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40 실수는 저지른 직원만의 잘못일까? - 조직 내에서 함께 산다는 것 공생, 감각을 공유하는 공동체 ❙ 강한 규율, 강한 조직?온몸에 받은 봄햇살로 머리도 가뿐하다. 그러나 방심하는 사이에 곡우(穀雨)를 지나 벌써 입하(立夏)가 돌아왔다. 봄에는 몸 이곳저곳이 간질간질하고, 아지랑이에 눈도 맵다던데, 이번엔 꽃향기는커녕 풀내음도 제대로 못 즐기고 떨어져 누운 꽃잎만 바라보고 눈만 껌벅거린다. 집근처 좁다란 도랑에는 벌써 여름을 알리는 개구리들이 밤새 울어대고, 늦은 봄비가 내리자 양기 가득한 지렁이가 보도블록 사이로 머리를 들이 민다.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런 때면 은행일도 손에 안 잡힌다. 안 그래도 팀원들에게 이런 저런 업무 착오가 많아졌다. 새해에 전입한 팀원들은 여전히 업무에 익숙하지 않고, 기존 팀원들은 너무 익숙해져 자신을 경계하지 않은 탓이다. .. 2016. 6. 28. '콘크리트 정글'의 신화 - 뉴욕과 허먼 멜빌(1) 콘크리트 심해, 그 신화를 찾아서 : 뉴욕과 허먼 멜빌 미국 래퍼 제이지가 가수 엘리샤 키스와 함께 대박 친 뉴욕의 로고송은? 정답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다. 제목은 몰라도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팝송이다. (뉴~욕, 뉴~욕, 뉴~욕 하고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떠올려보자.) 이 곡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뉴욕, 콘크리트 정글, 꿈이 만들어지는 곳. 여기서 당신이 못할 것은 없어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직접 들어보시라! 콘크리트 정글. 진짜 대박난 것은 노래보다 이 한 구절이다. 그 후로 뉴욕을 다룬 온갖 가이드북, 기사, 리뷰마다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콘크리트’로 표상되는 모던, ‘정글’이 연상시키는 미개척.. 2016. 6. 24. [약선생의 도서관]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걷기, 증여의 마음을 연습하다 프레데리크 그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오랜만에 고향인 제주에 갔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옛 담임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좀 일찍 도착한 나는 남은 시간을 보낼 요량으로, 제주 시내를 무작정 걸었다. 제주라면 자연경관부터 떠올리는 이들은 언뜻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시내 골목골목이 더 강렬한 흔적으로 남아 있다. 제주도도 역시 사람 사는 마을인 것이다. ‘사람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 나면 제주로 보낸다’는 말은 그래서 무책임하다. 관덕정에서 동문시장까지 이곳저곳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먹어대던 낡은 자장면 집, 술 취한 내가 기대어 토악질 해대던 옛 술집의 담벼락, 그리고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면 몰래 숨어 들어간 .. 2016. 5. 17. [약선생의 도서관] 『문학이란 무엇인가』- 쓰기는 독자의 읽기를 통해 완성된다 읽기는 창조다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푸코와 들뢰즈, 그리고 사르트르가 데모에 나섰다가 우연히 함께 찍힌 사진을 좋아한다. 그 사진에서는 들뢰즈가 푸코를 바라보고 있고, 사르트르가 뒤에서 그런 그들을 조용히 바라보는 순간이 절묘하게 잡혀 있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푸코나 들뢰즈 보다, 사르트르에게 더 눈길이 가게 된다. 이들 젊은 세대에게 수모를 당한 사르트르의 처지가 저 알 수 없는 시선에 묻어나 보여서다.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맑스주의가 얼마간 파문을 일으킬지는 모르겠으나 기껏해야 ‘찻잔 속의 폭풍’(tempêtes qu'au bassin des enfants, ‘아이 세숫대야의 폭풍’)에 불과할거라고 좀 세게 조롱했었다. 맑스주의가 서양의 인식론적 배치(disposit.. 2016. 4. 19. 이전 1 2 3 4 5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