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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청년의’ 파토스를 일깨워라! 『청년 붓다』 저자 강연회 후기

by 북드라망 2022. 8. 29.

내 안의 ‘청년의’ 파토스를 일깨워라!
『청년 붓다』 저자 강연회 후기

안녕하셔요 북드라망 독자님들! 바로 지난주 목요일에,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의 『청년 붓다』 저자 강연회가 있었답니다.(짝짝짝!) 저희 북드라망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몇 년 동안 행사를 진행할 수가 없었는데요, 이번 저자강연회로 드디어(!) 독자님들을 “직접” 뵐 수 있다는 기대를 하였으나 점점 늘어나는 코로나 확진자 기세에 어쩔 수 없이 모든 분을 비대면으로 만나 뵈어야 했답니다. 그래도 요렇게 줌에서 뵈니 타지에 계신 여러 독자님을 뵐 수 있어 이 또한 다행이고 기쁘다고 생각했답니다!

독자님들 반갑습니다!


이번 저자 강연회에서는 우주 유일의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께서 청년 붓다를 쓰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청년’ 붓다에게 주목하시게 된 이유,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이라는 영역, 삶과 죽음의 지독한 이분법에 등등에 대해서 마치 책의 핵심 내용만 쏙쏙 뽑아 주시 듯 말씀해주셨답니다. 물론 디테일한 내용은 10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청년 붓다』에서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저자 강연회에 못 오신 분들을 위해서 간략하게나마 강의 내용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청년, 구경(究竟, 궁극의 가르침)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신체
고미숙 선생님께서 ‘청년’에 주목하시게 된 건 선생님께서 활동하시는 공동체 감이당과 남산강학원에 있는 청년들 덕분이라고 합니다. 요즘 시대의 청년들은 첫 만남에서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야 해요?”이렇게 질문한다고 합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지금의 청년들은 정말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디지털 정보에 누구보다 빠르고 또 엄청난 양을 접할 수 있는 세대인데요, 문제는 그 에너지로 자기를 파괴하고, 세상과 단절되는 방식으로 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디지털 세대야말로 가장 깊고 심오한 가르침이 필요하고 그 가르침 중에 최고가 바로 붓다의 지혜로 이어진다고 하셨습니다.

구경의 깨달음은 더 나갈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궁극의 깨달음이 인류 앞에 최초로 등장했는데, 이는 청년기의 산물이에요. 그러니까 바로 이게 청년의 파토스라는 거죠. 바로 이걸 이게 우리 시대 청년들한테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노년의 입구에서 알게 되었지만,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 청년의 잠재력이 이런 것이다. 구경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청년의 신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청년들이 방황한다, 자존감이 낮다고들 하지만 사실 중년이나 노년이나 나을 건 없지 않습니까? 40-50-60-70대도 길을 잃고 헤매는 건 마찬가지 아닙니까^^; 청년의 신체, 청년의 파토스가 인류의 구경의 경지에 도달하는 원동력이었다! 그걸 알게 되면 나머지 다른 세대도 내 안의 있는 청춘을 되살릴 수 있다! 그걸 모르고 살면서 ‘늙었어 늙었어’ 하고 있는 거죠.



