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통치당하지 않을 기술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 미셸 푸코 지음, 오르트망 심세광·전혜리 옮김, 동녘, 2016.
68년 5월 이후 프랑스에서 격렬한 데모와 함께 전개된 소요 중에 많은 투사가 연행되고 투옥되었다. 투옥된 사람 중 일부 정치범들은 소요 중에 기물파손죄로 기소되어 투옥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치범으로 분류되지 않고 다른 죄수들과는 같이 취급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취급해달라고 단식투쟁을 한다. 그런 투쟁이 어느 정도 공감을 얻자 정부는 단식자들이 요구하는 완화조치를 검토할 위원회를 설치한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다른 감각의 운동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투쟁 중이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특별 대우해달라고 하는 요구가 문제가 있음을 의식한 것이다. 그들은 다시 성명서를 쓴다. “우리는 다른 일반범과 다른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한 사회제도의 희생자들이다. 우리는 현재 감옥의 한심한 체제를 비판함으로써 우리의 투쟁이 모든 수감자에게 봉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푸코는 이에 몇 달 앞서서 자신들이 죄수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주장을 대변해주려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과 감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스스로 말할 기회를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이 “참을 수 없는 것”을 조사하겠다고 선언한다(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374~376p.).
이른바 ‘감옥정보그룹 운동’은 70년대 푸코에게 매우 큰 활동이었다. 질 들뢰즈, 자크 랑시에르와 그의 아내 다니엘 랑시에르, 자크 동즐로 등등이 합류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이 순간이 푸코가 그 이후 전개될 자신의 사유 경로를 야광탄처럼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이후에 권력관계에 대한 푸코의 집요한 탐색, 이어서 통치성, 자기배려라는 돌연한 주제 전환이 이어지는 장면들은 이 하나의 순간 안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감옥은 죄수들이 갇혀 있는 것이고, 씻을 수 없는 죄 때문에 환경이 열악해도 말할 게 없다는 식의 태도가 만연한 가운데, 푸코는 죄수들에게 스스로 자신의 처지를 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최악의 상태에 던져진 사람들에게 단 한 톨의 저항력이 있으면, 그것을 쥐어짜서 대항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 저항력은 이후 6, 7년이 지나 구체적인 연구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일상의 비판, 기존 진실에 맞추는 기술
어느 특정한 해를 삶의 결정적인 변곡점으로 삼는 것은 어느 삶을 해석하든 무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피부에 타 붙는 드라이아이스처럼 중요한 변화가 결빙된 어느 해는 아무리 봐도 무언가 특이점이 있다. 푸코에게 1978년이 그렇다. 1976~77년, 푸코는 1년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를 하지 않았다. 그 후 1977~78년에 다시 <안전, 영토, 인구>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재개했다. 이 강의에서 그는 그 전 연구에 이어 권력 문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느닷없이 ‘통치성’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옮겨가고, 어느 틈엔가 ‘대항 품행’이라는 새로운 저항 개념을 들고나왔다. 그리고서 1978년 4월부터 5월에 걸쳐 두 번째 일본 방문이 있었다. 일본에서 푸코는 현대의 투쟁 목표 중 하나는 ‘주체의 해체’라고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하는데, 덧붙여서 불교의 선(禪)에 대해서 강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한다. 불교의 수도 생활은 기독교의 그것과 달리 ‘비개인화’를 지향하는 것이고, 개인성을 극한으로 몰고 가 그 끝에서 자신의 해방을 시도한다고 설명한다(미셸푸코·와타나베 모리아키, 『철학의 무대』, 52p.). 어쩐지 통치성과 대항 품행과 불교가 어우러져 푸코 정신의 어떤 측면을 타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일본 방문에서 돌아와 프랑스 철학회 주관으로 소르본에서 「비판이란 무엇인가?」란 짧은 강연을 한다.
