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생명의 장에 참여하는 삶
이경아(감이당)
성당이나 교회에서는 전례 중에 사도들의 신앙의 핵심을 요약해 놓은 사도신경(使徒信經)을 바친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이라고 하며 믿음을 고백한다. 예수님도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 더러 ‘여기서 저리로 옮겨져라.’ 해도 그대로 될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오, 17장 20절)라고 믿음을 강조하셨다. 산처럼 큰 믿음이 아니라 가장 작은 겨자씨 하나의 믿음이면 충분하다고 하신다. 또한 신자들끼리도 말없이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을 두고 “신앙심 또는 믿음이 깊다” 하고, 스스로를 평가할 때도 “믿음이 약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믿음은 기독교인에게 기본적인 태도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사도신경이 말하는 믿음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한 알의 믿음 그리고 우리가 고백하는 “믿습니다” 또는 “오직 예수”를 외치면서 믿는 믿음은 과연 같은 것일까? 매 기도 때 마다 고백하고, 예수님도 반복해서 강조하신 믿음. 우리는 대체 무엇을 믿는 것일까? 믿는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 토머스 머튼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무엇일까?

믿음에 대한 왜곡, 감정적 고양
나는 믿음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회사를 그만두고 성당 봉사를 할 때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봉사를 함께 하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고, 남는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기에 봉사를 시작했다. 갈등도 많았지만 재미도 있었다. 자아 실현의 장이 아니라 봉사의 장이니 특별히 나를 내세우지는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사람들은 나를 두고 믿음이 깊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뜨끔했고 부담스러웠다. 교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기도문도 겨우 외우고, 성경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나를 두고 사람들은 단지 미사에 빠지지 않고, 교무금 잘 내고, 조용히 봉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믿음이 깊다는 게 뭐지? 성경 말씀과 교리를 의심없이 믿는 것? 열심히 봉사하는 것? 신부님이나 목사님을 돕고 그분들의 말씀을 잘 따르는 것? 그렇다면 교리를 가르치는 봉사자들이 믿음이 가장 깊은 사람인가? 열심히 봉사하면서 매번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 주관없이 무조건 성직자의 말을 신봉하는 사람도? 나는 믿음이 깊다는 게 뭔지 궁금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당시 나에게 믿음이란 예수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구원의 길임을 믿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심리적 동의 차원이었지 삶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나를 믿음이 깊다고 여겼지만 겉모습과 내면은 달랐다. 나는 믿음을 내 욕망을 달래줄 도구로 쓰고 있었을 뿐,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은 뒷전이었다. 첫 아이가 수능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나는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아이를 위해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고3 학부모였지만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맡겨둔 터였기에.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던 중 고3 수험생 자녀를 위한 기도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100일 기도에 참석했다. 매일 저녁에 만나서 수험생들이 결과를 떠나 시험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빌었다. 수능 당일엔 시험 시간에 맞춰 함께 기도했다. 선배 엄마들로부터 기도 중에 졸면 아이가 시험을 망친다는 조언을 들은 터라 나는 졸지 않으려고 점심도 대충 먹고 수험생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길 기도했다.
그런데 어느덧 기도란 하느님의 뜻을 구하는 시간임에도 내 뜻을 구하는 것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가게 해 주세요”, “찍은 것도 맞게 해주세요”라고 빌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내 아이가 붙으면 누군가는 떨어질 텐데 이렇게 기도해도 되나? 하느님이 우리 애 수능까지 챙기셔야 하나? 물론 수능 기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아이의 수능 대박을 빈다면 미숙한 단계지만 오히려 기도가 뭔지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결과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아이가 무사하게 수능을 치르기를 빈다면, 그리고 그 절실한 경험을 가족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확장시키다면, 사사로운 욕심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을 구한다면 말이다. 나는 큰 아이를 끝으로 더 이상 수능 기도에 참석하지 않았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기도도 아니고 아이의 수능을 위해 기도한다는 게 내키지 않아서였다.
이후로 내게 믿음은 뭔가 감정적으로 다가왔다. 미사에 집중할 때, 특히 무언가 반성할 일이 있거나 나의 교만이 부끄러운 날, 또는 이유없이 너무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 이런 날은 미사 중 부르는 성가나 기도가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럴 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뭔가 고양된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이 좋았다. 뭔가 마음이 후련하고 시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미사 때 감정적으로 고양되지 않으면 밋밋했다. 계속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했다. 어떤 날은 일부러 더 감정에 빠지려고 했다. 미사가 아니라 내 감정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감정의 고양을 믿음이 깊어진 것으로 착각했고, 믿음을 영적 쾌감 또는 감정적 카타르시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물론 이런 고양이 믿음에 영향을 주긴 하겠지만 감정이 믿음의 기준이 되면 그것은 단지 영적 소비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감정적 고양에서 내적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감정적 고양이나 내 뜻을 이루어주는 도구 또는 교리에 대한 지식의 정도가 아닌 믿음이란 무엇일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은 무엇일까? 아니 이보다 앞서 성경 안에서 믿음이란 단어는 어떻게 쓰였고 그것의 어원은 무엇이었을까?
구약 성경 속의 믿음1. 아브라함, 하느님의 언약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가톨릭 교리 안에서는 일반적으로 믿음과 신앙을 같이 쓴다. 하지만 비교하자면 신앙(faith)은 좀 더 공식적인 언어이자 신을 향한 포괄적인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고. 믿음(belief, truth)은 지적 동의이자 신앙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믿음을 신앙(faith)의 의미로 쓰려고 한다.
성경에서 믿음이란 시대마다 언어마다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조금씩 다르다. 가톨릭 인터넷 대사전에 따르면 구약에서 믿음을 나타내는 단어는 히브리어인 “아만(אָמַן)”, "바타" (בָּטח), "하사" (חָשָׁה,), "카와" (כָּרָה) 등이 있다. 특히 아만은 우리가 기도나 성경 낭독 후 “아멘”으로 응답하며 사용하고 있는데. 아만은 견고하다, 항구하다, 신뢰하다 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 "바타" (בָּטח)는 '안전하다', '안전하게 느끼다' 는 의미이고, "하사" (חָשָׁה,)는 피난처를 구하다, 자신을 숨기다. "카와" (כָּרָה)는 기다리다, 긴장하다 를 뜻한다. “이 용어들의 어휘 연구를 통해 성서에서 신앙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음이 밝혀졌는데, 하나는 성실한 상대자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이고, 다른 하나는 보이지 않는 실재를 말과 표징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해 방법이다”
먼저 성실한 상대자란 하느님을 말하는데 여기서 성실이란 근면하고 부지런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언약을 충실히 지키고 자신의 백성들을 돌보는 관계의 지속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믿음이란 언약을 지키는 하느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다. 이는 심리적 동의나 교리에 대한 동의 차원이 아닌, 하느님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로서 나를 그만큼 하느님께 맡기는 상호적 관계다.
