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찾아 삼 만리
내가 살았던 도시들을 쭉 나열하면 공통점이 있다. 부동산 시장이 왜곡되어 있기로 악명이 높다는 것이다. 서울에 살 때는 연구실 공동주거의 힘을 빌려 세상만사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지만, 뉴욕에 간 순간부터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집세를 매번 마주해야 했다. 아바나는 또 어땠나? 쿠바는 물가 자체가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아바나 집주인들이 외국인에게 요구하는 집세는 쿠바인들의 월급을 생각해보면 치가 떨리는 가격이었다. 그리고 스페인… 나는 처음부터 물가가 저렴하고 음식이 맛있다는 스페인 남부를 노렸으나, 결국 나에게 학업의 기회를 준 곳은 마드리드보다 부동산이 더 미쳤다는 광기의 바르셀로나(^^)였다.
덕분에 나는 이사의 신이 되어가고 있다. 삼 년에 한 번 꼴로 거주국을 바꾸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어느 도시에서든 같은 집에서 일 년 이상 산 경우가 거의 없다. 이제 이사라면 지긋지긋하다. 짐을 쌌다가 풀고, 가구를 바꿨다가 버렸다가 다시 사고… 돈과 시간과 멘탈 모두가 탈탈 털리는 길이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부디 팔자를 고쳐보고(?) 싶었다. 한 집에 정착해서 졸업할 때까지 쭉 지내고 싶었다. 과연 나는 미션에 성공할 수 있을까?
첫 해, 기숙사
결과적으로 말하면 첫 해에는 미션 실패였다. 내가 기숙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기숙사는 시세와 비교했을 때 꽤 저렴한 편이고, 학생들의 편의를 봐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방이 부족한 경우라도 ‘자원방래’하는 유학생들은 웬만하면 다 받아준다고 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의 집세를 얕잡아 봤던 나는 처음에는 기숙사 옵션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숙사가 매력적인 주거지로 보이지 않았다. 공부도 학교에서 하고 잠도 학교에서 자는 상황은 조금 숨이 막혔다. UAB 캠퍼스가 위치한 곳이 한적한 교외인지라, 여기 살면 바르셀로나 시내는 일 년에 몇 번 구경하지도 못 할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가장 큰 단점은 기숙사에서 일 년 밖에 지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기숙사가 나를 쫓아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 년 후에는 내 공부 장소가 캠퍼스에서 시내 병원으로 옮겨간다는 게 문제다. 그때 나는 또 다시 이사를 해야만 할 것이었다. 이사라고? 아니, 지긋지긋하다. 기숙사에는 처음부터 발을 들이지 않겠다.
그런 내 마음을 돌렸던 것은 제프리였다. 나보다 더 현실적인 이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과 제스처로 나에게 말을 했다. 득과 실을 모두 따져봤을 때 학생에게 기숙사보다 더 좋은 옵션은 없다, 네가 지금은 싫다고 고개를 돌려도 나중에는 후회하게 될 거다! 나는 제프리에게 반박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키고 학교 주변 방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반경을 넓혀서 도심도 찾아보았다. 그리고 딱 삼 일 만에 포기했다. 방 상태도 가격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일단은 그냥 기숙사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숙사는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입주를 축하합니다!”
기숙사 이름은 ‘빌라’였다. 빌라에서 일 년을 살아보니 제프리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비록 기숙사 방에 손대는 게 금지되어서 커튼봉도 못 박고, 겨울에는 외풍이 미친 듯이 들어오고 전기세는 그보다 더 미친 듯이 오르며,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방 전체가 찜질방처럼 달아오르지만… 그래도 이런 단점들은 빌라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산책로들로 커버되었다. 학생들이 모여 살다보니 치안도 좋았고 식료품 마켓들도 이곳까지 무료로 배달을 해주었다. 또한 학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살다보니 바르셀로나 시내를 오고 가는 교통편으로 골치 아플 필요가 없었다. 바르셀로나 시내의 관광객 문화보다 교외의 로컬 커뮤니티 분위기를 먼저 파악하게 되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빌라에서의 시간도 이제는 끝나가고 있었다. 이번 여름을 지나면 나는 병원에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다시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사 년을 더 살게 될 집을 찾아서 말이다. 이번에야말로 한 번에(?) 간다. 이번이 마지막 이사다!
