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광기가 나타났다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이규현 옮김, 오생근 감수, 나남, 2020(재판).
공룡의 고고학과 침묵의 고고학
푸코의 고고학적 저서들, 특히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 등을 읽으면, 어딘지 주제와 소재들이 난삽하게 분열되어 있고, 심한 경우 서로 아무런 관계없이 따로따로 전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예컨대 『임상의학의 탄생』에서 언어와 의학의 관계는 분명하게 와닿지도 않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의학을 굳이 끌고 와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며, 『광기의 역사』에서는 광기가 정말 있긴 있는데 부당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만들어 어처구니없게 억압하고 있다는 건지 헷갈린다. 또 『말과 사물』에 나오는 에피스테메 역시도 실제로 지금 여기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믿기에는 다소 황당하고, 어쩌면 그저 푸코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공상과학의 세계일지 모른다는 의심도 든다.
사실 이런 생각은 푸코가 웁살라 대학에 잠시 있던 시절, 이 책의 초안을 그 대학의 사상사 교수이며 견실한 실증주의자인 린드로트에게 박사학위를 위해 보여주자, 그가 보인 반응과 똑같다. 그는 일단 문체에 기가 질렸다. 그리고 이 책이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표현들 때문에 주제가 혼란스럽고 어렵다고 느꼈다. 결국 그는 푸코의 논문은 박사학위를 부여하기에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실증주의자의 눈에는 푸코의 안개 같은 문체가 대상을 명료하게 만들지 않는다고 여겼을 것이고, 더 나아가 그런 문체를 제거하고 나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물론 그것들을 그렇게만 생각하고 놓아버리면 푸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마도 푸코와 푸코가 펼쳐놓은 대상에는 그런 느낌을 일으키는 기호를 방출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떠올렸던 것은 들뢰즈가 프루스트와 관련하여 사교계의 기호가 <찾기>(Recherche)의 첫 번째 세계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들뢰즈는 샤를뤼스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샤를뤼스는 사교적 능력과 잘난 척하는 성격, 연극적인 과장된 의미, 얼굴과 목소리 등을 통해서 가장 탁월하게 기호들을 방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샤를뤼스는 사랑에 사로잡힌 나머지 베르뒤랭 집안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자기의 고유한 세계 안에서도 그 세계에 함축되어 있는 법칙들이 변해 버렸을 때 그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프루스트와 기호들』 25p)
푸코가 말하는 광기를 두고 완전히 같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광기의 역사』에 나오는 푸코의 광기는 오랜 시간을 두고 구성되어간 것이긴 해도, 그것 자체가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있다고 할 수도 없는 이상야릇한 대상이라는 점, 그러나 추적해 들어가면 아무것도 아닌 대상이 되고 만다는 점, 그렇기에 그것의 행로와 그것이 방출하는 기호의 의미는 묘연하다. 이 기호는 텅 비어 있지만, 이 공허함이야말로 근대에 완벽한 대상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지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만일 푸코가 자신의 작업을 고고학이라고 한 것을 말 그대로 믿는다면, 사실 그 고고학은 실패한 고고학이다. 왜냐하면 고고학의 작업 결과 발견했다고 하는 광기는 파열된 형태의 흔적들만 가득한 지층뿐이고, 실제 출발이랄지, 본 모습이랄지 하는 것은 없거나 모호하고 애매한 비(非)-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공룡의 고고학과는 완전히 다른 그것이다. 역시 푸코는 자신도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다루고자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말대로 ‘침묵의 고고학’이다.
