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木) : 나무는 숲이 되어 서로를 살린다 (1)
- 새로운 세계를 여는 힘 -
박 보 경(남산강학원)

청년은 청춘이다? 청춘은 살기 싫다!
오래전부터 ‘청년(靑年)’은 ‘청춘(靑春)’이었다. 푸를 청(靑), 봄 춘(春). 청춘은 푸른 봄날이고, 청년의 시기는 푸른 봄의 기운을 지니고 사는 때라는 의미다. 젊고 활기차며 생동감 넘치는 시기를 청년기라 부르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푸르른 봄을 떠올려보자. 차가운 땅 위로 바람이 불어와 봄을 알리고, 바람이 지나는 자리마다 땅에 온기가 퍼진다. 겨울 동안 꽁꽁 얼었던 땅은 봄바람에 녹고, 땅속에서 온몸 가득히 기운을 품고 있었던 씨앗은 봄이 되면 품었던 기운을 분출한다. 초록빛 새싹들은 거침없이 땅을 뚫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기운 덕인지 봄에는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고,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람들은 약속한 듯이 새해가 오면 새롭게 한 해를 계획하고, 새로운 다짐을 한다. 이 모든 건 봄기운에 취해서 벌이는 짓이다. 봄은 잠들어있던 생명을 꿈틀거리게 한다. 봄은 새로운 시작의 때다.
추운 겨울, 땅 속에서 기운을 품고 있었던 씨앗은 봄이 되자 품었던 기운을 과감하게 분출한다. 꽁꽁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작은 새싹을 보라. 목표를 정해 한 곳을 바라보고 돌진한다. 봄에 피어오르는 새싹처럼 얼어있는 세상을 깨우고, 새롭게 나아가는 힘은 오행(五行) 중 첫 시작인 ‘목(木)의 기운’이다. 꽁꽁 얼었던 대지를 뚫는 새싹의 힘! 하늘을 향해 뻗어가는 나무! 새싹, 넝쿨, 나무와 같은 속도감과 운동성을 가진 모든 물성과 기운을 ‘목’, 혹은 ‘목의 기운’이라 부른다. 자라고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힘을 떠올리면 된다. 공자가 이야기 한 인(仁)의 덕목은 따뜻한 목 기운과 닮았다. 금(金)이 칼날 같은 단호함으로 세상을 내려친다면, 목은 생명을 살리는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깨운다. 또 순수하고 이타적이다(^^) 새롭게 튀어나온 새싹, 갓 태어난 아기를 떠올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목의 기운은 동서양 모두에게 해당한다. 동서양의 단어 속에 목 기운이 지닌 뜻이 담겨있다. 목 기운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청색’인데, 청색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그린(green)은 ‘살아있는, 왕성한’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재밌지 않은가? 또 봄을 뜻하는 스프링(spring)은 분출하고 튀어 나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렇게 활발한 기운인 목(木)은 ‘청년기’를 상징한다. 목-화-토-금수 오행을, 생로병사를 통과하는 인간사로 바꿔 본다면 청년, 중년, 장년, 노년의 스텝이다. 청년의 기운이 목(木)이라면 청년은 돌진하는 새싹, 왕성하게 자라는 푸른 나무여야 한다. 청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새롭고, 푸르고, 역동적인 나날을 보내는 시기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 21세기 대한민국 청년이 겪고 있는 현실은 어떤가? ‘OECD 청년 자살률 1위, 은둔・고립 청년 54만 명’. 수치는 해마다 두 배씩 뛰고 있다. 봄날의 청춘은 어디로 간 걸까?
생명이 상품이 된 세상 :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대한민국 ‘평범한 학생’으로 살아온 나에게 삶은 ‘달리기’였다. 고등학교 3학년, 첫 시험이 끝난 며칠 뒤, 학교 복도 게시판엔 전교 1등부터 20등까지 이름이 적힌 종이가 한 장 붙여졌다. 종이에는 이름과 함께 과목별 점수, 등수가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선생님들은 고3인 우리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종이를 붙였다고 했다. 학교는 온종일 시끄러웠지만 20등 안에 들어오지 못한 수많은 친구는 그곳에 없는 존재였다. 종이에 이름이 적힌 친구들은 ‘특별반’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독서실 자리를 배정받았다. 그날의 모든 것은 내 몸에 생생하게 각인되었다. 낱낱이 공개된 점수에 불쾌해 하면서도 뒤처진 친구들을 보며 안도하는 내 모습, 전교 1등을 한 친한 친구에게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기쁘지 않은 마음, 특별한 존재가 된 것처럼 잠시 들떠 있었던 상태……. 동기부여 효과는 확실했다. 고3 내내 나는 낙오자보단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대학생이 되었고, 달리기는 더 넓은 경기장에서 다시 시작됐다. 스펙 쌓기, 학점, 취업 등 통과해야 할 문은 바늘구멍처럼 좁은데 달리는 사람은 전보다 더 많아졌다. 책을 읽으며 나누었던 좋은 가치는 모두 취업 이후로 유예되었고, 강의실에서, 도서관에서, 캠퍼스 안 사람들은 옆 사람을 경계하며 열심히 달렸다. 끔찍했다. 출발 호루라기는 진즉에 불어졌는데,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학점은 계속 바닥을 찍었고, 어느새 나는 내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낙오자’가 되어 있었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고 온종일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결국 휴학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반년 가까운 시간을 말없이 방에서 지내며 21살의 나는 은둔・고립 청년이 되었다.
33세 서준영(가명) 씨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일자리를 잃었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간신히 이어가던 생계마저 끊기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는 절망에 스스로를 방 안에 가뒀다. 집을 ‘감옥’이라 표현한 그는 은둔 생활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스스로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을지 모른다며 두려움을 털어놨다. 그가 방문을 다시 열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쉬었음’ 너머 ‘단절’ 은둔청년 54만명>, 더팩트 뉴스, 2025.10.08.)
한동안 은둔・고립 청년에 관한 기사나 영상을 자주 찾아봤다. 내가 겪은 일을 많은 사람들이 겪는다는 게 신기했다. 사회에선 ‘은둔・고립 청년’이라는 이름표까지 붙여줘 졸지에 은둔・고립 경험 스펙도 하나 생겼다. 관련 유튜브, 기사 곳곳에서 이전의 내 모습이 보였다. 매일 밤 뒤척이며 ‘나는 왜 남들처럼 잘 안될까?’ ‘내가 이상한가?’ 자책하고, 매일 아침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자신을 닦달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은둔하는 기간 동안 나는 내가 쓸모없고, 나약한 사람인 게 제일 괴로웠다. 초라한 내가 부끄러워 누구를 만날 수도, 집 밖을 나갈 수도 없었다. 이런 청년이 많아진 세상이라니! 그땐 ‘유별난’ 내가 ‘특이한’ 일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통’의 일이 되었다. “집 밖으로 나와라!” 사회 곳곳에서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아니다. ‘긴급구호‘다. 요즘엔 의도적으로 활동을 포기하는 ‘쉬었음 청년’이 떠오르는 중이다. 쉬었음 청년은 실업급여와 청년수당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바깥보단 방 안에서 머무르기를 선택한다. 가까운 주변에도 많다.

