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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씨나 지중해

[메디씨나지중해] 언어 속 균형감각

by 북드라망 2023. 1. 4.

언어 속 균형감각



여름이 다 갔다
여름이 다 갔다. 9월 2일, 나 역시 바르셀로나로 되돌아왔다. 인천공항에서 한바탕 소동을 치른 것만 빼면 비교적 무탈하게 도착했다. 출국 날 부모님이 사과 수확에 정신없이 바쁜 시기인지라 나는 혼자 인천 공항에 갔었다. 떠돌이 생활 경력이 몇 년인데 출국 하나 혼자 못하겠는가?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다. 나는 티켓팅을 할 때가 되어서야 내가 탑승하게 될 에띠하드 항공사가 올 여름 기내수화물 규정을 바꿨고, 내가 가져온 짐 중 10킬로를 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알게 되었다. 나는 저항했다. 한국에 입국할 때는 아무런 문제없었다! 그러나 승무원들은 규정이 바꾼 지 벌써 두 달이 되었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두 달 전이라고? 내가 언제 바르셀로나를 떠났더라? 6월 30일, 두 달 하고도 이틀 전이다. 아하. 바로 이 이틀의 차이 때문에 나는 운이 나쁘게도 (혹은 운이 좋게도?) 바뀐 항공사 규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기내수화물을 잔뜩 들고서 룰루랄라 유럽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인천 공항 바닥에서 캐리어 세 개를 모두 열어젖히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다 뺐다. 가져가기를 포기한 10킬로의 캐리어는 수화물 보관소에 맡기고, 공항 근처에 사는 이모께 다음날 수거해달라고 부탁드렸다. 비행시간이 촉박하게 다가오고 있던 터라 화를 낼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에코백에 책을 쑤셔 넣고 항공사 몰래 반입하는데 성공하자 (이것만 해도 4킬로는 될 것이다) 기분이 좀 좋아졌다.

인천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짐. 이 중 갈색 가방을 못 가지고 왔다ㅠㅠ


그 후로 비행기에 몸을 실은 순간부터는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5시간 환승을 했던 좁고 불편한 아부다비 공항에서는 죽치고 있을 카페를 용케 찾아내어 편안하게 일을 했다. (나중에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한국 청년들이 말하길 공항에서 나를 봤다고, 그런데 매우 느긋해보여서 현지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바르셀로나 입국장에서는 6월에 경찰서에서 미리 받아둔 <입국허가서>를 제출했더니 추가 질문 없이 곧바로 입국 허가가 났다. (이 서류를 받는 과정과 관련해서도 할 말이 산더미처럼 많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갈 때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한 루트를 밟았다. (딱 봐도 유학생인 사람에게 가격 덤터기를 씌우는 간 큰 택시 기사는 없다.)

그렇게 나는 기숙사에 도착했다. 열쇠를 받기 위해 리셉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치 여름이 아예 없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기숙사를 어제 떠났다가 오늘 도착한 것 같았다. 내 방학은 어디로 갔을까?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갔지?


여름 사이에 일어난 일들
그래도 여름은 왔다 갔다. 그 기간 동안 내 일신의 변화(결혼식, 시댁 방문, 원고 작업…)가 얼마나 많이 벌어졌는가를 생각하면 시간은 분명 흐른 게 맞다. 나뿐만이 아니다. 기숙사와 학교 캠퍼스 역시 분명하게 변화를 겪었다. 이는 내가 기숙사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눈에 띄었다. 학교 길거리 곳곳마다 걸린 깃발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 캠퍼스에는 새 학년을 시작할 때마다 바꿔 거는 홍보용 깃발이 있다. ‘올해의 UAB 좌우명’ 혹은 ‘올해의 UAB 캠페인’을 대표하는 문구와 그림이 거기에 적히는데, 앞으로 일 년 간 학교 운영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힌트가 된다. 가령 작년의 키워드는 에콜로지였다. 이 깃발에는 ‘지속가능한 캠퍼스 만들기—버스를 타는 대신 걸어 다니세요!’라는 문구가 스페인어와 카탈란어로 적혀 있었다. 환경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문장 하나가 카탈란어로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을 뿐이다. ‘No em toquis la llengua!’ 번역하면 ‘내 언어는 건들지마!’라는 뜻이다.

학교 캠퍼스 내 깃발


나는 눈을 의심했다. 이 문구가 담고 있는 의도는 명확했는데, 카탈란어는 중심어(스페인어)에 귀속된 지방어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언어이며, 카탈란어를 쓰는 선생이나 학생에게 스페인어를 써달라고 부탁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곳 카탈루냐 주에서 언어가 곧 정치라는 사실은 나 역시 일찌감치 깨달았다. 작년에 UAB에 등교하는 첫날부터 학교 곳곳에서 스페인어-카탈란어 사이의 압력이 터져나왔다.

