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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신간 리뷰] 마음의 구글 맵을 들고 길을 나서다

by 북드라망 2026. 8. 27.

마음의 구글 맵을 들고 길을 나서다

성초림(사이재 화요 주역스쿨)  

 

 

 

막 사십이 되었을 때였다. 이제 불혹의 나이에 접어 들었으니 무엇에도 쉽사리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내 말에 마주 앉은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그렇게 쉽게 되겠느냐고, 사십이 되어도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으면 공자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겠냐는 것이었다. 이후 내내 그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나이를 먹는다고, 세상사를 조금 더 겪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말해 무엇하랴. 세월이 쌓이면 온화하고 마음이 평온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지만 환갑을 지나 진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이순(耳順)은 언감생심, 무수한 마음의 격랑이 나를 곤혹스럽게 한다. 속에서 불같이 화가 일어날 때, 난데없이 불안해질 때, 세상 허무함이 밀려올 때…. 그렇게 일상의 굽이굽이 마음이 요동칠 때 나는 어떻게 했던가. 화를 쏟아내고 뒤늦게 후회하거나, 불안감을 떨치려고 다른 생각을 하거나, 허무함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도록 일에 몰두하며 소용돌이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돌이켜보면 내가 할 줄 아는 일은 서둘러 그 마음에서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고미숙의 『숫따니빠따와 마음의 지도』는 사뭇 다른 길을 제시한다. 저자는 <숫따니빠따>를 ‘마음의 지도’라 부른다. 정각(正覺)을 이룬 서른다섯의 청년 붓다가 북인도 전역을 유행하며 길 위에서 펼쳤던, 구경(究竟)의 지혜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경전이다. 이 마음의 지도를 따라, 한없이 동요하는 내 마음의 위치부터 파악하라고 저자는 주문한다. 먼저 “그 널뛰는 마음들의 위치를 측정하고 나의 분노와 짜증, 불안과 허무가 무엇에 기반하고 있는지, 또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10쪽) 살펴보고 분석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왜 하필 그 자리에 서 있는지 물어야 한다. ‘질문하라!’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거듭 힘주어 권하는 말이다. 질문은 존재의 원초적 동력이다(171쪽). 


당신은 슬픔에 빠져 있나? 마음의 지도를 펼치고 그 슬픔이 어디서 오는지 질문하라. 저자가 인도하는 <숫따니빠따>는 그 모든 괴로움과 슬픔의 근원을 참으로 소상하게도 알려준다.

아들 가진 사람은 아들 때문에 슬퍼하고
소를 가진 사람은 소 때문에 슬퍼한다.
사람의 슬픔은 가진 것 때문이니
가진 것이 없는 사람 슬퍼할 것이 없다. [Sn0034], (31쪽)


이렇게 단호하게 답을 내놓는 책이 또 있을까. 저자는 <숫따니빠따>가 윤색과 미화, 낭만적 수사를 일체 허용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전달한다(22쪽)고 말하는데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붓다의 말씀에 따르면 모든 슬픔은 ‘가진 것’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는 더 정확히 가진 것에 대한 애착 때문(31쪽)이라고 짚어준다. 이미 가진 것을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는 마음, 끝없이 더 좋은 것을 바라는 마음이 결국 내 안에 결여로 남아 삶의 방식과 패턴이 된다. 그렇게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매사를 불행으로 해석(32쪽)하게 되고 그래서 슬픔은 반복된다는 것이다. <숫따니빠따>라는 오래된 마음의 지도 위에 덧붙여진 저자의 해석은 선명한 화살표와도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던 고(古)지도가 순식간에 구글 맵이 되어 내가 지금 있는 자리를 분명하게 표시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깨닫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저자가 짚어주는 <숫따니빠따>의 해결책은 누구나 수긍할 만한 덕목이지만, 실천은 몹시 어렵다. 너무 평범해서 다들 시시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미덕들이야말로 마음의 기본값이자 지향점이다. (...) 이것은 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평온한 경지와 지각 활동을 체득해야, 다시 말해 일상적 수행과 훈련이 있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89쪽). 저자는 바로 그래서 마음의 밭을 갈아야 한다고 일러준다.

 

제1장 「우라가 왁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밭을 갈던 바라문 바라드와자가 탁발하러 온 붓다에게 ‘그대는 자신을 농부라고 말하지만 농사 짓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쏘아붙인다. 붓다는 이렇게 답한다. 믿음은 씨앗이요, 통찰지[般若]는 멍에와 쟁기이며, 온화함은 끌채이니 진리로 잡초를 베어내고 정진이라는 소를 몰아 앞으로 나아가면 마침내 근심 없는 곳에 이른다고. [Sn0076~0079], (131~132쪽)

 

질문이 마음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경작은 그 마음을 실제로 갈아엎는 노동이다. 문제는 이 경작이 하루아침에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씨를 뿌리고 비를 맞고 잡초를 뽑는 일에는 계절이라는 시간이 통째로 들어간다. 수행이든 농사든 결실을 맺으려면 시간이라는 변수를 통과해야 한다(134쪽). 그뿐이 아니다. 밭을 갈아본 사람은 안다. 작년에 김을 맸다고 올해 잡초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마음의 밭도 그렇다. 한 번 갈아엎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행위와 습관, 패턴이 바뀔 때까지(37쪽) 계속 갈고 김을 매야 하는 것이다. 농사의 결실이 추수라면 수행의 결실은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흔히 「무소의 경」으로 알고 있는 「칵가위싸나-숫따」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벗과의 우정에도, 자식에 대한 애착에도, 심지어 함께 수행하는 동료와의 인연에도 매인 마음은 결국 그물에 걸린다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재차 권한다. 질문을 던지는 것도, 마음의 밭을 가는 것도 결국 나 자신의 일이다. 스승이나 책이 그 노동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지도는 대신 길을 걸어주지 않는다. 다만 내가 지금 어디에서 헤매고 있는지를 비춰줄 뿐이며, 그 빛 아래에서 실제로 발을 떼는 일은 언제나 걷는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저자는 말한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라. 두려움 없이, 걸림 없이,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고(157쪽)!


2600년 전 길 위에 섰던 붓다가 남긴 <숫따니빠따>라는 이 오래된 지도 위에 저자는 오늘의 언어를 얹었다. 그 지도에서 나는 배웠다. 세월이 쌓인다고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 흔들림 앞에서 손 놓고 평온한 마음이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마음의 지도를 펼쳐 들고 무엇이 이 마음을 흔드는지 묻고, 그 밭을 다시 갈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길은 결국 내가 혼자서 걸어야 한다. 자신을 구원할 사람은 오직 자신뿐(142쪽). 공자님은 마흔이면 흔들리지 않으리라 하셨지만, 시간을 참아내는 것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숫따니빠따> 역시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지도 한 장을 건넬 뿐이다. 이제 그 지도를 들고 길을 나설 일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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