이 강연은 미래의 발언들이 앞질러 울리는 듯 기묘하다. 이 강연을 보면 미래의 비가 될 얼음을 캐서 먹듯, 우리는 푸코의 미래를 먹을 수 있다. 푸코는 칸트의 대표적인 기획이었던 '비판'을 자신의 주제로 다시 끌고 들어왔다. 푸코는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 서평으로 자신의 학문을 시작한 사람답게 늘 칸트를 참조하고 다루었다. 초기의 ‘에피스테메’라는 개념도 칸트의 ‘아프리오리(a priori, 선험)’를 역사적 아프리오리로 비틀면서 만들어졌다. ‘비판’에 이르러서도 푸코는 자신의 탐구와 결합하면서 그것을 다르게 비틀며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푸코는 삶과 사유의 마지막 다른 리듬을 타고 있었다. 일종의 서곡 격인 드럼 소리처럼 통치성과 대항 품행과 비판이 이곳저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판 개념을 우선 살펴보자. 푸코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비판을 “논쟁적이고 직업적인 소소한 활동”(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 40p.)이라고 표현한다. 흔히 우리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활동해나갈 때, 그 목표에 비추어 못 미치는 부분을 식별하여 지금 활동을 교정하기 위해 부족한 것을 지적한다. 또한 사람들이 공감하는 도덕이나 논리와 비교해서 그릇된 행동이나 생각을 지적하고 교정하게 한다. 보통 우리는 비판 활동을 옳고 그른 문제에 대한 바른 판단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기에는 만만치 않은 생각거리들이 도사리고 있다. 지향하고 있는 목표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도 고민이고,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도덕이나 논리도 반드시 옳은 것인지 시비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런 도덕이나 논리가 존재하는지조차 점검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쩐지 출발부터 이미 어긋나 간신히 달린 의자 다리 같아 보인다. 비판 현장은 늘 결연하지만 비판이 끝나면 록 음악이 방금 거쳐 간 텅 빈 공연장처럼 허무한 것은 혹시 그 때문 아닐까.
'비판'이라고 하면 당연히 칸트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칸트에게 비판은 모든 경험으로부터 독립해서 추구한 인식을 살펴보고 이성 능력 일반에 대한 한계를 가늠하는 행위이다. 신의 이성과는 다른 유한한 인간 이성이 어느 정도까지 인식할 수 있는지 파악해서 식별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해보자는 것이다. 좀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인간이 알면 대체 어디까지 알 수 있는지를 분명히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선을 넘으면 그건 알 수 없는 거라고 지적하고 알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합리적으로 이야기 나눠 보자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런데 칸트의 이 생각에는 앞서서 말한 일상적 비판의 문제를 함께 갖고 있다. 칸트에겐 고정된 실체처럼 인간 정신 안에 경험에 앞선 선험적(a priori) 영역이 있고, 그 영역에서 이루어진 판단은 특정한 경험을 참조하지 않고서도 알려질 수 있는 판단이 된다. 과학적 사고의 기본전제를 이루는 인과율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것은 앞서 말한 일상적 비판에서 무의식적 기준이 되는 도덕과 논리에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고정된 실체처럼 변하지 않는 도덕 기준과 논리 기준. 그렇게 되면 알지는 못하지만 무언가 고정된 실체로서 초월적 진리를 전제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 진리는 언제나 맞는 것이고 비판의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이 경우 비판은 오히려 기존의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않는가. 그게 맞든 틀리든 말이다.
푸코의 '비판', 통치받지 않으려는 기술
푸코는 칸트의 개념들을 비틀어 이용하면서 비판에 대해서 아주 색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선 바로 직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 도입되었던 '통치성'에 대해 말한다. 이건 좀 이상한 시작이다. 왜냐하면 칸트식으로 인식론적 비판의 개념을 말해야 한다면 정치적 개념들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의식 구조로부터 시작해서 비판이 가능한 구조, 그리고 비판의 과학적 성격을 논해야 맞다. 그러나 푸코는 선험성이라는 비-경험적 영역을 이야기하기보다, 역사적 사건과 사유 속에서 비판의 구조를 추적하려고 한다. 그는 역사적 사유로서 '통치성'을 탐색하고 나서, 다시 칸트의 '비판' 개념으로 되돌아가 그 개념을 새로운 형태로 비틀어 만들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 16세기 서구 유럽의 여러 사회는 어떤 특이한 통치성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모든 개인이 그의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생애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세세한 행위들에 이르기까지, 통치받아야 하고 또 통치받도록 자신을 내맡겨야 했다. 즉 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누군가와 전면적인 동시에 면밀하고 세밀한 복종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아르스 아르티움'(ars artium, 기술 중의 기술). 물론 이 기술들은 특정한 영적 집단들인 수도원 생활과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기원이 되어 그 방법들이 시민 사회 속으로 확장된다. 또한 다양한 영역에서 국가 통치 기술로 확대되어 갔다. 어린이와 가족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군대와 도시, 그리고 국가는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자기 자신의 신체와 영혼은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이런 프레임으로 세상에 접근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가능하다. 만일 저렇게 뼛속까지 통치하면 내 존재가 숨을 곳은 어디인가. 내 신체와 영혼까지 통치하려 들다니. 누군가에게 복종하는 관계 속에서 구원을 향해 인도되어 가는 삶이란 끔찍하다. 그 지경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이 움틀 가능성이 존재한다. 푸코는 바로 이 생각에 이른바 '비판적 태도'(l’attude critique)가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통치 기술을 불신하고 거부하고 제한하려는 태도, 그게 존재하더라도 그것의 정당한 한도를 모색하고 변형시키려는 태도, 물론 통치 그 자체를 없애는 것이 당장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런 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려는 태도. 이런 태도로부터 발전된 광범위한 문화적, 정치적 사고방식을 푸코는 간결하게 정리하며 "통치받지 않기 위한 기술"이라고 부른다. 푸코에게 비판은 바로 이 기술, 통치받지 않으려는 기술이다.