경험의 형식들의 역사성
푸코는 대감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광인과 달리 매우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수용한다고 설명하고, 병자와 광인과 범죄자가 함께 섞여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 경악의 감정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병자와 광인과 범죄자들 사이의] 차이점이 뚜렷하게 보인다. 이 차이를 구별하지 않는 불분명한 의식은 우리에게 무지의 인상을 줄 뿐이다. 그렇지만 의식이 불분명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러한 의식을 통해 독창적이고 다른 것으로 돌릴 수 없는 경험이 드러난다. 이러한 의식은 근대적 광기의 첫 부분이었다고 생각할 때 이상하게 닫혀 있는 영역, 말이 없는 영역을 가리켜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검토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지로 보이는 것에 관한 우리의 앎이 아니라 이 경험이다. 다시 말해서 이 경험에 관해 이 경험을 통해 알려지는 것, 이 경험에 관해 이 경험에 의해 표명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경험이다. 그러면 광기가 세계 안에 얼마나 친숙한 것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가를, 그리고 광기가 점차로 친숙하지 않은 것으로 변해갔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그토록 위험한 연관성이 단절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광기의 역사』 165p, 강조는 인용자)
여기에서 다음 작품들인 『임상의학의 탄생』에서부터 『말과 사물』까지 그의 초기 철학을 지배했던 고고학이 탐구하고자 했던 영역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어떤 ‘경험’(expérience)이다. 고전주의 시대에 병자와 광인과 범죄자들이 차이 없이 똑같이 취급하는 저 의식을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앎의 상태에 머물며 우리의 인식 구조하에서 저런 무지한 상태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경험으로 돌아가 광기 혹은 광인과 관련한 사건들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당시의 광기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혹은 주변의 현상으로 경험되고 있음에도 한곳으로 수용하고, 어쩐지 중요하게 다루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다양한 형태와 의미로 인식되어야 할 광기를 단 하나의 형태와 의미를 지닌 광기로 가둬놓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의 푸코는 심리학에 몸과 정신을 맡겼다. 그는 철학에 추가해서 심리학과 정신병리학 학위를 획득한다. 심리학 실험과 기술에 매혹되어 로르샤흐 테스트 장비로 친구들에게 시험을 하기도 한다. 더불어 자클린 베르도와 정신분석학자 루트비히 빈스방거의 책을 번역하고 120페이지짜리 긴 서문을 쓴다. 또 푸코는 그녀와 함께 한동안 생트 안 병원에서 심리검사 담당으로 일했다. 뇌파를 측정하고 손바닥 피부의 저항과 심장 박동을 쟀다. 실험자의 머리, 발, 손에 전극을 장착하고 끈으로 묶고 앉게 하고서, 모든 기관의 신경 반응을 측정했다. 또 보건부 지시로 교도소를 방문하여 수감자들의 뇌를 검사하기도 했다. 이 기간 푸코는 실험심리학의 전문적 분위기를 완전히 익혔다. 그는 마치 현장을 누비는 조사원 같았다.
그 현장에서 푸코는 정신병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직접 보면서, 정신병자의 현존과 맞부딪치고 있었다. 훗날 그가 쓰게 될 광인과 범죄자의 수용이 어떤 현실로 존재하고 있는지 관찰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전통적 의학 해석과는 다른 것을 발견하려고 애쓴다. 이때 생각하고 있던 것이 바로 ‘역사 속에서 경험의 형식들(dan leur histoire, des formes d’expérience)을 연구하는 것’이다. 즉,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경험의 형식들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살피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전통적인 심리학에 근거하여 형성된 자신의 ‘실존분석’(l’anlyse existentielle)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그 목표에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것은 이론적으로는 철학의 존재론에 미치지 못하고, 실천적으로는 실제 치료행위에 미치지 못했다. 즉, 그것은 푸코가 하고자 하는 작업의 출발점인 경험의 개념을 정립하지도 못했고(즉, 철학적으로 부족하다), 정신병에 대해서 실제적인 원인과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했다(즉, 실천적으로 부족하다).
결국 그가 찾아간 것은 인간 존재론이라는 철학적 이론도 아니고, 치료행위로서 의학적 실천도 아니다. 그렇다고 단지 역사라는 배경하에서 경험들이 각각 다르게 존재한 듯이 서술하는 연대기적인 방법도 큰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역사학에서 하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가. 즉, 푸코가 지향하는 작업은 역사 속에서 사건들을 추적하여 나열하는 작업도 아니다. 그가 돌파하는 방식은 어떤 양자택일이 아니고, ‘경험의 형식들의 역사성 그 자체를 사유하는 것’(penser l’historicité même des formes d’expérience)이다(『말과 글(Dits et écrit)』 2, 「“성의 역사” 서문」, p. 1398 ; 『푸코 읽기(The Foucault Reader)』 p. 334, 강조는 인용자)
‘경험 이전’에 이미 변하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동생과 함께 산골 집에서 한 달 동안 지낸 적 있다. 아버지가 그렇게 생활해 보아야 한다면서 둘을 내려다 놓고,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왔다. 그곳엔 우리 이외에 딱 한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육십이 넘은 노부부가 소와 닭을 키우고, 벗 삼아 개를 데리고 다녔다. 아버지가 말을 해놓으셔서, 아침, 저녁으로 밥과 간단한 반찬을 가져다주었다. 몇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 부부는 15년 전에 이곳으로 흘러 들어와서 소작하고 있는데, 남은 생은 여기서 살겠다고 했다. 평생 부두 근처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노부부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이 궁금하면 부엌 선반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틀어 뉴스를 들었다. 산속이라 전파가 안 좋아서 KBS 방송 하나만 겨우 잡혔다. 그마저도 부부는 잘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유일한 기쁨이라면 개와 놀거나, 뜨개질해서 완성된 옷을 보며 미소 짓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그들의 사고방식에 다소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내가 태어날 무렵 이 산에 들어와 주변에 전혀 사람 없이 살았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시내에 내려가 생활용품을 사서 올라왔다. 쓰는 용어나 행동 방식은 거의 60년대식인 듯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을 똑같이 들어도 서로 다르게 이해했다. 뉴스에서 살인 사건이 나고, 그 살인자가 정신병력이 있다는 소식이 나오자, 어린 시절 자신들이 살던 동네의 미치광이를 떠올려 이야기를 했다. 그 사람도 젊은 시절 미쳐서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하고, 그도 발이 잘렸다는 것이다. 감옥에 갔다 오긴 했는데, 살던 마을에 그대로 자신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여전히 미쳐 있었지만, 함께 살았다고 말하는데, 그다지 심각한 일인 것처럼 설명하진 않았다. 지금의 우리라면 이미 공포에 질려서 대책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다.
