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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노래

[지금, 이 노래] 자괴감의 파도를 이기는 리듬 충전 ― Joe Pass의 The Song Is You

by 북드라망 2026. 3. 6.

자괴감의 파도를 이기는 리듬 충전 ― Joe Pass의 The Song Is You

정승연 (『세미나 책』 저자)

 

 

 

극소수의 친구들의 제외하면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을 강의나 세미나를 통해 만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받는 질문이 있는데 ‘글이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나요?’, ‘책이 안 읽힐 때는 뭘 하나요?’ 같은 질문이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와 같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이기도 하지만 3분의1쯤은 ‘진짜 글쓰는 거 너무 힘들어’,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죽겠어’ 같은 감정을 토로 하는 것이다. 나라고, 아니 누구라도 시간 내에 써야할 글을 써내야 하고, 읽어야할 글을 읽어내는 것은 힘들다. 진짜로. 하루 종일 초조하기도 하고 잘 안 될 때면 우울해지고 심지어 다 쓰고, 다 읽고 나서도 자괴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렇다. 이 자괴감이 특히 문제인데 쓰면 쓸수록 내 발상의 하찮음과 표현력의 남루함이 선명해지기 때문에 이 자괴감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물론 다 쓰고나면 한결 시원한 기분으로 자괴감을 느낄 수 있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

그렇기 때문에 공부하는 인간에게는 자괴감의 파도가 몰아칠 때 붙잡고 있어야 할 뭔가가 필요하다. 글이 안 써질 때 뭘 하는지, 책이 안 읽힐 때 뭘 하는지 묻는 것도 똑같다. 그 질문들이 글이 안 써지고 안 읽혀서 패배감 같은 것이 들 때 뭘 하는가를 묻는다는 점에서 ‘자괴감’ 문제와 통하는 데가 있는 셈이다.

나의 경우는 그래서 음악을 듣는다. 이럴 땐 이런 음악, 저럴 땐 저런 음악 같은 걸 생각해 놓기도 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두 세시간쯤 디깅(음원 사이트에서 추천곡이나 그 때그때 생각나는 음반을 탐색하는 행위)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음악을 듣다보면 잃어버린 ‘리듬’이 슬며시 돌아올 때가 많다. ‘리듬’! 이게 정말 중요하다. 글 쓰기와 글 읽기와 음악 듣기의 공통점이라면 바로 리듬이 있다는 점 아닐까? 이 페이지를 쓰다가 한번에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듯이, 이 음표에서 저 음표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펼쳐져 있는 노트들을 하나하나 거쳐서 가야만 한다. 그 ‘하나’와 ‘하나’ 사이의 공백에서 리듬이 만들어진다. 글도 똑같다. 여기서 저기로 가기 위해 필요한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장치를 거쳐야만 한다. 우리가 글을 쓰다가 막힐 때는 대부분 조급하게 그걸 뛰어넘으려고 하면서 그 ‘사이’를 대충 넘어갈 때인데 대개는 그렇게 리듬을 잃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리듬’을 다시 찾는 게 중요하다.

음악을 듣다보면 그 리듬이 다시 돌아올 때가 많다. 이건 조금 기묘한 감각인데, 글의 리듬과 음악의 리듬은 같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곡예하듯 리듬을 타는 연주를 듣고 그 리듬을 쫓다보면 내 안의 리듬박스가 다시 충전되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최근 몇년 사이에 가장 많은 글을 쓰고 있는 요즘, 그에 맞춰 음악을 듣는 시간도 꽤나 늘어났다. 다시 말해 심적으로 꽤나 괴롭다는 이야기. 어쨌든 그런 상태에서 자주 듣는, 전설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조 패스가 1973년 발표한 앨범 Virtuoso 덕에 침몰을 면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트랙 The song is you를 추천한다. 앨범 타이틀 그대로 거장의 면모를 팍팍 드러내는데, 그가 쏟아내는 초절정의 기교를 듣고 있자면 그 어떤 어려운 문제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때 중요한 것은 쉽게 해낼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아니라 간신히 해낼 수는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실제로 조 패스의 연주가 그렇다. 간신히, 리듬이 깨질 것 같은 데 지켜가고, 엉뚱한 노트를 찍을 것 같은 데 정확하고 그 조마조마한 감각에 동조되다 보면 애써서 못할 일이 없다는 기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물론 조 패스 같은 거장은 일부러 그런 느낌을 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내 멘탈을 부여잡는데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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