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토마스 머튼 - 종교의 경계를 넘다

[토마스 머튼-종교의경계를넘다] 베스트 셀러 작가에서 우정의 사도로

by 북드라망 2025. 5. 22.

1부. 방황에서 지성으로, 지성에서 영성으로 1-4

 

베스트 셀러 작가에서 우정의 사도로

 

이 경 아(감이당)

 

『칠층산』의 성공과 작가로서의 자의식
수도원에서 보낸 첫날. 머튼은 수도원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에 수도원 추위에 미리 대비한다고 창문을 열어 놓는 바람에 심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감기로 인해 수도원에서 드리는 첫 전례에서 성가를 부르지 못했지만, 자신이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후로 머튼은 수도원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간다. 그의 수도 생활의 독특한 점이라면 바쁜 일과 속에서도 틈틈이 글을 썼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소설을 써 온 터라 글쓰기는 그에게 ‘본능’과도 같았고 자연스럽게 수도원에서도 계속되었다. 수도원장은 입회 초반부터 그의 글쓰기 재능을 알아채고 자서전을 쓰게 하는데. 이렇게 해서 나온 책이 『칠층산』이다.

 

출처-카톨릭일꾼



흥미로운 것은 『칠층산』이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점이다. 수도원에 오기 전, 소설과 시를 출판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매번 거절 당해왔던 터였다. 그랬던 그가 수도원에 들어와서 쓴 책이 출판되고, 그것도 밀리언 셀러가 되는 아이러니. 왜 사람들은 그토록 『칠층산』에 열광했을까? 1948년, 출간 당시 사람들은 원자폭탄과 홀로코스트 후유증으로 정신적 공허에 빠져 있었다.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가, 잘못을 하고도 아무 일 없듯이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사람들은 삶의 방향을 찾고 싶었다. 이때, 한 전도유망한 청년이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자유를 얻고자 수도원으로 들어간 자전적 이야기, 『칠층산』이 출간된 거다.

특히 『칠층산』이 전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성에 대한 고민, 지성을 실천하고 싶지만 매번 욕망 앞에서 무너지는 나약함, 제 2차 세계대전으로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동생을 잃는 아픔, 그리고 욕망을 조절하고 하느님 안에서 얻는 평화 등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적 울림을 주었다. 사람들은 머튼의 고민과 아픔에 공감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새로운 삶을 원했다. 그 결과 전례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을 찾았다. 70명이 정원이던 겟세마니 수도원은 270명으로 늘어났고, 공사 소음과 수련자들로 북새통이 되었다. 머튼이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다른 수도회로 옮길 것을 고민할 정도로 『칠층산』이 일으킨 수도원 열풍은 대단했다.

수도원 열풍은 33살의 머튼을 들뜨게 했다. 『칠층산』을 영화로 만든다면 게리쿠퍼가 주인공을 맡는 상상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세계 각국에서 온 팬레터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자의식이 올라왔다. 마치 자신이 대단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얻는 만족감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자신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 독은 어떻게 해서라도 핏속으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식탁에 놓인 음식을 아직 먹지 않아도 그 냄새가 머리로 들어가 몸을 부패시킨다. 병뚜껑만 냄새 맡아도 취한다. <『토마스 머튼의 영적 일기』, 174p>


 
성공에 대한 집착은 냄새만 맡아도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는 독이었다. 『칠층산』의 성공을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여긴다면, 그 순간 세상의 평판에 신경 쓰게 되고 계속 성공하려고 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름까지 포기하고 세상에서 죽은 자가 된 머튼의 수도생활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실제로 『칠층산』 출판 이후 머튼이 수도원을 떠났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머튼은 10년 전에는 내가 쓸 수 없었던 책이 여기 있다. 내가 겟세마니에 있고, 겟세마니가 돈을 필요로 하기에 이 책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토머스 머튼의 영적일기』, 174p>며 모든 성과를 수도원으로 돌린다. 그리고 수많은 팬레터에서 유명세가 아니라 그들의 고민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온다. 비록 수도원 규정상 답장을 할 수 없기에 기도 카드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칠층산』이 머튼을 세상에 알렸다면 다른 한편으로 『칠층산』은 머튼에게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다.