유학생은 어디서나 봉
나는 일 년 만에 다시 바르셀로나 방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 그 사이 짬밥이 생겨서 어느 웹 사이트에 들어가야 하는지, 또 어느 동네를 공략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유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거주 옵션이 쫙 떴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학생들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유학 도시다. 유학생들이 내는 방세로 생계를 이어가는 바르셀로나 주민들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든 뉴욕이든 아바나든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 유학생은 어디서나 봉이다. 공부는 할 수 있고 일은 할 수 없는 비자를 지닌 유학생들은 외부 자금을 물처럼 콸콸 끌어들이는 ‘호스’와 같다.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학생들의 삼시세끼까지 챙겨준다는 바르셀로나의 ‘보딩 하우스’는 손바닥 만한 방에서 한 달 월세로 120만원을 요구했다. 그보다 저렴하게 학생들에게 장기 월세를 주는 집들도 있었는데, 괜찮다 싶은 방들은 반 년 전부터 이미 매진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한 달에 50만원 이하 방은 보이지 않았다. 원룸도 아니고, 고작해야 방 한 칸이다. 거실과 부엌과 화장실은 다른 사람들과 나눠 써야 하고, 건물은 낡아서 외풍이 숭숭 들어오게 생겼는데 다달이 50만원이나 내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상황은 일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었다.
부자 친구의 수상한 제안
그때 한 친구가 나에게 제안을 했다. 의대에서 알게 된 삼십대의 이집트 출신 여성 친구였는데, 카탈루냐에 집을 무려 세 채나 가지고 있었다. 집안이 부유했고, 자신도 기관차 운전수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돈을 열심히 모은 모양이었다. 이 친구는 현재 일을 쉬면서 의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돈을 절약해볼 겸 자기 집에서 함께 살 하우스 메이트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나에게 관심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사진을 받아본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대다수의 바르셀로나 집 상태와 다르게 친구의 집은 너무나 멀끔했던 것이다. 심지어 방에 개인 화장실도 딸려있었다. 위치는 금상첨화였다. 내가 가게 될 학교 병원에서 지하철로 세 정거장 떨어져 있었다. 캠퍼스로 가는 기차역도 아주 가까웠다. 이보다 더 이상적인 거주지는 없을 듯싶었다. 딱 하나 걸리는 건 가격이었지만, 이 역시 조정 가능했다. 친구는 원래 700유로에 세를 줄 생각을 했으나 나에게 맞춰서 낮추겠다고 말했다. 자신은 돈을 버는 것보다 믿을만한 사람과 사는 편을 더 선호한다면서 말이다.
물론 나는 이 제안을 한 번에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 친구를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마 안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의 쾌활하고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 그리고 독립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불필요한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나는 솔직하게 대화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집주인인 이상 어느 순간 관계가 불평등해질 수 있고, 또 일상의 리듬이 서로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봄방학 기간에 약속을 잡았다. 내가 친구 집을 방문해서 직접 둘러보고,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봄방학 동안 친구는 자신의 동생과 친구들이 방문했다면서 여행을 떠나버렸고, 약속을 두 번이나 바꿨다. 결국 봄방학은 그대로 끝났다. 우리는 다시 어렵게 약속을 잡았다. 그러나 바로 당일 이 친구는 자신의 친한 친구의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면서 세비야로 또 훌쩍 떠났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친구는 갑자기 자신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생겨서 학업을 그만두기로 했다며 친구들에게 통보를 했다. 뭐라고? 자퇴를 한다고? 나뿐만 아니라 이 친구와 친하게 지내던 다른 의대생들도 다 ‘멘붕’에 빠졌다. 그러나 오늘까지도 이 친구에게서는 어떤 연락도 없다. 우리들은 지친 나머지 이 친구를 아예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코가 석자인데 부유한 친구를 걱정해서 뭘 하겠니… 그렇게 집을 구하려는 내 첫 번째 시도는 친구의 잠수와 함께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한국 친구와 겪은 좌절
첫 번째 친구의 변덕에 학을 뗀 나는 다른 해결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친구와의 접선은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나에게 다른 아이디어를 유발했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아예 집을 통째로 빌리면 어떨까? 집주인과 직접 계약을 하는 경우, 방만 따로 빌려서 사는 것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거주지를 구할 수 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이 년이든 삼 년이든 머무는 데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렇게 나는 최근 알게 된 한국 동생을 컨택했다. 나처럼 떠돌이 인생에 지쳤던 이 친구도 내 제안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한국인이랑 살면 김치 냄새나 음식 취향 같은 사소한 부분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이 친구도 나처럼 UAB 의대를 다니기 때문에 서로 의지가지 하면서 공부하기도 좋을 터였다.
