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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의 독국유학기

[현민의 독국유학기] 통일에 대하여

by 북드라망 2026. 1. 15.

통일에 대하여

글쓴이 현민(문탁 네트워크)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조와 영이 왔다 갔다. 조는 제주도에 사는 친구의 애인이다. 책방을 같이 운영했던 친구들이 제주 강정에 눌러 앉아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었다. 영은 그 중 한명이다. 나는 조를 전에 알고 있었고 시간을 종종 같이 보내기도 했지만, 내게는 친구의 남자친구 정도였다. 내가 한국에 있었을 때는 조가 한국어를 못했고 나는 영어를 못했다. 몇 년이 지나 영화감독인 조가 독일 영화제에 초대를 받아 여행길에 뮌헨에 들리게 된 것이다. 조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한국인이다. 부모님이 조가 태어나기 전에 한국을 떠나 이민을 간 경우다.

조와 영은 이탈리아에서 나이트 버스를 타고 열여덟 시간을 달려 아침에 도착했다. 도착한 후 나는 그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 4월이 철인 직접 만든 명이나물 페스토로 뇨끼를 만들었다. 날씨도 기가 막히게 좋은 날이었다. 정원에 앉아 뇨끼 한사발을 가운데에 두고 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레인보우 게더링 (Rainbow Gathering, 자연속에서 자발적으로 모이는 국제 비공식 히피 평화 공동체)에 다녀온 이야기. 레인보우 게더링에서 한 친구를 만들어 단 두 명이 사는 이탈리아 마을에 갔다 온 이야기. 히치하이킹도 꽤 잘 됐다는 이야기 등 말이다.

그러던 중 조는 내게 느닷없는 질문을 던졌다. 현민, 북한 가보고 싶지 않아?

독일은 다른 나라에 비교해서 영주권을 따기가 쉽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직장이 있고, 5년 이상 독일에서 살면서 4대보험을 들었으며, 독일어 B1 자격증이 있다면 영주권을 딸 수 있다. 영주권을 따면 시민권을 딸 수도 있다. 시민권을 취득하면 법적으로 완전히 귀화한 독일인이 된다. 그러면 유럽 안에서 비자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한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만약 독일 시민권을 딴다면 한국 여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서류상 독일인으로서 북한을 방문하는 것이 원칙상 가능하다. 조는 이런 맥락으로부터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는 원래부터 한국 여권이 없기에  북한에 갈 수 있다.

독일에서 오래 살고 있는 쿠키 이모(독국유학기 2화 경계의 포용성에 나왔던 인물)와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독일인 남편과의 결혼 후 이모에게도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는데, 북한에 가보고 싶어서 생각을 해봤다고 했다. 결국 이모는 서류상으로도 한국인이고 싶어서 영주권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제껏 서류상 독일인이 되는 것에 나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는데, 이 질문은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내가 북한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일까? 몇 달 전 신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된 한 북한 군인의 시체에서 나온 군인의 편지를 본적이 있다. 그 중 살아남은 사람들을 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 직원들이 인터뷰한 영상을 보았다. 영상 속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무엇을 위해 총을 들고 싸웠는지 몰랐고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인으로서 내가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익히 단편적이다. 공산주의가 독재주의가 되었고, 사람들이 굶어 죽어나고 인권이 유린되고 있으며 정부는 억압의 방식으로 나라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게 세계적으로 알려진 북한이라는 나라의 모든 정보이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남한이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고 해서 무엇을 더 알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더 적대적일 뿐이다.

어렸을 적에는 통일이라는 주제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종종 언급이 되었고, 분단을 경험한 윗 세대로부터 전해진 통일과 평화를 바라는 분위기가 남아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을 그때와 비교한다면 통일에 대한 언급은 전무하다. 북한은 우리의 정치적 적이 되었고, 우리 세대에게 알려진 북한이라는 미지의 세계는 그것이 다라는 느낌이 든다.

분단을 경험한 윗 세대에게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라 함은, 우리가 하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통일은 반드시 회복해야 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논리는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흐려질 수밖에 없다. 내가 느끼기에 남한사람들은 북한을 자주 대상화한다. 북한에 대한 어떤 코멘트에서도 북한을 '우리'로 생각하거나 자신을 투영하는 사람이 없다. 그들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주제를 선택한 나조차도 북한이 '우리'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하기가 어렵고, 그들과 나를 연결할 수 있는 공통감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 세대의 북한과의 감정적 거리감은 너무 크다.

