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몸의 정령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작년 여름에는 오후에 할 일만 마치면 매일 자전거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사는 뮌헨에는 영국정원이라는 여의도의 반 만한 거대한 공원이 있다. 집에서 20분만 자전거로 전속력으로 달려도 금방 도시에서 빠져나온다. 여름에는 영국정원에 살색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학가인 남쪽에는 사람이 붐비지만 북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좀 더 가면 자연 깊숙이 숨을 수 있다. 북쪽에는 뮌헨을 통과하는 이자르Isar 강의 작은 물줄기가 흐르는데 차갑고 깨끗하다. 물 근처에는 풀 사이사이에 사람들이 군데군데 누워 여유를 즐긴다. 자연의 정령인가 싶은 흰 머리 할머니는 몸이 빨갛게 뜨거워질 때까지 햇빛을 받다가 시원한 물에 풍덩 입수를 한다.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가슴을 덜렁이며 마음에 드는 곳으로 약간 걸은 뒤 다시 돌아와 눕는다. 그리고 햇빛 아래에서 칠링Chilling과 입수를 반복한다. 이곳엔 이 할머니 같은 맨몸의 정령들이 무수히 많다.
자연 깊숙이 들어가지 않아도, 도심의 공원이나 물가 근처에는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다.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독일은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독일에는 FKK (에프카카, Frei-Körper-Kultur, 자유-몸-문화)라는 나체주의 문화가 있다. FKK가 어떻게 생기게 된 건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치 시절 강압적인 정치에 반대하기 위해서 나체주의가 하나의 정치적 운동처럼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보수적인 나라에서 온 나로서는 ‚나체가 되기‘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독일에도 보수적인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도 어지간히 불편함을 표현한다) 한국 사람들은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나체가 됨으로써 저항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그래서 독일이 참 웃긴 나라 같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무조건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뻣뻣한 사람들 것 같은데, 그 합리적인 사고로부터 자연 속 맨 몸 일광욕이나 환경을 생각하는 에코 프렌들리한 문화가 나온다는 것이.
맨 몸에 대한 오해
FKK에 대해 쓰다가, 다른 나라는 어떤지 들어보고 싶어져서 부엌에 내려갔다. 그곳에는 터키에서 온 베이자와 이란에서 온 나디야가 있었다. 이슬람 종교문화가 큰 역할을 차지하는 중동의 두 나라의 나체에 대한 입장은 안 봐도 알 것 같았지만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흥미로울 것도 같았다. 나디야는 여성의 히잡 착용이 최대 논쟁거리인 나라에게 나체라니 웃긴다는 반응이었다. 이란은 터키보다 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이다. 이란에서는 몇 달 전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여성이 이란의 엄격한 복장 규정에 항의하기 위해 대학가에서 속옷만 입고 걸어 다녔다. 그 후 그 여자는 체포되어 생사를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해당 대학 소셜 미디어 채널에서는 이란의 군사단체가 그녀의 스카프와 옷을 찢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영 통신은 보안 요원이 복장 규정 위반에 대해 ‚침착하게 이야기 한 후 여성이 옷을 벗었다고 보도했다. 한 편, 대학 대변인은 이 여성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고 발표한다.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이 되는 참으로 흔하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어서 베이자는 터키는 20년째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독재 대통령 에르도안 때문에 더 보수적이게 되어간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전에는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대학에서 히잡을 쓰는 게 금지였다고 한다. 왜 이슬람은 히잡에 집착할까? 이슬람의 하나님이 여성들에게 히잡을 쓰라고 한 이유가 도대체 뭘까? 나디야는 답했다. Because men get horny when they look at the beautiful women. (왜냐하면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자를 보면 성적 욕구를 느껴서)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전에 한국에 사는 독일 사람들이 독일 혼탕 사우나 문화에 대해서 소개하는 영상을 본적이 있다. 영상 속에서 한 독일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독일에서는 사람 몸을 성적으로 보지 않아요. 몸은 야한 게 아니에요. 그리고 사우나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들을 소개한다. 첫째, 다른 사람 몸을 쳐다보면 안된다. 둘째, 촬영하면 안된다. 셋째, 옷을 벗는다. 안 벗으면 매너 없어요. 옷 입고 들어가면 아 여기 우리 자연 위해서 가는데 이 사람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데? 그렇게 느껴서…
나도 독일의 혼탕 사우나에 가본 적이 있다. 아니 독일에는 혼탕 사우나밖에 없다. 사우나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여자만 입장 가능한 날Damentag을 운영하긴 하지만, 혼탕 사우나에 가도 보통 남녀 성비가 반반 섞여 있다. 처음 혼탕 사우나에 갔을 때는 불편했다. 입장할 때는 아시안이라 더 쳐다보면 어떡하지 하면서 머리 속에 철통 자기방어를 세우고 있다가 수증기 사우나에 몇십분이고 앉아있다 보니 따뜻한 공기에 코가 뚫리고 숨이 산뜻하게 쉬어졌다. 그 후로부터는 저 사람이 내 몸 봐서 그걸로 뭘 하나 싶어졌다. 사람들은 사우나에 사우나를 하러 온다. 몸은 야한 것이 아니다. 몸은 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맨 몸으로 파티
FKK에 대해 찾다가 유튜브에서 FKK 파티에 대한 동영상을 찾게 되었다. 설명에 도움이 될 만한 영상이라고 생각해 영상을 번역해보려고 한다.

