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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노래

[지금, 이 노래] 다양성을 포용하는 케이팝 : XG – HYPNOTIZE

by 북드라망 2026. 2. 20.

다양성을 포용하는 케이팝 : XG – HYPNOTIZE 

송우현(문탁네트워크)

 


사실 나는 어릴 적부터 케이팝과 거리가 멀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흔히 ‘홍대병’ 혹은 ‘힙스터’라고 불리는 현상과 다르지 않았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나는 케이팝 아이돌들이 남들이 써준 곡, 써준 가사, 만들어준 안무에 맞춰 움직이는 ‘예쁜 인형’과 다를 바 없다고, 케이팝은 ‘진짜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대 후반이 된 지금, 웬만한 사람들보다도 케이팝에 관심이 많고, 또 좋아한다. 케이팝에 대한 나의 편견이 없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케이팝 자체가 하나의 대중문화로써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재즈나 알앤비, 블루스, 힙합과 같은 흑인음악이 기존 주류 음악의 틀을 깨부수면서 등장했듯이, 나아가 주류로써 혼합되고 또 새롭게 변주되고 있듯이, 케이팝 또한 하나의 장르이자 문화로써 한국 대중문화로 자리매김했다. 게다가 최근엔 블랙핑크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적 성공을 통해 그야말로 ‘글로벌 문화’가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 소개할 곡은 케이팝 그룹 ‘XG’의 첫 정규앨범 타이틀 곡, ‘HYPNOTIZE’다. XG는 아주 독특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XG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기획사 ‘XGLAX’ 소속이지만, 일곱 명의 멤버들 모두 일본 국적을 가지고 있다. 거주와 앨범 준비는 주로 일본에서 하는 듯하지만, 활동은 기본적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며, 그런 만큼 가사는 대부분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 한마디로 ‘영어 가사를 쓰는 일본인들로 이루어진 케이팝 그룹’인 것이다. 이런 복잡한 정체성 때문에 일부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는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기도 하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없으면서 한국 문화인 케이팝을 표방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맥락이다. 물론 이 논리는 말이 안 된다. 이런 논리는 흑인들이 백인이나 동양인들이 ‘힙합을 훔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맥락인데, 이는 이미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문화를 ‘우리만의 것’이라고 우기는 민족주의나 다름없다. 문화는 이미 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뻗어 나가고 있고, 세계는 다양하게 그 문화를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내가 XG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이런 다양성에 매력을 느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프로듀싱의 밸런스가 굉장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곡을 쓰는 작곡가의 능력뿐 아니라, 전반적인 방향성을 잡는 컨셉, 그와 어우러지는 곡, 가사, 안무, 의상, 뮤직비디오 등... 그리고 그것을 받쳐주는 탄탄한 멤버들의 실력까지. 그야말로 내가 일종의 ‘종합예술’처럼 여기는 케이팝의 정수를 아주 잘 담아낸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한 멤버는 직접 삭발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등(심지어 그 멤버는 최근에 자신의 새로운 성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이돌의 ‘금기’처럼 여겨지는 것들을 하나 하나 깨부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힙합’이랄까. 아, 또 하나 덧붙이자면 멤버들이 랩을 정말 잘한다. 내가 봐온 그 어떤 아이돌보다도 랩을 뛰어나게 구사한다.(특히 리더인 ‘쥬린’이!!)

케이팝은 어떻게 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을 할 수 있다. 락이나 힙합과 같이 자칫하면 ‘유해할 수 있는’ 장르들과 다르게, 멤버들에 대한 검열과 억압적 분위기가 강한 케이팝은 세계적으로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보여줄 수 있는’ 장르처럼 여겨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이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이에 더해 나는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케이팝의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초창기의 케이팝, 특히 ‘걸그룹’은 철저히 남성의 관점에서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단편적으로 말해 초창기의 케이팝은 남성들에게 이성적 매력을 어필하며 외모를 무기로 그것을 상품화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요즘의 케이팝은 주로 ‘여성 팬’들을 타겟으로 한다. 이는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 팬들이 소비하는 걸그룹은 더 이상 고전적인 형태(남성중심적)가 아님을 보여주는 현상이다.(물론 남성 팬들이 여성 팬들의 비해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이용한 자본주의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에 따라 민희진(前 어도어 대표)과 같은 감각 있는 여성 프로듀서가 주목받기도 하고, XG나 ‘캣츠아이’와 같은 다국적 그룹이 탄생하기도 한 것이다. 어쨌든 케이팝은 현대의 페미니즘과 인종주의, 민족주의 등을 아우르는 주요한 키워드인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이미 포용하고 있는 주요한 문화로 거듭났다. 앞으로 케이팝의 방향성이 어떻게 나아갈지, 이 거대해진 문화가 어떻게 변용될지 지켜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울 것이다. 케이팝을 단순히 음악 장르로만 생각했거나, 걸그룹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면, XG의 뮤직비디오를 시청해보라. XG의 첫 정규앨범 [THE CORE - 核]는 힙합과 하우스, 팝과 락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뛰어난 미감과 매력을 뿜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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