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방황에서 지성으로, 지성에서 영성으로 1-5
병과 사랑을 너머 구도의 길로
이경아 (감이당)
자유분방함과 예민함의 충돌
본능적 자유분방함과 지성적 예민함. 머튼의 성격을 크게 두 가지로 꼽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선천적인 것으로. “정력이 넘치고 독립심이 강했”(『칠층산』, 34p)던 아버지와 “꿈 많은 성격에 완벽해지려는 커다란 야심으로 무엇이나 빈틈없었던”(『칠층산』, 35p)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지기보다는 유랑하며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던 아버지. 아버지는 무심코 생각이 떠오를 때 마다 성경 속 이야기를 한 마디씩 들려주면서 머튼에게 종교성을 심어주었다. 반면 어머니는 걱정 속에서 전전긍긍하며 자신을 절제하며 살았다. 그녀는 5살짜리 머튼에게 쓰기와 읽기를 체계적으로 시킬 정도로 자녀 교육에 열성이었다. 부모의 성향은 머튼에게 이어졌고, 그는 자신의 욕구를 펼치길 좋아하면서도 자신과 타자를 관찰하고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성장했다.
이런 성향은 그의 삶으로 드러나는데. 어린 시절에는 보물섬 놀이를 좋아하며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고 영웅이 되길 꿈꾸고, 아버지 유랑 길에 만난 낯선 사람들 틈에서 눈치를 보는 식으로. 학창 시절에는 유럽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고, 피카소와 재즈,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글을 쓰고 문학과 역사와 철학으로 사유를 확장시켜 나가는 식으로. 밤새 술을 마시고는 아침에 출근하는 노동자를 보면서 수치심과 절망감을 느끼는 식으로. 성욕을 맘대로 발산하고는 프로이드와 융을 통해 자신을 분석하는 식으로. 그는 “무슨 행동에나 뒤따라오는 이 이상한 염려, 이 자의식적 주의(注意)”(칠층산,350p)로 인해 늘 편치 않았다.
수도원 입회 초반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의식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곳에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자신을 절제하고 하느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그에겐 엄격한 수도원 일과와 노동, 단식과 순명 모두 기쁨이었다. 수도원에서 그의 자유분방함은 성욕이나 영웅심이 아니라 공감으로, 예민함은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지적 통찰로 확장된다. 머튼은 숲을 거닐며 나무와 새, 사슴 등 자연과 교감하고. 침묵 속에서 관상을 통해 하느님께 더 다가가려 했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카톨릭이 당연시 여겨온 왜곡된 전통들, 예를 들어 수도자는 세상의 일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것이나, 수도자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는 선민의식,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는 식의 신앙이나 교리, 금욕주의 등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오래된 신학 텍스트들을 분석하고, 글을 쓰며 기쁘게 지낸다.
하지만 1949년 수도원에 들어온 지 8년 째, 수도원 생활에 고비가 찾아온다. 『칠층산』이 일으킨 수도원 열풍으로 겟세마네에 수련자들이 밀려든 거다. 수도원은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식당과 숙소를 재정비해야 했고 분원들도 더 지어야 했다. 게다가 수도원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들리는 트랙터 소음으로 인해 수도원이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상황. 수도사들이 있지만 사제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 많았기에 당시 사제 서품을 받은 머튼은 더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머튼은 수도회 설립 100주년 행사 준비와 수도원에서 내는 성가 음반에 대한 해설을 써야 했다. 새롭게 조직된 수도원 소방대도 맡아야 했고 출판사와 계약한 글들도 써야 했다. 활동이 많아지니 관상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관상가가 되기 위해 수도원에 왔는데 지나친 활동으로 관상할 시간이 부족하다니. “나는 과로로 쓰러질 준비가 된 관상가다. 이것은 죄요 벌이다.”(『토머스 머튼의 영적일기』, 380p~381p) 며 머튼은 초조해진다. 그는 과거처럼 자신의 무분별한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이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관상가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기질은 병을 부르고
결국 수도원에서 책임져야 할 활동들은 늘어나고 수련자들을 위한 신학 강의까지 맡으면서 번 아웃이 오고 말았다.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하려고 하는 그의 성격은 신학 강의 준비에 많은 에너지를 쏟게 했고. 열정과 과로가 겹치면서 35세 혈기 왕성할 나이였지만 미사 중에 쓰러지고 만다. 코와 폐에 이상이 생겨 코 연골을 잘라내고 페니실린 치료를 받고 겨울에는 독감을 달고 산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나친 활동으로 인해 자신이 관상가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증폭되고. 은수처가 있는 다른 수도원으로 옮겨야 하는 것은 아닌지, 글쓰기를 포기하고 관상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깊어지면서 신경쇠약 증세가 나타난다. 이후 은수처 문제로 수도원장과 계속 부딪친다.