남자의 이름은 로빈 블라제Robin Blase다. 로빈은 이렇게 시작한다.
저는 한 번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은 적이 없습니다. 제작진들은 그것에 대해 안 뒤 FKK팬들과 영상을 찍기 위해 2년이 넘도록 나를 설득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드디어 왔습니다. 오늘 저희는 누드 파티에 갑니다. 우리는 FKK팬인 야스민을 만납니다. 그리고 파티에서는 저희도 모두 알몸이 되어야 합니다. 저만이 아니라 촬영팀 전체가요.
곧 로빈은 야스민을 만난다. 로빈은 야스민에게 질문한다. (이후로 로빈의 멘트는 초록색, 야스민은 보라색)
오늘 하는 파티, 어떤 파티야? 파티가 네이키드 티(Naked-Tee, 알몸과 차) 파티라는 것 만 알아.
맞아. 이 파티에서는 모두가 자신의 몸을 축하할거야. 알몸으로. 우리는 차를 마실거고, 춤도 출거야.
잠깐, 주전자에서 컵에 따라 마시는 그 차 말하는 거 맞지?
응, 맞아. 예쁜 찻잔에다가 따라 마시는.
솔직히 말할게. 이 파티가 어떨지 절대로 상상이 안돼. 오늘 이 촬영을 위해서 엄청난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어.
로빈, 나는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벗어나면 성장한다는 걸 깨달았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꺼이 내 스스로에게 도전할만한 챌린지들을 주는거야.
로빈은 긴장한 티가 역력히 난다.
사람들은 나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표: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주 나체가 된다]
사우나 37%, 해변 25%, 수영장 19%, 공원 6%, 캠핑장 5%
로빈은 묻는다.
너는 옷을 입는 게 좋아, 아니면 나체가 더 좋아?
솔직히 모두가 언제나 나체라면 세상이 더 아름다울 것 같아. 사회적 규범이나 지위로부터 해방되는 기분이 들거든.
너는 네 몸을 편안하게 느껴?
흐음, 솔직히 나도 가끔은 내 몸의 어떤 부분들이 기쁘게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어. 하지만 모두가 알몸인 파티에서는 완전히 편안함을 느껴.
이 파티는 섹스파티야?

[표: 사람들은 ‚이것‘을 나체와 연관시킨다]
불편함 40%, 부끄러움/당혹감 39%, 개방성 32%, 해방 24%, 아름다움 16%
로빈과 야스민은 FKK파티를 위해 꾸밀 것을 사기 위해 가게에 간다. 로빈은 하네스를 몸에 대보고, 야스민은 글리터를 산다. 둘은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온다.
내가 샵에서 본 것들은 거의 대부분 섹시한 스타일이었어. 혹시 이 파티, 섹스파티야?
아니. 네이키드 티 파티는 섹스파티가 아니야.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끼고 성욕을 즐기는 건 괜찮아. 하지만 중요한 건 동의(상호간의 합의)야.
그럼 네이키드 티 파티에서 섹스를 하는건 허용돼?
응. 괜찮아.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은 없어. 욕망이나 스킨쉽이나 애정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보았지. 파티를 지키는 천사(안전요원의 은어)들이 있어서 불편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
파트너가 있는 사람도 괜찮을까?
그럼 이런 파티에 가는 게 연인 관계에 문제가 되진 않아?
완전 중요한 부분이지! 파트너가 있다면. 사전에 잘 커뮤니케이션 해야 해. 어떤 이벤트인지,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파티의 규칙은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과 제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말이야. 커뮤니케이션은 정말 중요해.
이런 맥락에서, 질투 같은 문제는 없어?
하하. 가끔은 질투할 수 있지. 하지만 뭐, 그건 각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니까.
