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소리 객소리 딴소리9 [쉰소리객소리딴소리] “우리의 수렁과 굴욕도 떳떳하게 수긍하며 살아가는 것” “우리의 수렁과 굴욕도 떳떳하게 수긍하며 살아가는 것” 아주 오래전 여름, 빈에서 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우리 안의 선한 부분을 떳떳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것 못지않게 우리의 수렁과 굴욕도 떳떳하게 수긍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자만이 후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준다면 후자에 대한 인식만이 전자를 진실하게 만든다. (조르조 아감벤, 『내가 보고 듣고 깨달은 것들』, 윤병언 옮김, 크리티카, 2023, 55쪽) 살다 보면 누구나 넘어가기가 힘든 어려움을 맞닥뜨릴 때가 온다. 몸이 심하게 아프거나 마음이 찢어질 만큼의 이별을 겪거나 정신을 붙잡고 있기도 힘들 만큼의 사건에 휩싸이거나 모욕감 또는 굴욕감에 휩싸이는 일을…. 이때 닥친 어려움을, 굴욕을, 직시하는 일이 힘들.. 2023. 12. 26. [쉰소리 객소리 딴소리] 나이가 들수록 ‘좋은 귀’를 갖고 싶다 [쉰소리 객소리 딴소리] 나이가 들수록 ‘좋은 귀’를 갖고 싶다 누구나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걸 ‘체감’할 때가 있을 것이다. 내 경우, 그것은 나보다 나이가 많이 적은 이들과 만날 때 내가 말이 많아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가만 보니, 대여섯 살 정도의 위아래 차는 거의 동년배로, 특별히 상대와 나의 수다의 양에 차이를 못 느끼는데, 그 이상의 나이 차가 나면, 대체로, 선배와 만날 때는 내가 말하는 양이 훨씬 적고 후배와 만날 때는 내가 말하는 양이 훨씬 많다는 걸 깨달았다.(어떤 프로젝트나 일 등 공적인 업무 범위의 대화가 아니라, 사적으로 만나는 나누는 수다의 경우에 말이다.) 그리고 또 가만히 떠올려 보니, 역시 대체로, 다른 분들도 그런 경우가 많은 듯했다. 나의 왕선배님도 그 분.. 2023. 9. 13. [쉰소리객소리딴소리] “청소는 인사하는 일” “청소는 인사하는 일” 매일 밤 잠들기 전 책을 읽는다. 소리 내어 읽는 사람은 나지만 듣는 사람은 딸이다. 글자를 알게 되면 책을 저 혼자 읽을 줄 알았는데, 웬만하면 그리고 잠들기 전에는 꼭 읽어 달라고 한다. 딸이 자라면서 읽는 책의 장르가 많이 바뀌었다. 일곱 살이 되고부터는 글자가 적은 그림책들만이 아니라 글자가 제법 되는 전래동화나 글자가 꽤 많은 어린이동화류를 읽게 되면서 같이 흥미진진해하며 흥분하기도 하고,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기도 하고, 아직 나오지 않은 다음 권을 같이 기다리기도 하는 일이 잦아졌다. 몇 주 전 그런 어린이동화류 중에 한 권을 읽다가 거의 오열을 한 일이 있었다(사실 엄마들이 애들 책 읽어주다 엄마만 울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다들 몇 번은 경험하는 일이더라). 『만.. 2023. 8. 23. [쉰소리객소리딴소리] 다른 60대의 탄생, 웃는 노년의 탄생 다른 60대의 탄생, 웃는 노년의 탄생 빵이 다 떨어져서 커피숍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걸어서 2분 만에 도착했다. 돈만 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도시는 굉장하다. (……) 벽을 따라 테이블이 6개 정도 늘어서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벽을 등지고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전부 여자였다. 전부 할머니였다. 그 중 넷은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전부 늦은 아침을 먹는 듯했다. 전부 홀몸으로 보였다. 예전에 파리 변두리의 식당에서 매일 밤 같은 자리에 앉아 혼자 저녁을 먹는 노파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목을 앞으로 굽힌 채 혼신의 힘을 다해 고기를 썰고, 기이할 정도의 에너지로 고기를 씹어 삼키고 있었다. 나이는 아흔쯤으로 보였다. (……) 그 무렵의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2023. 4. 12.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