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엔 막스 리히터(Max Richter) ― Sleep
정승연( <세미나책> 저자)
바야흐로 잠들지 못하는 시대다. 커피, 담배, 차, 초콜릿, 설탕까지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잠을 깨우고 정신을 맑게(?) 만드는 ‘각성제류’의 기호품을 개발하고 즐겨왔다. 20세기에 폭발한 산업화에 맞춰 그렇게 개발된 생활밀착형 각성제들 역시 대량생산 대량소비되어 왔는데, 100여년 쯤 그렇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지칠 때도 되었나? 언젠가부터는 어떻게하면 잘 잘수 있는지가 화두가 되었다. 마트에서도 살 수 있는 수면보조 성분, 멜라토닌제, 명상법, 수면용품까지 ‘잘 자기 위한 상품’들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그리고 그 중에 어지간한 건 나도 다 해봤다.
요즘들어 가끔 나는 ‘인간으로 사는 일은 정말 피곤해’라고 혼잣말을 할 때가 있다. 시간에 맞춰 뭐뭐뭐를 해야하고, 때에 맞춰 뭐뭐뭐를 하고, 상대의 기분을 가늠해가며 뭐뭐뭐를 하다보면 정말이지 인간으로 사는 일이 피곤하다. 그 모든 일을 하다보면 잘 시간을 놓치고, 한번 놓친 잘 시간은 어지간해서는 다시 돌아오질 않는다. 어떤 날에는 그러다가 새벽 4시까지 말똥한 정신으로 깨어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 또 다음날 밀려들 피로와 싸울 생각에 피로해지고, 피로해서 자려고 하면 또 해내지 못한 일들에 대한 걱정으로 피로해 진다. 너무너무 피곤한데 도무지 긴장이 풀리지 않는 상태에 빠져있다보면 5시다. 그럴 때는 그냥 스툴에 발을 올리고 의자에서 잔다. 오늘 소개하는 음악은 그럴 때 듣는 음악이다. 무려 러닝타임이 약 8시간에 달하는, 제목부터 [Sleep]인 이 곡은 처음 발매되었을 때(2015)부터 꽤 화제가 되었던 곡이다. 왜 아니겠는가, 저마다 잠들지 못하는 이유들로 넘쳐나는 세상에 화제를 몰고오기 딱 좋은 컨셉이었다. 막스 리히터는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서 신경과학자 등의 도움을 받아 자는 동안 내내 틀어놓으면 수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음향을 만드는데 집중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현대의,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자장가랄까. 헤드폰을 끼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찌나 지루한지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든다. 나름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나마 다행인건 의자가 불편해서 서너시간쯤 지난 후에는 잠이 깬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 싶어서, 요즘(약 한달 전쯤?)은 아예 수면주기를 당겨버렸다. 8시 전에 자리를 깔고, 8시 무렵이 되면 일단 누워버린다. 그렇게 잠이들면 꼭 12시쯤 깨는데, 이때가 중요하다. 이때 다시 잠이들지 못하면 아침까지 다시 잠들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다시 잠들면 3, 4시쯤 깬다. 이때 일어나서 책도 읽고, 글도 쓰다보면 아침이 된다. 그러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수가 없다. 이 기분 좋음에 매달려서 현재까지는 그래도 성공적으로 자고, 일어나는 패턴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 와중에 아래에 있는 음악을 듣는다. 이건 위에 소개한 [Sleep] 앨범의 축약버전으로 ‘자기 전’에 듣는 용도로 개발된 앨범, 제목마저 재미있는 [from Sleep] 앨범이다. [Sleep]의 무시무시한 러닝타임과 비교해 딱 알맞는 정도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고, 기분 탓인지 마그네슘 캡슐 한 알 삼키고 듣고 있자면 긴장이 풀리기도 한다.
고작 자겠다고 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상황이 하나의 거대한 농담 같아 자괴감이 들곤하지만, 그래도 기왕 벌어진 일을 어쩌겠나 싶기도 하다. 나름 방법론적 실용주의를 자처하는 입장이기도 하여 어떻게든 자기만 하면 그게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지는… 오늘도 8시에 잠들면 좋겠다!
'지금, 이 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지금, 이 노래] 어느 무명 작곡가의 ‘뽕’ : 250 – 모든 것이 꿈이었네 (Feat. 김수일) (0) | 2026.03.23 |
|---|---|
| [지금, 이 노래] 자괴감의 파도를 이기는 리듬 충전 ― Joe Pass의 The Song Is You (0) | 2026.03.06 |
| [지금, 이 노래] 다양성을 포용하는 케이팝 : XG – HYPNOTIZE (0) | 2026.02.20 |
| [지금, 이 노래] 미친 세상에서 정신을 붙드는 법 ― 마빈 게이(Marvin Gaye)의 What's happening brother (0) | 2026.02.10 |
| [지금, 이 노래] 카탈루냐의 팝스타, 성녀로 돌아오다 (0) | 2026.01.23 |
| [지금, 이 노래] 그 찬란했던 황금기, 바로 지금 ― Pulp의 Spike Island (0) | 2026.01.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