과로와 신경쇠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것은 그의 자유분방하면서 예민한 기질 탓이기도 하다. 그는 콜롬비아 대학 시절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들인 교지 편집장, 공부, 운동, 아르바이트 등등 많은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고. 의지하던 외조부모의 연이은 죽음과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 겹치면서 불면증까지 앓았다. 급기야 “자, 저 창문 밖으로 투신할 생각은 없나?”라는 환청을 듣는다. 신경쇠약에 심한 위염까지 겹치면서 당시 의사는 활동을 줄이고 안정을 취하라는 처방을 내리기도 했다. 그의 복잡한 성향은 열과 관련된 병도 불러왔다. 그는 어려서부터 열병을 종종 앓았다. 10살 무렵에는 열병으로 생사를 넘으며 학교 부속 진료소에서 몇 주 동안 지냈고, 팔꿈치에 난 종기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치통은 거의 평생 그를 괴롭혔다. 제 2차 세계대전에 징병되지 않았던 이유도 치아 개수 부족이었다. 20대 초반에 치아 개수 부족이라니! 덕분에 그는 전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신경쇠약은 수도원장이 머튼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면서 조금씩 해결되었다. 머튼은 처음에는 서고에서 짧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1953년에는 쓸모없게 된 연장 창고에서 하루에 몇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관상에 너무 성급했고, 자신을 비우지 않은 채 환상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려고 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을 성찰하며 비워간다. 불안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관상과 활동, 글쓰기가 상보적인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65년, 그는 10 여년의 수련원장의 소임을 충실히 마치고, 마침내 은수처를 갖게 된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관절염에 걸렸고, 일 년 반 동안 피부염 때문에 장갑을 껴야 했고, 점액낭염이 있는, 켄터키에서 온 이후 이런저런 만성병을 가진 환자가 되었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 폐는 이상한 점으로 얼룩져 있고, 늘 설사를 하고 항문에서는 자주 피가 나고, 치아는 거의 다 상했고, 머리카락은 다 빠져 대머리에 목뼈가 튀어나왔으며, 손은 자주 마비를 일으키고 어깨가 쑤신다. 이렇게 열거하니 마치 다른 사람의 일 같다. 그러나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다! (『토머스 머튼의 시간』, 445p)
그토록 원하던 은수처를 갖게 되었지만 그의 건강은 50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그야말로 종합병원이다. 여기엔 그의 기질만이 아니라 당시 병을 보속(벌을 대신하는 것)으로 여기는 수도원 분위기로 인해 건강을 소홀히 한 측면도 있다. 각종 염증에, 듬성듬성 남아있는 머리카락. 폐는 나빠졌고 몇 개 남지도 않은 치아는 그마저 거의 다 상했다. 오래 앉아서 기도하고 글 쓰고 책을 읽다 보니 위장도 나빠지고 자세도 안 좋아져 경추가 튀어나왔다. 이제 글을 몇 줄 쓰지 않았는데도 손이 마비되어 수술을 받지 않으면 손을 못 쓰게 될 만큼 허리 상태가 심각했다. 평소 수술 만능주의에 반대했기에 수술을 원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1966년 3월 25일 루이빌에 있는 병원에서 척추 수술을 받는다. 그리고 병원에서 뜻밖의 사건을 만난다. 25살 간호 실습생 M과의 만남!
두려우면서 경이로운 사랑
M과 가까워진 것은 M이 부활절 휴가를 떠났을 때였다. 가식 없이 솔직한 그녀의 성격 덕분에 빨리 회복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중략) 나는 동료 수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에는 매력을 별로 느끼지 못하지만 여성들과의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등의 정서적 필요는 깊이 느낀다.( 『토머스 머튼의 시간』, 458~459p)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이곳저곳 떠돌았던 머튼. 그의 가슴 한 구석에는 인간적인 애정과 정서적인 교감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수술을 받았지만 자신을 헌신적으로 간호해주는 M을 만난 덕분에 건강도 빨리 회복이 되었다. M이 휴가를 떠난 사이 머튼은 문득 그녀의 빈자리를 느낀다. 그리고 은수처로 돌아 온 지 사흘째. “한 가지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과 자유로 열리지 않은 고독은 아무것도 아니다.”(위의 책, 460p) 머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사랑에 빠져버렸고 그 사랑은 이미 그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고독을 위한 고독이 아니라 사랑으로 열리는 고독이라는 통찰을 하게 된 것이다. 고독 속에 머무르기 위해 신경쇠약이 올 정도로 은수처를 원했고, 은수처를 얻고 나자 병이 악화되어 척추 수술을 받게 되고, 수술로 인해 M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로 인해 고독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아이러니! 그는 자신의 생활이 방해받을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은수처를 개방하기로 마음먹는다.
M의 편지를 시작으로 둘의 본격적인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서로 장거리 전화를 하고 편지를 주고받고, 몰래 만나고. 물론 이 모든 것은 수도원 규율에 어긋나는 것이다. 머튼은 “나 또한 두렵다. 두려우면서도 경이롭다. 성적 매력과는 다르다. 물론 내 신분에 대한 갈등은 없다. 나는 서원을 했고, 서원 생활에 충실해야 한다…그럼에도 두려운 순간이 있지만…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위의 책, 467~468P)며 앞으로의 일이 두려웠지만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M을 놓치고 싶지도 수도자의 길을 포기할 마음도 없었다. 정결 서원을 한 수도자로서 우정 어린 사랑을 하고자 했다.
