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 들을 수 있는 몸이 될 때까지
박장금(하심당)
『숫따니빠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의 저자와 15년 넘게 함께 공부하며 그의 글과 말을 들어왔다. 지금은 그 곁을 떠나 독립한 지 3년째다. 그러니 이 책을 읽는 일은 내게 조금 특별하다. 오래전 읽었던 경전을 다시 읽는 일이면서, 오랫동안 스승으로 들었던 한 사람의 말을 이제는 한 권의 책을 쓴 저자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제야 들리는 말이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유독 ‘길’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나이가 들면 고민이 줄어들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살아갈수록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를 알게 된다. 원하는 대로 통제하려 할수록 괴롭고, 이제 좀 알겠다 싶으면 또 다른 함정이 나타났다. 반대로 막다른 곳에서는 뜻밖의 살길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삶이란 피할 수 없는 사건들을 기꺼이 통과해가는 여정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길은 어딘가 좋은 곳으로 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사건과 관계를 도망치지 않고 통과하는 것, 병도 늙음도 실패도 관계의 어긋남도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만 여기지 않고 그것까지 내 삶으로 받아들이며 통과하는 것. 그래서인지 여든의 붓다가 사문을 말하며 가장 먼저 ‘길을 정복한 자’를 이야기하는 대목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길을 정복한 자’란 세상을 정복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닥친 삶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대의 질문에 대답하리라. 길을 정복한 자, 길을 가르치는 자, 길에서 사는 자, 길을 더럽히는 자, 사문은 이들 네 종류일 뿐, 다섯째는 없다.”(Sn0084) 저자는 말한다. “붓다에 따르면 인생은 길이다. 태어난다는 건 문득 어떤 길 위에 던져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혼돈 위에서 탐색과 모색을 통해 ‘노·병·사의 지도’를 그려 가는 것, 이를 테면 길 위에서 ‘길’ 찾기. 그것이 수행이요 구도 아닌가.”(p.16) 붓다가 말한 ‘길을 정복한 자’와 저자가 이야기하는 ‘길 위에서 길 찾기’는 겹쳐져 읽혔다.

길 위에서 길 찾기, 그것이 무엇일까. 나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는 것이 어쩌면 ‘들을 수 있는 몸’이 되어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오래전 읽었던 불경과 그 시절에는 미처 알아듣지 못했던 스승의 말을, 이제 다른 위치와 경험을 통과한 몸으로 다시 듣는 중이기 때문이다. 참 경이롭다. 오래된 말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듣는 몸은 계속 달라지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 읽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정말 읽은 것이었을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어떤 문장은 읽는 순간 이해된다. 하지만 어떤 문장은 십 년, 이십 년을 몸 안에 머문다. 이해하지 못한 채 몸 어딘가에 들어가 있다가 실패하고, 관계가 깨지고, 누군가를 책임져보고, 떠나도 보고, 다시 시작해본 어느 날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 아, 그 말이 이 말이었구나! 그래서 알게 된다. 살아내야만 계속 다르게 들리고 읽힌다는 것을! 어쩌면 길 위에서 길을 찾기란 정답을 찾아 헤매는 일이 아니라,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길을 정복한 자’도 삶을 마음대로 장악하는 자가 아니라, 삶이 들려주는 것을 새롭게 들을 수 있는 몸이 될 때까지 그 길을 통과하는 자가 아닐까.
『숫따니빠따』는 2,500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했다. 한 인간에게서 시작된 말이 수많은 사람의 입과 귀와 몸을 지나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어느 날 노·병·사를 고민하던 저자가 그 오래된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과 질문을 통과시켜 한 권의 책으로 다시 말을 건넨다. 그렇게 2,500년을 건너온 말과, 그 말을 그때와 다르게 듣게 된 내 몸이 책 앞에서 다시 만난다. 그 말이 새롭게 들리는 지금, 여기까지 삶을 통과해온 시간 그 자체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과거에 이해한 말이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몸이 달라지면 같은 말도 다시 다르게 들린다. 지금 듣는 말 또한 앞으로 또 다르게 들릴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계속 다르게 들으며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길을 정복한 자’가 아닐까.
문득 『서유기』의 손오공이 생각난다. 천상까지 뒤집어엎던 능력 제일의 손오공도 구도의 여정에서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순간을 거듭 만난다. 온갖 소동과 난동을 벌이고 긴 여정을 통과하면서 마침내 자기 힘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한계에 직면한다. 그때 손오공이 찾는 것은 더 강한 무기나 더 큰 권력이 아니라 관세음보살과 석가여래다. 자기 능력의 한계를 안 손오공은 그제야 자신의 힘 바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망망대해에 홀로 서게 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쩌면 바로 그런 때가 오래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붓다의 목소리를 들을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아무리 많은 능력과 정보를 가져도 노·병·사를 피해갈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붓다의 목소리는 저절로 들리지 않는다. 손오공처럼 삶의 좌충우돌을 피하지 않고 통과할 때,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들려올지 모른다. 2,500년을 통과한 생명력 넘치는 그 목소리를 저자가 자신의 삶으로 다시 읽고 지금의 언어로 번역해 건네주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고 말하고 싶다. 삶을 포기하지 말고, 들을 수 있는 몸이 될 때까지 계속 읽어보시라고!

'북드라망 이야기 ▽ > 북드라망의 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간 리뷰] 슬퍼하고 체념하는 대신 질문하라 (0) | 2026.08.31 |
|---|---|
| [신간 리뷰] 쫄아든 마음에 던지는 붓다의 쇼츠: ‘청년성’을 질문하다『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 리뷰 (0) | 2026.08.28 |
| [신간 리뷰] 마음의 구글 맵을 들고 길을 나서다 (0) | 2026.08.27 |
|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 표지 일러스트에 담긴 마음 (0) | 2026.08.26 |
|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 길 잃은 이들을 위한 지도, 고미숙의 붓다 칼럼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가 출간되었습니다!! (0) | 2026.08.24 |
| “우리는 부족해서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 선사에서 발견한, 인간이라는 수수께끼 (0) | 2026.04.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