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공부가 정치다

by 북드라망 2025. 9. 1.

공부가 정치다

이인(고전비평공간규문)


1. 공부와 정치를 묻다
규문에서는 매달 한두 번씩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지하철 시위에 참여한다. 우리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공부했으며, 그들의 투쟁에 공감했다. 마침 전장연은 규문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혜화역 지하철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었으며, 우리는 이웃으로서 응원하는 마음으로 시위에 주기적으로 참석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처음 참여할 때 나의 마음은 궁금증과 호기심이 컸다. 뉴스와 기사로만 접하던 시위 현장에 직접 서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몇 번 참여하다보니 시위에 나가기 싫다는 ‘불편한 마음’이 조금씩 움트고 있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시위라는 문화가 낯설었고,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두려웠고, 시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웠으며, 의미를 모르는 채 외치는 구호가 공허하게 느껴졌다. 자꾸만 뭔가 스스로 진실되게 연대하고 있지 않다는 감각이 괴로웠다. 평소에는 장애인의 삶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 한 번씩 시위에 나간다는 것이 위선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이런 불편함을 견딜 수 없어 동료들에게 선언했다. 나는 앞으로 시위에 나가지 않겠다고, 별로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료들과 서로 어떻게 전장연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이는 시위에 나가는 것이 두렵기도 하지만 옆에 동료들이 있어 점차 괜찮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또 다른 이는 시위 현장에서 다양한 질문이 솟아나고,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로 연결되는 것을 경험한다고 했다. 그리고 또 다른 이는 평소에 자신도 전장연의 투쟁에 관심을 갖지 못하지만, 시위에 참여하면서 궁금증이 촉발되고 그로부터 더 알려고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나의 어려움을 털어놓고 동료들의 생각을 듣는 과정에서 어느새 불편했던 마음은 조금씩 옅어졌다. 이제 다른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료들에게 다시 시위에 참석하면서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겠다고 하며 마무리지었다.

 


  
이후, 나는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 다시 묻게 되었다. 일차적으로 내가 공부하는 방식에 대한 부끄러움과 의문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이 부끄러움은 대체 뭘까?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시위에 참여하라는 법은 없다. 내 부끄러움은 시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내 공부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협소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동안 나에게 공부란 무엇이었을까? 공부가 무엇이기에 전장연 시위 참여를 ‘불필요한 것’, ‘소모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을까? 나에게 공부란 나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고쳐나가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공부는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작업이었고, 사회 구조를 문제삼는 전장연의 시위는 나를 서걱거리게 했고 거리를 두고 싶게 했다.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공부와 정치를 나누는 이분법이 있었다. 공부는 책상에 앉아 책과 대면하는 개인적인 활동이고, 정치는 거리에 나가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실천적인 활동으로 구분한 것이다. 평소 정치적 문제들을 무심하게 지나치고, 공부는 개인의 성장과 성과를 위한 것으로 환원하고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구분 때문이다.

 
그런데 공부는 정말 개인적이기만 한 것일까? 생각해보면, 공부가 개인의 문제를 변화시킨다고 할 때, 그 ‘개인의 문제’라는 것은 사실 사회 구조와 무관할 수 없다. 그리고 공부는 이미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이 연결된 채 펼쳐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공부한다는 것이 절대 개인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없다.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거대한 활동만이 아니라 연구실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타협하고, 갈등을 중재하는 과정 또한 정치라고 할 수 있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타자일지라도 그러한 존재와 함께 살아감을 감각하고 실천한다면 그것 또한 정치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정치는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부터 이루어지고 있다. 어렴풋하게나마, 공부와 정치가 완전히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하지만 아직도 공부와 정치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묻고 싶다. 공부와 정치의 관계란 대체 무엇일까? 근본적으로 이 둘은 어떤 관계로 구성되어 있는 것인가?
  

2. 노심자(勞心者) : 덕(德)으로 통치하는 사람
맹자에게 공부한다는 것(學)은 무엇인가? 맹자는 공자를 사숙한 유학자다. 대표적인 유학 텍스트인 <대학(大學)>에서는 공부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대학의 도는 자신의 밝은 덕성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자기 몸처럼 아끼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의 경지에 머무는 데 있다.” 유학에서의 공부(學)는 지금 우리 시대의 공부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지식과 정보의 습득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으며, 자격증과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도 아니다. 유학자에게 공부란 자기 자신의 덕성을 수양하는 것이고, 다른 존재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일이며, 자기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을 실현하는 일이다. 맹자에게도 공부는 이와 다르지 않았다. 공부(學)란 자기 자신과 타자,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탐구하는 일이며, 더 나아가 배운 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일까지 포괄한다.
  