칸트는 “우리의 모든 인식이 경험과 함께 시작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인식 모두가 바로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순수이성비판』, 「1787년 제2판 서론」, p. 215, 강조는 인용자)라고 말한다. 모든 인식이 우선은 “경험과 함께” 시작한다. 그러나 인식의 원천을 추적하면 반드시 경험에 의하지 않고서 진행되는 계기가 있다는 것이다. 즉, 경험에서 유래하지 않는 보편타당한 계기가 있다는 것인데, 칸트는 이것을 “아프리오리”(a priori, 선험적)라고 부른다. 아프리오리란 본래 라틴어로 ‘먼저’, ‘이전’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칸트의 경우 그것은 경험에 앞서 성립하거나 경험에서 유래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 경험적 인식이라는 것도 결국 경험의 대상에 대한 인식이다. 그렇다면 경험적 인식은 경험의 대상을 새롭게 성립시키는 것과도 같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면 우리 주관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아프리오리한 형식이 있어서 대상을 성립시키고, 그래서 경험적 인식이 생긴다는 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무언가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은 내 안에 이미 갖추어져 있는 시·공간과 범주라는 형식에 맞추어서 이루어진다는 것. 그러니까, 사과가 사과이기 위해서는 사과를 사과로 알아먹게 하는 기계 같은 장치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장치가 돌아가야 사과라는 대상을 앞에 세우고, 그리고서 그것을 알 수 있게 되고, 드디어 사과를 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칸트에 따르면 그렇다. 이 경험의 형식들은 특정한 상황, 특수한 경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수한 조건을 넘어서서 언제나 반드시 성립한다. 즉, 아프리오리한 것들은 보편성과 필연성을 갖는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다. 그래야만, 이 사과와 저 사과 그리고 그 사과가 뒤죽박죽되지 않아 어디서도 공통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푸코가 ‘경험의 형식들의 역사성’이라고 말하는 바는 이와 다르다. 물론 칸트의 초월 철학은 일상적 의미에서는 경험을 쌓아가면서 그 가능 근거를 철학적으로 반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푸코가 칸트의 이 구도를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푸코는 이 고정불변의 ‘아프리오리’한 형식들이 그렇게 난공불락이 아니고, 그 자체로 역사성을 갖고 변해간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말 그대로 “경험 이전”(선험, a priori)에 모두 이미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광기가 나타났다!
푸코는 이 ‘경험의 형식들’(formes d’expérience), 그러니까 ‘아프리오리한 형식들’이 어떻게 역사성을 갖는지에 대해 고전주의 시대 광기의 경험을 가지고 추적한다. 단순히 시대마다 광기의 형태가 어떻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식의 외면적 모습의 서술이 아니라, 사회적 사건들과 함께 ‘광기’를 인식하는 형태들, 그리고 일반적인 경험을 뚫고 그 인식 방법 뒤편으로 돌아가서 그곳에 웅크리고 있는 선험적 형식, 즉 경험 이전에 경험을 제한하는 조건들이 어떻게 있는지 보려 한다.