이를 대표하는 인물이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이다. 야훼가 메소포타미아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던 아브라함을 불러 그에게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창세기 12장 1~2)고 약속했을 때, 그는 그 땅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안정된 거처를 버리고 메소포타미아라는 당대 최고의 도시 문명을 떠난다. 야훼가 아브라함에게 원한 건 안정과 소유에서 떠나라는 명령이었다. 아브라함은 화려한 도시 문명의 한계와 영적 쇄신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고 있었기에 주저없이 야훼의 명을 따라 떠난다. 그것은 야훼의 언약 즉 떠날 때만 새로워지고 확장될 수 있다는 약속에 대한 신뢰였다. 아브라함은 언약에 온 존재를 걸었다. 이방인은 죽여도 복수의 위험이 없었던 만큼 혈연 공동체에서 자신의 기반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여정에서 야훼에 대한 신뢰는 더 깊어 간다. 자식이 없던 자신에게 자손을 약속한 야훼의 불합리한 약속을 믿었고, 99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이해 불가능한 야훼의 요구에도 응답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믿음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어떠한 유용성이나 가능성도 따지지 않는 것이며, 야훼가 준 자식을 다시 바치라는 불합리까지도 받아들이는. 언약을 지키는 하느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이자 극단적 순종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잔인하다고 여겨지는 장자 희생이 사실은 고대의 관습이었다는 점이다. “고대 세계에서 장자는 종종 신의 소유물로 여겨졌으며, 인간 희생을 통해 신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젊은 피가 신의 고갈된 에너지를 회복시켜주고, 우주에서 힘의 순환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야훼는 아브라함의 완전한 복종 앞에 이사악 대신 숫양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이후 관습적으로 행해져온 장자 희생 제의가 동물 봉헌으로 대체되었고. 신약에선 예수님의 희생 이후 동물 봉헌도 없어짐으로써 제의에서 폭력성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다.
구약성경 속의 믿음 2: 모세,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믿음
믿음의 또 하나의 의미는 보이지 않는 실재를 말과 표징을 통해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말씀과 언약, 사건을 통해 하느님의 실재를 확신하고 그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바라보며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 모세다. 모세는 이스라엘 노예를 괴롭히던 이집트인을 죽이고 미디안으로 도망을 간다. 미디안에서 사제의 딸과 결혼하고 장인의 양 떼를 돌보던 중 호렙산에서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도 타지 않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모세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하시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네 선조들의 하느님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모세는 하느님 뵙기가 무서워 얼굴을 가렸다.“(출애굽기, 3.5~6) 아브라함이 말씀으로 신을 만났다면 모세는 두려움 속에서 신의 현존을 체험한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탈출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모세가 제가 어떻게 감히 파라오에게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겠냐고 항변했지만 하느님은 “내가 네 힘이 되어주겠다”(출애굽기 3,12)고 한다.
모세는 처음엔 두려워하고 의심하고 주저했다. 하지만 점차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본 듯”, 하느님이 늘 자신과 함께 하며 힘이 되어 주고 있다고 확신했고, 신의 임재에 대한 신뢰 속에 파라오와 싸우고, 홍해를 건너고, 십계명을 받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끄는 등 불가능한 일들을 감당해 간다. 무엇보다도 모세는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통해 믿음의 체계를 만들어 간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근동 지방에서 믿었던 바알이나 아세라, 아스다롯... 같은 신들은 주로 폭풍과 비를 주관하고 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들이었고, 인신공양이나 집단 성교와 같은 제의가 있었던 반면 야훼는 율법을 주고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뭇 민족 가운데서 내것이 되리라... 너희야 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 이것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줄 말이다.“(출애굽기 19장 5~6절) 모세는 보이지 않는 실재를 보이는 것 보다 더 확실하게 신뢰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신의 나라, 거룩한 나라를 만들어 간다. 하지만 모세 이후 율법 준수는 형식적인 면으로 치우치게 된다.
아브라함이 야훼의 말씀을 믿고 개인적 차원에서 즉각적인 신뢰를 통해 순종했다면. 모세는 보이지 않는 야훼의 현존을 믿고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이라는 공동체적 차원에서 순종하고, 야훼와의 관계를 통해 점점 신뢰를 형성해 나간다. 아브라함과 모세의 믿음은 이후 예언자(선지자)들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구약 성경 속의 믿음 3: 이사야, 내적 혁명을 통한 믿음
구약 속의 예언자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사야. 그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존립과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하느님을 신뢰하는 것 이외에 어떠한 정치적 동맹이나 군사력, 부와 제의 등 모든 형식적인 것에 의존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은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되어 있었고. 앗시리아가 제국으로 부상했다. 동맹을 통해 앗시리아에 대항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남 유다는 동맹에 참여를 거부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하고 만다. 이후 남 유다는 앗시리아에 도움을 청하고 속국이 될 지를 놓고 갈등에 빠지게 되는데. 이사야는 유다가 정복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앗시리아에 의존하지도, 유다의 군사력을 믿지도, 인간의 힘을 과신하지도 말며 오직 야훼만을 신뢰하라고, 야훼의 명령에 순종하라고 촉구한다. 하지만 유다 사람들은 이사야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벽과 정치적 동맹을 믿었고, ”소와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며, “내일이면 죽을 몸, 실컷 먹고 마시자”“(이사야,22.13)고 했다. 결국 유다는 앗시리아의 속국이 되었고. 앗시리아는 바빌로니아에 의해 망하고, 유다도 바빌로니아에 의해 점령당하고 만다.
