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시아 여자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최근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작년 겨울에 만났던 서경과 반년 만에 만나 24시간 동안 한국 음식을 잔뜩 먹었다. 들기름 막국수, 불닭볶음면, 팥빙수, 연어 덮밥, 식혜. 타지에서 어렵게 구해 만든 한국 음식은 맛도 좋았지만, 그걸 같은 마음으로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최근 서경은 외국살이에 정이 떨어지는 일들을 자주 겪었다고 했다. 묵은 인종차별 경험담을 서로에게 들려주며 한바탕 분노를 풀고나면 씨발...하지만 어쩌겠나 하며 끝낸다. 아시안 얼굴의 여자여서 겪는 차별의 경험은 분명 화가 나지만 세상엔 절대불변의 좆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았다.
서경은 삼일 뒤 한국에 간다고 했다.
한국 가면 뭐 할 거야?
몰라 그냥 집에서 강아지랑 고양이 만지면서 쉬고 싶어.
나에겐 한국에 가는 일이 너무 어려운데 비행기에 앉아 반나절 있으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이상한 기분이 느껴졌다.
서경과 네덜란드에서 빙수를 해먹은 뒤, 집에 돌아와서 플랫메이트들과 팥빙수를 만들었다.
단팥이라는 게 유럽에서는 굉장히 드물어서 다들 굉장히 신기해하며 먹었는데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다.
내 남자친구 니키는 네덜란드에 오랫동안 살았다. 우리는 그의 친구 그리스인 에반스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네덜란드에 갔다. 암스테르담에 사는 에반스는 새로 이사한 집에서 작은 생일파티를 열었다. 나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잘 긴장하는데 그날도 담배를 핑계로 집 뒤편에 있는 테라스에 의식적으로 숨어있었다. 그때 한 아시안 여자애가 다른 사람들과 들어왔다.
그 애의 이름은 웬이라고 했다. 웬은 싱가폴에서 왔다. 싱가폴은 은행 도시로 유명하지만 어디 있는지는 제대로 몰랐는데, 말레이시아 아래에 붙어있는 정말 조그만 크기의 나라였다. 웬은 최근에 파리에서 MBA를 졸업하고 암스테르담에 살아보고 싶어서 이곳에 이사 왔다고 했다.
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와 비슷한 점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이곳 사람들에게 내 이름 ‘현민’이 어렵다는 걸 알아서 이름의 마지막 글자만 따와 ‘민’으로 소개한다. 웬의 본명은 ‘웬 치엔’ 이지만 나와 같은 이유로 이곳에서는 ‘웬’으로 불린다고 했다. 혹은 내가 한국에 대해 설명하면 그 애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금방 알아들었다. 아시아 국가들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그 애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물어볼 게 있을 것 같았다. 파티가 계속되던 새벽 즈음 나는 그 애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유럽에서 아시안 여자애들을 만날 기회나, 친구 할 기회가 정말 드물지 않냐고, 외국에서 사는 게 네게는 잘 맞느냐고 물었다.
웬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다양한 나라들에 살아보았는데 외국에서 사는 게 자신에게 정말 잘 맞는다고 했다. 나는 곧이어 외국에서 아시안 여자로 사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웬은 아시안 여성에게만 있는 차별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당연히 좋지는 않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실에 대해 나만큼 깊게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은 당황했다. 왜냐하면 나는 외국에서 살면서 자주 내가 아시안 여자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 오기 전 마트에서 장을 봤다. 단 것을 좋아하는 에반스를 위해 초콜렛을 생일선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손에 초콜렛과 화려한 데코용품을 잔뜩 쥔 채 계산대의 긴 줄에 서 있었다. 내 차례가 오기 전 나는 백인 노부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할머니는 갑자기 나를 밀고 뒤에 있던 금발의 백인 여자애까지 데려와 나보다 먼저 계산을 하게 해주었다. 나는 당황했다. 나도 목발 짚고 줄 서서 기다리는 마당에(다리 부러진 후 아직도 목발 쓰는 중이다) 왜 이 할머니는 그 백인 여자애를 먼저 가게 해주었는가. 하지만 이게 인종차별인가? 그렇다고 확신하기엔 어려웠다.
한껏 기분이 나빠진 나는 집에 돌아가 니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니키는 내게 잊어버리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더 발끈했다. 넌 백인이니까 이런 차별 안 당해봤겠지. 차별 안 받아본 사람이나 그런 말 쉽게 하는 거 아니냐고 하며 쏘아붙였다.
당연히도 나는 니키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었다. 니키에게는 남성으로서, 백인으로서 특권이 있다. 니키가 아무리 그 특권을 누리려고 하지 않아도 그는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는 새에 그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점이 너무 얄미웠다. 하지만 나는 그 애가 남자이며 백인이기 때문에 내가 만난 백인 남성들과 똑같을 것이라고 일반화하고 있었다. 그 애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시해 버린 채, 오히려 내가 모든 것을 인종이나 생김새를 잣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기분이었다. 니키는 네가 그렇게 일반화를 하면 정치적 보수 집단이 소수의 불손한 행동을 하는 이주민들을 보고 모든 이주민을 규제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박을 했다. 할 말이 딱히 없었다.
