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火) : 세상을 밝히는 ‘빛’-되기 (1)
─ 무성하게 성장하고 꽃을 피우는 힘
김 지 영(남산강학원)
열정적으로 성장하는, 화(火)
목의 계절이던 봄이 지나면 여름이 온다. 봄에 올라온 새싹들은 여름이 되면 가지와 잎이 하늘을 가릴 만큼 무성해진다. 더 높이, 더 넓게 사방팔방 자신을 펼쳐낸다. 봄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만물을 깨웠다면, 여름은 본격적으로 왕성하고 가열차게 위아래로 뻗어 나간다. 단순히 사이즈만 커지는 것이 아니다. 연둣빛 잎사귀는 녹음이 쨍하게 짙어지고, 찬란한 꽃들로 온 동네가 화사해진다. 사계절 중 가장 많은 꽃이 피는 시기이기도 하다. 만물이 너도나도 내부의 생명력을 바깥으로 드러내며 화려하게 자신을 뽐내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만물이 그러하듯 사람도 여름의 스텝에서는 자신 안의 생명력과 엄청난 재능을 밖으로 발휘하고자 한다.
여름은 사계절 중 가장 뜨거운 계절이다. 봄에 움튼 양기가 여름이 되면 본격적으로 왕성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은 오행 중에서도 양기 덩어리인 화(火)와 연결된다. 불은 기본적으로 위로 치솟을 뿐만 아니라 양옆으로도 팽창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작은 불씨가 큰불이 되어 높은 건물이나 산을 순식간에 장악하는 걸 상상해 보라. 본인의 영역을 가열차게 확장해 나가며 현장을 지배하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현장을 장악하기 때문에 자신감도 넘친다. 그래서 화 기운이 강한 사람은 본인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치솟으며 주변을 태우는 불처럼 나를 확장하고 싶고 주변을 다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글쓰기』, 강보순 외 6인, 북드라망, 75쪽)

또한 활활 타오르는 불은 내부의 에너지를 가동하여 바깥으로 모두 발산하기 때문에 열정적이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하고 있는 사람 옆에 가면 실제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말 ‘열’나게 ‘정’을 태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의 성질은 ‘빠른 속도, 실행력, 활동력’으로도 이어진다. 화 기운이 발달한 사람은 무언가에 꽂혔을 때, 손과 발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계획을 세우거나 예상되는 문제점을 고려하기도 전에 일단 치고 나가는 것이다. 실행력이 좋고, 속도도 빠르다. 실제로 화 기운이 발달한 친구들은 꽂힌 게 있으면 서슴지 않고 시도한다. 바쁘게 본업을 하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신만의 개인 사이드 프로젝트를 동시에 실행한다. 마치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예열 없이 바로 액셀을 꽉 밟으며 달리는 것과 같다. 열정도 넘치고 스피드한 처리 능력 때문에 눈에 띄는 일잘러이지만, 그만큼 체력이 금방 고갈된다. 발산하는 힘은 좋지만 그만큼 내부로 수렴하는 힘은 약하기 때문에 그 간극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은 주변을 데우며 동시에 환하게 밝혀주기도 한다. 태양이 내뿜는 빛은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 약 8분의 시간이 걸릴 정도로 아주 멀리 있다. 하지만 그 빛은 지구에서 가장 존재감이 강렬하다. 어두운 방 안의 작은 촛불, 깜깜한 새벽 거리의 가로등도 환하게 비추며 어둠을 밝힌다. 혼란스러운 어둠 속에서 이것과 저것을 분별하게 해주기 때문에 ‘예(禮)’의 덕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 기운이 강하면 낯선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다. 자신을 태워 ‘바깥’을 비추기 때문에 상황 판단력이 좋고, 타인에 대한 관심도 많다.
빛과 열이 없으면 생명체는 살아갈 수 없다. 불은 모든 생명체를 살리고 키운다. 빛으로 광합성을 하고, 열로 신체를 데우며 항상성을 유지한다. 우울하고 에너지가 떨어질수록 어두운 곳에 있길 원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생명과 직결된 장기인 심장 역시 ‘화’에 배속된다. 그렇다면 지금 MZ는 생명 에너지로서 화 기운을 잘 활용하고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나와 세상을 살리는 ‘빛’이 될 수 있을까?
‘빚’내서 ‘빛’나는 존재, MZ
몇 년 전이었다. 친하게 지낸 지인A가 언제부턴가 카톡으로 주식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주식을 하며 투자된 돈이 불어나는 맛을 본 그의 눈은 어느새 ‘$$’ 모양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리딩방’(메신저에서 금융상품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 사기를 당했다. 리딩방에서 추천 받은 종목을 사기 위해 가족에게 거액을 빌려 투자했으나 마이너스가 된 것이다. 반전은, 이후에도 지인은 여전히 주식 투자를 진행 중이다.
