로 오프라인 CD 판매를 하는 등 대안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다. 다만 그의 대안적인 행보는 한국 음악 시장 구조에서 살아남기 매우 힘들었으며, 예전 같은 에너지도 점점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 그의 팬들도 ‘예전의 제이통이 그립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렇게 힙합씬에서 제이통은 점점 잊혀가는 듯했다.
그런 제이통이 2018년에 디지털 싱글을 발매한다. 곡의 제목은 <Pinecone Rock>. 이 곡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180도 달라진 그의 삶이 담겨 있었다. 10년 전 모히칸 머리에 야구 방망이를 들고 부산 거리를 거닐던 제이통이, 장발 머리를 하고, 매일 맨몸 운동과 요가를 하고, 등산을 즐기며,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사계절의 반복은 데자뷰
그 큰 흐름 속,
찰나의 작은 확률로
태어난 내 삶의 원칙이
되는 인과율[因果律]
고통이 있기에
비로소 느끼는 자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는 소중합니다.
우리.. 건강합시다.
여전히 제이통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제이통은 팬들과 함께 홍대 거리와 부산 앞바다의 쓰레기를 줍고, 공연을 할 때마다 직접 기른 농작물을 팬들에게 나눠준다(정확히 말하면 던진다..). 심지어 최근에 열린 ‘Vegetable Day 2’ 공연에서는 음악과 함께 직접 야채 스프를 끓여 팬들과 나눠 먹었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젊을 때 느꼈던 문제의식들이 어떻게 정리가 되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 그가 ‘건강한 삶’을 추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번 ‘Vegetable Day 2’ 공연에서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멋진 그의 행보를 계속 따라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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