독일에 살아도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소식들을 접한다. 최근에는 서울대 재학생들이 텔레그램을 이용해 여학생들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해 퍼트린 사이버 성범죄 사건,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43명의 가해자들이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고 너무나 평범하게 잘 살아가 화재가 된 일, 먹방 유튜버 쯔양이 전 남자친구인 소속사 대표로부터 오랜 시간 구타와 착취, 정신적인 피해를 당했고 그걸 안 남성 유튜버들 누구도 돕지 않고 되려 협박해 돈을 뜯어낸 소식, BBC가 버닝썬 다큐를 만들어서 가해자 연예인들이 다시 주목받은 일과, 그들이 한국을 떠나 다시 잘 먹고 잘산다는 뉴스들을 보았다. 이 모든 악행에 기가 막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꼼꼼히 읽으면서도, 단순히 핸드폰만 켜도 이런 잔혹한 범죄들을 마주쳐야 한다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일반화가 위험하지 생각하면서도 가해자는 대부분 남자고 피해자는 대부분이 여자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세상이 참 여자들에게 좆같다 싶으면서도 그렇다면 어떻게 분노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첨예해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네덜란드에서 배 타다가 본 부처상과 간이 화장실
수염을 잘라 땅에 묻는 사람
나의 플랫메이트 티는 최근 일과 상담을 병행하고 있는데, 정신병원에 입소해 한두 달 정도 외부자극을 끊어내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다. 티는 친구로부터 추천받은 정신병원에 상담 예약을 잡아 다녀왔는데, 굉장히 불친절한 상담원으로부터 그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엔 너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거절 받았다고 했다. 정신병원이 환자를 가려 받는다는 점에서 나는 이 얘기를 듣고 상당히 오랫동안 기가 찼다.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티는 생각보다 생기있어 보였다. 병원이 나를 돌보아 주지 않는다면 자신이 스스로를 돌보는 수밖에는 없다고 했다. 티는 내게도 물었다. 너는 요즘 어때? 나는 답했다. 외국에 나와 적응하고 있고, 다양한 문제 상황에서 조금은 성숙하게 대처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반면에 내 안에서 내가 스스로와 잘 지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나는 나인 게 가끔은 어색하다고 말했다.
티는 스스로와 잘 지내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가 아니겠느냐고, 그래서 그것이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답했다. 왜 어떤 사람들은 대체로 모든 일에 긍정적이고, 자기 자신과 잘 있을 수 있을까? 티는 어렸을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인 파트릭의 예시를 들으며 물었다. 파트릭이 아름다운 어린 시절과 안정적인 가족 만을 가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 애는 자기 자신과 굉장히 안녕하다고 말하는가. 영영 그에 대한 대답을 알 수는 없겠지만, 나는 순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서로의 결핍을 나누고, 서로를 돌볼 수 있어서 말이다. 나는 독일에서 티를 알게 된 후로 더 살 만해졌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티는 그날부터 담배를 끊었고, 술도 입에 대지 않는 생활을 2주 째 지속하고 있다. 전보다 더 자주 그 애가 계단 한구석에서 울고 있는 것을 보지만 그래도 나는 그 애가 고통의 주체로서 자신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니키는 내가 사는 도시인 뮌헨의 근처 조그만 마을에서 자랐다. 그를 통해 만난 사람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히피이자 농부인 안톤은 나의 좋은 친구가 되었다. 안톤은 항상 시각 장애와 청각 장애가 있는 늙은 강아지 베니와 함께 다닌다. 앞을 보지 못하고, 잘 듣지 못하는 강아지와 안톤이 서로와 소통하는 방식을 보다 보면 마음이 맑아진다. 최근 안톤은 길게 길렀던 수염을 다 민 채로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수염이 없어졌네?
안톤은 답했다.
잘라서 키우는 식물에게 줬어.
진짜? 그런 얘기는 처음 들었어.
수염이 식물에게는 좋은 영양분이 돼. 그러니까 네 몸에서 나는 어떤 것도 허투루 버리지 마.
네 몸에서 나오는 어떤 것도 허투루 여기지 마.
이 짧은 대화가 내가 하는 이 모든 번뇌와 생각들에 대한 비유처럼 느껴졌다.
'현민의 독국유학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민의 독국유학기] WG투어 터키편 (0) | 2025.08.21 |
---|---|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4) | 2025.07.14 |
[현민의 독국유학기] 입원기 (1) | 2025.06.25 |
[현민의 독국유학기] 유학점검기 (3) | 2025.05.28 |
[현민의 독국유학기]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2) | 2025.04.30 |
[현민의 독국유학기] Heimat (0) | 2025.04.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