서울의 평양 시민들. 조가 추천해준 다큐멘터리. 탈북인들을 정치적 도구처럼 대하는 남한 정부의 추악한 부분이 담긴 40분짜리 영상이다. 한국 유튜브로는 시청할 수 없다. 독일 유튜브를 통해서 영상을 보아도 유튜브가 제지하고 있는지 영상을 공유할 수 없고, 처음 올린 영상은 오디오가 짤려 다시 업로드되었다. 



독일의 분단과 통일
인간은 고유하게 다양한 것 같으면서도 역사는 어느 순간 비슷하게 반복된다. 익히 알듯이 독일에도 분단 역사가 있다. 1945년 히틀러가 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한 이후로 독일은 강대국의 대립 아래 동독과 서독으로 나누어졌다. 동독(DDR)은 독일 민주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서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고, 서독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아래 종교와 노동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서독을 남한, 동독을 북한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다. 실제로 동독과 북한은 비슷한 점이 많다. 사회주의 국가 체제라는 것, 강력한 통제 사회였다는 것, 국가에 충성을 요구하는 이념 교육과 반정부 활동을 처벌했다. 통일이 된 후 아직까지도 독일에서는 동독의 국가보안부인 슈타지는 악명이 높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독일인에게 물어본 바로는 동독과 북한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첫째로 동독 주민 대부분이 서독 미디어를 시청했다. 미디어의 영향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을 거라 생각한다. 동독 주민들이 직접적으로 서독 주민들의 일상을 눈으로 보고 비교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북한에서는 외부 정보가 거의 차단되고 외국 방송 시청은 중범죄로 간주된다. 둘째로는 이동권인데, 동독 주민들은 친척 방문 등 서독으로의 제한적인 이동이 가능했다고 한다. 자기 자신의 목숨과 가족들의 안전이 달린 탈북 스토리가 난무한 북한에서는 물론 상상하기가 어려운 이야기다. 셋째로는 경제 수준이다. 물론 서독에 비해서는 동독이 경제적으로 낙후했지만 동독 주민들의 생활은 북한처럼 극단적인 식량난에 비교할 수 없이 생활수준이 괜찮았다. 마지막으로는 정치적 움직임에 대한 것인데, 통일 시점이 다가올 때 즈음에는 일부 민주화 시도와 시민운동이 있었으며 통일에 대한 여론이 존재했다고 한다.

이랬던 동독과 서독은 45년이 지난 후 1990년, 통일을 하게 된다. 그 시간을 살았을 독일인 남자친구의 부모님께 통일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들은 "글쎄? 사람들이 오해해서 일이 커져버렸어."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했는데(통일이라는 게 이념이 맞아야지 되는 거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독일의 통일은 시민들의 목소리와 역사적 배경이 맞아떨어진 맥락이 있지만, 나중에 리서치를 해보니 통일에 큰 역할을 한 베를린 장벽 붕괴 자체는 정말 얼레벌레 되었다. 1989년, 그러니까 통일이 이루어지기 1년 전쯤 소련에 영향을 받아왔던 동유럽 정세가 개혁 쪽으로 바뀌면서 동독에서도 정부에 대한 반대시위가 잦게 벌어졌고, 심지어 11월 4일에는 동 베를린에서 100만 명이 모이는 시위가 벌어졌다. 동독 정부 DDR은 어느 정도 개혁을 해야 된다는 압박 아래, 개혁의 일환으로 여행 허가에 대한 출국 규제 완화 법령을 발표했다.

이 법령은 외국 혹은 서독 여행시 여행 목적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동독 정부 DDR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동독 국민은 베를린 장벽을 포함하여 모든 국경 출입소에서 출국이 인정된다.' 라고 실수로 약간 잘못 말했고, 한 이탈리아 기자가 그걸 동독 정부가 베를린 장벽을 즉시 철거한다고 완전히 잘 못 알아들은 탓에 오보가 나가 버렸다. 뉴스를 듣고 긴가민가 하며 구경하러 나간 시민들과 매일 일어나고 있었던 국경을 개방하라는 시위대의 인파가 합쳐져 어마어마 해졌고, 만명에 가까워진 사람들에 의해 국경 경비대원들은 통제력을 잃었다. 급기야 양쪽 주민들이 망치에서부터 중장비까지 동원해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켜버렸다.

이 사건으로 인해 동독 정부 DDR은 통제력을 상실했고, 시민들은 국가 보안부인 슈타지 청사를 파괴해버렸다. 하루에 2000명이 서독으로 넘어갔고, 동독의 화폐 단위였던 마르크의 가치가 10분의 1로 하락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는 동독의 멸망이 공공연해진 사건이 되었다. 이후 동독 지역의 5개 주가 독립적으로 독일 연방 공화국(서독)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서독은 막대한 통일자금을 지출해야 했지만, 우호적이었다고 한다.

