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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열의 자기만의 고전 읽기

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손자병법』(3) _ 『한서』 「예문지」의 병서 분류

by 북드라망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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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의 기동성과 개념의 유동성, 『손자병법』(3)

『한서』 「예문지」의 병서 분류

                      

본문의 구성과 내용을 살피기 전에 「예문지」에서 언급한 병서의 분류 방법과 의미를 파악해 『손자병법』의 위치를 가늠하는 일이 우선일 것 같다. 그런 이후에 『손자병법』을 얘기하면 책의 체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예문지」는 병서를 네 종류로 분류했다. 

 


1) 병권모(兵權謀): 「예문지」의 정의를 보자. “권모는 올바름으로 나라를 지키고, 기이함으로 군사를 부리는 것이다. 계책을 먼저 세우고 전쟁은 그 뒤에 한다. 형세를 겸하고 음양을 포함하며 기교를 쓴다”[權謀者, 以正守國, 以奇用兵, 先計而後戰, 兼形勢, 包陰陽, 用技巧者也.] 권모를 정의하면서 정(正)에 상대되는 기(奇, 기이함, 기발함)를 내세운 점, 계(計)를 우선으로 둔 점, 나머지 세 가지 특징을 모두 포괄한다는 점으로 설명했다. 간결하게 핵심을 찔렀다. 권모를 제일 먼저 분류한 이유가 자연스레 드러난다. 正과 奇는 상대적이면서 서로 보완하고 지탱하는 개념이라는 점을 언급해 두어야 겠다. 이 말에는 고실(顧實)의 『한지강소』(漢志講疏)의 다음 문장이 인용되었다. “『노자』에, ‘올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함으로 군사를 부린다’고 했다. 『손자』에, ‘무릇 전쟁은 올바름으로 적과 싸우고 기이함으로 적을 이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병가와 도가는 통한다”[老子曰:“以正治國, 以奇用兵.” 孫子曰:“凡戰者以正合, 以奇勝.” 故道家·兵家通也]. 고실(顧實)의 말이 중요한 까닭은 이미 이 시기에 도가와 병가가 통한다는 진술이 널리 인정되었다는 점이다. 치국에 용병이 절실한 문제임은 무력을 반대한다는 명분과는 별개로 실제로는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말이다. 군사와 무력 문제는 이상을 목표로 찬반이 나뉘는 경우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혼동하면 안 된다. 
   
2) 병형세(兵形勢): “형세는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부는 듯 움직이며 나중에 출발해도 목적지에 먼저 도착하는 것이다. 흩어졌다 모이고 등졌다가 다시 한 지점으로 모이는데 그 변화가 무궁하다. 가벼움과 날랜 움직임으로 적을 제압한다”[形勢者, 雷動風擧, 後發而先至. 離合背鄕, 變化無常, 以輕疾制敵者也].
형/세는 正/奇의 개념쌍과 똑같이 상대적이면서 보완하며 서로를 지탱한다. 어느 하나가 없어서는 안 되며 어느 한쪽이 우세하거나 더 중요한 게 아니다. 전체적으로 ‘형세는 적에 따라 지리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해 병력을 배합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잘 가리킨 말이다. 

3) 병음양(兵陰陽): “음양은 때에 순응해 시작하는 것으로 천지(天地)의 십간십이지(十干[德. 날짜와 관련]十二支[刑])를 추론하고 북두칠성이 가리키는 곳[斗擊]에 있는 적은 상대하지 않는다는 말을 따르는 것이며 오행의 상승(相勝)에 맞게 움직이며 귀신을 빌려와 도움을 얻는 것이다”[陰陽者, 順時而發, 推刑德, 隨斗擊, 因五勝, 假鬼神而爲助者也]. 용어가 어렵다. 음양오행 이론에 나오는 전문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하자면 천문(天文)과 지리(地理)를 알아 택일(擇日)과 지형을 선택하고, 자연물의 움직임에 따라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기술 등을 포괄한다. 미신과 과학이 혼합된 곳이고 종교와 심리학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옛날 군대에 점쟁이와 무당을 둔 것도 모두 이와 관련된다. 지금은 과학으로 학문화되었지만 예전에도 그만큼 중요했던 분야이다. 다른 말로는 수술(數術)이라고도 하는데 의미가 겹치는 부분이 많다.

4) 병기교(兵技巧): “기교는 개개인이 손발을 움직이는 무술을 익히고 개인무기를 능숙하게 석궁 등 중요한 무기를 잘 비축해 공격과 수비에서 이기도록 준비하는 것이다”[技巧者, 習手足, 便器械, 積機關, 以立攻守之勝也]. 기교는 개인의 연습과 집단의 무기 숙달 등 기술적인 측면을 다룬 책이다. 무기훈련교재라고 볼 수 있겠다.

이어 병가(兵家)에 관해 총괄하며 글을 맺는다. “병가는 옛날 군사를 담당하는 관직에서 나왔을 것으로 역대 조정관리들이 담당한 군비(軍備)였다. 『서경』의 「홍범」(洪範)에는 여덟 가지 정책이 보이는 데 여덟번째가 군사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를 충실하게 해야 한다’고 했고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싸우게 한다면 이는 백성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다. 군사의 중요성을 밝힌 말이다”[兵家者, 蓋出古司馬之職, 王官之武備也. 洪範八政, 八曰師. 孔子曰爲國者, “足食足兵”, “以不敎民戰, 是謂棄之”, 明兵之重也]. 문장은 이어져, 『주역』(周易)을 인용해 군사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말로 시작해 긴 역사를 다룬다. 군사문제가 국가의 중대사라는 관점에서 병가를 서술한 것이다. 어떤 테마를 다룰 때 연원을 얘기하고 역사로 증명하는 전형적인 글쓰기지만 군사에 대한 생각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권모·형세·음양·기교 각각은 자기 나름의 분야와 쓰임새가 있는데 특히 군사 분야에 적용했기 때문에 앞에 병(兵)이라는 말을 붙였다. 이들은 모두 한나라 시대의 인식을 담은 분류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한나라 때 이전의 도서와 자료가 집대성되었다는 점에서 요긴한 참고항이다.

 

글_최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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