이사야의 믿음은 하느님에 대한 단순한 낙관론이나 희망이 아니었다. 외적인 힘에 의존해서는 당장의 위기에선 벗어날 수 있겠지만 삶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위기는 반복될 것이었다. 이사야는 유다인들에게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 듯이 차지하는 자들아!(이사야 5,8) “너희는 가난한 자에게 빼앗은 것을 너희 집에 두었다. 어찌하여 너희는 내 백성을 짓밟느냐?(이사야 3, 14~15) 고 야훼의 말씀을 전한다. 가난한 자들을 소외시키고 물질적인 것을 채우려고 하는 한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제의도 더 이상 형식적이고 외적인 것에서 벗어나 마음을 다하는 것이어야 했다. “나 이제 숫양의 번제물에는 물렸고 살진 짐승의 기름기에는 지쳤다. 황소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는 보기도 싫다....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악한 행실을 버려라... 바른 삶을 찾아라, 억눌린 자를 풀어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주며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이사야 1, 11~17) 이사야는 부를 축적하고 약자를 억압하는 죄를 고발하며 사회정의를 실천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이사야는 회개를 말한다. “오라, 와서 나와 시비를 가리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눈과 같이 희어지며 너희 죄가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야, 1,18) 자신의 잘못을 알고 마음을 바꿔 부와 권력이 아니라 야훼의 말에 순종한다면 온 땅에 야훼의 영광이 가득할 것이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이사야 6,3) 이사야는 야훼를 이스라엘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만군의 야훼로 선포하며, 모든 민족이 마음을 바꾼다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사야의 믿음은 위기 속에서도 세상의 권력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붙드는 용기였으며,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내적 혁명“이었다.
정리해 보면 구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단순히 정신적 동의가 아니다. 아브라함이 언약을 지키는 하느님에 대한 전폭적 신뢰로서 길을 떠났다면, 모세는 보이지 않는 실재에 대한 믿음을 통해 공동체를 이끌어갔고, 이사야는 그 믿음을 내적 변화와 사회 정의의 실현으로 확장해 나갔다. 이들의 믿음은 삶과 분리되지 않았다. 이런 믿음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예수님의 믿음: 나를 따르라!
가톨릭 대사전에 따르면 신약성서에는 '믿음' 또는 '신앙'이라는 의미의 명사 "피스티스"(πίστις)와 '믿다' 라는 의미의 동사 “피스테우에인"(πιστεύειν)이 자주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들은 히브리어 "아만"의 그리스어 번역이다. 따라서 신약 성서에서도 믿음(피스티스)은 구약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정신적 동의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 속에서 삶의 방향을 바꾸는 태도 전체를 가리킨다. 기원전 332년경 알렉산드로스가 지중해 동부 지역을 장악한 이후로 신약시대 유대인들은 헬라 문화와 히브리적 전통이 공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이들이 사용했던 ”피스티스“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 인한 추상적 논리에 대한 지적 동의와, 히브리 전통을 이은 신뢰와 충성. 같은 단어이지만 각자가 처한 조건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예수님과 초대 교회는 후자의 의미로서 피스티스를 사용했다.

예수님의 공적 생활의 첫 말씀인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코, 1,15) 는 이 전통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다. 예수님은 회개와 믿음을 강조하신다. 여기서 회개란 단지 죄를 뉘우치는 게 아니다. 회개란(metanoia) 그리스어로 ’변화‘와, ’~을 넘어서‘를 나타내는 μετά (meta)와 ’마음‘이나 ’정신‘을 나타내는 νοῦς (nous)가 합쳐진 단어로 마음 또는 방향을 전환하라는 의미다. 물론 방향을 전환하는 것은 속도의 조절과 같이 가야 한다. 하느님을 향해 살겠다면서 여전히 자신의 속도를 유지한다면, 습관대로 산다면 그것은 외적인 틀만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다. 또한 복음이란 하느님의 나라가 왔다는 좋은 소식만이 아니라 그 나라가 지금, 여기 예수의 삶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선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마음을 돌려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에 삶 전체를 걸고 응답하라는 초대다.
이어서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코 1, 17)고 하신다.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은 “나를 믿으라”가 아니라 “나를 따르라”고 하신 점이다. 하느님 나라란 단지 개념이나 신조가 아니라 예수님의 삶과 행동 속에 드러난 현실이기에. 복음을 믿는 일은 필연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믿음이 내적 전환이라면 따름은 외적 실천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마르코, 1,18). 심지어 제배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부르시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삯꾼을 배에 남겨둔 채 예수를 따라나섰다”.(마르코, 1,20) 그들은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바로 따른다. 따름은 예수님을 “따라다닌다”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다. 삶의 중심을 예수님으로 옮기고, 하느님 나라의 질서를 우선 순위에 두는 존재의 전환이다.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 7장, 21절)“ 고 하신 것처럼. 따름은 “오직 예수”를 외치는 것도. 단지 지적 동의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이란 이미 시작된 하늘나라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 예수님의 삶의 양식을 본받아 실천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의 양식이란 이사야가 말했던 내적 혁명이 완성된 된 것이다. 이사야가 내적 변화와 정의의 실천을 말했다면 예수님은 종교적, 사회적 기득권을 타파하고, 기존의 질서 바깥으로 떠나라고 하신다. 누구나 일등이 되고자 하는 사회에서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마르코 9장 35절)하고. 바리사이파가 가진 기득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게 아니라 형식만 남은 율법들,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는 부의 구조, 신분과 직업에 따른 차별...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은 직접 부수어 보이신다. 세리와 창녀와 함께 한 식탁에 앉고,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겨지던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심으로서 기존의 질서 바깥으로 ”떠남“ 곧 ”탈주“를 몸소 실천하신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난 것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머물던 자리에서 떠나라고 하신다. 그 떠남은 물리적인 이동 보다, 자기 중심성, 자의식, 기득권을 버리는 내적 이동이다.
한편, 예수님은 치유의 순간마다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하신다. 여기서 믿음이란 하늘나라가 도래했다는 신뢰와 그 신뢰 위에 자신의 존재를 내맡기는 응답이다. 이런 신뢰의 응답 속에서 치유는 하느님의 선물로 온다. 겨자씨 비유도 이 점을 잘 보여준다.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 처음부터 산을 옮기는 힘을 갖는 것이 아니다. 작은 씨가 좋은 땅에 ᄄᅠᆯ어지면 은총 속에서 새들이 깃들만큼 커지고, 육십 배, 백 배 커지는 것처럼.(마태복음, 13장, 1~8절 참조) 믿음은 우리의 응답이지만 하느님이 키우시는 생명의 선물이다. 좋은 땅이란 기득권과 자기 중심성을 버리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마음을 여는 태도이며, 이런 마음의 밭에 떨어진 겨자씨는 스스로가 상상하지도 못한 열매를 맺게 하는 씨앗이 되어 결국 산을 옮기는 힘이 된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스스로를 좋은 땅으로 만드는 일이다.
