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금, 이 노래

[지금, 이 노래] 3분 남짓의 회복 시간 _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라메르(La mer)

by 북드라망 2025. 9. 5.

3분 남짓의 회복 시간 _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라메르(La mer)

정군(문탁 네트워크)

 

 

 

최근 한 두달 사이에 여러가지 신변상의 변화들을 겪는 중이다. 방학을 맞았던 세미나와 강의들이 개학을 했고(그래서 바빠졌고), 수두증 진단을 받은 후 넘어져서 척추압박골절까지 당한 엄마는 여전히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그래서 정말 심란하다). 이렇게 상황만 써놓고 보면 정말 아무 틈도 없이 바쁠 것 같지만, 일상이라는 게 그렇지가 않다. 아무리 바쁜 중에도 잠깐 숨돌릴 틈이 없을 수는 없고, 그래서 멍한 사이에 무력감이랄지, 우울감 같은 것에 젖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잠깐 젖어들었던 그 기분은 말 그대로 잠깐이지만, 다시 돌아오는 데에는 한 두시간이 필요해진다. 음악은 그 시간을 줄여준다.

현대의, 훌륭하기 이를데 없는 여러 발명품들 중에서 내가 첫손에 꼽는 발명품은 재생기기, 증폭장치, 스피커, 헤드폰, 이어폰 등을 포함한 일련의 오디오 기기들인데, 그런 것들 덕분에 원하는 순간에 음악의 힘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시간의 흐름을 이용한 소리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우리 '마음'과 쉽게 동조된다. 이를테면 우리가 한번에 여러가지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래서 순서대로 생각과 감정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음악도 마찬가지다. 노래 한 곡을 들으려면 시작부터 끝까지 순서에 따라 나오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스피커를 통해 울려나오는 소리를 순서대로 들어가다보면, 심란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물론 무슨 노래를 듣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대개는 누구나 울적한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노래 한 두곡 정도는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오늘 소개하는 노래는 나에게 그런 노래다. La Mer, 한국어로 '바다'라는 뜻인데 가사를 보면,

La mer  
Les a bercés  
Le long des golfes clairs  
Et d'une chanson d'amour

바다는  
그들을 흔들어 안아 주었네  
맑은 만(灣)들을 따라  
사랑의 노래로


이런 구절이 있다. 대체로 곡 전체의 분위기가 이렇다. 딱히 새로울 것 특별한 걸 하나 없는 가사들인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부드러운 목소리, 리듬섹션의 쫀쫀한 박자감과 어우러지면 '나한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은 어떻게 해도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서 결국에 '될대로 될 것이고, 되는 대로 되고만다' 싶은 기분이 된달까? 3분 남짓되는 노래 한곡을 듣고서 그 정도 생각에 이를 수 있다니, 이 보다 좋을 수 없다!


아, 물론 모든 예술은 그 자체의 의미보다 그게 어디에 놓여 있는가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는데, 같은 곡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들릴 수도 있다. 가령 La Mer를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의 엔딩씬과 함께 듣는다던지 하는 식(사실은 영화 OST로 훨씬 유명해진 곡이다)으로 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