두 번째, 지인 B의 이야기. 갑자기 걸려온 B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지금 급하게 집을 사야 하는데, 당장 계약에 필요한 현금을 조금 빌려달라는 부탁을 어렵사리 하였다. 본인의 돈이 어딘가(?)에 묶여 있어서, 당장의 계약금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게 B는 지인과 가족에게 돈을 빌려 계약금을 지불했고, 대출을 받아 집을 매매했다. 리모델링까지 진행된 컬러풀하고 안락한 그 집에서 B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동료 C의 이야기. Z세대 C는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고급 차와 아파트를 동시에 구매했다. 그 거액을 어떻게 충당했을까? 역시 대출이다. 그는 고급 차를 누가 긁을까봐 아무 곳에나 주차하지 못하는 부자유를 누렸고, 대출 받은 아파트는 전세로 내놓고 정작 자신은 원룸에 살고 있다.

영끌족과 빚투(빚내서 투자)를 하는 청년들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30대 이하 가구의 평균 부채는 2020년 이후 20% 이상 빠르게 급증하는 추세다. 또한 청년층의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전체 대출의 73%를 차지한다.(한국은행 금융안전보고서) 이는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이다. 부채가 생긴 이유로는 ‘주택 관련 부채’ 다음으로, ‘자산투자를 위한 부채’가 가장 높았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돈을 불리기 위해 돈을 꾼다’는 것! 당장 먹고사는 일상이 무너졌다거나 긴급한 이슈로 빌리는 것이 아니다. 번듯한 직장이 있고 일상에 문제가 전혀 없음에도 그저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MZ는 서슴없이 빚을 지는 중이다.
실제로 동료나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주제에도 ‘주식, 코인, 부동산’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백수든 직장인이든,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을 다니든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투자를 필수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적금, 예금만 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 투자 주제에 빠지지 않고 곁들여지는 말이 있다. “대출도 능력!”이라는 것. 청년들은 대출받은 돈으로 ‘더 큰 돈’을 버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며, 빚을 내는 것 대해 그 어떤 부채감도 없다. 빚을 떠안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당장의 투자 기회를 놓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MZ들이 이렇게 빚을 내서까지 투자에 올 인하는 이유는 ‘떼돈’이다. “엄청 큰돈을 만지고 싶다”(26세, 빚투 투자자)는 욕망이 그들을 고위험군에 거침없이 뛰어들게 만든다. 몇 천, 몇 억의 돈을 당겨쓰는 그들의 태도는 자못 담대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 부자가 됐을까? 가장 상승세였던 장에서도 20대의 수익률은 고작 0.2%였고, 그중에서 가장 공격적인 20대 남성의 수익률은, 유일하게 마이너스 수익률이었다. 그럼에도 유튜브와 각종 콘텐츠에서는 하루아침에 몇 십억 부자가 된 성공 신화들이 청년들을 자극한다. 하루아침에 코인으로 300만 원에서 30억이 된 친구들의 인터뷰들이 넘쳐난다. 인터넷 방송에서는 자신의 투자 종목을 과감하게 공개하고, 실시간으로 돈이 날뛰는 모습을 생중계한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 또한 함께 보여준다. 강남 고층 아파트에 살며, 여러 대의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식사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한다. 그리고 명품 쇼핑으로 마무리하는 초호화 일상! 영상을 보는 청년들은 박탈감에 휩싸이며 혹하게 된다. 매일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아가며 노동하느니, 클릭 몇 번의 투자로 일확천금을 버는 삶이 훨씬 더 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이렇게 ‘큰돈’을 만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우리의 절박한 사정이 있다. 지금 청년들은 고단하게 노동하여 열심히 저축해도 자산을 형성하기 어렵다. 사회 초년생들이 200~300만 원의 월급을 받아서 최소한으로 소비하며 몇 십 년을 저축해도 서울에 집 한 채를 살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나는 큰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지만, 역시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삶이 윤택해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출퇴근하는 버스에 앉아 빽빽한 고층 아파트촌을 바라볼 때면 “저 수많은 아파트들 중에서 내 집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실 앞서 내가 큰돈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단념한 것일 뿐, 내 안에도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은 작지 않았다. 억눌려 있을 뿐이었다.