고향에는 높은 산이 있다. 그 산 남북으로 오가는 도로가 있는데, 가장 높은 곳 어디는 이상하게도 1, 2미터 사이인데도 남쪽은 비가 오고, 북쪽은 맑은 날씨를 동시에 갖는 지대가 있다. 기후의 진실이 동시적인 곳. 대개 삶이란 기본적으로 평온하고 대체로 이치에 맞게 흘러간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예외가 찾아오고, 도무지 설명할 길 없는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천천히 오솔길을 걷다가 갑작스럽게 가시밭에 들어가 숲의 미아가 되거나, 고요한 바다 한복판을 헤엄치다 느닷없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거나 하는 그런 혼란. 그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다른 지대, 다른 시간으로. 비판이란 바로 전 단계의 어떤 고통스런 진실에서 다음 단계의 다른 진실로 선택해 넘어가는 경계선에 생기는 어떤 혼란이 불가피하다.
법적 관점에서 보자. 어떤 시기의 어떤 법은 본질적으로 그 법이 있게 된 비-정당성을 숨길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당대의 통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푸코가 이야기하는 비판은 이러한 통치에 직면해, 또 통치가 요구하는 복종에 반해서 군주든 사법관이든 가부장이든 날씨 사이에 서 있듯이 경계를 통과하며 통치자의 법들에 문제제기하고 다른 지대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경계에서 비판적 태도를 지니고 그 비-정당성을 지적하게 된다.
진실 관점에서도 보자. 비판은 당대 통치성이 부여한 권위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거나, 적어도 권위가 그것을 진실이라 말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푸코의 진실게임에서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절대적 진실은 사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들의 여러 수준에서 진실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져 간다. 각 수준에서 어떤 것이 진실로서 광범위하게 인정되면, 그 순간 하나의 권력관계가 생성된다. 그런 권력관계의 망 속에서 다시 진실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게임처럼 그 진실을 어떤 대가를 지불하면서 받아들이고 내치고 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거친다. 이 진실게임 속에서 내가 진실로서 수용할만하다고 납득될 때만 그 진실을 수용하겠다는 태도 아래에서 담론들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푸코의 비판적 태도이다. 한 마디로 비판은 '진실을 둘러싼 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 속에서 탈예속화(désassujettissement)를 본질적인 기능으로 갖는다.
일반적인 인식론적 비판은 미인식 상태에서 도출된 비-진리는 비판하여 도려내야 하는 것이 된다. 옳은 것은 가려내 소유하고, 그른 것은 집어내어 절멸시켜야 한다. 결국 이성에 비추어 순수한 진리를 추구하여야 한다. 그것은 진리 아닌 것에 대한 절멸의 비판이다. 그러나 푸코의 비판은 어떠한 진리도 권력과 주체와의 관계 속에서 판단되어 사용된다. 그 비판의 세계에서는 순수한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비판은 진리가 존재하게 되는 조건들, 그리고 그 진리가 변화해 나갈 조건들과 미래에 어떤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세계에서는 기존 진리와 주체가 분할될 때 생기는 그 괴리를 치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비판이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일반적인 비판은 기존 진리에 맞추기 위해 절멸의 비판이 존재한다면, 푸코의 비판은 새로운 진리로 나아가 기존 진리와의 괴리된 주체를 구원하는 치유의 비판으로 존재한다.
새로운 비판의 진원지, 자기 배려
푸코는 처음에 섹슈얼리티의 역사 연구를 시작할 때는 그것이 욕망의 문제 혹은 욕망의 억압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당연하다. 성적 욕망이 발현되어 성행위 등 현상이 드러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섹슈얼리티를 연구하면 할수록 그것은 자기가 자기와 맺는 관계에 깊숙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더군다나 자기와의 관계에서도 핵심적인 것이 바로 섹슈얼리티였다. 즉 섹슈얼리티가 자기와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영향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섹슈얼리티가 오히려 자기와 맺는 관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품고 있는 욕망과 쾌락 중에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 중 하나가 성적 문제이고, 그것이야말로 사람들 사이에 가장 평등하고 핵심적인 욕망과 쾌락이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급진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위험한 욕망이자 쾌락이기도 하다. 너무 많이 향유하거나, 타인을 공격하여 향유하는 경우 신체가 급격히 소모되거나, 공동체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되고 만다. 그러므로 자기가 자기의 성에 대해서 그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이 의미에서 자기 구축의 문제와 섹슈얼리티의 문제는 불가피하게 맺어져 있다. 우리 자신이 이미 성적 존재이고 우리들의 자기는 우리의 섹슈얼리티의 경험을 통해서 핵심적으로 구축된다.
