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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생111

허구에 대한, 허구에 의한, 허구의 매혹적인 글쓰기, 『픽션들』 '사실 같은, 그럴듯한 거짓말’에 대한 매혹, 픽션들 이러한 일원론 혹은 관념론은 모든 과학을 무용지물로 만든다. 하나의 사건을 설명(또는 판단)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른 사건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틀뢴에서 그런 결합은 주체 이후의 상태이며, 이전의 상태에 영향을 끼치거나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각각의 정신적 상태는 축약이 불가능하다. 그런 정신적 상태에 이름을 부여하는, 즉 분류하는 단순한 행위는 왜곡과 편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틀뢴에는 과학, 나아가 체계적 사고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틀뢴에도 이런 체계적 사고가 존재하며, 그것도 거의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존재한다. 북반구에서 명사가 그러하듯 철학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난다. 모든 철학이 오직 .. 2014. 4. 16.
몸속에서 이루어지는 마주침으로 생성되는 사건들 -침, 땀, 콧물… #긴장-진액-에피쿠로스 마주침의 유물론 회사원이라면 처음 만난 사람끼리 악수를 주고받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다. 물론 명함을 교환하는 것도 빠트릴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 마다 약간 망설여진다. 땀이 많은 손 때문이다. 특히 상대가 외국인이나 여자라면 민망함이 커져, 회의 내내 안절부절못할 때가 부지기수다. 어느 정도냐 하면, 심할 때는 명함이 단 몇 분 만에 홍건이 젖을 때도 있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물고기가 아니었을까. 사방이 물로 뒤덮인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리 엉뚱한 말도 아니다. 춘삼월 강변 바람이 산불을 더 강렬하게 키우듯, 회의 내내 안절부절못하는 내 긴장은 손을 익사 상태로 몰아넣는다. 몸속을 돌아다니는 물을 동의보감에서는 ‘진액’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진액이 다빠.. 2014. 3. 19.
설국열차를 전복시키자 죽음이 아닌 평화가 왔다! - 지천태 전복과 평화 작년 여름 나는 를 봤다. 사람들은 너무 직설적이라서 지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오히려 직설적이어서 구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추상적으로 여기던 많은 사유들이 생생해졌다. ‘자리’라는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메이슨 총리에게는 랑시에르가, 18년 전 꼬리칸에서의 식인 현장을 말하는 커티스에게선 루쉰이, ‘윌포드 엔진실’의 문 앞에서 차라리 기차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자는 남궁민수에게는 들뢰즈가, 윌포드가 커티스를 설득하며 제시하는 ‘균형론’에는 푸코의 생명정치가 숨어 있다. ‘7인의 반란’을 증거하는 창문 밖 탈주자들의 얼어버린 모습에선 라깡의 상징계와 실재계가 너무나 리얼하다. 더군다나 ‘문’을 하나씩 뚫고 나가는 커티스의 모습은 레닌 그 자체라고 말해도 무.. 2014. 2. 28.
바람처럼 다가온 2편의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聽け)』 | 무라카미 하루키 |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내가 세 번째로 잤던 여자는 내 페니스를 “당신의 레종 데트르(존재 이유)”라고 불렀다. …… 타인에게 전할 뭔가가 있는 한, 나는 확실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피운 담배 개비의 수나 올라간 계단의 수나 내 페니스의 크기에 대해서 누구 한 사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는 자신의 레종 데트르를 상실하고 외톨이가 되었다. (91쪽)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실로 간단하다. 갑자기 무언가가 쓰고 싶어졌다. 그뿐이다.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졌다.....“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대학생 때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작가는 내게 이렇.. 2014. 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