맹자가 말하는 정치(治) 또한 우리의 기존 관념과는 다르다. 맹자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지위에 있다고 하여 다른 사람을 통치(治)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시험을 잘 보고, 머리가 좋아서 관료로 임명되었다고 하여 그가 통치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맹자는 덕(德)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통치에 전제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통치자의 덕성이다. 덕(德)이란 그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 드러나는 실천적 역량이며, 공부(學)를 통해 평생 자신을 갈고닦는 과정 속에서 발휘된다. 그러므로 맹자에게 공부한다는 것(學)은 통치(治)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고대 서양 철학자 플라톤도 공부와 정치의 관계를 맹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고한다. 그는 철학하는 사람만이 타인을 올바르게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철인통치’라고 명명했다. 플라톤에게 철학자란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었다. 왜 영혼을 돌보는 존재만이 타자를 통치할 수 있다고 말하는가? 자기 영혼을 돌보지 않는 자들은 명예에 대한 욕망, 부에 대한 욕망, 자유에 대한 욕망 등등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에 자기 자신을 내맡기게 된다. 이 상태에서 타자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하여, 자신의 영혼을 통치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존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맹자와 플라톤 모두에게 자기를 통치하는 일과 다른 사람을 통치하는 일은 분리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勞心)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의 힘을 수고롭게(勞力) 한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勞心者治人), 몸의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勞力者治於人).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여주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 의해 먹고 사는 것이 천하의 보편적인 원리이다. 或勞心, 或勞力;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天下之通義也.”


 
일반적으로 노심자(勞心者)는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으로, 노력자(勞力者)는 ‘몸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으로 해석해왔다. 즉 노심자(勞心者)는 공직자, 정치인 등등 정신적 능력을 주로 사용하여 통치하는 존재로, 노력자(勞力者)는 육체 노동으로 생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마음’(心)을 수고롭게 하는 것과 ‘몸’(力)을 수고롭게 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걸까? 어떤 활동도 마음만 쓰거나 몸만 쓸 수는 없지 않은가? 누군가의 삶을 고민하고 걱정할 때 마음을 쓴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육체적인 피로도 함께 축적된다. 요리하고, 청소하고, 작업할 때 몸을 주로 쓴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마음이 깃들지 않은 것도 아니다. 심(心)과 력(力)은 늘 함께 작동하고 있다. 그러면 심(心)과 력(力)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맹자>에는 “무력(力)을 사용하면서 인을 실천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은 패자(霸者)인데, 패자에게는 반드시 큰 나라가 있어야 한다. 덕(德)으로써 인을 실행하는 자는 왕자(王者)이다. 왕자는 큰 나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以力假仁者霸, 霸必有大國, 以德行仁者王, 王不待大”는 구절이 있다. 이를 근거로 노심(勞心)은 덕(德)을 쓰는 것으로, 노력(勞力)은 힘(力)을 사용하는 것으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 즉 노심자(勞心者)는 덕으로 통치하는 왕자(王者)를, 노력자(勞力者)는 힘으로 통치하는 패자(霸者)를 의미한다. 그러면 노심자는 남을 다스리고(治人), 노력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고(治於人) 하는 말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는 힘을 사용하는 사람이 통치자인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무력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킨다면 사람들이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억지로 복종한다. 덕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킨다면 진심으로 기뻐하며 복종하니, 칠십 명의 제자들이 공자에게 복종한 것이 그 예이다. 以力服人者, 非心服也, 力不贍也; 以德服人者, 中心悅而誠服也, 如七十子之服孔子也.”

 


무력과 폭력, 강제력으로 통치하는 것은 자기 뜻으로 상대를 억누르는 일이다. 힘에 의한 통치에는 일시적으로 복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따르고 싶어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억지로 따르는 것이다. 이는 폭력에 의존하는 통치는 권력의 기반이 약해지는 순간,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위태로운 구조’다. 폭력은 더 큰 폭력에 의해 제압당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진정으로 복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노력자(勞力者)는 결국 타인을 지배할 수 없으며, 거꾸로 타인을 지배하는 그 힘에 의해 자신이 지배당하게 된다. 힘은 언제나 더 큰 힘에 의해 정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덕(德)을 바탕으로 한 통치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정치다.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心悅)하며, 마음으로 복종(心服)하게 한다.