그러나 푸코의 서술은 매끄럽지 않다. 아니, 서술이 매끄러울 수가 없다. 매끈한 서술이 불가능한 것은 ‘광기’가 회고적으로 돌아보는 연대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때처럼 명료한 것이 아니라,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저 시대에 저 광기가 있고, 다음 시대에 이 광기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 시대에 저 광기와 이 광기가 함께하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프루스트의 사교계 기호가 엇갈리게 방출되고 있는 것처럼, 광기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엇갈리게 존재하고, 서로 모순되게 드러난다. 어쩌면 그 파열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텅 빈 그것으로 향하기 위해서 푸코적인 문체가 불가피한 것인지 모른다. 광기는 그것 자체로 통일되어 있지 않고, 파열된 파편이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광기의 본질이 그러함에도 하나의 일관된 체계로 떠오르게 하는 사건들이다. 푸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성, 본성, 질병의 관계라는 문제가 철학자나 의사에게 제기될 때, 광기는 철학자나 의사의 책을 통해 제시된다. 광기가 흩어져 있는 경험의 덩어리 전체는 일관성의 관점을 드러내고, 언어의 가능성에 이른다. 특이한 경험이 마침내 나타난다. 그때까지 그려진 어느 정도 이질적인 단순한 선들이 정확히 제 자리를 차지하고, 각 요소가 정확한 법칙에 따라 작용할 수 있게 된다.”(『광기의 역사』 p. 304, 강조는 인용자)
푸코는 처음부터 두 가지의 광기를 뒤섞어 놓는다. 하나는 ‘광인들의 배’를 타고 순례하는 광기이다. 르네상스는 광기를 도시 밖으로 치우기 위해 선원들에게 광인을 맡겨서 이동과 통과의 장소에 유치한다. 광인은 외부의 내부에 놓이고, 동시에 역으로 내부의 외부에 놓인다. 이때 광기는 쉽고 즐거우며 가벼운 것이어서 가까이 할 수 있다. 마치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된다는 듯이. 또 그 광기는 우주적 질서의 막연한 발현을 보여주는 무엇이어서 귀담아들을 필요도 있었다. 한편 다른 하나는 거리를 두고 다소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경험하는 광기이다. 광기는 이제 우주의 형상이 아니라 단지 인생의 문제 많은 특징이다. 제롬 보슈, 브뤼겔, 뒤러가 세속적인 구경꾼의 시각으로 그들 주위로 다가가 솟아나는 광기를 바라보고, 그 자신도 그 광기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장면이 전자라면, 에라스무스가 광기를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후자이다. 이 두 가지의 광기에 대한 경험은 교차되고, 교환되면서 뒤섞여 있었다.
그런데 이런 혼란과 파열을 일거에 통일시키려는 시도들이 발생한다. 1656년 왕은 파리에 구빈원(l’Hôpital général)을 설립하라는 칙령을 내린다. 기껏해야 행정기구의 재편일 뿐이지만, 그것은 기이한 감금 시설이었다. 구빈원 원장은 구빈원의 수용시설뿐 아니라 파리시 전역에 걸쳐 사법권을 갖는다. 빈민, 범죄자, 광인들을 모조리 구빈원에 모아 놓았다. 그 의미에서 구빈원은 의료기관이 아니다. 재판소 밖에서 다른 권력 기구들과 나란히 하는 반(半)-사법기관이자 행정단위였다. 그것은 왕이 통치와 사법 사이에, 법의 한계지점에 세운 기이한 권력 기구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목적이면서도, 거의 모든 곳에 감방과 유치 구역이 설치된 이상한 곳. 이곳에서 구제와 처벌, 자선과 통치라는 이중적인 선이 오고 가는 고전주의 시대의 참모습이 펼쳐진다. 광기도 도덕적인 태도에 따라서 어떤 것은 자선의 대상으로, 어떤 것은 탄압의 범주로 다루어진다. 결국 가난과 광기가 도덕 문제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르네상스의 광인은 떠돌아다녔다. 그러나 이제 고전주의의 광인은 그 기이한 순례의 길에 있지 않다. 광기는 ‘구빈원’이라는 통치의 돌발적인 사건 아래에서 국가의 논리와 함께 갇힌다. 그런데 이 절묘한 배치가 그 전과 완전히 다른 경험을 탄생하게 하였다. 이른바 고전주의적 광기의 경험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게 보면 푸코는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는 광기들이 어떤 통치적 사건들을 거치면서 쓰레기를 치우듯 어느 공간으로 쓸려 들어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었다.