결국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이란 마음의 전환(메타노이아)을 통해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질서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따라 기득권을 내려놓고, 자기가 선 자리에서 매일 떠나는 삶이다.
바오로의 믿음: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복음은 유다 공동체를 넘어 헬라 세계로 급속히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자들은 이방인들과 그리스 철학의 논리적 사고에 익숙한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땐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하며 가르침을 따랐지만 상황이 바뀐 거다. 이에 제자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믿음(피스티스)을 해석하고 언어화해야 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바오로다. 그는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종파에서 보편적 종교로 확장시켰다. 바오로는 엘리트 유대인으로 랍비 전통과 그리스어와 아람어를 배웠고, 율법에 있어서는 바리새파이며,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던 로마 시민권자다. 신약 성경 속의 많은 서간들을 남긴 바오로, 그에게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도 바오로는 '믿음'을 의미하는 단어로 'πίστις(pistis)를 골라 썼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며 이 단어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바오로에게도 믿음(피스티스)이란 히브리적 의미로 하느님에 대한 신뢰이자 삶을 바꾸는 것이었다. 예수님과 차이점이라면 예수님은 직접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의 삶을 열어가신 분이라면. 바오로에게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 즉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자신의 삶에서 재현하고 예수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바오로의 믿음은 그의 회심 체험과 관련이 있다.
바오로는 다마스쿠스로 기독교인을 박해하러 가던 중 사건을 겪는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반짝이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예수님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바오로,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 이 사건으로 바오로는 사흘 간 눈이 멀게 되고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사도행전, 9, 3~9) 바오로는 그동안 여느 바리새파 유대인처럼 율법과 정결례를 잘 지키고, 선한 행위를 함으로서 구원을 받는다고 믿어 왔다. 그랬기에 이를 지키지 않는 유대 기독교인들을 잡아들였다. 반면에 예수님은 율법이나 정결례, 세상의 위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분이 부활을 하셨다니 그동안 자신이 가져온 율법에 대한 믿음과 이를 쫓아온 삶이 통째로 무너졌다.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너무 강력했고 이제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해석해야만 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Ⅱ고린토, 5,21) 바울은 아무런 죄가 없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고 다시 부활 한 것처럼. 지금의 삶을 죽여야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만일 사람이 율법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일이 될 것입니다"(갈라디아 2, 19~21)
바울은 의롭게 되는 것 즉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율법이나 공로로 인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 임을 깨달았다. 믿음이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예수를 입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기존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것이다. 재탄생한 나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다. 더 이상 자기중심적 기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이 삶의 판단 기준이 되는 삶을 뜻한다. 이러한 믿음은 당시 통념과는 달리 유대인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로마서 3,22) 그렇다고 바오로가 율법을 무가치하다고 본 것은 아니다. 율법은 ‘교사(훈련자)’ 같은 역할을 하여 인간이 죄를 깨닫게 해주는 도구지 율법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로 온다는 점이다. 그 선물은 선한 자에게나 악한 자에게나, 신분과 인종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주어진다. 선물이지만 받으려는 자의 응답도 중요하다. 기존의 나를 죽이고 새로운 삶,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살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이 하느님에게 마음을 향하고 하느님 나라가 도래했음을 받아들이는 실천적 결단이라면, 바오로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확신 속에서 옛 자아(ego)를 죽이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오로 이후, 각 공동체는 상황에 따라 ‘믿음’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다.”
믿음에 대한 질문이 바뀌다: 오리게네스, 펠라기우스, 아우구스티누스
바오로 이후 초대 교회 안에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다. 로마의 통치 아래 고통받는 노예와 하층 계급이 주된 구성원이었고. 이들에게 믿음은 철학적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 이들은 세례를 통해 옛 삶에서 떠났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로마 제국의 박해를 견디어야 했다. 그러나 2세기 말에 이르러 상황은 달라진다. 이방인 지식인과 그리스 철학 교육을 받은 계층이 교회로 유입되었고. 이 엘리트 지식인들은 기독교의 진리를 좀 더 이론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그동안 초대교회에서 믿음은 이성과 대립되는 영역이 아닌, 이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실존적 사건이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믿음이 나를 어떻게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키는가?” 였다. 그러나 이제 질문은 “이 믿음은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로 바뀐다. 믿음을 해석하기 위해 이성이 필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믿음의 본질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의 영향으로 인해 믿음을 둘러싼 세계가 바뀌었다. 그 전환점의 한가운데에 오리게네스가 있다.
