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고 체념하는 대신 질문하라
이하늘(고전비평공간 규문)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내 친구 S는 2년여 간의 고된 공부 끝에 공무원에 합격했다. 여기서 ‘고되다는 말’은 공부 자체를 말하기도 하지만, 거의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은 채 집에만 틀어박혀 공부에만 전념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거의 고행(?)에 버금가는 수험생활을 할 자신이 없기에 그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언제나 적당히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면서 게임, 탁구, 풋살 등 각종 취미생활을 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연애도, 결혼도, 인생의 큰 목표도 딱히 필요 없이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만 있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 그에게 공무원은 가장 적합한 직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 최근 불면증과 공황장애가 너무 심해져 휴직을 하게 되었다는 것. 들어보니 근무가 끝나고 돌아오면 매일 밤 술을 마시며 게임을 하는 일상을 보냈다고 한다. 그가 원하던 그런 삶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술과 게임 없이는 잠이 오지 않았고, 그 일상을 지속하다 보니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몇 개월 간의 휴식 끝에 그는 복직했다. 그러나 여전히 매일 게임과 술 없이는 잠을 잘 수 없다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공감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그의 ‘소확행적 삶’은 왜 신체적 망가짐으로 끝났던 걸까. 그는 나름 ‘주류적 삶’에 잘 안착한 듯 보였다. 나도 여전히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직업을 가지면, 돈이 많아진다면, 더 안정감 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어릴 적부터 정규코스를 거의 밟지 않은 비주류의 삶을 살아왔고, 공부공동체에서 공부한 지도 꽤나 오래되었건만 주류로 편입되고 싶은 욕망은 좀처럼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20대에는 행복의 기준이 좋은 대학이었다면 30을 목전에 둔 지금은 결혼, 사회적 지위, 재산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자책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커지는데, 어쩌면 친구도 그런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게임과 술로 빠져들었던 것은 아닐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주류적 삶을 향유하고 있는 이들 중에서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소유는 슬픔을 불러오고
고미숙 선생님의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 속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가 오버랩된다. 바로 목동 다니야와 붓다의 대화 장면이다.
때는 인도의 ‘몬순’ 기간. 6월~9월까지 엄청난 비가 쏟아지는 시기다. 무려 2만 7천마리 소를 가지고 있는 대부호이자 목동인 다니야와 유랑하며 설법을 전파하고 있던 붓다가 만나 게송 대결을 벌인다. 대결의 주제는 몬순 기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다. 먼저 다니야는 몬순 기간을 맞이하기 위해 모든 방비를 단단히 했다고 자부한다. 소도 있고, 밥도 있고, 우유도 있고, 집도 있고, 불도 있고, 충실한 아내와 건강한 자식도 있다. 그리고 소를 괴롭히는 병이나 쇠파리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비를 맞이할 만발의 준비가 되었다! 다니야의 모습은 우리 시대의 주류적 삶의 모습, 주류적 삶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겹친다. 사실 우리를 주류적 삶으로 내모는 주된 동기 중 하나는 두려움이 아니던가. 쓸쓸하게 고독사하는 것이 두렵고, 큰 병에 걸리는 것이 두렵고, 길거리에서 살지 않을까 두렵고, 가족을 지키지 못할까 두렵기에 모든 것을 소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던가. 삶에서 마주할 모든 비를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다니야는 그런 점에서 모두가 바라는 삶을 영위하는 자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소유를 통한 안정적 삶은 지독한 분투와 끝없는 열정 위에서만 가능하다. 다니야만큼 가지지 못한 자는 다니야만큼 가지기 위해 분투하고, 다니야 만큼 가진 자는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렇게 분투한다 해도 결국 소유한 것은 무상한 시간 앞에서 산산이 조각난다. 비록 이번에 내리는 비는 버틸지 몰라도 다음 비도 똑같이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소유는 결코 삶의 사이클인 늙음, 죽음, 병듦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렇게 분투해서 도착한 곳은 어디인가? 궁극의 행복이라기보다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시적 쾌락이 아닌가.
우리 세대에게는 다니야가 가진 재산, 가족, 좋은 직업 등의 가치들이 너무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가 끝내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감각적 쾌락, 즉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다! 이런 점에서 사실 스위트 홈을 꿈꾸는 자들과 소확행을 꿈꾸는 자들의 욕망의 사이클은 먹고, 마시고, 구매하고, 기뻐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사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감각적 쾌락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아닐까? 고미숙 선생님의 말마따나 “소유와 쾌락이라는 말뚝(혹은 밧줄)에 ‘단디’ 묶여 버린”(고미숙,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 112p, 북드라망) 것이 아닐까. 이 표현은 뭔가 섬찟함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분투와 허무의 사이클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슬픔의 반복, 곧 윤회다. 윤회는 전생, 후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패턴이 동일하다는 데 있다. (...) 말하자면 어떤 상황에서도 ‘슬픔과 비탄’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매사를 불행으로 해석하는 데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같은 책, 31p)
스승께 길을 묻다
붓다가 비를 맞이하는 방식은 다니야처럼 소유와 소유가 낳는 쾌락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일체가 무상함을 바르게 알고, 모든 것에 대한 애착과 분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를 해체해 분별하고, 분투하고, 탐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리하여 슬픔의 무한 고리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일체를 바르게 아는 것도, 쾌락에 대한 탐착에서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도, 궁극의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도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당대에도 나와 같은 청년들이 있었던 것 같다. 바와리라는 사람의 제자였던 16명의 청년들은 스승의 추천으로 각자의 질문을 품은 채 붓다를 찾아간다. 애초에 스승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평범한 청년들이 아니라 구도의 길 위에 있었던 청년들이라는 증거일 테다. 그들은 붓다를 만나 묻는다. ‘세간의 큰 두려움이 무엇인가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는 누구인가요?’, ‘천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태어나고, 늙고, 죽는다는 인간적 삶의 사이클을 극복할 수 있나요?’ 등등. 붓다는 그들 각자의 상황과 질문에 맞춰 그 자신들이 스스로 자유와 행복에 이를 수 있도록 답한다. 자상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만약 나와 친구가 붓다를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 고미숙 선생님의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는 그런 점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삶에 대한 슬픔과 체념의 반복을 질문으로 유도하는 책이다. 슬픔에 빠져 있다면, 삶을 어디로 이끌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읽으시라!

'북드라망 이야기 ▽ > 북드라망의 책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신간 리뷰] 쫄아든 마음에 던지는 붓다의 쇼츠: ‘청년성’을 질문하다『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 리뷰 (0) | 2026.08.28 |
|---|---|
| [신간 리뷰] 마음의 구글 맵을 들고 길을 나서다 (0) | 2026.08.27 |
|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 표지 일러스트에 담긴 마음 (0) | 2026.08.26 |
|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야 할까?― 길 잃은 이들을 위한 지도, 고미숙의 붓다 칼럼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가 출간되었습니다!! (0) | 2026.08.24 |
| “우리는 부족해서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 선사에서 발견한, 인간이라는 수수께끼 (0) | 2026.04.02 |
| 이번 주말은 선사 유적지 여행 어떠셔요~ (0) | 2026.04.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