우리는 드디어 우리만의 집을 꾸릴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서 여기저기 부동산을 컨택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단 꿈은 일주일 만에 끝났다. 어떤 부동산에서도 우리에게 답신을 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너무 충격적이었다. 스페인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부동산에서 아예 집 자체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능하다 하더라도 훨씬 더 높은 월세를 내거나 우리에게 극히 불리한 조건으로 집 계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나나 이 친구나 돈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낼 수 있는 월세 금액을 합쳐 봐도 다달이 800유로 이상이 될 수는 없었다. 이렇게 낮은 예산과 유학생 신분으로 집을 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바르셀로나가 이렇게 각박한 곳이었던가? 뉴욕도 이 정도로 학생들에게 매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백방으로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나오는 결론은 동일했다. 결국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계획을 포기했다. 나는 내년에 기숙사에서 같이 지낼 동거인을 구한다는 내 친한 친구에게 한국 동생을 소개해주었고, 다행히도 둘은 마음이 잘 맞는 모양인지 계속 소통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나였다.
극적으로 만난 이웃 친구
또 다른 기회가 나를 찾아왔다. 내 기숙사 동에는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한 명 더 있다. 이 친구는 건강 분야의 통계 전문가로서 풀타임으로 일하는 동시에 의대 과정을 밟고 있다. 참 대단한 친구가 아닌가? 남들이라면 둘 중 하나만 해도 어려울 일을 동시에 하고 있으니, 이 친구의 삶은 멋있긴 하지만 조금 고달프다. 마음씨가 좋고 책임감 넘치지만 늘 피곤해하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이 친구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했다. 자기는 혼자 살아야 한다고. 일상이 빡빡하다보니 남과 같이 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다보니 나도 이 친구에게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사정이 급해지자 나중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공부방에서 함께 공부하던 와중 슬쩍 말을 꺼냈다. 너 혼자 살면 잘해봐야 원룸을 구하지만 나랑 같이 집을 구하면 거실이 있는 방 두 칸짜리 아파트를 구할 수 있다, 나도 공부하고 글 쓰느라 너만큼 바쁘기 때문에 서로 방해할 일이 없다, 난 담배도 안피고 마약도 안 한다, 이미 결혼해서 집으로 끌어들일 남자친구도 없다… 의외로 이 친구는 귀가 솔깃해했다. 그래, 그럼 같이 살 집을 찾아볼까?
나와 제프리는 이 친구를 점심에 초대했고,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의 조건을 정했다. 방은 최소 두 개, 화장실도 두 개, 도심은 피하고 병원과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이사는 최대한 피하는 것으로… 손발이 착착 맞았다. 친구와 나 둘 다 서로와 살기로 결정한 이유로 안정성을 꼽았다. 이 친구는 나와 함께 살면서 의대 공부를 하면 더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을 좋게 생각했고, 내 입장에서는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으면 집 계약을 간편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문제가 생길 때 서로에게 의지가지 할 수 있었다. 생활 습관과 일상 리듬만 맞는다면 같이 사는 것이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이득이다.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집의 조건을 정했다. 방은 최소 두 개, 화장실도 두 개, 도심은 피하고 병원과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이렇게 문제가 다 해결되는 줄 알았으나… 바르셀로나의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9월부터 살 집을 구하고 있었지만 바르셀로나의 부동산들은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집을 보여주고 있었다. 장기적으로 세입자를 물색하는 경우는 없냐고 물어보니, 바르셀로나의 집 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집을 내놓으면 일주일 만에 보통 누군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 전부 다 바르셀로나에서 산단 말인가? 정말 엄청난 인기다.)
결국은 다시 기숙사
결국 우리는 아무 집도 구하지 못했다.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9월에 입주하고 싶다면 9월 바로 직전에 집을 구해야 하는데, 나나 이 친구나 여름에는 바르셀로나에 없을 예정이었다. 그렇다면 9월에 집을 구하는 동안 어디서 머물러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새 학기가 이미 9월에 시작하는데?
우리의 결론은 돌아돌아 다시 기숙사가 되었다. 9월에 바르셀로나로 돌아왔을 때는 기숙사에 들어가고, 한 학기를 보내면서 천천히 다시 집을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그때는 마음에 드는 집이 나오면 곧바로 기숙사를 떠나 입주할 수 있을 터였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이 모든 상황이 5월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5월은 빌라가 기존거주자와 계약을 갱신하는 달이다. 만약 이 달을 넘겼다면 나는 기숙사에 살 권리마저 빼앗기고 또 다시 부평초처럼 바르셀로나 방구석을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을 것이다.
모든 것이 잘 마무리가 되었다. 한 학기 내내 기숙사에서 병원으로 통근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뺀다면 말이다.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하지만 한 학기 후에 집을 무사히 구할 수만 있다면 이 정도 피로감은 감수할 수 있다. 내 진정한 두려움은 또 어떤 예측불가한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과연 내 팔자는 고쳐질 수 있을 것인가?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_김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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