그럼에도 나는 학교가 이처럼 공식적으로 카탈란어의 주도권을 지지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학교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카탈루냐의 교육계가 언어의 다양성을 지지하며 누구든 자기가 원하는 언어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의대는 스페인어 45%, 카탈란어 50%, 영어 5%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실제 수업은 스페인어 30% 카탈란어 70%, 영어 0%로 진행되지만 말이다.) 선생과 학생 모두가 스페인어와 카탈란어를 매끄럽게 오가고, 필요하다면 영어까지 끌어오는 다중언어의 환경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카탈란어를 닥치는 대로 배워야했던 나는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런 경험 자체가 귀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에 내걸린 하얀 깃발은 이제 다이내믹이 바뀔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고 있었다. 대체 여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올 여름, 카탈루냐 주 정부는 2025년까지 카탈루냐 내 모든 대학 과정의 80%를 카탈란어로 진행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규를 통과시켰다. 이유는 상황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카탈란어가 ‘스페인어를 쓰는 외부인들’에 의해 희석되고 사라질 위험에 놓였다는 것이다. 카탈루냐 독립 노선을 따르는 민족주의(내셔널리즘) 계열 의원들이 의회의 다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충분히 예상가능한 일이다. 이번 여름에 규정을 바꾼 게 에띠하드 항공사뿐만이 아니었던 셈이다.


정당성과 타당성 사이
이건 카탈란어에 서투른 이방인들에게나 당혹스러운 소식이다. 카탈루냐에서 대대로 쭉 살아왔고 카탈란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에게는 희소식이다. 드디어 당당하게 카탈란어를 쓸 수 있다! 그들은 불편해하는 이방인들을 불편해 한다. 카탈란어로 대학교육을 받고 싶고, 이 교육을 실행하는 곳은 카탈루냐 뿐이다. 그런데 왜 이방인들이 굳이 카탈루냐까지 찾아와서 카탈란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교육 받고 싶다고 떼를 쓰냐는 것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같은 국적을 공유한 ‘스페인인’이고, 카탈루냐 청년들이 스페인의 타 지방에 가서 진학할 권리가 있는 것만큼이나 이들도 카탈루냐에 올 권리가 있다. 그러나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심정으로는 씨알도 안 먹히는 논증이다.)

카탈루냐의 역사를 간단하게만 훑어봐도 이 열망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애초에 이베리아 반도는 통합된 국가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남부의 이슬람 왕국과 싸웠던 ‘레콩키스타’ 800년의 시간 동안에도 가톨릭 왕국들은 죄다 쪼개져있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싸우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필요하다면 이슬람 왕국과 연대하기까지 했다!) 1492년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이 결혼함으로써 최초로 스페인 제국이 성립된 후에도 각 지역의 자치성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시시때때로 왕궁이 무력으로 개입하여 카스테야어(오늘날의 스페인어)의 우선성과 중앙 정부의 정당성을 확인시켜야 했다. 이런 긴장 관계가 가장 최근에 폭발했던 사건이 바로 20세기 프랑코의 독재였다. 프랑코는 스페인의 모든 지역이 오로지 스페인어만 사용하게 강제했다. 이 조치에 가장 거세게 저항했던 곳이 바스코 지역과 카탈루냐 지역이다. 이토록 억압 받는 동안 카탈루냐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번영에 번영을 거듭했다. 지중해의 중요 항구로서 상업을 발전시켰고, 스페인에서 산업혁명을 가장 일찍 겪었으며,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문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1982년에 스페인의 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시작되자, 역사적으로 지켜온 카탈루냐의 자부심이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30년 만에 카탈루냐의 독립이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40년이 된 올해는 카탈란어에 주도권을 주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자치성을 가진 커뮤니티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에는 어떤 문제도 없다. 오히려 아름답고 지지받을 일이다. 인구가 300만에 불과한 이 작은 지역이 그토록 오랜 기간 언어를 지켜냈다는 것은 아주 대단한 문화 저력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한’ 행동이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프랑코 독재 하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자들이고, 그때의 기억을 아직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 피가 섞인 기억은 실존의 문제가 된다. 이 사람들에게 카탈루냐 땅에서 카탈란어를 쓰는 것은 단순한 언어 선택 이상의 일이다. 그러나 정당성을 지켜내는 일이 늘 현실에서 타당하게 실천되지는 않는다. 않는다. 문제는 카탈루냐의 언어적 독립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게 아니다. 그 사이에 외부 세상이 변했다는 게 문제다. 카탈루냐가 독재 정권의 탄압을 견뎌내고 정체성을 지켜내는 사이, 모두가 유동하는 21세기가 도래했다. 세계 모든 장소가 그렇듯이 카탈루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숫자의 여행자, 학자,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십중팔구 스페인어 혹은 영어를 쓴다. 이 중에서 카탈루냐에 와서 카탈란어를 자기 말처럼 소화해내는 사람은 소수다.