아무튼 푸코는 섹슈얼리티의 역사를 탐색하다가, 엄청난 대륙을 발견하고 만다. 바로 자기와 자기의 관계, 자기가 자기를 구축하는 문제와 관련한 사유의 역사. 그러나 그것은 단지 섹슈얼리티를 탐구하다가 우연히 찾은 주제가 아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이미 1978년 권력의 문제를 탐색하다 찾은 통치성의 문제로부터 걷게 된 길에서 발견한 주제이다. 자기와 관계는 필연적으로 자기에 대한 통치성에 대한 탐색이기도 한 것이었다. 즉, 통치성의 문제는 주체가 외부의 통치성과 싸우는 문제만 낳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실천을 통해서 명확한 자기와 관계를 구축하는 주체를 문제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통치성은 외부의 통치성과 자기라는 내부의 통치성을 모두 아우르는 주제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섹슈얼리티가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아주 결정적인 매개 고리가 되긴 했지만, 필연적으로 통치성의 주제는 자기와 관계 문제를 품을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이 변화의 한복판에 '비판'의 문제가 함께 상존한다. 우리는 푸코가 비판을 통치당하지 않는 기술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어떤 경우 어떤 사람은 학교 체계나 정치 체계 혹은 모든 제도가 자신에게 제안하는 삶의 양식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에 학교, 정치 등이 구성하고 있는 통치성에 복종하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작용하는 것이 푸코가 말하는 통치당하지 않는 기술이다. 바로 '비판적 태도'(l’attude critique)이다. 그런데 여기 커다란 함정이 있다. 주체가 변하지 않는 실체라고 한다면, 다시 말하면 어떤 선험적 실체가 있어서 주체의 확고부동한 양상이 전혀 변하지 않을 거라면, 통치당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생성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주체가 변하지 않는다면, 기존 진실을 버리지도 못하고,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 모른다. 당연히 주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푸코는 바로 직전 일본에서 있었던 와타나베 모리아키와의 대담에서 주체에 대해서 근원적이고 근저적인, 시초에 있는 형태가 아니라고 단언하였다(미셸푸코·와타나베 모리아키, 『철학의 무대』, 47p). 주체는 생성과 형성 과정을 갖고 역사를 갖다는 것. 여기에 이르면 '권력-통치성-비판-주체성-자기와의 관계', 이 계열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후기 푸코 철학의 은하계를 이룬다. 통치성에 대항하기 위해 실재적인 자유가 필요하다. 특히 자기 안에 이미 자유를 품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자유는 자기와 자기의 관계, 다시 말하면 내가 나와 맺는 관계에 따라 구성될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외부의 통치성과 대항하면서, 내부의 통치성을 조절할 줄 알아야만 가능하다.
제정기 로마의 자기배려는 평생에 걸쳐 수련해야 하는 성인의 실천이었다. 그러는 순간 교육적 기능이 다른 기능들을 생성시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비판'이다. 자기를 새로운 주체로 수양하는 것은 새로운 인식을 습득해야 하는 일인데, 그 순간 기존 진리와 인식하에 이루어지던 모든 악습, 그리고 그런 악습을 옹호하는 군중들이나 나쁜 스승, 심지어 부모, 주변 사람들의 그릇된 의견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기존 진리 하에 배우던 것들을 버려야만 한다. 기존 자기에게서 벗어나서 다른 자기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해방이 어떤 특수한 종교적 제도나 철학적 교의 내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일정하게 개인의 주체 내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저항적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푸코가 집중해서 탐색했던 것은 과거 제정기에 있었던 개인적 기술로 발전시켰던 어떤 체제, 규칙, 방법, 기술, 수련을 배우고자 했다.
고대의 자기배려는 오로지 자기가 자기에게 가하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민법이나 종교적 의무에 의해 강제되지 않았다. 개인이 스스로 자기를 돌보는 일을 선택하고 결정한다. 즉 실존의 개인적 선택이다. 그 순간 매우 중대한 감각이 생성되는데, 그것은 누구나 자기 삶을 미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실천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법적, 종교적 틀 없는 미학적 윤리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아주 기묘한데, 법적이거나 종교적으로 통제되지 않고도 자기가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 자기 삶을 미학적으로 구성하는 윤리이다. 그런데 그것은 규정되지 않는 윤리이기 때문에 통념적으로 망가진 최악의 삶에도 여전히 미학적 구성 가능성이 남아 있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죽기 직전까지 모든 가능성이 소진되지 않는다. 끝까지 아름다운 삶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비판적 태도를 가지고 새로운 진실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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