“백성이 농사철을 놓치지 않게 하면 곡식이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넉넉해지고, 촘촘한 그물을 웅덩이와 못에 넣지 않게 하면 고기와 자라가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넉넉해지며, 도끼를 적절한 때를 지켜 산림에 들여놓게 하면 재목이 이루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넉넉해질 것입니다. 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 數罟不入洿池, 魚鼈不可勝食也; 斧斤以時入山林, 材木不可勝用也.”


덕치(德治)는 백성들이 놓여 있는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통찰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정치다. 이처럼 ‘마음을 쓰는’ 노심자(勞心者)는 감화를 통한 자발적 복종에 의해 진정한 통치를 실현할 수 있다. ‘마음으로 복종한다는 것(心服)’은 그 사람의 통치 역량에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하다. 덕(德)은 자신을 수련하고, 타자의 삶을 고민하고, 세계의 이치를 탐구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연마된다. 그런 의미에서 학문적 수련과 덕성의 함양은 통치의 필요조건이다.

 
3.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 왕도 정치의 출발점
맹자는 덕(德)으로 통치하는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덕(德)으로 통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남는다. 구체적으로 덕(德)을 수양한다는 것은 뭐고, 정치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다는 건가?

제선왕은 어느 날 맹자에게 자신도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행할 수 있는지 묻는다. 맹자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가능하다’고 답한다. 그 근거로 맹자는 제선왕이 과거에 직접 겪었던 일화를 가져온다. 왕이 마루 위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소를 끌고 지나가는 자가 있었다. 그에게 소를 왜 끌고 가느냐고 물으니 흔종(釁鍾)에 쓰이는 것이라고 했다. 왕은 소가 부들부들 떨며 죄 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꼴을 ‘차마 볼 수 없어서’(不忍人之心) 신하에게 소를 놓아주라고 명령한다. 맹자는 그때 소에게 느꼈던 그 마음이라면 충분히 왕도정치를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의 고통을 ‘차마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에서 맹자는 무엇을 본 걸까? 이 마음은 작고 사소한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이 마음이 왕도정치를 행하기에 충분하는 것일까? 맹자에 따르면, ‘불인인지심’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이다. 그 근거 중 하나가 어린 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느닷없이 보게 되는 경우다. 그럴 때 누구라도 깜짝 놀라고 측은한 마음(惻隱之心)이 생겨나서 달려가 그 아이를 구하려고 할 것이다. 이 마음은 어린 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명예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니며, 아이를 구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불인인지심’은 이해 관계나 욕망의 강압에 의해 이끌린 것이 아닌 선한 본성이 표출된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마주할 때, 혹은 추위와 배고픔에 허덕이고 생사의 위험에 직면한 생명을 마주할 때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바로 본성이 선하다는 증거다. 맹자가 제선왕에게 충분히 왕도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의 선한 본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한 본성이 누구에게나 내재하고 있다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이는 작은 실마리로 존재하기에 아직 그 힘은 미미하다. 그렇기에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은 왕도 정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도달점은 아니다. 맹자는 제선왕에게 소에게 느꼈던 이 마음을 확충(擴充)하여 백성에게까지 이르게 하면 왕도정치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거리낌없이 하는 일에까지 확충해서 적용하는 것이 인(仁)이다. … 사람이 남을 해치고 싶어하지 않은 마음을 확충한다면 인은 이루 다 실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게 된다. 人皆有所不忍, 達之於其所忍, 仁也. … 人能充無欲害人之心, 而仁不可勝用也.”


사실,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은 일상생활 곳곳에서 경험한다. 가까운 사람이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고 있을 때,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아픔이 직접적으로 다가올 때, 안타까운 사연의 기사나 뉴스를 접했을 때 등등. 하지만 이 마음은 잠깐 솟았다가 또 금방 사라진다. 우연히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지만, 잠깐의 감정으로 지나칠 뿐 대부분의 시간은 타자의 고통을 외면한 채로 살아간다. 눈앞에서 폭력이 벌어지고 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난지도 모른 채 무감하게 지나치기도 한다.

확충(擴充)이란 작은 공감능력을 확장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다. 다른 존재의 고통을 무심하게 지나치지 않도록,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존재의 고통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타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조건, 사회 구조적 맥락까지 살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자의 고통을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공부(學)다. 자신과 타자의 실존이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이해하고 타자의 고통에 한 걸음씩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인(仁)의 실천이다.