철학을 공부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의 제자인 오리게네스. ”플라톤 철학을 셈족의 성서에 적용하기 위해 오리게네스는 성서를 상징적으로 읽는 방법을 개발했다. 가령 그리스도가 처녀 마리아의 자궁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영혼 속에 신의 지혜가 태어났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했다“ 오리게네스는 성경을 문자적 의미에 머무르지 않고 영적, 철학적 차원으로 확장해서 해석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역사적 사건임을 부정하진 않지만, 신자들의 영혼 안에서도 태어나야 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오리게네스에게 이성은 믿음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믿음으로 들어가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후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인을 받고 국교가 되면서, 믿음에 대한 질문이 다시 한 번 달라지게 된다. 로마 제국의 박해 시절과 달리 많은 문제가 생겨났다. 공동체적 실천과 순교로 드러났던 믿음은 성직자들의 힘이 커지면서 부패하기 시작했고, 신자들도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이유보다 정치적 사회적 이익을 위해 개종했기에 도덕적으로 해이해졌다. 신자들은 형식적으로 세례를 받았고, 회개했다. 게다가 이 무렵 로마는 고트족, 반달족, 프랑크족 등의 침입을 받으며 무너지고 있었다. 도덕적 타락과 붕괴 앞에서 믿음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대두된다. 인간은 왜 선을 원하면서도 악을 행하게 되는가? 인간의 의지는 왜 이토록 나약한가?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런 질문은 공동체적 실천에서 개인의 내면, 의지의 문제로 전환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대표적 인물이 서방교회의 라틴 신학자인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다. 당시 서방교회에선 라틴어 성경을 사용했고, 믿음(pistis)은 라틴어로 fides다. 이들에게 믿음(fides)은 히브리 전통을 이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삶의 변화였다. 하지만 믿음의 기원과 믿음에 어떻게 도달하는지에 대해선 서로 의견이 달랐다. 펠라기우스는 ”로마의 몰락을 보고 실망하는 대신 개혁의 필요성, 즉 새로운 구조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로 삼았다. 그는 새로운 구조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의 가능성, 선을 택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셨던 놀라운 미덕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원죄론을 부정하며 인간은 원초적으로 타락한 존재가 아니며, 인간에게는 신에게서 받은 절대적 자유의지가 있기에, 인간은 마음을 먹으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도 있다. 은총이 없어도 하느님을 향해 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은총이 믿음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믿음의 출발을 자유의지에 있다고 본 것이다. 펠라기우스는 후대에 원죄론이 받아들여지면서 이단으로 정죄된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의 몰락에서 공포를 느끼며 ”인류를 무력한 어린아이로 보았다. 인류는 전적으로 하느님에게 의존하고 있다. 인류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인간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하느님의 은혜뿐이다“ 고 보았다. 그는 원죄론을 주장하며, 인간은 아담의 죄로 인해 근원적으로 죄를 지었기에 자유의지 만으로는 선을 행할 수도, 자신의 운명을 완성할 수 도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은총이 필수적이라고 여겼다. 믿음의 출발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수동적 은총만을 말하진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해하기 위해 믿어라, 믿기 위해 이해하도록 애써라“(Crede ut intellegas, intellege ut credas) 라는 명제를 던진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crede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그리스어의 믿음(pistis)은 라틴어 fides로, 믿다(pisteuein)는 credere로 번역되었다. credere는 cor(마음, 심장)와 dare(정하다, 놓는다)를 합한 것으로 ”마음을 바친다“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fides가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삶의 변화라는 존재적, 관계적 상태를 말한다면, credere는 그러한 믿음으로 들어가기 위한 인간의 응답이자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해하기 위해 믿어라“는 이해가 안되면 무조건 믿어라는 식이 아닌. ”진리를 알기위해선 하느님을 신뢰하는 방향으로 삶을 맡겨라,“ 그리고 ”믿기 위해 이해하도록 애써라“는 하느님께 자신을 더 깊이 맡기기 위해 성찰하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믿음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오는 것이지만, 인간은 그 은총에 자유의지로 응답하며(credere), 이성을 통해 미신이나, 신에 대한 왜곡된 개념을 걷어내고, 이를 통해 더 깊은 믿음(fides)과 사랑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전례에서 사도 신경을 바치며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라고 고백할 때 “믿나이다”는 credo를 쓴다는 점이다. 단순히 창조주 하느님을 마음으로 확신하고, 예수님이 그 외아들임을 확신한다가 아니라. 나는 하느님을 향해 삶을 바치며,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향해 헌신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지금 이 신경을 교리에 대한 확신과 심리적 동의로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과, 응답(credere)의 깊은 뜻은 사라지고. 믿음은 단순히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명제를 참이라고 인정하거나, “믿습니다”를 외치며 교리를 무조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왜곡되었다.
기독교와 그리스 철학의 크로스, 믿음과 이성의 조화: 토머스 아퀴나스
서로마와 동로마가 분리되면서, 서방은 라틴어를 사용하고 동방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으로 나뉘었다. 이후 476년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서방교회는 그리스 문화와 점차 단절된다. 플라톤의 영향은 남아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은 서방에서 거의 읽히지 않았고. 이 시기 서방 교회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반면 동로마에선 그리스 철학과 과학이 보존되었으나, 정치적 대립과 언어 장벽으로 인해 서방 교회에 전달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7세기 이후 등장한 이슬람 세력은 스페인과 알렉산드리아, 예루살렘 등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점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과 과학은 이슬람 세계로 흘러 들어갔고, 9세기 압바스 왕조 시기에는 그리스 저작들이 아랍어로 번역된다.
12세기 무렵 서방 교회는 이슬람 세계를 통해 다시 그리스 철학을 만나게 된다. 특히 이슬람 지배 하에 있던 스페인은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 학자들이 공존했던 곳으로 아랍어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그리고 이슬람 철학자들의 작품이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이 텍스트들은 북유럽으로 전파되며 서유럽 지성사에 커다란 전환을 가져왔다. 이 시기 서유럽은 지적으로 활기를 띄게 되고 수도원을 중심으로 대학이 생겨난다. “수도원 안에서 확산된 신학은 고대 교부들 곧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대 그레고리우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성경의 본문으로 나아갔다. 이를 바탕으로 신비적 관상을 시도하는 ‘성독(聖讀)-Lectio Divina’가 발전되었다. 반면 도시에 설립된 대학을 중심으로 연구된 신학은 지성 중심이며...이성을 도구로 성경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며 자율적 특징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기독교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관상(觀想)을 통해 신과 일치를 추구하는 전통을 발전시켰고. 한편으로는 대학을 중심으로 이성을 도구로 삼아 개념을 분석하고 논증하는 방식으로 신학이 전개되었다. 특히 대학에선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으로 철학과 신학을 구분하고,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에 대한 질문이 새롭게 제기된다. 초대 교회 안에서 믿음이란 공동체 안에서 실천적 삶을 통해, 또는 전례 안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전수했다면 이제 신학이 학문이 되면서 강의를 통해 가르쳐지고, 논쟁하고 토론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있다. 대학교수였던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신학 안으로 받아들이며, 믿음과 이성의 관계를 새롭게 체계화하려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이성은 타락한 인간에게 “하느님이 비추어 주는 빛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었고, 믿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아퀴나스는 전통적인 신학과 달랐다. 플라톤이 세계를 이데아의 모방이자 그림자로 보았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 세계를 중시하며 감각적인 것들을 탐구의 대상으로 보았고, 감각을 지식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에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신학에 접목시키며 이성에서 출발해 학문적으로 신을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고 이성이 신앙을 대체하지는 않지만 신앙으로 나아가는 토대가 될 수 있었다.
