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土) : 중심과 포용의 에너지 ─ 중심을 세우고 다름을 품는 힘 (1)
김 지 영(남산 강학원)

연결의 플랫폼, 흙
땅은 가리는 것이 없다. 흙은 물을 빨아들이고, 불을 가두고, 나무를 키우고, 금속을 품는다. 심지어 쓰레기도 머금고 똥도 품는다. 더 놀라운 점은 모든 오물들을 받아들여 오히려 자신을 더욱 비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행 중 흙을 상징하는 토는 생명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스펙트럼이 가장 넓다고 볼 수 있다. 땅은 만물을 품으며 서로를 뒤섞이게 하는 연결의 플랫폼이다. 토가 만물을 포용하며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은 토가 가진 ‘중심성’이다.
토(土)의 중심성은 ‘사이’와 ‘마디’를 넘어가는 힘이다. 토(土)는 ‘목-화-토-금-수’ 오행에서도 가운데에 위치해 있으며, 계절로는 ‘환절기’에 해당한다. 뜨거운 여름에서 서늘한 가을로 넘어갈 수 있도록 매개해 주는 역할이다. ‘양’의 기운이 절정에 달하는 지점에서 곧장 ‘음’으로 넘어갈 수 없다. 이전 계절의 기운을 거두고 다음 계절의 기운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행은 입자처럼 경계가 명확하게 분절되어 있지 않다. 순환하고 운동하는 기운이기 때문에 한 구간을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래서 여름에서 가을뿐만 아니라, 각 계절 계절마다 그 사이에는 ‘토’의 시기가 있다. 각 계절이 마디를 넘어갈 수 있는 것은 ‘토’가 그 사이를 매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위로도 ‘중앙’에 속한다. 계절의 가운데이고, 위치적으로도 중앙이라고 하니 마치 빛나는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센터 본능을 상상하기 쉬운데 그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자기만의 색깔이 뚜렷한 목, 화, 금, 수와 달리 토는 중앙에 위치해 있지만 돋보이려는 오행이 아니다. 네 개의 기운이 잘 순환할 수 있도록 바탕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에 비유하면 주인공으로 나온 게스트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의 전체적 흐름을 주도하는 MC에 해당한 달까. 오히려 전체를 조율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는 힘에 가깝다. ‘중앙’이라는 위치성도 전체를 아우르며 총괄하는 구심점 역할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토 기운에 해당하는 오장육부는 ‘비’와 ‘위’다. 둘은 짝꿍처럼 ‘소화’와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에 흔히 ‘비위’라고 한다. ‘비위가 좋다’, ‘비위 상했다’ 등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은 실제로 소화 장기를 칭하는 전문 용어이다. 비위는 바깥에서 흡수한 온갖 것들을 보관 후 소화시켜 영양분을 몸 곳곳에 전달한다. 토 기운이 왕성하면 소화력이 좋기 때문에 그만큼 많이 먹게 된다. 토와 살집이 연결되는 이유이다. 반대로 토 기운을 잘 쓰지 못하면 먹어도 소화가 잘 안 되고 예민해지기 쉽다. 그렇다면 만물과 뒤섞이면서도 세상에 휘둘리지 않는 흙 에너지를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
낯선 것을 품을수록 비옥해지는 땅
MZ세대는 각자가 지닌 고유성과 개성이 존중받길 원하고, 다양한 의견과 스타일이 공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시대를 불문하고 청년들은 기존 세대와는 다른 낯선 문화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고유한 트렌드를 만들어 왔다. MZ는 ‘욜로(You Only Live Once), 요노(You Only Need One), 워라밸, 소확행, 맥시멀리즘, 미니멀리즘 등’ 자신들만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욜로를 외치다가 어느새 요노로 변화하기도 하고, 명품관 오픈런과 골프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절약과 당근(중고매매) 열풍이 불기도 한다. 그들만의 N개의 라이프, N개의 정체성은 한껏 혼잡해 있다.
그러나 MZ세대는 다양성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세계만’을 소비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과 다른 차이를 지닌 타자를 불편해하는 것을 넘어서 차단하고 혐오하기도 한다. ‘페미, 한남, 일베, 펨코, 잼민이, 급식충, 영포티, 꼰대, 틀딱’은 나와 다른 성별과 세대를 조롱하고 배척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들이다. 그중 우리나라 젊은 세대의 남녀갈등은 세계 어디에서도 없었던 기이한 현상으로 손꼽히고 있다. 세대 갈등은 있었어도, 몇 천년 간 어느 시공간에서도 청춘남녀가 서로를 갈라치기 하며 공격했던 적은 없었다. 정치적 성향에서도 2030의 남녀 표심은 매 선거가 치러질 때마다 점점 차이가 커지고 있다. MZ세대인 우리 스스로도 이러한 현상이 기이하고 두렵다.
이는 MZ세대의 신체성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MZ세대의 고질적인 신체 문제 중 하나는 소화력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식탐이 많고, 엄청나게 많은 양을 먹지만 소화를 잘 시키지 못 한다. 역류성 식도염, 과민성 장증후군, 위염을 달고 산다. MZ가 지닌 소화기 질환의 원인은 ‘밤’에 가장 자극적인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행위이다. 혀가 얼얼해지는 마라탕, 온몸이 아플 정도로 매운 떡볶이, 각종 소스로 범벅된 치킨을 자기 전에 먹는다. 여기에 술까지 얹으니 속에서는 불이 난다. 비위는 밤새 잠을 잘 수 없게 된다.
실제로 27살의 나의 남편도 IT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데, 늦게까지 일을 하고 들어오면 나와 맨날 야식을 먹었다. 일을 한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밤에 먹는 것으로 보상을 주는 것이다. 나도 회사를 다닐 때에는 밤에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느 시점부터는 습관이 되어 밤이 되면 자동으로 자극적인 음식들이 떠올랐고,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입에 무언가를 계속 넣고 싶어졌다. 나는 토 기운이 왕성하여 사실 먹은 후에도 금방 소화가 되어 잠을 잘 잤지만, 남편은 그러지 못한다. 와구와구 먹은 뒤에 소화가 안 되어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식탐은 많지만 소화를 시키지 못하면 ‘혐오’라는 감정에 쉽게 빠지게 된다. 혐오는 나와 다름을 소화하지 못한 채 체해버린 감정이다. 내 안에서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으로 변해야 할 차이들이 소화되지 못해 곧장 ‘불편함’과 ‘거부’로 치환되는 것이다. 토의 기운이 왕성한 사람은 음식을 소화하듯 세상의 다양성과 다름을 곱씹어 자기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소화력이 떨어지면 음식은 고통이 되고 ‘나와 다름’은 곧 적대가 된다.
우리는 자신과 비슷하거나 공감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만 안전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땅도 그러할까?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가 있다. 동일한 면적의 두 개의 땅이 있는데, 한 곳에는 한 종의 씨앗만을 뿌린다. 그리고 다른 한 곳에는 서로 다른 몇몇 속의 씨앗을 뿌린다. 과연 어떤 곳에서 더 많은 식물과 건초가 자라날까? 바로 서로 다른 씨앗들을 뿌린 땅이다. 나와는 이질적인 생물들이 많은 조건에서 오히려 생명력이 더 활발발하다는 것이다! 자연의 메커니즘에 따르면 오히려 나와 먼 존재들과 혼잡하게 섞여 있을 때 자기 자신을 보존할 확률이 높아진다. 땅은 상이한 것들이 서로 얽혀있어야 생명을 잘 키워내며 스스로도 비옥해진다.
땅은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취하여 품지 않는다. 만물 각각이 지닌 차이를 제거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땅으로 흡수한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띄워주는 피드와 나의 의견에 동조하는 커뮤니티 밖으로 나와 보자. 흙은 오물까지 품어내면서 스스로를 기름지게 만든다. 흙의 기운으로 낯선 세계를 포용하는 만큼씩 우리도 비옥해질 것이다.

