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연재 ▽1199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 기억에 관한 무참한 이야기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 기억에 관한 무참한 이야기 제목이 너무 감각적이라 선택이 머뭇거려지는 경우들이 있다. 이 작품도 그랬다. 현대 여성작가가 ‘슬픈 짐승’이라는 제목으로 쓴 소설… 작품을 보지 않고도 ‘촉’이 왔다. 표지를 봤더니 첼로 뒤에 누운 여인(남자 다리 같지는 않다)의 벗은 다리 사진이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뭣에 씌었는지 책을 주문했고 도착한 그날부터 읽기 시작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문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라면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간을 이해하게끔 만들어버리는 그 마력과도 같은 힘에 대해. 간단히 말해 이 작품은 짧은 사랑과 긴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중년의 여인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발작 이후 몇 .. 2017. 5. 19.
존재의 탈바꿈, 그 가능성에 대하여​ #4- 자유로운 삶이란? 존재의 탈바꿈, 그 가능성에 대하여​ #4- 자유로운 삶이란?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 장자는 『소요유』 편에서 사물의 ‘쓸모’를 질문하는 혜시를 등장시킨다. 『장자』에 등장하는 혜시는 장자의 가까운 친구이지만, 늘 장자에게 한 수 배우는 캐릭터이다. 실제로 혜시는 언어와 이름의 본질을 파헤치는 명가(名家)이다. 한 언어 혹은 이름의 명목과 실질을 따지는데 에너지를 온통 소모하지만, 정작 이런 노력이 인식의 전환이나 해석의 전복으로 이어지지 않아 자칫 궤변론자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래서 장자에게 늘 한 소리를 듣는다. 물론 혜시는 우리가 넘보기 어려운 대학자이다. 저서가 수레 다섯 대에 가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 대학자 혜시조차 세상 사람들이 규정하는, 쓸모 있음의 기준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쓸모를.. 2017. 5. 18.
『손자병법』 - 마음을 움직이는 자 『손자병법』 - 마음을 움직이는 자 영화 《매트릭스》에서 토마스 앤더슨이 빨간 약을 삼키고 난 후, 물컹물컹해진 거울에 이끌려 그것에 손을 댄다. 그러자 거울이 액체로 변해서 그의 팔을 타고 흘러 올라온다. 아마 앤더슨이 보던 것들이 보던 그대로가 아니라는 뜻일 게다. 이내 그 다음 장면에서 앤더슨은 “토끼 구멍”으로 쑥 빠져 들어가는데, 바로 그 순간 앤더슨은 유선형 용기 안에 담겨 있는 자신의 진실과 대면한다. 알몸인 채로 환상에서 깬 것이다. 그는 현실이 우리가 아는 그 현실이 아니고, 컴퓨터가 만들어낸 꿈의 세계라는 ‘진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영화는 묘하다. ‘진실’을 찾았고, 더 이상 새로운 진실을 찾아 나서야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앤더슨 일행은 끊임없이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와 싸운다. 이.. 2017. 5. 16.
김훈,『라면을 끓이며』 - 우리 아버지였으면 하는 기분 김훈,『라면을 끓이며』 - 우리 아버지였으면 하는 기분 얼마 전에, 2주쯤 되었나…… , 여하튼 한 달이 조금 되지 않은 때에 『라면을 끓이며』를 읽었다. 지금도 읽고 있다. 좋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 아버지가 써놓은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김훈 선생이 우리 아버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48년생이시니 딱 아버지뻘이다. 진짜 우리 아버지는 51년생이셨으니까 고작 세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살아온 내력은 참으로 다르다. 진짜 우리 아버지는 『라면을 끓이며』를 쓰고 있는 화자가 아니라, 차라리 화자에 의해 대필되고 있는 어느 사람의 모습에 더욱 가깝다. 발바닥에 박힌 굳은 살로 땅을 밟으며 애써 살아가는, 김훈 선생의 표현에 따르자면 땅에 .. 2017.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