아퀴나스는 철학이 증명할 수 있는 진리와 신학이 인식할 수 있는 진리를 구분했다. 이성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연적 진리와 오직 믿음(신앙)으로만 이해되는 계시된 진리 즉 초이성적 진리를 구분했다. 이런 구분의 근거는 하느님이 창조 때 인간에게 이성을 주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으로 자연적 진리인 하느님의 존재와 속성, 하느님의 섭리와 불멸하는 영혼의 존재에 대해 밝혀낼 수 있다. 반면 삼위일체론,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신 성육신, 태초와 종말, 인간 세상의 타락과 구원의 신비 등은 계시된 진리 즉 신비다. 계시된 진리는 이성을 넘어선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았다.
아퀴나스는 자연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진리와 계시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신비를 구분함으로써, 이성과 믿음을 분리했지만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닌 상호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도록 하려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을 전제로 하는 이성’을, 아퀴나스는 ‘이성을 전제로 하여 신앙으로 나아가는 길’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신비주의적 특징을, 후자는 합리주의적 특징을 각각 갖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이성은 어디까지나 독자적 사고의 수단이 아닌 은총에 의해 완성된다는 점에서 둘은 이성에 대한 신앙의 우위를 공유한다.“
따라서 12세기 이후 중세 신학에서 일어난 변화는 믿음의 본질이 바뀐 것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믿음을 존재의 전환과 내적인 응답으로 사유했다면, 아퀴나스는 여기에 이성적 설명과 체계를 부여했다. 이제 믿음은 하느님을 신뢰하고 삶을 헌신하는 것만이 아닌 개념으로 분석되고 논증되며 대학에서 가르쳐지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중세 이후 근대에 들어서면서 이성의 역할이 점점 확대되었고, 아퀴나스가 구분했던 계시된 진리, 증명이 불가능한 진리마저도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하고 증명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난다. 이 과정에서 이해되지 않는 진리는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투명하지만 낯선 근대: 이성이 믿음을 승인하다
16세기 말 과학 기술과 자본주의가 만나면서 유럽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다. 경제는 농업 중심에서 상업과 교역중심으로 전환되었고. 사회는 전문화가 이루어지며 특정 기술과 지식을 갖춘 전문가 계층이 등장했다. 전문화는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지만, 생산된 물품을 소비하기 위해선 더 넓은 대중이 이 시장에 참여해야 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는 생산자만이 아니라 소비자가 되어야 했고.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교육은 하층계급까지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주 계급이 몰락하고 상업과 자본을 기반으로 한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했으며 사회 전반에서는 유용성과 효율성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연은 더 이상 하느님의 신비로운 질서가 드러난 상징이 아닌 측정하고 개발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관찰과 실험을 통해 자연 법칙을 밝혀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났고, 과학은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지식이 되었다.
근대는 낯설게 다가왔다. 자연을 관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게 되고.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중세의 신분질서와 전통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게 되고, 전문화로 인해 공동체가 아닌 개인이 중심이 되고, 종교개혁으로 인해 종교의 권위는 분열되고,,, 세계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투명해졌지만 더 혼란스러워졌다. 익숙했던 것들이 붕괴되면서 불안을 느낀 근대인들은 확실한 무언가를 찾고자 했다. ”나는 무엇을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확실성’은 중요한 시대적 가치가 되었다. 이 중심에 데카르트가 있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가톨릭교도였던 데카르트(1596~1650). 그는 모든 것이 불확실해지고 낯선 세계에서 수학자답게 ”수학이 제공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확실성을 세우고자 했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참인 명제, 확실한 명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어느날 장작 난로 옆에서 문득 떠 오른 생각.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코기토 에르고 숨)". 데카르트는 외부 세계의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고 의심스럽지만, 의심하고 있는 ‘나’, 생각하고 있는 ‘나’ 라는 내적 경험만은 확실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확실성은 외부 세계가 아닌 ‘나의 관념’ 안에 있었다. 진리는 성서나 전통에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었고. 기준이 밖이 아닌 이성에 있었다. 우리는 세계와 분리될 수 없고 세계 밖으로 나갈 수 없는데 인간이 세계를 판단하는 관찰자가 되었다. 세계와 분리된, 자연과 분리된, 근대적 주체의 탄생!

데카르트가 말하는 이성은 아우구스투스나 아퀴나스가 말한 이성과 차이가 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믿음 즉 하느님을 향한 신뢰와 헌신이 먼저였고, 이성은 그 믿음을 이해하고 보조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데카르트에게 이성은 믿음을 평가하고 승인하는 것이 된다. 믿음이 출발점이 아니라 이성이 명석(clear), ·판명(distinct)하게 파악한 범위 안에서만 믿음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제 신은 이성이 밝히고 구별해서 파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확실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영역이 된다. 이성이 승인하지 않는 영역은 그저 심리적 확신의 영역이 되었고. 과학의 발달은 이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그 결과 설명되지 않는 것은 “의심스러운 것”, 이해되지 않는 신비는 비합리적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흐름이 계몽주의에 영향을 미치면서, 진리는 점점 ‘사실’(factuality)과 동일시되었고, 사람들은 성서를 믿음과 구원의 여정이 아닌 역사적, 과학적 사실로 검증되어야 할 텍스트로 읽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식은 성서를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게 했지만 성서가 지닌 상징적이고 영적이며 존재론적인 의미를 놓치게 했다. 그 결과 창조 이야기나 이집트 탈출과 같은 서사는 더 이상 상징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배격되었다. 성육신, 삼위일체와 같은 진리는 증명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중 더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에 있는 이런 것들을 ‘사실’이라 받아들일 것을 강조하고, 결국 ‘믿음’이란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중 사실이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사실로, 참말로, 정말로 받아들이는 것과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성경을 경직되게 해석하며 과학과 세속사회를 공격하면서 신자들에게는 성경에 나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라고 여기게 만들었다.
종합해 보면 믿음은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 라틴어(fides)로 번역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머스 아퀴나스 시대까지는 그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며 fides가 영어faith로 번역되었고. 특히 영어권에서 faith가 교리적 신조에 대한 동의로, believe가 개인의 심리적 확신으로 이해되면서, 히브리적·교부적 전통에서의 ‘신뢰하고 따르는 삶의 행위’로서의 믿음은 점점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믿음의 축소, 왜곡 앞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과학적으로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비합리적이고 거짓인 것일까? 과학 역시 가설에서 출발해 검증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삶 전체를 걸고 하느님과 그분에 대한 진리를 신뢰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행위를, 단지 실험실에서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비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교리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의심없이 강제적 순종을 요구하는 태도 역시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리고 서로 다른 교리를 믿는 이들을 배척하는 방식이 과연 믿음일까?
