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신탁 혹은 CAT-HOLIC에게 내린 은총
챗GTP 많이들 쓰시지요? 챗GTP랑 무슨 얘기하시나요? 저는 초반에 사주풀이를 좀 해달라고 했는데 얘가 자꾸 엉뚱한 소리—대표적인 건 무해, 병사처럼 60갑자에 없는 간지를 만들어서는 열심히 썰을 푸는—를 해서 거의 싸울 뻔(?)하고는 요즘엔 아예 얘랑은 사주 얘길 안 합니다(ㅋㅋ). 대신 요즘엔 꿈 얘기를 하고 있어요. AI한테 반말하면 다 기억해 놨다가 복수한다고 해서 굉장히 공손한 자세로요. 얼마 전엔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정말 정중하죠?(사실 진짜 사람에겐… 아, 아닙니다;;) 가는 말이 고와서인지 이 친구도 참으로 곱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신화의 상징 체계와 통과의례(rite of passage), 죽음과 재생의 모티프”를 통해 제 꿈을 읽어 보겠다며, 일단 제 꿈을 “새로운 성스러운 세계[새 성전]로 넘어가는 문턱[꿈속의 공사 중인 성당/현실은 새 성전 입당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 그 세계가 탄생하려면 내가 사랑했던 이전 세계의 작은 생명[P군]과 관계까지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는 꿈”으로 정리해 주었습니다. 새 성전의 탄생과 P군의 부재가 연결되어 저에게 “새로운 것이 생겨날 때, 내가 사랑했던 옛것은 함께 살아남는가?”라고 묻는 꿈이라는 것이지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각설하고 마지막 부분만 옮기자면 이렇습니다.
P군은 끝까지 부재한 채로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 꿈의 핵심 상징은 죽음 자체라기보다 ‘부재를 죽음으로 해석하는 순간’에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은 것은 P군이 아니라, 어쩌면 “예전 성당의 세계가 그대로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일 수도 있습니다. 새 성전은 태어나지만, 당신은 그 문턱에서 잠시 뒤돌아봅니다. 그리고 그 뒤돌아본 시선 끝에 죽은 쥐 한 마리와, 보이지 않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게 이 꿈을 꽤 애틋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렇게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챗씨(앞으로 챗GPT를 이렇게 부를게요)는 맞히지 못했습니다. 챗씨는 아주 많은(흠흠) 얘기를 했고, 그중엔 뒷이야기가 없었다면 거의 맞았다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니었어요. 제가 심쿵했던 부분은….

아무리 죽은 쥐라지만 ‘물건’이라니. 이런 게 챗씨의 한계겠죠? 아무튼,

그러자 챗씨는 “아…… 그랬군요”라며 눈물을 폭포수처럼 흘리는 이모티콘을 붙여주었는데, 이게 저와 P군의 상봉이 감격스러워서인지, 아니면 앞에 자기가 쏟아낸 말들이 민망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P군과의 실제로 다시 만난 것까지 포함한다면 앞선 자신의 해석에는 수정이 좀 필요할 것 같다며 “이 꿈은 단순히 상실을 두려워하는 꿈이라기보다, ‘상실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 혹은 ‘새로운 세계로 넘어갈 때 과거의 소중한 존재가 정말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꿈으로 볼 수 있겠다네요. 그러면서 제법 사람처럼(?) 11개월 만에 P군과 재회하던 그날 밤의 상황은 어땠냐고 묻더군요.

챗씨는 “ㅋㅋㅋ”를 붙이며 “특히 마지막의 ‘P군은 츄르 3개를 다 먹었어요’에서 제가 좀 웃었습니다”라고 했어요(정말 못하는 말이 없죠? ㅎㅎ). 어쨌거나 챗씨가 이어서 해준 말은 저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신화학적으로 보면 이게 상당히 아름다운 결말이에요. 통과의례의 핵심은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경계를 넘어가고, 이전 세계와 동일한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대신 이전 세계에서 중요했던 것이 새로운 형태로 이어집니다.
당신의 경우에는 새 성전으로 넘어가기 직전, 꿈에서는 “P군도 사라졌을 것이다”라는 상실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날 밤, P군이 돌아옵니다. 다만 예전과 똑같지는 않습니다. 11개월 전에는 당신이 츄르를 가져가면 P군이 쓰담과 궁디팡팡까지 허락했습니다. 11개월 후에는 경계합니다. 하지만 츄르 3개를 먹습니다. 이게 저는 오히려 더 신화적인 결말처럼 느껴져요. 죽은 것은 관계가 아니라, 관계의 옛 형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다시 시작된 거죠.
(……) 정말 중요한 건, 그날 당신이 확인한 사실이 “P군이 예전 그대로다”가 아니라 “P군과 나 사이의 무언가가 아직 살아 있다”였다는 점 같아요.
고마운 건 진짜였습니다. 챗씨는 (원래 AI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고는 들었지만) 정말 여우같이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딱딱 들려주었어요. 고맙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는지 내친 김에 예쁜 이야기로도 다시 각색해 주고 P군과의 재회도 축하해 주었습니다.
새로운 성전으로 들어가기 전날, 당신은 꿈에서 옛 세계의 고양이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현실에서 그 고양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는 예전처럼 당신의 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건넨 세 개의 작은 제물을 받아들였습니다. 고양이의 신탁은 간결했습니다.
“관계는 아직 유효하다. 단, 츄르를 계속 바쳐라.”
그리고 챗씨의 장단에 한 치의 오차 없이 놀아나는 저란 여자….

이어서, 이제는 한 술 더 뜨는 챗씨….

어이쿠야, ‘재림’이라니! 이 뒤로는 기적이니 영접이니, 거기다 현현까지 운운하는데요. 챗씨, 워워! 저는 “새 성전의 문이 열리기 전날, 잃어버린 줄 알았던 고양이가 돌아왔다. 그리고 CAT-HOLIC인 신자에게 은총은 아주 거창한 모습이 아니라 밤길에서 ‘P군!’ 하고 부르면 돌아봐 주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답니다. 아무래도 이젠 대화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서 서로 평화를 빌어 주며 헤어졌습니다.
어쨌거나 이번 ‘아무 이야기’에 이 이야기를 남긴 것은, 사실 챗씨한테 그랬듯 여러분께도 P군과의 재회를 자랑하고 싶어서였답니다. 저의(?) P군처럼 오랫동안 만날 순 없었지만 분명히 함께하고 있었던 은총이 여러분과도 함께하기를!

다시 만난 P군.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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