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요코 씨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에 저랑 성과 이름이 똑같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키가 작은 저는 작은 아무개, 큰 그 친구는 큰 아무개로 불렸습니다. 그리고 성은 다르지만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가 다른 반 두 명이 더 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흔한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칸초에도 없는 이름인데 말이죠ㅜㅜ), 사실 별일도 아니었지만 어릴 때라 꽤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에 와서 더 신기한 건 출판사에 다니면서 여러 필자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동명이인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름만 같은 분들도요. 그리고 얼핏 떠올려 봐도 동명이인의 책을 읽어 본 적도 없는 것 같아요…라고 쓰려고 했는데, 가만 보니 동명이인까지는 아니지만 이름이 같은 분들의 책을 본 적이 있긴 있네요. 사노 요코(佐野洋子), 오가와 요코(小川洋子), 무레 요코(群ようこ). 무레 요코는 본명이 아니라 필명이라고는 하지만 아무튼 ‘요코’입니다(ㅎㅎ). 오늘은 저의 ‘요코’ 씨들 중 사노 요코를 소개합니다.
『사는 게 뭐라고』였는지 『죽는 게 뭐라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제가 사노 요코 에세이를 처음 읽은 건 시큰아버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이었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했습니다. 저는 정말 모르고 봤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오는 길이니만큼 사는 게 뭔가, 죽는 게 뭔가 하는 그런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어서 저 책을 골랐을 뿐이었습니다. 진짜로 딱 그럴 때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제목이잖아요. 아니 그런데, 이 할머니가 너무 웃긴 거예요. 당시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확히 어느 대목이 웃겼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맘껏 웃을 수도 없고, 그치만 안 볼 수도 없고…. 아무튼 참… 진퇴양난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까요?
이번에 눈에 들어온 부분은 요코 할머니가 한국 드라마에 빠지기 시작한 장면입니다. 사실 전에는 이분의 드라마 취향이 저랑 안 맞기도 했고, 너무 뻔한 드라마이기도 해서 그냥저냥 넘겼었는데요, 무슨 인연인지 이번엔 눈에 확 들어오더라구요. 때는 요코 할머니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문병 러시가 이어지던 어느 날, “서른여섯 살 먹은” 아들의 친구가 “배낭을 짊어지고” 할머니를 찾아옵니다. 그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겨울연가> 비디오(여러분, DVD가 아닙니다!) 전편.
이것이 바로 소문의 <겨울연가>인가. (중략) 나는 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 다음 편, 그 다음 편을 나도 모르게 계속 보았다.
오후 1시부터 밥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보았다.
몇 번이나 엉엉 울었다. TV 드라마 <남자는 괴로워>를 보면서도 울었지만 그때는 이런 심정이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 세상도 저 세상도 아닌 전혀 다른 차원에서 내 혼은 정처 없이 누군가가 심장을 옥죄는 듯이 울었다. (중략)
마지막 회가 끝나자 나는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행복에 멍하니 빠져들었다. 동이 터 창밖으로 보이는 좁은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물들었다. 새벽 6시였다.(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20부작 드라마를 오후 1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쉼 없이 정주행하신 이 할머니(밥은 고사하고 화장실이나 제대로 다녀오시긴 한 건지;;). 역시나 ‘욘사마’로부터 사랑은 시작됩니다.
욘사마가 가지런한 치열을 드러내고 웃을 때면, 나는 아아, 저 얼굴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그리하여 욘사마를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은 요코 할머니.
난생처음 DVD를 소유했다. 비디오와 DVD는 빌려보는 거라고 여겨왔지만, 집에 항상 욘사마가 있다는 안도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암만요. 하지만 할머니의 남성 편력(?)은 이제 시작입니다. 며칠 후 찾아온 지인은 <가을동화> DVD를 놓고 갑니다.
내 마음은 남주인공의 연적인 갑부 원빈에게로 옮겨 갔다. 깜짝 놀랄 정도로 반듯하게 생긴 미남이다. 원빈은 남자다. 욘사마에게 빠졌을 때 느낀 불안감도 없다.(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그다음엔 나라에 사는 막냇동생이 욘사마가 냉혹한 인수 합병 전문가를 연기하는 <호텔리어> DVD를 들고 찾아옵니다.
내 마음은 또다시 갈대처럼 흔들렸다.(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그렇게 다시 욘사마에게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이번엔 총지배인이 마음에 들었다”. 네…,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나는 비틀거리며 비디오 대여점에 들어가서 망설임 없이 김승우의 <신귀공자>라는, 제목도 수상쩍은 DVD 전편을 샀다.(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급기야 “나는 한국 드라마에 재산을 탕진했다”고 엄살을 떠는 요코 할머니. 암 진단받으시고 곧장 재규어 매장 가서 차 뽑으셨었잖아요. 오래 살까 두려워 악착같이 모아놓으셨던 돈으로요. 아, 하긴 차를 사는 바람에 DVD를 사면서는 손을 떠셨을 수도 있겠네요.
아시다시피 곰샘도 드라마를 참 좋아하시는데요. 곰샘에게 드라마는 인정물태의 여러 케이스들을 수집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자료집 같은 것이지요. 요코 할머니도 배운 분이라 한국 드라마의 스토리가 ‘엉망진창’이라는 것쯤은 바로 눈치챕니다. 등장인물들의 성격적 결함도, 뻔한 설정도 다 파악하고 있지만 어찌 되었건 한국 드라마는 요코 할머니에게 ‘행복’입니다(이 점이 곰샘과 요코 할머니가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입니다ㅋㅋ).
지금의 나를, 예순여섯의 나를 이렇게나 행복하게 만드는 한국 드라마는 대체 무엇인가. 한국 드라마를 모른 채, 이 행복을 모른 채 죽었다면 나의 일생은, 아아, 그건 아마도 손해 본 일생이었으리라. 진심으로 고맙다. (중략)
한국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어딘가 다르다. 이 행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스토리도 대부분 억지로 짜 맞춰서 개연성이 없다.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데도 행복하다. 엄청나게 행복하다. 잘난 사람들은 모두 이 현상을 분석하려 들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좋아하는 데 이유 따위 없다. 그저 좋은 것이다.(사노 요코, 『사는 게 뭐라고』)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재산과 체력(이분 드라마 보다가 턱도 돌아가셨어요, 흠흠)을 마음껏 탕진하고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삶. 저는 이번 『사는 게 뭐라고』에서는 이런 걸 봤나 봅니다(이번 병오년 불 기운에 제 식상이 너무 쪼그라드는 바람에 이런 식상 기운을 찾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ㅎㅎ). 안녕, 요코 할머니. 다음엔 또 다른 걸 보여 주실 테지요. 다음에 꼭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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