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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씨나 지중해

[메디씨나 지중해] 병원 발데브론 이야기

by 북드라망 2023. 2. 2.

병원 발데브론 이야기


오늘은 내가 이번 학기부터 나가게 된 병원 발데브론(Vall d’Hebron)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3학년부터 UAB의 의대생들은 바르셀로나에 흩어져 있는 네 군데의 병원으로 배치된다. 본 캠퍼스에 비교하면 병원 내 학교는 크기도 작고 시설도 별로 없다. 그래도 학생들은 만족한다. 지금까지가 다른 과 학생들과 캠퍼스를 공유하는 ‘대학생’의 일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이 거대한 병원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침 7시 50분에 병원에 들어서면 벌써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개미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환자, 간호사, 의사, 청소부, 직원, 환자, 엠뷸런스, 택시 기사, 그 사이에서 수업을 들으러 가는 우리들… 이곳이 앞으로 사 년 간 우리의 배움터가 되어줄 곳이다.


산 위의 배움터
발데브론에 다니는 의대생들은 자기 병원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카탈루냐에서 제일 클 뿐만 아니라 스페인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유명한 병원이 발데브론이다. 그래서 발데브론의 많은 의대생들은 자기소개를 할 일이 있을 때 (묻지도 않았는데) 병원까지 소개한다. 발데브론 알지? 내가 바로 그곳의 학생이야!

이런 자부심은 초반에만 유효하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일상 속에 묻힌다. 내가 발데브론에 가기 시작한지 두 달이 되었는데, 현재 ‘발데브론’이라는 이름이 들려오면 내가 가장 첫 번째로 떠올리는 것은 유명세도 자부심도 아니다. 바로 가파른 경사다. 웬 경사냐고? 잠시 바르셀로나의 지리를 설명하도록 하겠다. 바르셀로나는 바다와 산 사이에 끼어 있는 도시로, 남쪽에는 지중해 북부로 통하는 항구가 있고 북쪽에는 산이 있다. 이 산을 넘어가면 그때부터 바르셀로나 근교가 시작된다.

그렇다면 발데브론은 어디 있을까? 바르셀로나 도시의 최북부다. 전염병의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도심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지어졌다고 한다. 이 위치는 장점이 많다. 도시 외곽이라 주위가 한적하고 공기도 좋고,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접근성도 나쁘지 않다. 유일한 문제는 발데브론이 자리 잡은 산기슭의 경사다. 발데브론을 찾아가보면 일반 병동만 길가에 붙어 있다. 나머지 건물들은 병동 뒤로 줄줄이 서 있는데, 하나씩 방문할 때마다 길의 경사가 급격히 올라간다. 말 그대로 산을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의대는 어디 있을까? 병원의 마지막 구역, 즉 꼭대기에 있다. 아픈 환자들보다 젊은 학생들이 경사를 오르는 게 이치에 더 맞다. 다만 지각을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침 댓바람부터 런닝 머신 위에서 유산소 운동을 하는 사람처럼 심박출량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아침, 언덕길을 오르는데 갑자기 깨달음이 왔다. 내 인생에 ‘배움의 경사길’을 오르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UAB 캠퍼스에서 의과대학교도 경사면 꼭대기에 있다. (작년 MVQ 글에 UAB 의대의 엄청난 계단에 대해 쓴 바가 있다.) 한국에 있는 깨봉빌딩도 남산에 있지 않은가? 충무로 역에서 깨봉빌딩까지 걸어가는 길을 대체 몇 번을 오고 갔던가? 기억을 십오년 전으로 되돌려보니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마저 산 위에 있었다. 등굣길에 놓인 계단 숫자가 어찌나 많았는지, 우리끼리 ‘천국의 계단’을 패러디해서 ‘천 개의 계단’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등굣길에 놓인 계단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때는 이 경사길이 삼십대가 되어서도 끝나지 않을 줄은 몰랐다.