그렇다고 기술문명과 과학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근대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리고 이성과 믿음, 과학과 신앙, 세속과 그리스도는 선택의 문제도 정반대의 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늘나라는 이성과 과학, 세속 안에 있는 것이지 이것을 벗어난 별개의 곳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과 대립하지 않으면서 존재를 바꾸는 믿음이 가능한가? 이다. 이 지점에서 토머스 머튼이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이며. 믿음과 이성은 어떻게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믿음에 대한 불편한 진실
머튼은 우리가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것들, 믿음이 깊어졌다고 느끼는 환상들을 분명히 밝힌다.
믿음은 감정도 느낌도 아닙니다. 믿음은 알 수 없는 어떤 초자연적인 것에 대해 어렴풋이 의식하는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자기가 그렇게 느낀다고 해서 자기는 어떻든 구원을 받았다거나 의롭게 되었다고 하는 신념이 아닙니다. 어떤 외적 동기와는 관계없는, 전적으로 내적이고 주관적인 어떤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영혼의 힘도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올라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있다는,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갖게 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순수한 자기만의 것이어서 그 내용을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개인적인 신화와 같은 것이어서 다른 사람과는 나눌 수 없고 또 자기나 하느님 또는 다른 사람에게는 관계가 없는 객관적 타당성도 아닙니다.”
믿음은 우리가 위로받았다고 느끼는 감정도,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느끼는 감격이나 전율도, 내가 구원받았다고 느끼는 확신도 아니다. 또한 믿음은 무언가 다 잘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도 아니며, 자기 만의 독특한 체험, 즉 재검증 작업을 통해 타자와 공유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느껴봤을 전율이나 격한 감정, 고양됨과 같은 감각적인 것이 믿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리를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일까? “믿음은 당연히 교의적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만... 자신이 판단은 유보한 채 단순히 따르는 것이 믿음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단지 믿음의 한 면일 뿐이다. 지난 5세기 동안 교리 해석을 둘러싼 혼란과 분파 간의 갈등으로 교회의 권위로 내린 교리에 대한 정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나친 강조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머튼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의 믿음은 단순히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도덕적 교훈처럼 수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분의 가르침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실천해 보겠다는 결심의 문제도 아니다. 머리로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셨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면서도, 삶의 기준은 여전히 탐욕과 효율, 경쟁에 두고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도 누군가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믿음의 중심에 들어선 것은 아니다.
그럼 믿음을 위해 과학과 세속적인 것들을 거부해야 하는 건가? “‘세상’을 거부하라고 하는 것은 사람과 사회 그리고 하느님의 창조물 또는 사람들의 업적을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창조물을 오용하고 부패시키며 자신들의 삶을 헐값으로 떨어뜨리는 잘못된 기준을 거부하라는 뜻이다” 믿음을 위해 세상이나 과학 기술 자체를 거부하고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이 세계와 인간의 삶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왔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그것들을 오용함으로써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기준, 사랑과 자비를 향하지 않는 기준을 거부하라는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돈으로만 평가되고,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구조를 거부하고, AI가 문제가 아니라 AI가 열어 제친 새로운 세상에서 발생하는 인간의 소외, 인간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거부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라고 여겨온 것들이 믿음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있었던 것일까? 감정도, 확신도 아니고, 교리를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붙잡고 있던 믿음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애초부터 출발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우리가 그려온 하느님에 대한 생각 그 자체가 문제였을 지도 모른다.
하느님에 대한 환상
우린 하느님을 말하지만 어쩌면 각자 다른 하느님을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느님에 대한 당신의 설명이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당신의 그 개념은 하느님의 완전성의 어슴푸레한 비유에 지나지 않으며 그 개념을 통해 당신이 알아들은 하느님은 글자 그대로의 그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거기에 덧붙여야 합니다. 무한한 빛이신 하느님은 당신의 자명성이 너무나도 거대해서 우리의 정신은 그분을 암흑으로밖에는 보지 못합니다... 볼 수 있는 것이 하느님일 수도 없고 하느님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없다면 하느님을 찾기위해서 우리는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 암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침묵에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상상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시기 떄문에 하느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 주는 어떤 상상도 결국에는 우리를 오해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은 볼 수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책에서 읽는 하느님의 모습은 실상 하느님‘의’ 모습이 아닌 하느님에 ‘대한’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정된 형태를 보는 것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어떤 것을 생각하든지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왜곡일 수밖에 없다. 머튼은 하느님을 찾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상상이나 개념이 아니라 침묵과 암흑이라고 말한다. 침묵이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다. 내 안에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판단과 해석, 확신과 불안을 내려놓는 침묵이다. 암흑이란 아무것도 없는 공허가 아니라, 너무 밝아 보이지 않는 암흑이다. 태양이 너무 밝아 태양 그 자체를 볼 수 없듯이 말이다. 침묵과 암흑 속에서 하느님을 대상화하려는 시도를 멈출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 안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침묵과 암흑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머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하느님으로 변화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느님이 당신을 아시는 것처럼 하느님을 알게됩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하느님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거나, 신적인 능력을 소유한다는 말도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머튼이 말하는 하느님으로의 변화란 하느님을 소유하려는 이기적 자아가 해체되고,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존재가 변모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 밖에서 하느님을 알 수 없고, 침묵과 암흑 속에서 하느님과 일치되어 갈 때 비로소 하느님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머튼에게서 이 변화 자체가 바로 믿음이다. “진정한 믿음이란 그리스도가 아닌 모든 것을 거부함으로써, 모든 생명, 모든 진리, 모든 희망, 모든 실재를 ‘그리스도 안에서’ 추구하고 찾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란 하느님을 대상화하던 존재 방식이 무너지고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그리스도로 변화하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생명의 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의 장’이란, 하느님, 진리에 대해 판단하는 자리에서 진리 안에서 응답하고 살아 움직이는 자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로 연결되는 장이다. 이제 믿음은 확신이 아닌 존재가 서있는 장의 문제가 된다.