“나는 그렇게 단순하고 자발적이고 온전한 사랑을 본 적이 없다. 내게도 인간적 사랑의 능력이 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흘러나올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의 사랑에 대한 나의 응답은 내 삶의 깊은 곳에 숨어있던 것이 열리는 것으로,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토머스 머튼의 시간』, 471~472p)
그동안 머튼은 자신 안에 있는 의심과, 불안. 불합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신을 긍정하는 만큼 타자를 긍정할 수 있기에 머튼은 자신의 결핍과 모순으로 인해 타자에게도, 하느님에게도 온전히 다가가지 못했다. 관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새로운 의심과 불안이 생겨났다. 그런데 M의 헌신과 온전한 사랑을 통해 자신의 모든 불합리와 모순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게 된 거다. 입회 전 여러 번의 연애 경험이 있었지만 그때는 서로를 이해하기 보다는 성욕이 먼저였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하느님과의 영적인 사랑과는 다른 인간적인 사랑. 머튼은 자신을 잊고 M과 하나가 되었고 온전히 자신이면서 M이었다. 그것은 M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야 말로 머튼이 그토록 원하던 타자와의 일치의 순간이 아닌가! 이 순간 머튼은 자신의 깊은 곳에 숨어있는 하느님을 만난다.
애착을 너머 구도의 길로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사랑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지난 20년 동안 완전히 통제했다고 여긴 성욕이 올라온 거다. “늘 그렇듯 성에 대해 초조해하면서 그 지배에서 물러나 성이 폭군으로 변할 수 있음을 의식한다”(위의 책, 476p). 그리고 M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 “…우리가 서로한테서 찾은 것은 쉽게 잃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소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으로 서로 깊이 사랑한다 하더라도 함께할 수 없는 데서 오는 지독한 외로움과 박탈감과 목마름을 느끼게 된다.”(위의 책, 489P) M과의 사랑을 통해 자신을 잊고 M과 하나가 되었고, 하느님을 만났다. 이것은 분명 머튼에게 고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성욕이 올라오면서 소유욕이 생겨나고 있었다. M이든, 사랑이든, 하느님이든 뭔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일 뿐.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고 하면 갈망만 남는다. 그런 갈망은 서로를 번뇌와 파멸로 이끌게 될 뿐이었다.
머튼은 내적인 욕망의 변화를 진솔하게 주시한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자신이 은수자로 지내면서 외로웠고, 몸까지 무너지자 내적 공허함을 대면하려 하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인간적인 사랑에 의지하게 되었음을, 결국 사랑이 성욕으로, 성욕이 소유욕으로, 소유욕이 애착에 이르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애착의 원인을 알게 되자 멈춘다. 그리고 자신의 성소(거룩한 부르심)의 의미를 떠올리며 회피하고자 했던 공허를 대면한다. 내적 고독 속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성소, 관상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나만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해, 심지어 M을 위해서도 주어진 선물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를 헛되이 하고 어리석게 사라지게 할 수 없다….그렇게 되면 결국은 나뿐 아니라 M도 망치게 될 것이다.”(위의 책, 490p) 마침내 머튼은 M과 모두를 위한 길을 찾았다. 자신에게 선물 즉 은총으로 주어진 관상을 M을 포함한 세상 모두를 위해 쓰기로 마음먹는다.
M과 헤어지고 나서 머튼은 이상한 꿈을 꾼다. 겟세마니 수도원이 불타는 꿈이었다. 그도 건물 안에 있었는데 다행히 작은 불구덩이를 지나 무사히 밖으로 나왔다. 건물이 다 타지는 않았지만, 물건은 모두 타 버린 꿈이었다. 그의 꿈은 M과의 사랑에 대한 갈망을 다 태워버리고, 수도사로 남아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머튼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뜨거운 사랑 앞에서, 작은 불구덩이를 지나는 정도로 무사히 통과했다. 그는 인간적인 사랑을 거부하지도 애착에 머무르지도 않았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나 자책을 하기도 하지만, 온전히 자신과 M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사랑과 애착의 원인을 알아차리고 멈춘 것은 그를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했다. 그가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세상을 향해 나아 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랑의 경험 때문이 아니었을까?
'토마스 머튼 - 종교의 경계를 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마스 머튼-종교의경계를넘다] 베스트 셀러 작가에서 우정의 사도로 (1) | 2025.05.22 |
---|---|
[토마스 머튼-종교의경계를넘다] 2차 세계대전과 수도원 입회 (2) | 2025.04.22 |
[토마스 머튼-종교의경계를넘다] 스승과 브라마차리와의 만남 그리고 지성의 폭발 (0) | 2025.03.25 |
[토마스 머튼-종교의경계를넘다] 방황과 열정 사이 (0) | 2025.02.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