가파른 경사의 등굣길



임상이라는 신세계
등굣길이 좀 고되긴 하지만 나 또한 발데브론을 좋아한다. 확 달라진 공부 내용에 색다른 재미를 느끼고 있다. 본 캠퍼스에서 열리는 이학년 수업을 털어내고(?) 하루 빨리 병원 근처로 이사가고 싶다.

이건 발데브론보다는 의대에서 삼학년이 갖는 특징일 수도 있다. 삼학년은 의대생들이 이론의 세계에서 임상(clinic)의 세계로 자리를 옮기는 전환기다. 이학년까지는 수업 사이에 뚜렷한 연속성이 있었는데, 삼학년부터는 매일 다양하고 독립적인 소주제들이 중구난방으로 던져진다. 교수님들끼리 병원 일정 때문에 수업 순서를 바꾸어도 별 타격이 없을 정도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뭘 기준으로 수업을 따라가야 하는 거지? 한 과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점으로 삼아야 하는 걸까? 그러나 이해하게 되었다. 정보를 외우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해내는 것이 학생의 몫이다. 이 과정 자체가 임상 훈련의 일부다.

임상에 들어간다는 것은 공부 텍스트가 책에서 몸으로 바뀌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사유 역시 다르게 전개되어야 한다. 이론을 배울 때는 모든 현상의 인과관계가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학생들은 정해진 순서대로 이를 이해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세포’나 ‘원자’ 같은 개념 중에 어느 하나도 ‘저절로’ 밝혀진 게 없다. 이 이론을 처음 구축한 과학자들은 자연을 관찰하고, 수많은 현상을 분석하고, 다양한 추론을 한 후에야 엄밀한 결론으로서 이런 개념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이 정론이 되고 과학 교과서에 들어가는 순간 이런 바깥맥락은 사장된다. 학생들은 이론에 도달하는 자가 아니라 외우는 자가 된다.

임상에서는 이런 태도가 통하지 않는다. 의사는 이론이 아니라 몸에서 출발하는 자다. 자연 기저에서 벌어지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학자에 더 가깝다. 가령, 열이 왜 나는지는 어느 의대생이나 매끄럽게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과정’을 통해 ‘열’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고 답하면 된다. 그러나 ‘열이 난 환자’가 내 앞에 나타나는 순간 이론은 크게 소용이 없다. 이제 목표는 설명이 아니라 치료가 된다. 열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이 동일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이 메커니즘을 작동시킨 ‘상황’은 수없이 많고, 이 상황을 바꿔야만 열이 사라진다. 따라서 의사는 열이라는 결론부터 ‘거꾸로’ 출발해서 전체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상황파악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느냐가 임상의 질을 가른다. 이 과정은 여러 불확실성을 통과해야 한다. 몸은 수많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상호작용하는 자연이고, 자연에는 해설지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따라가는 게 쉽지는 않다. 생리학과 해부학만 떼고 온 햇병아리가 벌써 ‘임상적 사고’가 팍팍 이루어진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지금으로서는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는 게 즐거울 뿐이다. 삼학년 수업에 들어가면서 크게 세 가지 충격을 받았다. 첫 번째는 병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병에는 이름이 있다. 의학을 배우지 않으면 보통은 이름만 안다. 쇼크, 결핵, 심장마비… 이렇게 부르다보면 정말 ‘쇼크’나 ‘결핵’이라는 병이 따로 존재할 것 같다. 하지만 병에 걸린 환자들의 증상과 징후, 예후까지 살펴보면 그 사이 몸에서는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중에서 ‘병’의 본질을 가리키는 게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답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병은 수많은 사건들의 동시다발적 불협화음을 부르는 이름이다. 다시 말해 병명은 사물이 아니라 사건의 패턴을 가리킨다. 이토록 역동적인 현장에서는 여러 병이 꼬리를 물고 찾아오거나 다른 요인이 끼어들어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되는 게 이상하지 않다.