반면 ‘집 밖 청년’도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할 뿐, 똑같이 무기력하다. 배달 음식 용기, 대소변 휴지, 택배 봉투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쓰레기집’. 집 주인으로 등장하는 청년들 중 몇 명은 방송국 PD, 승무원, 변호사 등 정규직 직장인이었다. 집에 오면 침대에 누워 멍하니 쇼츠를 넘기고, 때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에 놓인다. ‘만사가 귀찮고, 피곤한 무기력 타파하는 법!’ ‘공허의 시대: 충만하게 사는 법’ 유튜브엔 무기력, 공허, 무의미에 대한 영상이 쏟아진다. 조회수 백만을 훌쩍 넘고, 공감하는 댓글도 많다. 은둔・고립 청년의 특징이라고 여겨지는 ‘대인기피, 무기력, 강박증, 우울, 밤낮 바뀜, 돌발적 행동, 감정 표현 서투름’은 사실 청년세대의 보편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집 밖에서 열심히 달리는 사람과 집 안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 모두 지쳤다.
왜 이렇게 됐을까? 은둔하거나 무기력한 모습은 물질적이거나 물리적인 결핍 현상이 아니다. 확신하건대, 단연코 아니다. 성장 위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모든 것, 심지어 사람까지 ‘상품’으로 물화(勿化)시켜 생명을 소외시킨다. 이 장에선 상품으로 팔린 노동력은 사회경제적 가치를 부여받아 생존했지만, 팔리지 않는 노동력은 가차 없이 배제되었다. 무한 증식하는 자본의 경기장 위에서 우린 더 좋은 상품이 되기 위해 끝없는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모두 뒤쳐질까 불안해 떨며, 돈과 성공을 욕망한 채 열심히 달린다. 불안과 욕망의 소용돌이에 포획되어 다들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덕분에 MZ세대는 물질적으로 가장 풍족한 세대이지만, 정신적으로 가장 빈곤한 세대가 됐다. 급속한 산업화는 눈부신 영광을 가져다줬지만 그 이면에서 우울과 좌절이 자라나고 있었다. 풍족함 속에서 길러진 높은 기준과 기대는 저성장 현실 앞에서 처참히 무너졌다. 폼 나는 직업, 많은 돈, 멋진 얼굴과 몸매, 쿨 한 성격……. 미디어와 SNS에 등장하는 멋진 모습들 외의 삶은 다 ‘낙오된’ ‘가치 없는’ 인생으로 배제했다. 우리가 자초한 일이다.
위에서 주지했듯 청년은 그 자체로 목(木)의 에너지가 가득하다. 목 기운은 이제 막 땅을 뚫고 올라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새싹의 힘이다. 새싹의 때엔 열매를 맺을 수도, 꽃을 피울 수도 없다. 가장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거짓 SNS 시대, 가상 세계 속 ‘보이는’ 타인, 끝없이 비교하고 경쟁하는 마음,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 내가 진짜 욕망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1등을 향해 달려야 하는 삶. 이 모든 게 뒤엉켜 ‘불가능한’ 현실을 꿈꾸곤 좌절한다. 좌절은 습관이 됐다. 우린 기본을 망각한 채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목 기운으로 충만한 청년의 새싹은 시작도 하기 전에 땅속에 주저앉았다. 자라나는 나무는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생장을 포기했다. 한반도만의 일도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성장 고점을 찍은 일본에는 최소한의 욕망으로 살아가는 ‘사토리 세대’가 있다. 중국에는 드러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탕핑 세대’가 등장했다. 물질적 성장만을 향해 달려온 동아시아, 생명까지도 상품으로 바꿔버린 이 땅에 내려진 형벌을 지금 청년들이 받고 있다.

나는 경기장에서 빠져 나왔다. 누구와도 경쟁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면 내가 좀 멋져 보이겠지만, 실은 그 반대였다. 마지막 남은 한 명까지도 결국 죽음으로 내몰릴 게 뻔한 싸움이었다. 무엇보다 정신적 불안과 물질적 욕망의 틀에 갇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짓을 더 이상 그만하고 싶었다.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다. 질주하는 세계는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단 하나의 생명도 남기지 못하는 황폐한 공간일 뿐이다.
─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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