삶의 중심을 잡는 프로듀서
그럼 차별 없이 세상의 모든 잡다한 것들을 품어야 하는가? 그렇게 몽땅 받아들이면 더 혼란스러워 지지는 않을까? 그래서 필요한 것이 ‘자기중심성’이다. 흙은 모든 것을 내부에 담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외적인 것들을 있는 그대로 흡수하지만 결국 그것들을 흙으로 만들어 자기화한다. 낯설고 불편한 것들과 교감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힘’이 토가 가진 주체성이다.
MZ세대가 겪는 근본적인 괴로움은 삶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도가 없으니 부모와 학교가 알려주는 대로, TV와 SNS에서 보여주는 대로 삶의 루트를 따라가게 된다. 그 루트의 끝에는 ‘성공’이 자리 잡고 있다. 무엇을 성공해야 할까? 남들보다 많은 돈을 버는 데 성공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일단 돈을 많이 벌면 성공한 삶이 된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그들은 충만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어린 시절 나의 소원 TV 속의 그들처럼 지금 살고 있는데도 왠지 슬퍼 외로운 건 여전해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이 가사는 GD가 직접 썼다. 그는 모든 이가 부러워할 만한 외적 조건이 채워진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모두의 부러움을 받던 그 순간에 정작 그는 ‘내가 행복한가? 행복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누구한테도 기댈 수 없을 때 그의 속은 곪아갔다.
많은 연예인들은 가장 사랑받는 시기에 ‘공황장애’ 등 정신적인 괴로움도 동시에 겪는다. <신서유기>, <강식당> 등에서 사랑받던 아이돌 멤버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동료, 팬들이 있는데 무엇이 나를 즐겁지 못하게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카메라가 꺼지면 삶이 비극처럼 느껴졌다는 말 속에는 엄청난 무력감과 공허함이 느껴진다. 가까이에 멤버들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더 큰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토는 시간상으로는 환절기이며, 공간상으로는 중앙이다. 환절기가 없으면 가을을 맞이할 수 없고, 중앙을 잡지 않으면 어디를 동쪽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즉,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심을 잡지 못하면 이 낯선 마디를 넘어갈 힘을 잃고,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인지하기 어렵다.
우리는 외적인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되어도 삶을 포기한 여러 아이돌을 보았다. 그리고 정상급 스타들이 겪는 불면증, 공황 장애, 알 수 없는 공허함에 대한 고백도 수없이 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의 삶을 동경한다. 완벽한 외모, 화려한 의상, 세계적인 인기, 엄청난 부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나’만은 다를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외적인 것을 아무리 부어대도 차오르지 않는다.
우리가 삶의 주인이 되는 데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인식의 지도다. 어떻게 살 것인지, 삶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세상의 요동에 휩쓸려 나를 잃지 않게 된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잡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토 기운이 전체를 총괄하며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내 인생의 총괄 프로듀서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삶의 전체적인 중심 컨셉을 기획하고, 그 설계에 맞춰 일상을 조율하는 디렉터가 되는 것이다.

─ 다음 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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