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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의 아무 이야기

[아무개의 아무이야기] 절하고 싶어, 성당에 갑니다

by 북드라망 2026. 8. 18.

절하고 싶어, 성당에 갑니다


(아주) 오랜만에 성당에 다시 나가게 된 다음, 제일 먼저 저를 놀라게 한 건 바뀐 기도문이었습니다. 어렸을 땐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였던 것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로 바뀌어 있었고,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가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로 바뀌어 있었지요. 이 밖에도 여러 가지가 바뀌었을 테지만 제가 ‘앗! 바뀌었구나!’ 하고 단박에 알아차린 것은 요 정도가 되겠습니다.

그다음, 저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저’였습니다. 천주교 미사는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신자들의 널브러짐을 미연에 방지하는데(아닙니다, 아닙니다! 농담이어요!), 그뿐이 아닙니다. 중간 중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해야 할 경우도 있지요. <사도신경>을 욀 때도 “깊은 절”을 해야 하고, 신부님께서 성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들어올려 보이신 후에도 신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합니다. 또 봉헌을 하거나 성체를 모시기 위해 제대 앞에 서게 될 때에도, 미사가 끝난 후 신부님께서 마침 강복을 주실 때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이 ‘고개 숙이기’가 안 되더라구요. 사회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인사성은 과히 어둡지 않은 저이건만, 어쩐 일인지 고개가 잘 숙여지지가 않았습니다. 모두가 절을 할 때 고개를 빳빳이 들고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강심장은 아니라 눈치껏 고개를 숙이긴 숙입니다만 제가 느끼기에도 그것은 숙인다기보다는 고개를 ‘까딱’ 하는 정도라고 할까요?  

그런데 이런 제가 ‘하필’ 제대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대는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제대 앞을 지날 때에는 제대를 향해 절을 하는 것이 성당 안에서의 예절입니다. 미사를 준비하고, 미사 후 뒷정리를 하느라 하루에도 (많이 과장해서) “일곱 번씩 일흔 번” 정도는 너끈히 제대 앞을 왔다갔다하게 되는 제대 봉사자는 당연히 그만큼씩 제대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저에게 지난 1년의 제대 봉사는 고개 숙이기를 연습하기 위한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비신자인 친구와 함께 미사 참례를 했습니다. 제대 당번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잠깐 잠깐 제대 앞을 들락날락하게 하게 되었는데, 미사가 끝난 후 집에 가면서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언니, 다른 분들은 앞에서 되게 공손하고 다소곳하게 인사를 하는데 언니는 열두 살 남자애처럼 인사를 해.”(대략 껄렁거린다는 얘기. 허허허…) 흑,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절하고 또 절하면서, 제대로 고개 숙이지 못하는 제 병이 저절로 나을 수 있도록.



한승원

절하고 싶어
절에 갑니다.
절하고 또 절하면 저절로 내 병 낫습니다.
땀 뻘뻘 흘리며
절하는 한 순간 한 순간의
절은 영원을 짜는 피륙
절하고 싶어
절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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