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들
강가에나무(마산토박이)
친구 어머니가 입학 선물로 주신 과일나라 로션을 꼼꼼히 바르고, 어디선가 물려받은 교복을 말끔히 다려입었다. 시간 절약을 위해 기찻길로 걸어가기로 했다. 양 선로를 잇는 오래된 침목에 구두가 닿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지 않을 만큼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경쾌하게 들려왔다. 아버지가 구두약으로 닦아주신 덕분으로 새 구두의 둥근 앞코에 은은한 광이 났다. 그 모습이 흐뭇해 기찻길을 걷는 내내 시선은 온통 구두 앞코를 향해 있었다. 기찻길에서 내려와 고려시대 원나라 군사들이 팠다는 우물 몽고정을 뒤로 하고, 오르막길을 올라 학교로 왔다. 고등학교 입학식이 있던 날이다.
보통 인연은 아니었는지 나를 성당으로 인도해 준 뒷집 친구와 같은 학교에 입학해 한 반이 되었다. 그 새 친구는 키가 제법 자랐고, 아버지를 닮아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어디서도 눈에 띄는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키도 생김새도 지극히 평범한 데다, 말수가 없고 목소리까지 작은 평면적인 아이였다. 외모도 그랬지만 성격까지 서글했던 친구는 넘치는 개성과 유머로 교실 분위기를 주도하던 아이들과 이내 친해졌고, 덩달아 나도 어울리게 되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계기가 있지 않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으므로 마음이 되려 헛헛할 때가 많았다. 나로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2학년에 올라와 친구와 다른 반이 되면서, 조금씩 내 세계가 생겨났다. 누구의 친구가 아닌 그저 ‘나’로서 관계 맺게 된 것이다. 일정한 주기로 짝지를 바꾸거나, 앞뒤로 앉게 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마음 맞는 친구들도 여럿 생겼다.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좋은 계기가 되어 주었다. 장필순의 새 음반 테이프를 샀다가, 그 음악과 어울릴 것 같은 친구에게 편지와 함께 말없이 건네기도 했다. 친구들과 나누는 속 깊은 대화는 언제나 따뜻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학교 가는 일을 누구보다 좋아하게 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을 테지만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열여덟의 나로 있을 수 있단 사실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가족에 대한 걱정과 염려들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지라도, 학교에서는 그저 평범한 여고생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시험기간에 가까운 야간 자율 학습시간의 무거움은 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때마다 태연하게 소설책을 펴놓고 그것을 유일한 숨구멍으로 삼았다. <새의 선물> 속 장군이 엄마는 왜 버스에 오르지 않았던 걸까? 아이를 업고 짐가방을 든 채 버스가 남기고 간 모래 먼지 속에 우두커니 서 있던 장군이 엄마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치 나도 그 먼지 속에 서 있는 것처럼 아직 사춘기가 끝나지 않은 열여덟의 마음은 몽롱하고 아득하기만 했다.
그렇게 고3이 되고, 고苦 3이 될 거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어려서부터 교사를 꿈꾸었으니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게다가 고3, 더 이상 도망칠 곳 없이 공부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런데 그 길에서 만난 친구들과 평생을 가져 갈 우정을 나누게 되었으니 고苦 3이 아니라 높이(高), 생각하며(考), 깨우쳐 가는(告) 3고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급훈 정하는 일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마침내 ‘담임이 보고 있다’의 추격을 따돌린 ‘준비된 서울 시민’이 액자에 담겨 칠판 위에 걸렸다. 성적과 무관하게 우리는 모두 한번쯤 ‘in 서울’을 꿈꾸지 않았던가?
