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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세.소] 죽어야 쉬는 세미나, 《춘추좌전강독》

by 북드라망 2024. 8. 26.

죽어야 쉬는 세미나, 《춘추좌전강독》

 

봄날(문탁네트워크)

 


2년 전 어느 날, 진달래가 ‘좌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상하게 끌리는 말이었다. 왜 끌리는지는 그때는 잘 몰랐는데, 고전문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내가 진달래와 토용처럼 중국고전을 오래동안 공부해서 원문을 척척 읽어내는 게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덜컥 세미나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달랑 세 명이서 세미나를 이어나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봄빛이 완연한 화요일 아침, 중국 춘추시대 역사서 춘추좌전 읽기는 아무 준비도 없이, 그저 고전공부에서는 선배인 두 친구에 의지해서 한걸음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세미나는 시즌별로 책을 안배하고 한 시즌이 끝나면 방학을 배치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우리 세미나는 방학이 따로 없다. 역사서이니까 시즌별로 배치할 수도 없고, 그리고 역사란 것이 중간에 끊고 잇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다만 군주가 죽으면 한 주 쉬기로 했으니, 그리하여 우리 세미나는 ‘군주가 죽어야 쉬는 세미나’가 됐다.^^

 



춘추좌전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이라고도 하는데, 공자가 역사서로 편찬한 『춘추』의 대표적인 주석서로 통한다. 춘추는 기원전 700년경부터 약 250년간에 걸친 노나라의 역사가 담겨 있다. 좌전은 좌씨전, 혹은 좌씨춘추라고도 불린다. 춘추가 연월일시의 사실을 건조하게 써내려간 편년체(編年體) 역사서라면, 춘추좌전은 여기에 전후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살을 붙인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의 책이라고 한다. 춘추좌전을 썼다는 좌구명은 노나라의 태사(太史)를 맡았던 사람으로, 모르긴 몰라도 좌전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춘추』의 대부분의 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우리가 읽는 『춘추좌씨전』은 양백준 선생의 주석이 달려있는 책이다. 양백준 선생은 근대 언어학자이며 주석가로 어릴 때부터 경서를 숙독하고 고문을 좋아했다고 한다. 인정한다. 좌전을 해석하면서 양백준 선생은 온갖 고서를 섭렵해서 옳고 그름을 견주기도 하고, 당신의 의견을 정리해서 결론을 내기도 한다. 그 정보의 방대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춘추 주석서 중 공양전(公羊傳), 곡량전(穀梁傳), 그리고 좌전을 삼전(三傳)이라고 해서 권위를 주는데, 양백준 선생은 이 삼전의 주석은 물론이고 사마천의 『사기』(史記)로부터 공영달, 두예, 심흠한 등의 주석을 기본값으로, 수많은 고서를 횡단하면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주례』등 경서의 온갖 구절이 춘추좌전을 해석하는데 등장한다. 덕분에 때로 정신이 핑 돌 정도로 복잡하기도 하지만, 춘추시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수많은 제후국과 그 세월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드라마처럼 입체적으로 그리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좌구명의 글솜씨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좌전의 내용 자체가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가끔 소설같은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재미를 느낀다. 특히 나는 권력이라는 것의 무상함에 자주 감정이입되곤 한다. 제아무리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는 기세등등한 군주라 해도 언제든 죽임을 당하거나 자리에서 끌어내려지는 일이 다반사이고, 그럴 때 권력자의 죽음은 훨씬 잔인하고 한스럽다. 군주의 죽음은 나라밖의 적이 아니라, 대부분 내부인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자기 핏줄인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 가령 제나라 환공은 관중이라는 대단한 재상과 함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관중이 죽자 환공의 다섯 아들이 저마다 환공의 후계를 자처하고 나섰다. 미처 후계를 정하지 못하고 환공이 죽자, 제나라 궁실은 후계를 둘러싸고 아수라장이 됐다. 다섯 아들은 아버지의 장례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자신이 후계자가 되는 것에만 혈안이 됐다. 천하를 호령했던 제후지만 그 죽음은 석달이 되도록 부고를 내지도 못했고, 그 사이 시신의 몸에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우웩! 노나라 역사서인 좌전은 이렇듯 오히려 노나라보다는 주변 국가의 이야기가 훨씬 많이 다루어지고 있고, 많은 제후국끼리의 싸움이나 나라안에서 일어나는 권력다툼의 에피소드가 무궁무진하게 수록되어 있어, 춘추전국시대의 생활, 문화, 전쟁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춘추좌전강독 세미나를 할 때 토용과 진달래, 두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여전히 춘추전국시대를 포괄적으로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나는, 좌전에 나온 구절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그때마다 토용과 진달래는 예기나 주례, 각종 세가를 가져와 궁금한 점을 풀어주고, 당대의 역사적 상황을 이애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들이 아니면 내가 어디서 이렇게 즐겁게 춘추시대 텍스트를 읽을 수 있다는 말인가. 대신 나는 가끔 두 동학들과 나눌 간식을 가지고 온다.^^

춘추좌전은 노나라 은공부터 애공에 이르기까지 12대 군주의 시절 252년의 역사를 다룬다. 2022년 3월부터 2년이 넘게 세미나를 이어오고 있으니 햇수로 3년차이다. 지금 문공 시기를 읽고 있는데 문공은 노나라의 여섯 번째 군주이다. 이말인즉슨 우리가 그동안 다섯 번의 방학을 맞았다는 것인데, 사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왜냐 하면 네 번째 군주인 민공(閔公)의 제위기간이 달랑 2년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이어서 대를 이은 희공(僖公)까지 하고 방학을 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희공의 제위기간은 33년이나 되었고, 또 사건사고도 너무 많았다. 결국 우리는 방학 한 번 없이 꼬박 11개월을 달렸다. 지금 읽고 있는 문공께서는 18년동안 제위하셨고 아마도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쯤에 우리에게 달콤한 방학을 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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