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당의 <어바웃 러시아> 세미나를 소개합니다
김희진(감이당)
우리 ‘어바웃 러시아’세미나는 아직 채 한 살이 되지 않았다. 2024년도 2월에 감이당의 프로그램들의 시작과 함께, 나(세미나 매니저)의 한 해 공부의 동반자가 되어 줄 세미나를 함께 기획했던 것이다. 본 매니저는 긴 호흡으로 한 우물을 파는 진득함이 부족하여 뚜렷한 전공 분야 없이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전전하며?) 다양한 세미나를 열어왔던 터다. 2024년을 시작할 때, 바야흐로 나의 공부거리는 20세기의 성자, 톨스토이였다. 톨스토이는 간디의 비폭력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고, 폭력으로 점철된 20세기에 한 줄기 빛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등대가 되어주었다. 나는 <간디와 20세기 지성>이라는 타이틀의 대중지성을 이끌며 그 지성 중 한 명으로서의 톨스토이를 맡아 공부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공부의 범위는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톨스토이의 작품은 몇 년 전에 러시아문학을 하면서 몇 권 읽었기 때문에, 그때 읽지 않았던 작품들 위주로 공부하면 될 줄 알았었다. 그러나, 웬걸? 톨스토이가 영성의 길로 전향한 이후의 작품과 그의 메시지를 이해하려면 당시의 러시아의 정치적 상황을 알아야 했고, 그러려면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와 사상에 대해서 공부해야 했다. 그리고 일단은 러시아에도 한 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 현재 푸틴체제의 러시아에 대해서도 알아야 했다. 러시아어도 몇 마디 할 줄 알면 좋을 것이다. 와우~!! 내 앞에 떡 하니 펼쳐진 ‘러시아’ 공부는 마치 러시아의 광대한 설원처럼 끝없이 하얬다. 나는 눈처럼 하얀 백지 상태로 무작정 러시아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모르겠다. 러시아에 관한 거면 뭐든! 그러니까 그냥 ‘어바웃 러시아’다.
막막했던 만큼 주변의 조력을 구했다. 첫 책은 학생 때 러시아에서 유학했고 거기서 만난 한국남자와 결혼해서 지금도 남편은 러시아 관련 일을 하고 있는, 한 대중지성 쌤이 추천해주었다.(세미나원은 아니심) 이 책 『가까운 러시아, 다가온 유라시아』는 러시아 및 유라시아15개 국과 무역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속성으로 읽어 두면 좋을 다이제스트같은 책이다. 정치, 경제, 역사, 종교, 지리, 관광, 철도와 산업, 공연, 예술 등등 전체적인 스케치에 딱 좋은 책이다. 러시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보드카의 종류와 도수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으니, 이 책 한 권만 달달 외우고서 거래처와 회식을 한다면 보드카 한 병이 동나기도 전에 계약 체결은 따놓은 당상일 것 같다.
이 책은 알찬 핵심정보를 제공하는데 주력한 책이었기 때문에 공부한 내용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매주 전 시간의 내용을 시험 보았다. 덕분에 지금도 기억나는 재밌는 것들이 많다. 미국의 선제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러시아의 핵방어 시스템의 이름은? 정답! 데드 핸드^^ 또, 흥미 유발을 목적으로 세미나 초반 20분은 러시아어를 하는 걸로 짰었다. 동영상 강의와 함께 구매할 수 있는 러시아어 교재도 고마운 러시아통 쌤이 추천을 해주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개강 전에 직접 와서 러시아어 자모음을 1:1 과외로 해주고 가셨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일주일에 한 번 20분 공부하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시즌1-8주 동안에 자음도 다 못 뗐다. 이후엔 사람이 안 올까봐 시도를 못하고 있다.
두 번째 시즌에선 러시아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기로 했는데, 내가 고른 건 글자도 빽빽한 두 권짜리 책이었다. 첫 시즌의 마지막 날 미리 책을 보여준 것이 실수였을까? 다섯 분 샘들의 눈빛은 ‘이렇게까지 속속들이 알고 싶진 않은데...’였다. 속으로 ‘앗..! 너무 어렵고 지루해 보이나? 쉽게 읽히는 걸로 바꿔야 할까?’라고 고민하던 차에, 때마침 인문세의 오○민 샘께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러시아적 인간』을 선물해주셨다. (공부램프의 ‘지니’ 같은 분~) 이 책은 러시아 작가를 한 사람씩 비평한 10편의 글과 러시아적인 것에 관한 4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쉽게 읽히지만 깊이가 어마어마한 책이었다. 그래서 너무 빽빽해 보였던 『러시아의 역사』와 동시에 읽어가기로 했다. 덕분에 자칫 지루할 뻔 했던 14회의 비교적 긴 세미나 시간은 무척 알차고 재밌었다. 역사파 김○호 선생님과 문학파 박○옥 선생님은 세미나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셨고, 말씀들이 많으셔서 매니저의 힘을 많이 덜어주셨다.^^
지금 세번째 시즌을 맞이해서는 러시아 정교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톨스토이의 종교 에세이도 포함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러시아가 이토록 영성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나라라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역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강렬한 신앙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천 년간의 정교(正敎)의 역사와 러시아 민중의 선에 대한 열망이 밑바탕에 깔려 있던 것이다. 책에 실려있는 ‘이콘’들에서 종교와 미(美)의 결합을 추구하는 러시아인의 소박하고 따뜻한 정서가 느껴졌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토록 사랑과 순종을 추구하는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종교를 부정했고, 폭력이 난무했으니 말이다. ‘어바웃 러시아’세미나를 시작할 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난 지 2년이 되어가던 때였다. 이젠 슬슬 끝나겠지, 그렇게까지 어리석진 않겠지. 라고 희망을 걸었지만 끝나지 않고 오히려 확전되는 모양세다. 잊고 있었다. 우리는 이유없이 전쟁을 할 수도 있고, 한 민족을 싸그리 학살할 수도 있고, 수십만의 생명을 잔인하게 앗아가는 핵폭탄도 그냥 손가락 하나 눌러서 발사할 수 있는 무모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인간’이었다. 러시아 세미나를 하겠다고 했을 때, 뜬금없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러시아, 하면 사회주의와 더불어 악마화된 푸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쟁을 일으킨 ‘나쁜’ 나라에 대한 세미나여서인지 모집이 쉽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세미나’에 발을 척 들여놓으시는 분들은 러시아에 대한 선입견 없이 자신만의 확고한 이유가 있으시다. 지구 온난화로 곧 러시아의 시대가 올 것 같아서, 러시아의 예술을 좋아해서, 종교를 연구하는데 러시아 영성이 궁금해서, 그리고 이번 여름의 지긋지긋한 폭염에 질려 ‘러시아’ 세미나 들어가면 느낌상 시원할 것 같아서... 이러다 보니 이렇게 4~5명의 세미나원들과 근근이, 그러나 계속 이어가는 게 신기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하지만 모든 일엔 끝이 있고, 조만간 우리 세미나 샘들과 함께 러시아를 여행할 날이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지에 뿌리박힌 영성이 제 힘을 발휘할 수 있기를 계속 공부하며 기도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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