특별한 존재라는 미망에서 깨어나다
『칠층산』 출간 후 10여 년. 머튼은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세상보다는 아직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정화하는 게 더 중요했다. 깊은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사제 서품을 받고, 신학 관련 책들을 번역하고, 수도 생활에 관한 글을 쓰면서 수련원장으로서의 소임도 충실히 해 나간다. 그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세상과 멀어졌다. 그러다 보니 은연중에 세상과 분리되어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삶만이 거룩한 삶이고, 수도자란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 자신의 소명에 대해 방향을 전환하는 두 번의 사건을 만난다.

1958년 2월 28일, 그는 14살 정도의 어린 유대인 소녀가 애정을 표현하면서 자신을 껴안는 꿈을 꾼다. 그녀가 마치 자신의 영혼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그녀의 이름은 ‘proverb’(잠언)이었다. 성경 속 잠언 즉 지혜가 유대인 소녀로 형상화되어 나타난 거다. 기이한 꿈이었지만 머튼은 자신이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아내로 삼으려 했기에 이런 꿈을 꾼 것 같다며 넘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꿈이 잊히지 않았다. 그녀가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 순수한 사랑을 깨운 듯했다. 머튼은 잠언에게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여기던 것을 내 안에서 다시 찾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토머스 머튼의 시간』, 219p) 며 고마움을 전하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며칠 후 수도원 일로 루이빌 시내에 나갔다가 쇼핑센터 앞에서 뜻밖의 신비체험을 하게 된다. 그동안은 기도나 미사 중에 신비체험을 했다면 이번엔 달랐다.

 

어제 루이빌 4가와 월넛이 만나는 교차로에서 나는 갑자기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들 누구도 내게 이방인이 아니며 이방인이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내가 특별한 성소를 받아 그들과 분리되어 있고 그들과 다르다는 미망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내 성소가 내가 그들과 다르거나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인류의 한 구성원이며 나에게는 더 영광스러운 소명이 있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서 바로 인류의 일원이 되셨기 때문이다….(『토머스 머튼의 시간』, 220p)


 
도심 한복판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 그런데 신비롭게도 이들 모두가 며칠 전 꿈에서 만난 바로 그녀였다. 꿈에서 잠언을 만났을 때 깊은 영적인 면이 열렸다면, 이번엔 나와 타자의 경계, 수도자와 세상 사람의 경계가 무너졌다. 그들 모두에게서 원초적 생명력이 빛나고 있었고, 근원적 차원에선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지혜로 상징되는 한 소녀와의 합일을 넘어서 모든 사람과 합일되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자신이 해체되고 진리이자 예수님을 만난 그 순간, 그는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새로운 존재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머튼은 루이빌 체험을 통해 지난 17년간 수도자로서 가져왔던 생각이 단번에 깨진다. 어디에 있건 세상과 분리되는 건 불가능했다. 수도원이나 세상이나 모두 같은 세상이고, 우린 모두 같은 인류고 자신도 인류 중 한 명이었다. 무엇보다, 머튼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이유,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구현한 예수님이 인간으로 오신 이유에 주목했다. 예수님이 천사가 되었다면 우리와 아무런 공통성이 없기에 우린 하느님을 알 수 없다. 우린 예수님과 같은 인간이기에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을 알 수 있고, 따라 살 수 있다. 이제 머튼에겐 새로운 소명이 생겼다. 특별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같은 인류의 일원으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도가 되는 것이다. 사도란 예수님의 말을 전하고 행동으로 예수님을 드러내기 위해 파견된 사람을 말한다. 머튼은 예수님이 늘 약자들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봉쇄 수도원에 있지만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우정의 사도로서 세상과 연결되다
루이빌 체험 이후. 1958년 11월 10일 머튼은 교황 요한 13세에게 자신의 소명에 대한 편지를 쓴다.