우리 반은 고3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선생님을 위한 이벤트에 특화된 반이었다. 선생님께 대한 신뢰가 두텁기도 했고, 선생님 댁이 학교 바로 뒤에 있었다는 것도 크게 한몫했다. 스승의 날 밤엔 선생님 댁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주차장으로 우르르 몰려가 하트모양으로 서서 다 같이 촛불을 들고, 스승의 날 노래를 불러드렸다. 사설 기관에서 실시하는 논술 모의고사를 앞둔 어느 날, 신청자 수가 극히 적었던 우리 반 응시인원이 갑작스레 늘어나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선생님의 추궁이 시작되었다. 응시료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3학년 부장 선생님의 강력한 권고가 있었던 걸 알게 되신 선생님은 곧장 부장 선생님을 찾아가 크게 화를 내셨다. 당시 응시인원에 따라 주어지는 얼마간의 수수료 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는 또 머리를 맞대었다. 마침 연극반 출신 친구가 있어 야간자율학습 중 쓰러지는 연기를 했고, 그때 화들짝 놀라 교실로 달려오신 선생님이 친구를 등에 업으시려던 찰나, 우리는 노래를 불러드렸다. 또 한번은 선생님과 사이가 좋지 않으신 다른 반 선생님으로부터 떠들었다고 혼쭐이 난 적이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열받으신 선생님은 보란 듯이 우리 모두를 전교생이 지나다니는 명상실(지금의 성요셉성당) 앞으로 집합시켜 엎드려뻗쳐를 시키셨다. 우리는 내 자식 내가 혼내는 건 괜찮지만, 남한테 야단 들은 것이 몹시 속상하셨던 선생님의 마음을 읽었다. 그러니 또? 작전 모의가 시작되었다. 우리 반에서 가장 몸이 약한 친구가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코피가 났는데, 좀처럼 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구실로 퇴근하셨던 선생님께 급히 연락드렸다. 선생님은 한달음에 교실로 달려오셨고, 우리는 또 깜짝파티를 열어, 벌을 주시고 미안해하시던 선생님의 마음을 어루만져 드렸다. 서울대에 이벤트학과가 있었더라면 우리 반은 전원 합격의 영광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공부에 지치고 경쟁하느라 서로 예민해지기 쉬운 때, 도리어 머리를 맞대고 누군가의 기쁨을 궁리한 찬란했던 그 시간은 두고두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때로 우정은 교실을 넘어서기도 했다. 3학년만 쓰던 건물 3층엔 제법 너른 음악실이 있어 우리 9반과 옆 10반 두 개의 교실만 있었다. 두 반만 한 층을 같이 쓰다 보니 마주치는 일도 잦았고, 서로 이름과 얼굴이 낯익게 되었다. 고3이니 일요일에도 자습하러 나왔다가 옆 반 친구와 마주쳤는데 무언가에 이끌린 듯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자연스럽게 깊은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어떤 친구와는 각자 아버지의 주사(酒邪)로 인한 고충을 나누다가 가까워졌다. 너도? 나도!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너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구나 싶으니, 내 삶의 무게가 조금 견딜만한 것 같았다. 왜 우리 아버지들은 그렇게 술로만 풀어낼 수밖에 없었던 사무치는 한들을 지니셔야 했을까? 그 고된 시간을 견디고 있는 친구의 아픈 마음을 꼭 껴안아 주고 싶었다. 그럼에도 네가 그렇게 밝다는 사실이, 나도 조금은 더 환해져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한 아픔과 힘듦이 있고, 그럼에도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싶으니, 길가는 누구라도 손을 잡고 토닥이고 싶어졌다.
어떤 대학을 가느냐 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가 더 중요했던 시간이었다. 공부만이 인생의 전부인 걸까,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진정한 내가 될 수 있을까. 질문하고 고민하며 함께 그 답을 찾아 나갔다. 때로는 임간 교실에 벤치에 누워 말없이 친구와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마침 류시화가 펴낸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 남긴 충격과 여운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우리는 대학생이 되면 다 같이 머리를 밀고 인도로 떠나자는 당찬 결의를 맺기도 했다. 거기서 더 큰 인생의 의미와 참다운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인생의 답을 찾아 이 세상에 온 지구별 여행자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인도로 떠나지 못했다. 서울과 제주, 또 창원과 마산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세월을 살아가게 되었다. 깊은 호흡과 명상을 찾아 너무 낯선 길로 가버린 친구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가정을 꾸려가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여전히 세상이 말하는 기준과 잣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끊임없이 자신의 선택과 삶의 방향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며 살아간다. 가끔 그 질문과 고민을 들을 적마다, 그것을 고민한다는 사실 자체가 고맙고 귀해서 친구들의 손을 꼭 잡게 된다. 알아 온 시간만큼 서로의 삶에 대한 앎과 이해가 깊어지니, 그 세월을 어찌 살아왔는지, 혼자 어떻게 견뎌왔는지 대견하고 고마워 또 다시 다독거리게 된다. 지구별에서 만난 이 여행자들의 고민과 방황은 죽는 날까지 계속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대들 덕분에 이 지구별이 그리고 내 삶이 더 환하고 따뜻해졌다는 고마움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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