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은 왜 멋이 없을까? (1): E SENS – What The Hell
송우현(문탁네트워크)
최근 <쇼미더머니 12>에 출연한 ‘Royal 44’(이하 포포)라는 래퍼가 모 팟캐스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래퍼들이 싫어요. 저를 그런(랩하는) 사람들과 같은 부류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냥 돈 벌려고 노래도 하고 랩도 하는 건데...” 최근 꽤나 인지도를 쌓아가던 래퍼의 발언이었기에 힙합팬들의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 그와 함께 몇 년 전 화제가 됐던 이찬혁의 가사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 도 다시 소환되었다. 공교롭게도 이찬혁의 가사 역시 <쇼미더머니 10>에 피쳐링으로 출연하여 부른 가사였다. 이에 대해서는 박재범, 창모, 로스와 같은 많은 래퍼들이 ‘힙합을 욕해도 당사자들이 욕하겠다’의 반응을 보이며 불편함을 보였다. 이번 포포의 발언에는 국내 힙합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래퍼 중 한 명인 이센스가 입을 열었다. “왜 요즘 래퍼들은 힙합을 ‘구닥다리’ 취급하죠? 지한테 득이 될 때는 힙합이고 지 좀 피곤해지면 힙합 좋아하는 사람들 바보 취급하면서 특별한 척 하죠?”
힙합은 왜 누군가에게는 멋이 없다고 느껴지며, 누군가에게는 그 말이 굉장한 상처 혹은 콤플렉스로 작용할까? 나에게도 이 질문은 굉장히 중요했다. 한편으로는 래퍼이자 힙합팬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공부를 하면서 래퍼와 힙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면서, 수시로 갖게 되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달과 다음 달 두 번에 걸쳐, 힙합이라는 문화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 대해 다루어 볼까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힙합만큼 자기애가 강하게 느껴지는 음악은 드물다. 자신의 옷과 장신구, 랩 실력이나 당당한 태도,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며 자신의 ‘쿨함’을 뽐내는 것, 또 그를 위해 상대적으로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 힙합이라는 장르의 가장 규격화된 문법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힙합은 자존감의 음악이며, 자신의 자존감을 위해 불특정 다수를 자신의 ‘헤이터’(Hater)로 규정한다. 하지만 단순히 힙합을 폭력적이고 자기애적인 문화라고만 볼 수는 없다. 래퍼들에게 경제력과 외면적 요소들을 가꾸는 게 중요했던 것은 힙합이 근본적으로 흑인, 즉 소수자들로부터 시작된 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종차별과 경제적 핍박으로부터 살아남고자 했던 전략 중 하나는 돈과 외면적 요소들에 집착하는 것이었고, 힙합이라는 문화가 점점 대중화되면서 정말 ‘힙합으로 성공’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었다. 요컨대 래퍼들이 추구하는 멋은 자신의 소수자성을 드러내면서 그에 대한 괴로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방식은 수 많은 연습으로 만들어진 탁월한 리듬감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을 울리는 가사가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옷과 경제력을 ‘극복의 상징’으로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사실 랩 실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런 종합적인 태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오늘 소개할 곡은 내가 생각하는 ‘힙합의 멋’을 아주 잘 담아내고 있는 래퍼, 이센스의 ‘What The Hell’이다. 이센스의 음악을 들어보면 그는 ‘진실함’, ‘가식 없는’, ‘앞 뒤가 다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를 굉장히 중요시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이들을 ‘가짜’로 규정하며, 자신이 얼마나 ‘진짜’인 사람인지 증명한다. 그가 정말 ‘진짜’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재밌게도 난 이센스가 ‘가짜’일 수 없다고 확신한다. 그 근거는 이센스가 랩을 뱉을 때의 발음, 발성, 가사, 리듬, 심지어는 뮤직비디오에서 보이는 그의 제스쳐와 태도, 패션이다.
하지만 세계는 달라졌다. 과거의 힙합의 맥락과는 전혀 상관 없이 힙합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힙합은 대중화됨에 따라 다양한 욕망들이 개입되고, 각자 나름대로의 문화를 새롭게 재정의해 나갈 뿐이다. 그러면서 힙합의 탄생배경과 그 맥락을 알고 있는 세대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힙합을 재정의해 나가려는 세대의 갈등이 일어난다. 나는 이번 포포의 발언과 과거 이찬혁의 가사가 정확히 그런 갈등이라고 본다. 신세대가 더 이상 기존 힙합의 문법을 ‘멋있다’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 그러나 힙합의 맥락을 잘 알고 있는 구세대들은 그런 신세대들의 언행이 불편한 현상. 말하자면 세대에 따른 문화 변동의 과도기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서 최근 <쇼미더머니 12>가 구작들에 비해 어느 세대들에게도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점, 힙합을 두고 호불호 논쟁이 심화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 같다. 다음 편에서는 신세대가 힙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들이 재구성하려는 힙합은 어떤 형태인지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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