서독 주민들이 벽을 허물고 있는 모습. 동독 군인들은 벽 위에 서서 지켜만 보고 있다.


 
통일 혹은 분단이라는 흑백 논리
그리하여 독일은 분단 45년 이후 1년만에 급속한 통일을 이루었다. 통일이 결론적으로 독일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판단할 때는 어느 하나의 결과만 고려해 단편적으로 생각할 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도 분단 역사를 회복하는 과정 중에 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독일에는 아직까지도 동독/서독 지역의 주민들의 사회경제적 편차에 대한 구동독 주민들의 불만이 존재한다. 그로 인해 최근 이뤄진 독일 총선에서는 극우정당 AfD(Alternativ für Deutschland, 독일을 위한 대안)이 지지율 20%를 차지하며 제2당이 되었다. 독일은 다당제라 20%라는 숫자는 정말 큰 지지율이다. 히틀러 나치시대 이후 비교적 진보담론이 우세였던 독일에서는 극우 정당이 한번도 다시 주목받은 적이 없었다. 이 결과는 극우적 민족주의, 반 이민자, 반 엘리트 가치를 내세우는 정당이 다시 힘이 세졌다는 점에서 독일 사회에 충격을 일으켰다. 이들은 주로 구 동독지역에서 큰 지지율을 얻었다는 점에서 구 동독 주민들의 불만이 아직 존재한다는 걸 엿볼 수 있으며, 이 주제는 현재 독일 정치의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만약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한다면 그 과정은 이보다 더 어렵고 긴 여정으로 예상이 된다.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 격차는 3~4배 정도였지만 남한과 북한은 최대 40배 이상에 달한다. 한반도의 분단은 70년째로 한 사람의 인생에 달하는 시간이다.

북한 사람들은 북한 밖 세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기에 국제 사회를 이해하고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하기 위한 교육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남한 사람들도 독재국가에 살았던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그들 삶을 존중하며 조화롭게 융화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결국 그들 간의 편차를 줄이려면 막대한 투자와 시간, 충돌에 대한 이해와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상상하기 어렵고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사회적 혼란을 막기위해 분단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 있다면 나는 물음표를 던질 것 같다. 통일 비용이 거대한 금액처럼 보일 수 있지만, 70년째 내고 있고 앞으로도 내야 할 전쟁 유지비용을 비교한다면, 무엇이 더 큰 지출이며 무엇이 더 가치 있는가? 만약 멀지 않은 미래에 독재체제가 무너져 북한이 중국에 흡수가 되면, 그건 우리에게 나은가? 왜 우리는 잘못된 지도자 아래 죽어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보고만 있으면서 이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솔직히 말해 통일 혹은 분단 유지, 흑백 논리에 하나를 고르기란 굉장히 어렵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밖의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만약 독재체제가 붕괴한 후 북한 주민들 스스로가 어떤 사회를 건설할지 논의하고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걸 주변국들이 지지해준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만약 그 곳이 중립공간이 된다면 우리는 지리적으로 중국을 바로 옆에 마주하는 문제나 통일이 되었을 때의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의 거대한 편차를 바로 눈앞에 마주하지 하지 않아도 된다. 이상적이지만 이야기해볼 가치가 있는 담론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현재 정치담론을 뛰어넘는 다른 경우의 수에 대한 아이디어도 환영이다.

이 글을 쓰며 통일이라는 주제에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아있을 때 북한에 가보고 싶다. 거창한 이유는 없고 호기심이 다다. 통일을 못해서 독일인이 되든, 통일이 된 후 떳떳하게 한국인으로 가던 상관없다. 왜 북한에 가볼 생각을 여지껏 못했는지 모르겠다. 한국어를 쓰는 나라는 남한하고 북한 밖에 없는데 같은 언어로 새로운 세계의 사람과 소통하는 건 정말 신기한 감각일 것 같다. 어쩌다 한번 말고 여러 번 가보고 싶다.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그들의 삶을 경험해보고 친구가 되고 싶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의 뉴스 영상을 볼때에는 괜시리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긴 차별과 억압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를 환영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나 나를 감정적으로 만든다. 그들이 살아냈던 시간에는 슬픔과 존경을, 그들에게 찾아온 희망에는 기쁨을 느낀다. 내게는 통일을 주장할 이유가 딱히 없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어느 미래에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눈물이 많이 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자세히 보면 벽 위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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