여자들은 공공장소에서 나체가 되기를 더 꺼린다?
우리가 한 연구를 찾아봤는데, 리서치에 따르면 통계적으로 여자들이 공공 장소에서 나체가 되기를 더 꺼려 한대. (해당 연구에 따르면, 여자 38% 남자 24%로 공공장소, 사우나나 FKK해변 등에서 나체가 되기를 꺼려함) 이해할 수 있어?
나도 (나체가 되는 것이) 편안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있어. 그리고 그룹과 같이 하는 게 중요하지.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면 굉장히 편안하지 않을 수 있어.
네이키드 티 파티나 FKK파티에서도 그런 불편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어?
아니, 솔직히 그곳에서는 그런 걸 (시선이나 불편한 감정을) 느껴본 적 없어. 그래서 계속해서 가고 싶은 거야. 왜냐하면 나는 그 커뮤니티가 굉장히 존중적이라고 느끼거든.
파티에 도착하다
그들은 파티 장소에 도착한다.
자, 우리가 이제 도착했는데, 약간 늦었어. 그 말은 즉, 다른 사람들은 다 벗고 있다는 뜻이지? 하하 (긴장한 투로)
둘은 이제 옷을 벗기 시작한다.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는 게 너무 이상해!! (벗은 후) 흠,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촬영팀도 다 옷을 벗는다. 카메라 뒤로 이미 나체인 사람들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불쑥 지나다닌다. 로빈은 멋쩍게 웃는다. 그들은 탈의 후 거실로 나온다.
우와... 여기 뭐야? 여기 스타일 너무 멋지다. 믿을 수가 없네. 다른 세상에 도착한 것 같아. 넌 어때?
솔직히 이젠 별로 안떨려. 나 여기서 편안하거든. 되게 아름다운 분위기야. 우리 이제 차 마실까?
둘은 찻잔을 고른 후 무슨 차가 있는지 묻는다.
무슨 차야?
라벤더야.
로빈은 차를 마신다. 야스민은 디제잉 부스로 나가 음악을 즐기며 춤을 춘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체로 서 있는게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져. 나도 이걸 믿기가 힘들다. 근데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무 따뜻하고, 분위기도 너무 쿨해.
사람들이 미소를 띄우고 춤을 추며 즐기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 관찰자 모드로 있었던 것 같아. 난 좀 더 들어가서 차도 좀 더 마시고 한번 이게 어떤 건지 느껴볼게.
이제 로빈은 주전자를 들고 파티를 배회하며 사람들에게 차를 따라준다. 무슨 차냐고 묻는 말에 페퍼민트 티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목걸이처럼 찻잔을 걸고 있다가 차를 받아 마신다. 로빈은 묻는다. 넌 뭐 때문에 여기에 왔어? 사람들은 답한다. 음악. 사람들. 에너지. 그리고 차.
사람들은 영어로, 독일어로 로빈에게 말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벌거벗은 몸이 부끄러운 거라고 배워왔어. 그런데 여기에서는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같아.

로빈은 마지막으로 묻는다. 당신이라면 네이키드 티 파티에 올 것 같나요? 아니면 오지 않을 것 같나요?
영상은 이렇게 끝난다. 로빈이 파티에 가기 전 느낀 긴장감과 파티에 도착한 후 느낀 편안함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체가 되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이다. 무엇이 되려 하지 않고 그저 날 것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 처럼. 우리는 이미 벌거벗은 몸의 기분을 알고 있다. 그건 아주 새로운 것도 기이한 것도 아니다. 영상 속의 사람들은 그걸 그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뿐이다. 벌거벗은 사람들은 귀엽다.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당당해지고 싶은 마음. 나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몸을 그 자체로 축하하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 하나로 나체로 파티를 하고 춤을 추고 차를 마시겠다는 이런 상상이 왜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요즘 내가 읽고 있는, 공연 예술 비평가 목정원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라는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누군가 내게 파리에서 무엇을 하였나 묻는다면 나는 그저 존재하는 일을 했다 하겠다. 공간 속에 서거나 앉거나 누워, 세계를 전부 감각했으므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몸을 마침내 연마했노라고.
이 문장을 읽고 몸을 연마한다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몸은 내가 세계를 경험하는 매개체이다. 몸은 계속해서 변화하니 연마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나체가 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될 궁리를 한다. 그들로부터 몸을 통해 해방감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싶다. 목정원의 말 처럼, 그리하여 세계를 전부 감각하고 가뿐히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
이 글이나 영상을 보고 그래도 싫다고 하는 사람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곳에 마음이 기울고, 먼저 가서 놀 예정이다. 같이 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원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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