이렇게 두 가지 측면에서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광기는 순수한 이성에 의해 거부된다. 이성은 광기를 배제하고 뭉갠다. 데카르트는 광인들을 두고 말한다. “아니, 이게 뭐야. 미친 사람들이잖아!” 이것은 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 광기를 뭉개고 몰아내는 장면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광기는 수용되고 감금된다. 구빈원을 통해서 경제적이고 도덕적인 배제가 흘러 들어온다. 가난한 사람, 부랑자, 방탕한 사람, 동성애자, 범죄자와 광인들이 뒤섞여 배제의 물줄기를 이룬다. 르네상스라면 서로 같지 않은 사람들이 같은 공간 안으로 통합된다. 배제됨으로 통합된다. 이 배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 법률적인 처벌이 함께한다. 이 배제와 통합의 아이러니가 전 영역에 걸쳐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점점 경제적인 요소가 매우 중대한 식별 요소가 된다. 즉 배제된 사람 중에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감금보다 노동시장으로 보내는 것이 더 나았다. 그렇게 감금 공간에 남겨 놓아야 할 것과 사회로 되돌려져야 할 것들이 엄밀하게 식별되기 시작한다. 이제 비이성 중에도 순수한 광기를 구별한다. 이게 점점 정교해지면서 19세기에 드디어 광기가 정신병이 되어 버린다. 르네상스 시대의 말기와 고전주의 시대의 절정기 사이에 제도의 변화뿐만 아니라 광기에 대한 의식의 변질이 일어났다. 이 의식의 탄생은 바로 수용시설, 징역과 교정시설에서였다. 19세기 정신병에 관한 실증과학은 수용과 감금을 통해 정상인과 구별하여 배제하고, 나아가서 정상인과 다른 법적 주체로 성립시키고서야 비로소 가능했다. 과학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 시대 정신병리학의 아프리오리한 형식, 즉 경험의 형식은 이때 형성되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나면 광기에 관한 경험의 형식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움직여왔는지 어렴풋이 보게 된다. 그렇다면 광인들을 감금하고 배제함으로써 정신병리학이 탄생한 것이 자명하니, 도덕적 열망을 가지고 그 배제를 되돌리고, 오염된 정신병리학을 단죄하고, 배제를 되돌리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 푸코가 보고 있던 것은 그런 자명한 이치가 아니다. 그것으로는 그가 왜 광기의 역사를 추적해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런 이해는 푸코를 흔해 빠진 도덕론자로 밀어 넣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도덕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 이상한 문체의 책을 썼단 말인가.
앞서 우리는 구빈원이라는 배제와 통합을 통해서 광기가 분리되었다고 살폈다. 그리고 분리의 극한에서 정신병리학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정신병리학의 근저에 있는 것은 바로 이 새로운 경험이다. 『광기의 역사』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광기들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었는지로 가득하다. 이 광기와 저 광기가 파열한 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 광기를 포함한 모든 대상은 언제나 애초에 파열한 채 존재하고, 대상은 뒤늦게 새로운 경험의 형식과 함께 찾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뒤바꿈에는 무언가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무언가 있다는 것은 경험적 인식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구빈원이라는 사건과 함께 광기에 대한 새로운 경험이 생성되었고, 그러면서 광기들은 새롭게 통합되어 새로운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구빈원이라는 극단적 분리가 정신병리학을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그 정신병리학이라는 사건이 기이하게도 다시 새로운 경험을 탄생시킨다. 바로 구빈원과 정신병원에 가려 후미진 곳에서 글을 쓰던 광인들, 광기 중에도 독방에 감추어졌던 광기들이 의도치 않은 형태로 내밀하게 전달되어, 이제 철문을 연다. 우리가 정신병리학의 휘광에 눈이 멀어 보지 못했던, 숨어 있는 광인들이 새로운 경험과 함께 지하에서 걸어 올라온다. 니체와 아르토의 이름으로. 그들이 르네상스의 영성을 품고 살아 돌아온다. 구빈원과 정신병원이 가둬두었던 광기가 아이러니하게도 온전히 에너지를 보전하고 있다가 드디어 살아 올라온다. 마치 대상과 경험이 순서를 바꾼 것처럼, 앞선 자 뒤서고, 뒤선 자 앞선다. 정신병리학이 드러낸 광기가 니체와 아르토의 광기를 감추어 준다. 프루스트의 사교계 기호처럼 다양하게 기호를 방출하던 기존의 광기와 정신병리학은 자신의 법칙을 잃자,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린다. 그 침묵의 고고학에는 숨겨져 있던 새로운 광기가 새로운 경험들 틈 이곳저곳에서 출현한다. 새로운 광기가 나타났다!
글_약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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