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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쫄아든 마음에 던지는 붓다의 쇼츠: ‘청년성’을 질문하다『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 리뷰

by 북드라망 2026. 8. 28.

쫄아든 마음에 던지는 붓다의 쇼츠: ‘청년성’을 질문하다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 리뷰

곽승희(남산강학원 간디스쿨)  


29세 출가, 35세 깨달음. 붓다의 청년 시절 2대 사건을 볼 때마다 잠시 떠올려본다. 저 때 난 뭐하고 있었을까. 20대 후반엔 회사를 다녔고, 30대 중반엔 백수였다. ‘헬조선’의 많은 청년들이 그러듯 여기저기 아팠다. 그래서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불교는 생노병사에 대한 지혜가 무궁무진한 학문'이라는 한 고전평론가의 강연에 끌려서. 그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의 『청년 붓다』를 읽으면서 뭔가 길을 찾은 것 같았지만, 아리송한 부분도 만났다. 바로 붓다의 ‘청년성’! 진리와 구도를 향한 청년의 열정으로 수행 6년 만에 깨달은 후 45년 동안 수많은 사람과 지지고 볶으며 인도 전역에 지혜를 전파한 그 생명력!! ...그런 비슷한 건 나에게 이미 사라진 것 같은데... 그래서 ‘청년성’에 대한 고민은 그냥 접어뒀다. 왜냐면 그런 고민 없이도 초기 불경 속 ‘아하!’하는 순간은 많이 만날 수 있었기에. 그렇게 불교 공부 한 지 3년 째, 고미숙 선생님의 신간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를 읽으며, ‘청년성’에 대한 ‘아하!’를 드디어 만난 것 같다. 더 정확히는 ‘청년성’에 대한 편견으로 ‘늙지 않는 진리’에 접속하면서도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스스로를 알게 됐다. 

 



“붓다의 깨달음에 접속하는 건 우리 안에 있는 청춘, 그 활발한 생명력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말은 이미 이전 작 『청년 붓다』에서도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서야 나에게 와닿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청년성’에 대한 고민을 접어둔 상태로 『숫따니빠따』를 읽어왔지만, 그럼에도 그 생명력을 느껴왔기 때문 아닐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탕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Sn0071)”)를 읽고 에세이를 쓰면서, 마음은 자유 그 자체임을 체험했다. 내가 바뀌지 않는 건 과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현재 내 행동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지 나라는 인간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나를 긍정할 수 있었다. “집에 불이 나면 물로 불을 끄듯이/신념 있고 현명하고 지혜 갖춘 현자는/바람이 솜털을 날려 버리듯/일어난 슬픔을 재빨리 털어낸다(Sn0591)”)에선 10년을 함께 한 반려동물의 죽음을 ‘독화살’ 아닌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이 울었지만)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숫따니빠따』 속 번뇌를 깨뜨리는 사자후에 가슴이 뻥 뚫린 체험들은 엄청난 선물이었다. 이 삶을 잘 살아가겠노라! 용기 낼 수 있었다. 이런 경험들 덕분에 진리와 청춘이 한통속이라는 저자의 말에 순순히 수긍이 간 것 같다. 그리고 무릎을 쳤다.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숫따니빠따』를 통해 청춘의 생명력, 청년성을 회복하면서도 그런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 붓다가 깨달은 진리, 내가 개인의 생명력 회복 차원으로 받아들였다면, 저자는 ’우주 유일의 고전평론가‘답게 현대인의 마음과 정치경제사회 차원의 사건사고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샅샅이 평론한다.

