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n년 만에 어린이 미사 다녀온 썰 푼다 ㅋㅋ
(아이고, 경박하여라!)
어느덧 2년 반 넘게 천주교 신자로(도) 살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작년부터는 봉사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네, 저는 어디서든 그냥 제가 가만히 있는 게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작년 을사년 관인상생의 기운을 타게 된 것인지…, 아무튼 그렇게 되었습니다, 흠흠. 그리하여 제가 속한 곳은 제대회(祭臺會)라는 곳으로, 제대 봉사를 담당하는 곳인데요. 제대(Altar)란 “제단의 중심”이며 “최후의 만찬을 재현하는 거룩한 미사를 거행하는 자리”(안드레아 자크만, 『전례에 초대합니다』, 가톨릭출판사, 2023)로 제대 봉사는 아주 뭉뚱그려 말하자면 미사를 준비하고 미사 후에는 뒷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일반 신자들보다 빨리 성당에 가서 늦게 성당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 힘들다면 힘든 점이기도 한데, 저는 이 점이 좀 묘하게 좋습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서도.

명동성당의 제단과 제대. 사제들이 올라 있는 빨간 카펫이 깔린 부분이 제단, 대주교님(마이크 앞에 서 계신 분) 앞의 촛대와 경본 등이 놓여 있는 테이블(이라고 하기엔 좀 불경스러운 듯합니다만, 이해를 돕기 위해… 흠흠)이 제대입니다.
아무튼 저희 성당에서는 매일 최소 1대 이상의 미사가 봉헌되고, 미사 1대당 1명의 봉사자가 배정이 됩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평일 미사, 토요일 저녁 미사, 주일 교중미사, 주일 저녁 미사의 당번을 두루 거쳤는데 새벽 미사(는 감사하게도 전담하시는 분이 계십니다ㅜㅜ)와 어린이 미사는 제대 당번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없는 제 상황을 제대회장님이 고려해 주신 게 아닌가 짐작은 해보지만, 저도 굳이 어린이 미사 당번을 자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린이는 곧 초등학생이고, 전 초등학생이 무섭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하긴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그런 아이들은 대개 미취학 아동이고, 학령기 이후로도 좋아하고, 잘 지내는 친구들은 소수입니다. 그런데 생판 모를 ‘초딩’들이 우글거릴 어린이 미사라니…. 아이고, 제발 앞으로도 계속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주십시오”(마태 26, 39).
그렇지만 저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당번까지는 아니었지만 사정이 생겨 그날 봉사를 하지 못하게 되신 자매님을 제가 대신하게 되었거든요. 제가 마지막으로 어린이 미사를 갔던 것이 열두 살이었는지, 열세 살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무튼 3n년 만에 어린이 미사를 가게 된 것이지요. 하하하하하….
미사 준비 자체는 크게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만, 원래 당번이었던 자매님이 미리 귀띔을 해준 것이 있었습니다. 어린이 미사에서는 기도를 율동으로 하기도 하는데 저는 굳이 율동을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본인은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하셨다고ㅋㅋ). 율동이라니?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전 어린이 미사 때 율동을 했던 기억이 없는데 말이죠. 사실 전 어린이 시절 시장 뚱땡이 아줌마 떡볶이를 사 먹으러 가기 위한 교두보로 어린이 미사를 이용했었는데(흠흠), 아무리 떡볶이가 걸려 있었어도 율동을 해야 했다면 전 미사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어른이 되니 좋네요. 율동도 안 해도 되고(ㅎㅎ).
자,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엄/근/진 캐릭터시지만 연예인(이라고 범위를 아주 넓게 잡겠습니다)을 닮으셔서 미사 때마다 저를 웃참(웃음 참기) 챌린지에 들게 하시는 신부님께서는 어린이 미사라 그런지 한결 더 친근한 어투로 강론을 하시는데 그런 모습에 그 연예인과의 싱크율이 더 높아져서 이날의 웃참 챌린지는 난이도가 쑥 올라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율동이 있었습니다. 율동을 할 때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어린이 친구가 제단 앞으로 나와 절도 있는 동작으로 율동 시범을 하고 들어가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또 웃참. 그리고 율동을 따라하고 있었을 제대 봉사 자매님을 생각하면서 또 웃참. 어쩌다 한 번씩 눈에 띄는 유치부 어린이들을 보면서는 저절로 벌어지는 입 때문에 침까지 흘릴까 봐 더 조심해야 했습니다. 특히 쪼매난 손으로 성가책을 뒤지며 성가 번호를 찾고 있던, 거의 최연소로 보이는 유치부 친구는 제 가방에 있던 골드파인애플맛 마이쮸(신상)를 몽땅 갖다 바치고 싶을 만큼 깜찍했습니다.
곳곳에 가득한 웃음 지뢰와 더불어 성전 안엔 아이들의 양기가 넘쳐났습니다. 저도 소싯적에는 미사 중에 찡찡대다 아빠한테 끌려나간 과거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제 발로 미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린이임에도 굉장히 진중한 자세로 미사에 임했다고 자부해 왔는데(기억 왜곡이겠지요;; 미화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 시절 어린이들은 최소 미사 시간만큼은 어느 정도 묶여(?) 있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어린이 미사에서 본 어린이들에게서는 저희 세대와 다른 자유분방함이 느껴졌다고 할까요(배회(?)하는 아이도 보았어요. 화… 화장실 가고 싶어서였겠죠?). 이건 분명 아이도 키우지 않는 데다 꼰대까지 된 저의 느낌일 것이긴 할 것입니다. 그래도 주체할 수 없는 양기를 자의로든 타의로든 어쨌거나 잘 달래 가며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인상적이고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혹시 어린이 미사 당번이라는 잔이 제게 돌아온다면 피하지 않겠다는 마음도 먹어 보았습니다(그래도 물론 자원을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흠흠).
어쨌건, 웃참에 지치고 양기에 끌려 혼이 쏙 빠지려는 가운데에서도 미사의 은총은 저를 비켜 가지 않았습니다만 여기에 그 얘기를 풀기엔 너무 홀리해지므로 여기서 이만. 어쨌거나 3n년 만에 어린이 미사 참례를 했다, 멘탈이 탈탈 털렸다, 그래도 어린이(미사)에 마음이 조금은 열렸다, 집에 와 생각해 보니 뒷정리 중 두어 개를 빼먹었다(하아, 이불킥)…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역시나, 하느님 감사합니다.(끗!)
'아무개의 아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무개의 아무 이야기] 첫번째 요코 씨 (0) | 2026.05.18 |
|---|---|
| [아무개의 아무 이야기] 좀 망가지면 어때요? 뜨개도, 인생도 (0) | 2026.04.17 |
| [아무개의 아무 이야기] 복이 되는 습관, 복습 (0) | 2026.03.20 |
| [아무개의 아무 이야기] 언제나 다시, 다윗 (0) | 2026.02.23 |
| [아무개의 아무 이야기] 북드라망 블로그의 ‘옥에 티’가 되겠습니다! (0) | 2026.0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