학교 기숙사에 막 도착했을 때의 풍경


따라서 스페인어-카탈란어는 더 이상 독재-저항의 도식만으로 해석될 수 없게 되었다. 카탈루냐에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프랑코 정권을 지지하기 위해 스페인어를 배운 게 아니며, 심지어 스페인어를 스페인의 전유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만 해도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 곳이 미국이었고 실력을 키웠던 곳은 쿠바였다. 만약 스페인어가 스페인만의 언어였다면 나는 굳이 이 언어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는 한 장소에 머물기 위한 지역어가 아니라 여러 국경을 넘게 해주는 ‘국제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페인 제국이 지난 400년 간 형성한 언어의 네트워크, 그리고 그 네트워크의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있는 21세기를 카탈루냐는 통과하는 중이다. 어쩌면 올 여름 통과된 교육 법규 역시 이러한 양적으로 압도해 들어오는 스페인어 사용자에 대한 위기감의 표출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어떤 기사에서는 이를 “스페인 사람들과 스페인권 아메리카인들(hispanoamericanos)의 유입”에 희석되지 않기 위한 조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언어의 독립권 보호 문제는 이민자 혐오 정서와 연결될 가능성이 생긴다. 카탈란어를 모르는 라틴 아메리카의 이민자는 ‘외국인’이라는 신분과 ‘스페인어’라는 언어 사용에서 두 번의 차별을 당한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나는 종종 짜증이 난다. 스페인어를 주 언어로 쓰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라틴 아메리카 이민자들을 자신들과 연관 없는 이방인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 스페인 제국이 400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를 유린하고 착취할 때, 이들은 제국주의의 이익과 무관하게 번영했던가? 역사 속에서 카탈란어는 오로지 피해자의 위치였는가? 오늘날 수많은 나라들이 제국의 언어를 쓴다. 이것은 과거에 존재했던 제국주의의 유산이자, 오늘날 구(舊)식민지 국가가 구(舊)제국주의 국가에 부정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증거다. 영어는 영국의 언어가 아니라 미국, 호주, 자메이카, 인도, 말레이시아의 언어다. 스페인어 역시 스페인어의 언어가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의 언어다. 자기 몸에 새겨진 언어의 역사를 타고 사람들은 이동하고 있으며, 이 역사성은 카탈루냐가 카탈란어 속에 간직한 역사만큼이나 실존적이다. 이동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카탈루냐의 상황은 내게 한 가지 깨닫게 해주었다.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이 정당성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실현해낼 것인가의 문제다. 타당성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판단을 넘어서 건강한 관계를 구축해내는 지혜에서 나온다. 거대한 맥락들을 종합해낼 수 있는 안목, 그리고 다양한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활기를 살려내는 균형 감각이 없다면 이 지혜도 불가능하다. 특히나 ‘너’와 ‘나’를 대립시키는 이분법의 구도는 지혜를 죽이는 지름길이다.


이분법을 구부리기 위해서
솔직히 말하면 내 학교생활에 바뀌는 것은 별로 없다. 어차피 작년부터 대부분의 교수들은 카탈란어를 썼다. 카탈란어 수업 비중이 70%에서 80~90%로 늘어난다고 해서 무슨 대수이겠는가? 이제는 카탈란어 의대 용어들도 꽤 익숙해져서, 가끔 내가 지금 스페인어로 수업을 듣는지 아니면 카탈란어로 수업을 듣는지 헷갈릴 때도 있다. 게다가 교수들은 개인적으로 질문하면 외국인인 내 사정을 배려하여 또렷한 스페인어로 답을 해준다.

그럼에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앞으로 일상의 다이내믹이 바뀔 것 같다는 예감 때문이다. 카탈란어, 스페인어, 영어 사이의 자유로운 교류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질 것 같다. 카탈란어를 익히는 것이 재미가 아니라 의무가 될 때, 스페인어권의 이방인으로 남을 것이냐 카탈루냐의 내부인이 될 것이냐 사이의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때, 스페인어가 익숙한 내 상황이 정치적 맥락에 갇힐 때 일상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무슨 이름을 달고 나오든 간에 이분법은 신물 나게 지겹다. 정반합의 변증법은 현실의 웃음과 재미를 죽이는 킬러다. (어떤 사람들은 카탈루냐의 독립정서가 강해질수록 이곳이 닫힌 세계관을 강화하는 ‘민족주의’에 빠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한다. 과거 카탈루냐는 ‘공화주의자(republicano)’의 이름을 달고 ‘파시스트’로 여겼던 서부의 ‘민족주의자(nacionalista)’들과 싸웠다. 그 민족주의자의 이름이 다시 카탈루냐로 돌아온 것은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이분법에 갇히지 않으려면 사이를 파고 들어야 한다. 프랑코 지지자도 아니고,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를 배우지도 않았으며, 유럽 및 아메리카와 별 관계없는 한국인으로서 사람들과 ‘비(非)이분법적 관계’를 맺으려면 방법은 하나다. 중심이 없는 다중 언어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카탈란어를 배우는 것이 일번이다. 빽빽한 의대 시간표 속에서 언제 틈을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지금은 요즘 보기 시작한 카탈루냐의 대히트작 철학 드라마 <메를리(Merlí)>를 더욱 애청해야겠다.



글 _ 김 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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