“늙고 아내가 없는 이를 홀아비(鰥)라 하고, 늙고 지아비가 없는 이를 과부(寡)라고 하며, 늙은데 부양해줄 자식이 없는 이를 무의탁자(獨)라 하고, 어린데 보살펴줄 부모가 없는 이를 고아(孤)라고 합니다. 이 네 부류의 사람은 천하에서 곤궁한 백성들로서 어디에도 호소할 데가 없는 이들입니다. 문왕은 정사를 펴서 어진 마음을 베풀 때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을 가장 먼저 배려했습니다. 그래서 『시경』에서는 ‘부유한 이들은 괜찮지만, 애처럽도다 곤궁하고 외로운 사람들이여’라고 했던 것입니다. 老而無妻曰‘鰥’. 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 幼而無父曰‘孤’. 此四者, 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 必先斯四者.老而無妻曰‘鰥’. 老而無夫曰‘寡’. 老而無子曰‘獨’. 幼而無父曰‘孤’. 此四者, 天下之窮民而無告者. 文王發政施仁, 必先斯四者. 『詩』云: ‘哿矣富人, 哀此煢獨.’”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으로부터 비롯된 왕도정치의 일면이다. 환과고독(鰥寡孤獨) 같은 존재들을 일반화하면 우리 사회에서 주변화되고 소외된 소수자라고 말할 수 있다.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이기에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이런 존재들에게 ‘불인인지심’을 느껴 통치를 행한 사람이 바로 문왕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측은지심을 포착하여 그것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까지 미루어 나아가는 것, ‘차마 고통을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을 출발점으로 삼아 공감을 확대하는 것, 그것이 왕도정치다.

 



 
4. 자득(自得) : 스스로 깨우치고 체화하는 공부
이제까지 내가 공부했던 방식을 돌아보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여 좋은 결과물을 내고 싶다는 마음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 집착은 남들에게 내가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 그래야 나의 존재가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개인적 성과와 성취에 욕심이 생길수록 그것과 상관없어 보이는 일들은 뒤로 미루고, 귀찮은 것으로 두곤 했다. 그러나 맹자에게 공부란 무언가를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

“군자가 올바른 도로써 사물을 깊이 탐구해 들어가는 것은 스스로 체득하기(自得) 위해서이다. 스스로 체득하게 되면 사물을 대하는 것이 편안하게 된다. 사물을 대하는 것이 편안하게 되면, 그것에서 취해서 축적하는 것이 깊어진다. 취해서 축적하는 것이 깊어지면 자신의 가까운 곳에서 이치를 탐구하여도 그 근본적인 이치와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스스로 체득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 則居之安; 居之安, 則資之深; 資之深, 則取之左右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


 맹자는 자득(自得)하기 위해 공부한다. 자득(自得)한다는 것은 단순히 눈과 머리로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이에게 앎을 의존하는 태도도 아니다. 자득(自得)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서 마주한 질문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질문으로부터 탐구하고, 스스로 깨우치고, 체화하는 것이다. 나는 어디서부터 자득(自得)의 공부를 실험해볼 수 있을까?

돌이켜보니, 전장연 시위에 나갔을 때 나를 괴롭혔던 문제 중 하나는 장애인의 삶에 잘 공감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시위 현장에서 장애인과 직접 마주하고 있음에도, 또 그들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나의 마음은 무뎌져 있었다. 그곳에 함께 서 있음에도 그들의 삶에 공감하지 못하는 나의 상태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태도로 참여해보고 싶다. 그동안 전장연 시위에 참여하면서 다가왔던 작은 실마리들을 붙잡는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 노동하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하는 그들의 조건, 시민으로 함께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사회 등등의 이야기 속에서 문득문득 마음이 아려오고, 휘몰아치고,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이 존재했다. 이렇게 미세하게 지나쳐간 감정들을 씨앗으로 삼아 질문하고,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득(自得)의 공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공부는 더 이상 나의 세계에 갇혀있지 않도록 한다. 우리가 어떤 세계에 존재하며,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그 이해를 풍성하게 하며, 그곳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마땅한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에게 가장 직접적인 정치적 현장은 연구실이다. 매일 함께 밥 먹고, 수다를 떨고, 세미나를 하며, 때로는 사소한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는 이곳의 사람들이 실제로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존재들이다. 이 관계들에서도 여러 다양한 감정이 오가고, 어긋남과 불화가 발생하며,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구체적 현장이다. 무딘 나의 신체는 비단 전장연의 시위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밀착하여 살아가는 관계 속에서도 누군가의 아픔을 나의 방식대로 해석해버리거나, 무심하게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이 일상적 공부의 장 또한 공감능력을 연마하는 실험장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더이상 나를 증명하거나 개인의 성장으로 환원되는 공부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 그리고 멀리 있지만 나와 얽혀 있는 존재들에게 감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공부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