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닮은 마산
강가에나무(마산토박이)
마산에서 보내는 편지지만 이 지명이 사라진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하나의 생활권이었던 마산, 창원, 진해가 2010년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라는 명칭으로만 그 흔적이 남게 된 것이다. 계획도시 창원이 너른 분지에 상업지구와 주택지구가 잘 구획되어 있고, 도심을 연결하는 체계적인 도로망으로 정돈된 느낌을 준다면, 해군기지가 있는 진해는 군항도시답게 비교적 낮은 건물들이 안정감을 준다. 이 두 곳에 비하면 마산은 다소 정신없이 어수선하다. 간혹 창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마산으로 오게 되면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899년 개항 이후 일찍부터 발전해 온 마산은 기존의 지형을 유지하면서 해안선을 따라 불규칙하게 도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다를 등지고 서면 완만한 시가지가 잠시 이어지다가, 곧이어 구릉지가 나타나고 그 뒤로 무학산이 자리하니, 그곳을 연결하기 위한 도로와 골목길들이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이 좁고 굽은 길들에 익숙해진 나는 가끔 창원에 가게 되면 그 깔끔함에 감탄하면서도, 묘한 정서적 이질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산동네, 오르막길 이야기만 하다 보니 내륙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마산은 바다를 품고 있는 항구도시다. 뒤로는 무학산이, 바다 건너편으로는 다시 산들이 펼쳐지는데 –그 산 너머가 창원과 진해다- 무학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야말로 호수 같다. 태풍 예보가 있는 때면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으로 들어앉은 이 바다로, 먼바다에서 바람을 피해 찾아든 배들이 잠시 머무르다 가기도 한다.


이 바다 한가운데에는 ‘돝섬’이라는 자그마한 섬이 있다. 오래전 그곳은 동물원과 놀이기구가 있고, 서커스 공연이 펼쳐지는 유원지로 운영되었다. 유람선 터미널에서 1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이 작은 섬은 마땅한 놀이시설이 없던 시절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소풍 장소였다. 더 오래전에는 그곳까지 수영을 해서 갔다는 이야기를 집안 어르신들은 종종 들려주셨다. 지금은 서커스 공연과 놀이기구가 사라지고 이따금 공작새가 무심한 날갯짓을 보여줄 뿐이지만, 자그마한 섬을 조용히 산책하며 바다 건너 사람들의 마을과 무학산을 바라보는 호젓함도 나쁘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해양신도시’라는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마산항 노후화로 인근의 가포신항을 개발하면서, 거기서 나온 준설토로 마산만에 인공섬을 만든 것이다. 어마어마한 양의 예산이 투입되었으나, 아직도 그 용도를 아직 찾지 못한 상황도 답답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바다가 매워지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아파트 단지 역시 매립지이긴 마찬가지였지만, 바다에 인공섬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미 2004년에 있은 태풍 매미로 바다가 있던 자리에는 어김없이 물이 찾아든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경험한 우리로서는 안전 문제도 그러하고, 낯설게 들어앉은 그 섬이 내내 불편하기만 하다. 큰 바다에서 마산만으로 들어오는 초입에는 마창대교가 건설되어, 더 이상 마산 시내를 통하지 않고서도 마산 서쪽 끝에서 창원과 진해로 한결 빠르게 갈 수 있게 되었다.

돝섬유람선 터미널 오른편으로는 이른 새벽 수산물 경매가 이루어지는 공판장이 있고, 그 옆쪽을 가고파 수산시장이 있다. 경매 직후 도매인들이 궤짝으로 생선과 수산물들을 파는 이곳은 이른 새벽부터 시장을 찾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기서 큰 도로를 하나 건너면 비로소 경남 최대 규모라는 마산 어시장이 나오는데 인근 지역에서 수산물을 사기 위해 여기까지 오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옮겨졌으나 오래전 어시장 옆에는 청과시장도 자리하고 있어, 이곳을 찾는 것만으로도 계절을 가늠할 수 있었다.
여기서 다시 도로 하나를 지나면 창동과 부림시장이 나온다. 인근 군 단위에 속한 면들이 마산으로 흡수되기 전, 도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차로 20분이면 넉넉히 갈 수 있던 시절, 시내 한가운데에 자리한 창동은 굉장한 번화가였다. 전국 곳곳에서 어린 여공들과 노동자들이 한일합섬과 수출자유지역으로 몰려들던 때 이곳은 서울의 명동처럼 사람에 떠밀려 다니기도 했단다. 자유수출지역이 쇠퇴하고, 인구가 줄어들면서 이젠 구도심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지만, 명절이면 고향을 찾은 이들의 발길로 잠시 북적이곤 한다. 창동에서 다시 위쪽으로 가면 마을 하나를 지나 꼬부랑 벽화마을이, 그 마을을 넘어가면 산복도로가 나오고, 이어 무학산이 시내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디서든 한눈에 들어오던 무학산의 완만한 능선들이 건물들에 가려지고, 남쪽으로 고개 돌리면 보이던 바다 대신 해안선을 따라 우후죽순 들어선 아파트의 뒷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고 오를 수 있고,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바다가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감사하다. 시야에서 가려졌을 분, 산과 바다는 늘 거기에 있으므로. 마산이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이곳이 사람 사는 모습과 닮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삶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만 흘러갈까. 어찌 사방으로 쭉쭉 뻗은 넓고 환한 길로만 갈 수 있을까. 살다 보니 그리되고 어쩌다 보니 그 길로 가게 된 것을. 때로는 오르막길을 때로는 내리막을 내달리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산에서, 마산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감사하다.
'마산에서 온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마산에서 온 편지]그 마을의 옛집 (1) | 2026.03.09 |
|---|---|
| [마산에서 온 편지] 그 마을의 이야기들 (0) | 2026.02.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