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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에서 온 편지

[마산에서 온 편지] 씨앗이 뿌려지던 날들 2

by 북드라망 2026. 6. 8.

씨앗이 뿌려지던 날들  2

강가에나무(마산토박이)


친구네 4남매에겐 한 가지 비밀스러운 것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만 되면 다 같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다. 궁금했다. 어딜 그렇게? 그것도 다 같이! 게다가 매주! 가는 것일까? 하루는 그네들을 따라가 보았다. 오르막길을 내려와 기찻길을 지나 부림지하상가를 건너 부림시장을 지났다. 한복집들과 여성복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6.25 떡볶이와 토스트를 파는 리어카들 사이로 다시 한참을 내려오니, 시장의 남쪽 끝이자 어시장이 시작되는 큰길을 앞두고 우뚝 솟은 종탑 건물이 보였다. 성당이었다. 친구네 형제들은 매주 토요일, 그곳에 갔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토요일마다 친구네를 따라 성당에 가기 시작했다. 여덟 살이던 해였다. 친구가 가지 않는 날에도 가고, 몇 해 뒤 친구네가 이사 가면서 성당을 옮긴 뒤로도 빠짐없이 갔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는 아이였다. 무엇에 반하거나 특별한 체험이 있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평일 아침이면 학교에 가는 몸에 밴 습관처럼 어린이 미사가 있는 토요일 오후면 성당엘 갔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어린것에게도 마음 기댈 곳이 필요하리라 여기셨는지 성당 다니는 일을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다. 

여럿이 어울려 가던 길을 혼자 가게 되었지만 10여 분이면 가는 길에 시장이 있고 구경거리가 많아서였는지 무섭거나 외롭지 않았다. 시장 한쪽으로는 한복집들이 이웃해 있었고, 반대편 여성복 코너에는 차분해 보이는 긴 원피스들이 가게들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나는 그 단정한 원피스들을 볼 때마다 <천사들의 합창>에 나오는 히메나 선생님을 생각했다. 가난한 흑인이라는 이유로 짝사랑하던 부잣집 딸 마리아 호아키나에게 상처받고 곧잘 울던 치릴로를 따뜻한 눈빛으로 위로해 주시던 히메나 선생님! ‘맞아, 선생님도 저렇게 긴 원피스를 입고 계셨지. 나도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 고운 원피스를 입고 히메나 선생님처럼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로해 줄 거야.’ 시장을 오가며 그 원피스들을 볼 때마다 다짐하곤 했다.

 

출처 - 창원시


부림시장 한편에는 양배추를 썰어 토스트 가게에 대어주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우리 할머니 계원이셨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 할머니는 부림시장에서 할아버지가 만든 반지와 도매상에서 떼어 온 브로치들을 좌판에 펼치고 장사를 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이웃해 장사하신 분들이 오랫동안 계 모임을 이어오고 계셨다. 나는 밤길을 유난히 무서워하신 할머니의 수행비서가 되어 계 모임에 모시고 갔던 터라, 양배추 할머니와도 아는 사이였다. 성당 가는 길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가까이 다가가 인사하고, 할머니가 양배추를 써시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곤 했다. 큰 양배추들이 할머니의 능숙한 칼솜씨로 실처럼 얇고 가늘게 썰려 나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볼 때마다 경외감 같은 것이 일었다. 하루종일 양배추를 썰어야 하는 고단함과 지루함을 마다않고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끈기, 시간과 함께 무르익어가는 숙련된 기술, 그것이 비록 양배추를 써는 일일지라도 할머니는 내게 장인과 다름없었다. 

때로 그 길에서 낯선 광경을 익숙하게 마주하기도 했다. 폐지를 주우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셨다. 넉넉한 살림이 아님에도 우리 할머니는 집에 계시는데, 왜 저 어르신들은 이 번잡한 시장을 가로질러 다니시며 폐지를 모으셔야 할까?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지를 많이 모아야 저분들의 일상이 조금 더 편안해질 텐데, 짊어진 짐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삶이 더 가벼워진다니 … . 세상이 불합리한 일들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우리가 조금 더 잘살게 되면 저분들도 더 이상 땡볕과 추위에 거리를 헤매며 가벼운 종이박스들이 무거워질 때까지 모으지 않으셔도 되는 걸까, 조금이라도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는 날이 올까. 시장을 지나 성당에 도착하면 길 위에서 곰곰해진 생각들을 하느님께 일러바치곤 했다.

그러는 동안 나이가 들어가고, 시장에 깃든 우리 가족들의 사연들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시장에 좌판을 펼치셨던 할머니는 쌍둥이를 낳다 죽은 첫째 딸, 유난히 재주도 많고 인정스러웠다는 큰딸이 남기고 간 갓난아기를 품에 안고 한동안 시장 바닥에서 사이다병에 분유를 타 먹이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셨다고 한다. 시장에서 외증조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던 날, 할머니는 말없이 쪽진머리를 풀고 그 자리에서 북쪽을 향해 큰절을 올리셨단다. 학비가 없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한 아버지가 할머니 장사를 돕다 교복 입은 친구들을 피해 숨어들던 골목길도 그 시장 어딘가였고, 불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우리 세 남매가 까맣게 그을린 거지꼴을 하고서 고모 손을 잡고 새 옷을 사러 간 곳도 그곳이었다. 오랜 시간 지나온 그 길목마다, 미처 알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 서럽고 아픈 시간들이 스며 있었다. 나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그 시간들을 가만히 토닥이고 싶었다.

성당으로 가는 길 시장을 지나는 동안 내 마음에는 그렇게 또 다른 씨앗들이 뿌려지고 있었다. 빛 고운 원피스를 입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철부지 같은 꿈이, 보잘것없는 일들에도 마음과 정성을 기울이겠다는 포부가, 그 누구도 삶의 무게와 힘겨움으로 고통받지 않는 행복한 세상이 오면 좋겠다는 희망이 내 마음에 하나둘 씨앗이 되어 뿌려졌다.

 

2026년 부림시장, 이제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좌) / 늘 지나다니던 시장 안 상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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