 

  … 기도와 참회의 사도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저에게 충분하지 않습니다. 관상적 이해의 관점에서 이 세계의 정치적, 지성적, 예술적 그리고 사회적 운동에 대해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것은 전 세계에 있는 수 많은 지식인들의 정직한 열망과 그들이 직면해야만 하는 끔찍한 문제들에 대한 동정을 의미합니다…. 저는 수도원을 떠나지 않은 채 그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심지어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라는 노벨문학상을 탄 러시아 작가와 서신을 주고 받아왔습니다… 저는 세계의 다른 국가들 출신의 지성인들 모임에서 작고 제한되어 있었지만 사도직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단순한 우정의 사도직이었습니다. (『Thomas Merton a life in a letter』, p103, 번역)


 
이제는 세상과 분리되어 기도와 참회를 하며 하느님을 만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고독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독 속에서 세상을 만나야 할 때였다. 머튼은 관상적 이해의 관점에서, 즉 원초적 생명력인 하느님 안에서 우리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사회적 이슈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기 위해선 수도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세상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우선 자신이 작가이기에 작가들과 서로의 글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냉전으로 좌우가 나뉘었고, 공산당 독재로 인해, 소련이 동유럽을 짓밟던 시절이었다. 작가들 중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목숨의 위협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머튼 보다 25살이 많았던 『닥터 지바고』의 저자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다. 『닥터 지바고』는 영화로도 만들어졌기에 우리에게도 유명하다. 눈 덮인 우랄 산맥의 풍경과 음악이 압권이었다.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혁명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었기에 러시아에선 출판이 금지된 상태였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이 일로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소련 정부의 감시를 받았고, 소련 작가 연맹에서도 쫓겨났다. 평소에 그의 시를 좋아했던 머튼은 출판사를 통해 그의 소식을 듣고 그에게 편지를 쓴다.

그런데 뜻밖에도 머튼은 『닥터 지바고』의 여주인공 라라를 만난 적이 있었다. 라라는 몇 달 전 꿈에서 본 바로 그 소녀였다. 머튼에게 『닥터 지바고』는 복음으로 다가왔다. 주인공 유리와 라라가 어둠 속에서 걷는 땅은 에덴 동산이었고. 에덴에서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과 함께 걸었던 것처럼, 그들은 비록 어둠 속에서 걷고 있었지만 하느님의 손을 잡고 있었다. 『닥터 지바고』는 사람들이 아직 깨닫지 못하지만, 세상에 복음을 전하며 평화를 가져오고 있는 위대한 작품이었다. 머튼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서로 깊은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정치적인 문제로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자 머튼은 소련 작가연합 수장에게 『닥터 지바고』는 정치적인 선전물이 아니라 오히려 소련이 자랑스러워해야 할 작품이라며 항의를 하기도 했다. 헐리우드에서 『닥터 지바고』를 영화화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득보다 실이 많을 거라며, 자신도 『칠층산』을 영화로 만들려는 시도를 반대했다며 그에게 세심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머튼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게 절망 속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말고 자신 안에서 진리의 근원을 다시 발견하기를 기도하며. 다가올 크리스마스 미사를 그와 그의 가족을 위해 바친다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의 작품과 사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러시아어를 배운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머튼의 열정과 진실한 우정에 힘을 얻었다. 그는 머튼의 책에 대한 코멘트와 함께, 자신은 다시 일어설 것이고, 그런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답장을 보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개월 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심장병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로도 머튼은 교황에게 밝혔던 것처럼 폴란드 정부의 탄압을 받는 작가 밀로세즈등 많은 지식인들, 평화 운동가들과 우정을 나눈다. 그리고 점점 아메리카 인디언 보호, 인종차별 문제, 군비 경쟁과 베트남 전쟁 반대, 비폭력, 동·서양 종교 간의 일치와 교류로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처음에는 편지로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다 은수처(홀로 거주하는 곳)를 갖게 되면서 사람들을 은수처로 초대해서 직접 만나고 교류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이들과 친구가 되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쓴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반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쿠바에선 혁명이 일어났고, 미국은 베트남에 꾸준히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군비를 늘려갔다. 소련과 미국은 수백 번의 핵 실험만이 아니라 경쟁적으로 생화학무기를 개발했고, 미국민들은 집 마당에 앞다퉈 방공호를 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평화를 이야기하는 건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힐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머튼의 행보에 대해 가톨릭 내부적으로도 반대 의견이 있었다.

 

출처-카톨릭일꾼



하지만 머튼은 말한다. 다들 전쟁을 외칠 때 평화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세상과 우정을 나누는 일이자 수도자의 역할이라고. 머튼은 더 이상 세상과 분리된 베스트 셀러 작가가 아니었다. 그는 1968년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봉쇄 수도원에 있지만 세상과 연결되고, 서로 교감하고 평화를 만드는 우정의 사도의 길을 간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