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여 다시 한번' ― 카펜터스(Carpenters) 'Yesterday once more'
정군(문탁네트워크)
주민등록상 50년 생인 나의 어머니가 요즘 아프시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조금 길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앞에서 한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다시 묻거나, 어제 있었던 일을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로 착각하신다거나 하는 식이다. 아무래도 경도인지장애, 흔한 말로 치매 초기의 몇몇 징후들이 눈에 띈다. 진료도 받고 검사 날짜까지 받아놓은 어느 비오는 날, 급기야 은행에 다녀오시던 길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집 앞의 미끄러운 계단 앞에서 넘어지고 만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세번째 척추압박골절 진단을 받았다.
하루 종일 엄마를 돌볼 수 있는 형편이 아닌지라 입원은 당연지사. 가만히 누워서 천장만을 봐야하기 때문에 척추압박골절 환자는 특히 더욱 지루한 입원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게 마음이 쓰여서 병원 1층 편의점에서 이어폰을 사다드리고, 라디오 앱을 깔아드렸다. 사용법을 숙지하실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기 때문에 알려드리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간단하게 쓸 수 있게끔 알려드렸다. 그때 마침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나왔다. 그렇다. 나도 노래 제목/가사와 같은 심정이었다. 알아들 수 있었다면, 아마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어제여 다시 한번'과 같은 심정이기는 하지만, 지금 나는 일어난 일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좋은 일이나,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어쨌든 '삶'을 원하는 것으로만 채울 수는 없으니까. 지나간 어제는 아쉽지만, 일어날 일, 일어나야 하는 일은 결국엔 일어나게 마련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것들 모두를 끌어안고, 사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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