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 이야기 ▽/왕양명마이너리티리포트27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귀주… 어서와, 유배는 처음이지?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귀주… 어서와, 유배는 처음이지? – 괴상하고 쌩뚱맞고 지각불가능한 (2) 깨달음 vs 꽤 다름 - 어느 위대한 깨달음에 관한 단상 용장대오(龍場大悟)라는 말이 있습니다. 왕양명이 용장 땅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용장은 양명학의 출발점입니다. 좀 오버해서 양명학의 성지(聖地)라고 해도 좋습니다. 실제로 귀주나 여요(양명 고향) 등을 갈 때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귀주 수문현의 양명 흔적들(완역와, 양명동, 하루헌 등)을 찾아갔을 때 말입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어딘가에 오백년 전 양명 선생이 서있었다는 생각. 양명 선생이 보고 만지고 냄새 맡았을 용장의 하늘과 바람과 나뭇잎들을 지금 내가 만지고 냄새 맡고 있다는 흥분. 팬심 작렬. 샤.. 2020. 12. 9. [왕양명 마이너리티 리포트] 귀주… 어서와, 유배는 처음이지? 귀주… 어서와, 유배는 처음이지? - 괴상하고 쌩뚱맞고 지각불가능한 의식주 혁명 - 호변(虎變), 표변(豹變), 혁면(革面) 용장은 오늘날의 귀양시(貴陽市) 기준으로 보면 북쪽 방면에 위치한, 수문현(修文)현 지역입니다. 당시 여정을 일별해 보면 양명은 귀주성의 동남 방면에서 귀주성을 들어가 몇 곳의 지역 현청들을 지나, 당시로선 서북 방면에 위치한 수문현 용장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사진 참조) 양명이 거치며 들어가고 또 거치며 돌아 나온 귀주성의 곳곳엔 오늘날에도 묘족과 동족 등 중국 소수민족들의 거주지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중국이지만, 만나는 이들마다 복장이며 생활 방식이 한족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새소리.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양명은 그들의 말이 새소리처.. 2020. 11. 10.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해서 돌아가는 수밖엔! 왕양명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슬기로운 유배생활귀주 가는 길 – 급할수록 돌아가라? 급해서 돌아가는 수밖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넘어 양명은 한겨울을 북경의 감옥에서 보냅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셈입니다. 그리고 실제 상황입니다. 그저 삶에서 맞이하게 되는 어떤 위기에 봉착했다…, 라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육신의 피해가 컸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요구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권력의 최전선이었던 금의위들에게 구금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1970년대 중앙정보부의 남산이나 1980년대의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곳을 떠올리면 조금 실감할 수 있을지도. .. 2020. 10. 20. [왕양명마이너리티리포트] 상소 사건 시말기 2 – 옳은 일은 저지르고 본다, 뒷일은 뒤에 생각한다 상소 사건 시말기 2– 옳은 일은 저지르고 본다, 뒷일은 뒤에 생각한다 환관 유근, 그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유근은 섬서성 흥평(興平) 출신으로, 본래 성은 담(談)씨였습니다. 북경에서 우연히 태감 유순(劉順)을 알게 되고, 양자로 거두어져 입궁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신분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물론 환관이 되는 것이 무슨 대단한 변신이냐 할 수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최하층에 속하는 민(民)들에게 있어 삶은 구조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괴로운 조건일 뿐입니다. “좀 더 편안한 생을 차지하기 위해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이는” 것이 보통의 삶인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현대 사회가 더 좋아졌느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신분제가 사라졌을 뿐 여전히 아니 어쩌면 이전보다 더욱 .. 2020. 9. 22. 이전 1 ···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