임상 수업이 내게 남긴 또 다른 인상은 매뉴얼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과서에 실린 정보는 가이드라인일 뿐, 실제 현장에는 여러 방식으로 변한다. 가령 어제 외과수업 때 CPR을 배웠는데, 한 학생이 CPR을 정확히 몇 분 동안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CPR은 2분만해도 지친다.) 의사는 ‘정확히’라는 표현을 버리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현실은 늘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심장기저질환도 없는 젊은 환자가 의사와 멀쩡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심장마비가 온 것이다. 그럴 때 의사들은 한 시간이고 한 시간 반이고 CPR을 한다. 환자의 죽음을 수용하기 어려운 탓이다. 또 어느 노인은 지하철역에서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마침 지나가던 의사가 CPR을 했더니 단 오 분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다른 사람들이 ‘심장 졸인 것’과는 달리 어떤 후유증도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자기가 왜 누워있느냐고, 누가 자신을 때린 거냐고 화를 내며 묻기도 했단다.

임상 수업에서 새로이 품게 된 의문도 있다. 징후(sign)와 증상(symptom)의 차이다. 증상이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몸 상태라면, 징후는 의사가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증거다. 의학은 둘 사이의 관계를 명백히 한다. 열 개의 증상보다 한 개의 징후가 더 낫다. 증상이 중요한 이유는 징후를 찾아내기 위한 단초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설명이 내게 온전히 설득력 있지는 않았다. 어떻게 신체에서 주객의 분리가 칼 같이 된단 말인가? 혹시 현대의학이 모든 것을 수치화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이분법 뒤에 감추는 것은 아닐까? 만약 의학적 기준이 달라진다면 한 문화권에서는 ‘증상’인 것이 다른 문화권에서는 ‘징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의문들은 앞으로 임상 공부를 하면서 점점 풀리거나 더 확장될 것이다. 사 년 좀 안 되게 남은 공부의 시간이 기대된다. 팬데믹을 비롯해 여러 사건을 겪고 여러 장소로 옮겨 다니면서도 의학 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보람이 있다!


발데브론이 준 첫 선물
발데브론의 아침 수업은 8시에 시작한다. 요즘은 겨울이라 해가 늦게 뜬다.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병원으로 걸어가는 길에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한다. 그 광경이 꽤나 장관이다. 병원 아래로 바르셀로나의 전경이 펼쳐진다. 남쪽 항구와 바다까지 보인다. 바르셀로나에 오래 산 사람들도 이런 광경을 자주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깨어나는 바르셀로나를 등지고 학교로 올라가는 그 짧은 십분 동안 나는 여러 생각들을 유영한다. 어쩌다가 세상을 돌고 돌아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지중해 근방의 산기슭(!)에서 치료를 배우게 되었는지, 이곳과 나의 인연은 또 무엇인지…

그렇게 부지런히 아침 병원행을 하다 보니, 어느 날 내 몸에 변화가 생겼다. 인후염을 동반하는 독감에 지독하게 걸린 것이다. 처음에는 일교차가 큰 날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근처 친구들이 하나둘 아픈 것을 보고 유행병이라고 여겼다. 한 10일 정도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쉬면서 몸을 추스렸다. 그 후 실습을 위해 병원에 돌아왔는데, 바로 그 다음날부터 다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에 갔다 오기만 하면 상태는 악화되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병을 얻은 곳은 바로 이곳 발데브론이었다! 하긴,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큰 병원이라 함은 이 도시의 모든 병균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 쭉 여러 병과 함께 살라는 메시지인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인후염은 발데브론이 내게 준 첫 선물이다. 덕분에 책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직접 임상공부를 하는 중이다. 임상의 첫 번째 교훈, 우선 내 몸부터 챙기자(^^).

학교 등굣길에 찍은 동트는 사진


글_김 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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