내 안의 선함을 키워나가기
고미숙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마음이라고 하는 영역에 대해서 “리얼하게 작용”하는 걸 보게 된 게 처음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이성이나 논리적으로 또 합리적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하신 적은 있어도, 이성 밑에 본성이라든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의 영역에 대해서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닌가... 라고 고백(?)해주셨답니다. 요즘 헬스장에서 몸을 키울 때 보면 무거운 역기를 들고 운동하는 걸 볼 수 있는데요, 고미숙 선생님께서는 그것보다 놀라웠던 건 매일 닭가슴살과 고구마를 먹는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닭가슴살을 소금도 넣지 않고 몇 달을 먹는다는 게 사람이 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 같다는 말씀을 덧붙이시면서요! 우리는 이렇게 육체를 단련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성격을 바꿔보아야겠다. 선생님 말씀처럼 내 안에 있는 선함을 키워봐야겠다. 내가 어디까지 자비로울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보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불교는 초기 경전에 보면 사무량심이라고 이 사방을 향해서 내가 자애심을 보내는 것이 나옵니다. (중략) 이 마음이 그렇게 무량하다는 것을 아는 거에요. 마음은 굉장히 넓고 무한히 비어있고. 하늘의 모습 같고 하늘은 단 한순간도 이전 거를 기억하지 않고 그 무한한 텅 빔. 밤하늘의 별과 별 사이에 있는 그 충만함이 우리의 마음의 모습이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이렇게 마음을 무량하게 키운다 그러면 그게 바로 선함인데 경계를 넘어가는 그래서 이원화된 것들을 하나로 통하게 하는 그런 과정이 선함이거든요. 근데 이거를 해야만 우리가 근본적으로 어떻게 해요. 삶과 죽음이 이원화되는 그 경계를 넘어갈 수 있어 삶과 죽음만큼 철저한지 서로 반대인 관계가 어디 있어요. 근데 삶과 죽음을 이원화해서 죽음을 피하고 죽음을 외면하고 터부시할수록 삶이 충만할 것 같지만 사실 그 삶은 너무너무 이제 불안하고 왜소해집니다.


아... 선생님의 말씀에 감동하여 공유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제가 그만 길게 인용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음은 무량하고 곧 무한히 비어 있고 선한 마음을 키우면 삶과 죽음의 이분법을 넘어갈 수 있다! 그리고 이 또한 연습을 통해 가능하다! 저는 이렇게 정리해보았는데요 무량한 마음과 삶과 죽음을 포함한 모든 이분법이 이렇게 이어질 수 있다니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제 안의 선함을 일깨워 모든 이분법에서(결국에는 죽음까지도!) 자유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강의가 끝나고 Q&A 시간이 이어졌는데요, 고미숙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시는 동안 채팅창에는 (진행자인 전 직원 게스트 편집자 K님의 표현에 의하면) 절규와도 같은 질문들이 올라왔답니다. 그중에서도 40대 선생님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는데요. 여기저기에서 “흔들리는 40대를 구해주세요! ㅠㅠ”(차*실), “40-50대 키워주는 거 적극 찬성입니다 ㅠㅠㅠㅠㅠ 제발 ㅜㅜ” “40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ㅠㅠ”(L**K) 등등의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이에 고미숙 선생님께서는...

40대이기 때문에 특별히 겪는 괴로움이 뭘까요? 질문이 구체화 되어야 해요. 불교가 리얼리즘이라고 했잖아요. 내가 흔들린다 그러면, 무엇이 나를 흔드는지를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흔들림 자체 이렇게 하면 술을 마시거나 도피하거나 다른 걸로 전환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무엇이 나를 흔들리게 하고 있는지 잘 살피면 연루된 게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기를 보는 게 두렵기도 하고 연습이 안되어있으면 넘어가기가 쉽거든요. 이유가 없다면 더 본질적인 거예요. 그것은 존재 자체가 주는 흔들림이에요. 본질적인 탐구를 해야지만 넘어갈 수 있습니다.


40대 선생님들의 질문에 대한 고미숙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40대 선생님들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하는지, 어떤 부분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구체화 시켜야 도피하지 않고 살아갈 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렇게 약 두 시간 동안의 저자 강연회가 끝이 났는데요, 고미숙 선생님도 독자님들도 직접 만나 뵐 수는 없었지만 독자님들의 표정을 보니 다들 즐겁게 강연을 들으신 것 같았습니다! Hoxy... 아직 『청년 붓다』를 읽지 않으신 독자님이라면 꼬옥 한번 구매하셔서 접해보시라는 말씀드리고요, 저희는 그럼 다음 행사 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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