이렇게 보면, 그동안 믿음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이 하느님을 ‘대상화’ 하는 시도였고, 믿음을 대상에 대한 믿음으로 한정해 왔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한 환상을 깰 때, 믿음은 오히려 그때 비로소 시작된다. 믿음은 어떤 생각을 가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 자체가 바뀌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믿음, 확신이 아닌 존재의 변형
"믿음은 근본적으로 지성의 동의입니다....믿음은 동의 이상의 어떤 것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이해, 접촉, 의지의 통교, ‘희망하는 것의 핵심적 실체’입니다. 믿음으로써 사람은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계획에 동의하고 또 지성과 이성만으로는 미칠 수 없는 진리에 도달할 뿐 아니라 하느님 자신에게도 동의합니다. 그는 하느님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말에만 “예”하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무한하신 하느님 자신에게 “예”하고 말합니다. 그 말의 내용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신 분도 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머튼에게 믿음은 하느님의 현존 안에 자신을 맡기는 삶의 양식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성의 동의가 필요하다. 인간의 정신에는 이성과 지성이 있다. 이성은 대상과 나를 분리해서 사물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지성은 대상과 나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의미를 통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으로는 하느님의 본질을 대상처럼 증명할 수 없고, 계시된 말씀의 논리나 모순, 말씀의 의미를 분석할 수 있다. 이성은 하느님의 본질에 대해 진리냐 거짓이냐를 판단할 수 없고 ‘중립적’이다. 이것은 이성의 무능력이 아닌 이성의 능력이다. 이성이 구분하고 판단하고 경계 짓는 것을 멈추면 그 지점에서 지성이 열린다. 이때 지성은 신과 나 사이에서 형성된 의미를 발견하고 하느님이 직접 주신 빛의 인도를 받아 존재 전체를 열어 응답한다. 여전히 신을 보거나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려고 하는 강박없이, 동의가 되기에 좌절하지 않고 편안하다.
하지만 이성과 지성 자체가 믿음은 아니다. 이것은 믿음을 향한 매개이자 문이다. 머튼이 말하는 이해란 지성의 이해를 너머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내 온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접촉이란 사유의 대상이 아닌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만남이다. 의지의 통교란 내 의지와 하느님의 의지의 일치가 아닌 내 의지가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희망하는 것의 핵심적 실체’에서 실체(substance)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근저에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므로,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에 지금 여기서 참여하는 삶의 방식이다.
이런 믿음은 여전히 어둡고 불투명하다. 믿음이 깊은 사람일수록 내가 가는 암흑 속의 길이 맞는 방향인지 의심하고, 깊은 신비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물론 믿음을 감정적, 심리적 동의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무력감과 의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감정적 고양을 느끼지 못할 때, 자신이 구원된 것 같은 전율을 느끼지 못할 때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믿음이 깊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신학적 의심의 표시가 아닙니다. 자연적 불안과 그 불안으로부터 오는 고통에 대한 아주 정상적 의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믿음의 그 불분명함이 바로 완전한 믿음의 논거입니다... 믿음이 완전하면 할수록 점점 더 어두어집니다. 우리가 하느님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만든 관념과 개념으로 더 희미해집니다. 우리의 확신은 이런 불확신과 함께 증가합니다. ” 머튼은 말한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나약함을 더 강하게 느끼고 더 불안감을 느낀다고. 이는 하느님을 의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유한함을 자각하는 자연스러운 불안이라고. 우리가 하느님에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만들어 온 개념과 이미지들은 무너지고, 그만큼 확신은 더 깊어진다고. 그래서 믿음은 신비로 끝나지 않는다.
믿음은 삶으로 드러난다. 믿음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을 살아 있는 전체 안에 하나로 만드는 것이.“기에 그 속에서 우리는 그의 말씀만이 아니라 현존 자체에 ”예“라고 답하게 된다. 그렇게 믿음은 확신이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존재가 변형되고, 말이 아니라 삶이 된다. 그래서 믿음은 특별한 체험을 가진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가 신 안에서 어ᄄᅠᆫ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다. 그렇다면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삶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걸까?
나에서 생명의 장으로
최근 몇 달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무리하며 살아온 터라 몸이 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다 결국 번 아웃이 왔다. 아픈 동안 나는 낫게 해주면 선하게 살겠다고 기도했다. 나는 여전히 하느님을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으로 대상화하고 있었고, 침묵과 암흑 속에서가 아닌 내 안의 시끄러운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익숙한 셈법으로 하느님을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믿음을 생명의 장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기도의 중심이 바뀌었다. 병이 낫느냐, 낫지 않느냐 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하느님이 이 고통 안에 함께 계신다는 사실, 내가 생명의 장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모든 생명과 함께 하는 것이고 하느님은 내가 무리하며 살 때도, 아플 때도, 낫기를 바라며 기도할 때도 늘 함께 하셨고. 내일도 함께 하실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나는 더 이상 조급하게 낫게 해달라고 빌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그저 오늘 하루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이 몸으로 나와 타인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전과는 다른 강도로 조금씩 내가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갑자기 홀로 남으신 시아버지 식사 챙기고, 강의하고, 책 보고, 글 쓰고, 집안 일 하고, 연구실 나가고... 병이 당장 낫지 않는다고 두려워하거나 초조해할 필요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에 하느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건강이 회복 된 것은 아니지만 절로 평안해지고 일을 힘주어 하지 않게 되었다. 어깨가 가벼워졌다고나 할까? 나 홀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변과의 관계가 좀 더 원만해졌다. 뭔가 중심 축이 나에게서 생명의 장으로 옮겨간 느낌이랄까?
또한, 나의 기도는 내 상황을 바꾸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이 함께 하심을 알아차리는 자리가 되었다. 요즘 나는 기도 속에서 무엇을 이룰까?“를 묻는 게 아닌 ”이 자리에서 나는 어떤 태도로 하느님에게 응답하고 있는가?“ 를 묻는다. 그리고 나를 탓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 이것이 생명의 장에 참여하는 기도의 한 모습일 것이다. 나는 어ᄄᅠᆫ 태도로 하느님에게 응답하고 있는가? 생명의 네트워크에 어떤 식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참여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머튼이 말하듯, 믿음은 확신이 아니라 존재가 바뀌어 가는 것이며, 신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현장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믿음이 깊다“라는 말은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하지만 믿음이 소유가 아니라 참여라면 내가 신에 대해 무엇을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느냐로 드러난다. 믿음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지금 하느님 안에서, 생명의 장 안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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