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명 작곡가의 ‘뽕’ : 250 – 모든 것이 꿈이었네 (Feat. 김수일)
송우현(문탁네트워크)
(250 - 모든 것이 꿈이었네)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
‘이사의 성수기’라고 불리는 3월이다. 어쩌다 보니 나도 거처를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나는 문탁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항상 ‘선집(문탁의 공동 주거 프로젝트)’에서 살아왔는데, 이젠 ‘선집’의 존속과 나의 개인적인 비전, 애인과의 관계를 함께 생각하게 되면서 이 일은 단순히 거처를 옮기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상황인데, 문탁네트워크의 웹진인 ‘MOON*MAG’을 런칭하고, 세미나도 개강하면서 그야말로 나는 포화 상태다. 이럴 때 나는 온갖 잡생각을 지워줄 음악이 필요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의 몰입력을 가진 음악이.
여기서 ‘몰입력’은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걸 말할 수도, 오히려 아주 슬프고 절절한 음악일수도 있다. 오늘 내가 소개할 음악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느껴진다. 적당히 리드미컬하면서도, 아주 깊게 느껴지는 감동이 있다. 전자음악 프로듀서인 ‘250’의 ‘모든 것이 꿈이었네’다.
이 곡은 한국대중음악상 4관왕을 차지했던 [뽕]의 1번 트랙이다. 이 앨범은 제목처럼 소위 ‘뽕’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힙합이나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들던 250은 ‘뽕’ 혹은 ‘뽕짝’이라고 불리는 음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게 단순히 촌스럽거나 저급한 음악이 아니라 나름의 문법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고유의 장르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동묘의 오래된 전자악기 상가, 고속도로 휴게소, 콜라텍, 음악 평론가 등을 찾아다니며 ‘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이 영역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았다.(‘뽕을 찾아서’. 유튜브 채널 ‘BANATV’에서 감상이 가능하다)
‘모든 것이 꿈이었네’는 그 과정에서 만난 작곡가 김수일씨의 작업물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김수일씨는 ‘신빠람 이박사’의 오랜 음악적 동료이자 시력이 거의 없는 시각 장애인이다. 앞도 보이지 않고 치아도 많이 빠졌지만, 전자 피아노를 현란하게 다루며 ‘뽕짝’을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코리안 스티비 원더’, 또는 ‘뽕스 짐머’라고 부를 만하다. 김수일씨는 녹음된 작업물이 거의 없다. 어릴 적부터 가수를 꿈꿨다는 김수일씨는 음반사에서 시각 장애인을 받아주지 않아 작곡가로서 곡을 팔아 왔다. 그러다 ‘영혼의 파트너’ 이박사를 만나 일본에서 음반을 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에게 음악을 한다는 건 녹음된 작업물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직접 연주하면서 곡 자체를 몸에 새겨 넣는 과정이었다. 다큐멘터리 ‘뽕을 찾아서’ 4화에서 김수일씨는 세상에 나온 적 없는, 하지만 본인의 몸에는 선명히 남아 있는 곡을 들려준다. 그 곡을 250이 녹음하여 다듬어낸 곡이 ‘모든 것이 꿈이었네’다.
저 하늘의 별들은
저마다 이별 없이 살려나
오늘따라 저 달은
왜 이다지 밝을까
외로운 내 마음에
벗이 되려 밝을까
괴로운 이 마음에
희망 빛을 주려나
달과 함께 벗이 되어
옛이야기 주고받다
깊은 잠을 깨고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네
250 – 모든 것이 꿈이었네 (김수일 작사/작곡)
시적인 가사와 서정적인 트로트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이라며 이 노래를 소개할 수 있지만, 직접 들어보면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음질을 의도적으로 낮춘 보컬, 현대적인 전자 악기들의 올드한 멜로디, 리드미컬하면서도 잔잔하고, 아주 깊으면서도 가볍다. 특히 마지막에 살짝 들리는 김수일씨의 “내가 가수가 아니니까..”라며 멋쩍게 말하는 부분은 김수일씨의 고단했던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250이 찾고자 했던 ‘뽕’도 결국 그런 게 아닐까? 말하자면 한 사람의 희로애락을 담은 문화적 정서 같은 것 말이다. 하나의 기술적 장르라기보다는, 특정한 시대상을 그려낼 수 있는 문화적 감각. 그렇게 말하면 ‘뽕’은 올드하거나 유치한 음악이 아니라, 지나간 시대의 아련함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뽕짝’에서 흥겨움과 감동이 함께 느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나간 지 오래되었지만, 우리에게 미세하게 남아 있는 아련함. 250이 말아주는 ‘뽕’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지친 하루를 위로받고 싶다면, 이 곡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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