청년들이 이런 불만을 드러내면 윗세대는 말한다. 어린 나이에 왜 벌써 집을 살 생각을 하냐고. 일 열심히 해서 차곡차곡 저축하다 보면 때가 되면 돈은 다 생기게 된다고.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1년 동안 500만 원을 예금으로 저축해도 겨우 10만 원이 이자로 쌓일까 말까 한다. 폭등하는 집값과 무섭게 치솟는 밥값으로 점점 빈곤해지는 지갑은 청년을 폭주하게 하거나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래서 MZ는 주식과 코인에 저절로 눈을 돌리게 된다. 부족한 임금을 보완해 줄 자산을 통해 돈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큼의 돈을 소유해야 불안이 해소될까? 10억? 100억? 500억? 1,000억? 아마 평생 먹고 놀아도 충분한 일확천금이 생긴다면 행복해질 거라고 확신할 것이다. 또한 충분한 돈만 생기면 투자도 그만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돈으로 그린 행복에는 어떤 모습이 있을까? 넓은 집, 고급 외제 차, 명품 등…. 물질을 통해 빛나고 싶어 한다. 우리가 돈으로 획득한 행복은 감각적 쾌락에 집중되어 있다. ‘돈’과 ‘쾌락’은 한계와 멈춤 없이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치닫는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가진 ‘불’의 속성이다. 맹목적으로 부와 쾌락을 증식시키는 곳을 향해 질주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배치를 바꿀 수는 없을 노릇이다. 이러한 배치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쾌락은 불에 속성 중 열(熱)과 닮았다. 열은 영역을 무한히 확장해 나가며 자신을 태운다. 실제로 『동의보감』에서는 우리 몸이 열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병이 낫기도 하고 커지기도 한다. 없어서는 안 되지만 다스리지 못하면 나를 집어삼킨다. 그런데 화(火)는 열이기도 하지만 ‘빛’이기도 하다. 열이 물질과 쾌락에 맞닿아 있다면, 빛은 ‘정신과 자유’의 방향이다. 빛이란 물질이 아닌 ‘정신’으로부터 반사된다. 우리는 물질적 결핍에는 민감하고 불안해하면서, 왜 정신적 결핍에는 무관심할까? 행복의 초점을 오로지 ‘물질적 욕망’ 안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신적 고양’, ‘자유’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으니깐 막연히 어렵게만 느껴지고 나중으로 미루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좇다 큰 시련을 겪고 나서야 ‘영성과 지혜’를 탐구하려고 한다.
내가 돈에 대한 불안과 집착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방향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나는 돈에 의해 행복이 좌지우지되는 존재보다 돈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이 더 멋있어 보였다. 벌어도 벌어도 끝이 없는 굴레 속에 사는 삶보다 배우면 배울수록 세상과 연결되는 삶이 진정한 행복으로 보였다. 그 길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스승들이 있었다. 특히 지금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 시대를 보낸 ‘간디’와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이다. 간디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길이 ‘자발적 가난’이라고 했다. 그의 삶은 그것을 증명하듯, 그는 자발적으로 가난했고, 그러했기에 자유로웠다. ‘아파리그라하(무소유)’라는 길을 걸어가며 만물을 비추는 고귀한 빛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천재 아인슈타인은 또 어떤가. 아인슈타인의 부인은 아인슈타인이 항상 입던 낡고 해진 옷을 숨겨서 못 입게 할 정도로 검소하고 소탈한 생활을 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매일 수백 번씩 되새긴다. 나의 내면적, 외형적 삶이 살아있거나 이미 숨진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수고에 의지함을. 따라서 내가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는 것만큼 돌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나는 검소한 생활에 마음이 끌리고 또 내가 다른 사람들의 노고를 지나치게 많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을 때로는 강박감을 느끼면서 인식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상대성이론/나의 인생관』, 최규남 옮김, 동서문화사, 247쪽)
아인슈타인은 노벨평화상으로 받은 상금도 전 부인에게 넘겼고, 많은 자산을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운동에 사용했다. 간디와 아인슈타인은 물질로 자신을 장식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세상을 배우고 읽으려 했다. 내면에서 나오는 빛으로 자연의 이치를 탐구할수록 자유로웠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비전과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세상을 읽고, 연결되는 길! 그렇다고 당장 우리가 간디와 아인슈타인처럼 모든 돈을 버리고 살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욕망을 ‘빛’으로 사용하는 길을 스승들이 열어놨음을 주지하고 싶었다.
청춘은 내부 에너지가 가장 넘치는 시기이다. 아인슈타인은 20대에 상대성 이론을 만들었고, 붓다는 30대에 깨달음을 얻었다. 청년의 생명력으로부터 용출된 빛은 만물을 살릴 만큼 강력하다. 우리 이제 생명을 태우는 ‘빚’의 불을 끄고, 나와 세상을 살리는 ‘빛’으로 방향을 돌려보자!

─ 다음 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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