그런데 질문 하나, 어째서 『숫따니빠따』일까? 생노병사의 진리와 청춘의 생명력이 같은 차원일 수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 차원에 접속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왜 하필 이 책일까? 먼저 청년성을 ‘삶을 제대로 꽃 피워내고 싶은 열정’이라고 본다면, ‘삶이 무엇인지’ 말하는 진리는 청년이 끌릴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저자는 『숫따니빠따』에 청년성과 진리의 크로스가 가장 찐하게 담겨 있다고 한다. 붓다가 청년일 때 깨달음을 구하게 된 과정, 생각이 다른 (비인간 및 인간) 존재들과도 거침없이 진리를 토론하는 장면들, 노년이 되어서도 ‘늙지 않은 진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청년일 때 깨달은 진리에 대해서 청년이, 청년성을 잃지 않은 노년의 목소리가 그 책 안에 살아있다. 저자는 그 목소리가 담은 삼라만상의 변화와 생로병사의 진리, 마음의 무궁무진한 능력을 지도 삼아 현재를 본다. 그래서 제목이 ‘숫따니빠다와 마음의 지도’다. 그 지도와 현재를 비교하여 정치, 경제, 사회의 사건사고들을 보자면 현대인의 마음은 너무나 쫄아들어 있다. 우리가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 우리는 잊어버린 것 같다. 마치 넘쳐흐르는 마음의 힘이 딱딱한 유리틀 안에 갇혀버린 듯.

하지만 저자는 『숫따니빠따』를 통해 이 유리막에 똑똑 노크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몸에 퍼진 뱀독을 약초로 다스리듯/치미는 화를 다스리는 수행자는/낮은 세계 높은 세계 다 버린다/뱀들이 묵은 허물 벗어 버리듯(Sn0001)” 꼼짝도 못하고 죽을 것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거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먼 곳에 살든 가까이 살든/태어난 존재든 태어날 존재든/살아 있는 것은 모두 행복하여라!(Sn0147)” 볼 수도 소식을 들을 수도 없는 존재에게 어떻게 마음을 전할 수 있지? “소유하지 않고 주의집중하여 관찰하면서/‘원하는 것 없음’에 의지하여 거친 강을 건너가라!(Sn1070)” 이 거친 세상을 살아가려면 나를 지켜줄 것들을 어느 정도는 소유해야 할 것 같은데 정반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무슨 뜻인지는 아리송하지만 그럼에도 감각적으로 꽂히는 『숫따니빠따』 속 붓다의 말들. 다른 경전이 유튜브 롱폼이라면 『숫따니빠따』 는 쇼츠처럼 짧고 강렬하다. 다만 쇼츠와 달리 우리를 도파민 중독으로 안내하는 대신 ‘특별한 말 같긴 한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라는 물음표를 만들어 낸다. 저자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각종 사회적 병리 현상과 우리들의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어 작동하는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파고 들어간다. 

저자가 풀어내는 『숫따니빠따』 속 마음의 지도를 따라가다 보니 『숫따니빠따』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특정 경에서만 감동 받은 이전과 달리 구석구석 찾아내고 싶다. 진리를 향한 열망과 청춘의 힘이 크로스 되어 나타난 깨달음, 그 지혜가 인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만드는지, 되살아난 나의 청년성을 만끽하며 누리고 싶어진다. 또한 한동안 관심 두지 않던 ‘청년 정책’ 분야에 대한 탐구도 다시 해보고 싶어진다. 십여 년 전 청년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기관에서 잠시 근무한 적 있다. 그때 청년 정책 전반의 기조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누렸던 기회(일자리, 자본 축적, 사회 활동, 연애와 결혼, 육아 등등)를 청년 세대에게도 보장해주는 것, 우울하고 고립된 청년들에게 상담으로 기회를 연결해주는 것이었다. 『숫따니빠따』 속 청년성으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시대의 청년은 힘들고 약해진 존재라고 전제했다. 나 역시 그것에 공감한 청년이었고. 하지만 시간이 변해도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 각종 지표들을 뉴스에서 접하면 의문이 든다. 특정 연령대 시민들을 위해서 이전 세대가 누리던 걸 엇비슷하게 누리게, 그와 비슷한 기회들을 인위적으로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것이 정말 효용이 있었나? 어쩌면 방향성이 어긋났던 건 아닐까? 삶을 제대로 살아내고 싶은 생명력은 마음의 영역에 기초하는데, 그 마음이 무엇인지, 그 마음이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현장인 몸은 무엇인지, 몸과 마음과 삶이 연결되는 생로병사의 지혜가 무엇인지, 그걸 탐구하고 체험하여 스스로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게 청년 정책에 녹아들어 있었나? 질문이 생긴다. 이런 것도 청년성 아닐까? 질문을 만드는 이런 쇼츠라면 잠자기 전 두고두고 봐도 괜찮겠다. 잠을 잘 자게 하고 쫄아든 마음도 흐르게 할 것이다. 꿀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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