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배우기
글쓴이 현민(문탁네트워크)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어린이였을 때는 세상에 어린이와 어른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 자라며 점점 성인들만이 있는 사회에 익숙해졌다. 어린이 교육에 대한 아우스빌둥을 시작하게 되면서 언제 마지막으로 어린이와 시간을 보냈는지 생각해보니 가물가물했다. 비교적 최근이라면 책방 우주소년에서 모두방과후 어린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했던 것이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같은 날에 어떤 이는 죽기로 결심하고, 또 어떤 이는 살다 보니 80세 생일을 맞는다.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내 나름대로 가족으로부터 받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오면서, 사람들이 무엇에 영향을 받아 어떤 선택을 하는 지에 대해 종종 아쉬울 때가 있다. 교육학을 배우면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교육학에서는 인간의 선천적 조건과 후천적 조건을 받아들이고 타협하며 어떻게 조화로운 인간을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기질과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사람이 변하며 고유해진다는 것이 당연하게 들리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보완하는 지에 따라 개인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면서도 다정하게 느껴졌다.
아우스빌둥을 시작한 후 일주일에 하루는 인턴십으로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4일은 학교에서 공부한다. 내가 일하는 어린이집은 몬테소리 교육을 바탕으로 바이링구얼(Bilingual, 이중언어, 독일어와 영어를 쓴다) 인터네셔널 어린이집이다. 일반 어린이집보다 몬테소리 어린이집에서 무언가 더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인터뷰를 보았는데 그 후에도 내 복잡한 상황을 다 이해해주셔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어린이집의 일상
어린이집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등원하기-아침 식사하기(선택)-오전 놀이시간-점심시간-야외 놀이 시간-간식시간 이후 하원.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어린이집에서는 날마다 모겐 크라이스Morgenkreis를 한다.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아침 조회가 적절한 비유 같다. 동그란 카펫 위에 원을 만들고 앉아 대화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알파벳도 배우고, 선생님이 모두를 위해 책도 읽어주는 시간이다. 오전시간에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날마다 테마가 있는데 예를 들자면 월요일은 Fun day, 화요일에는 Show and Tell day다. 지난 Fun day에는 탬버린을 배우고 같이 연주해보았고, 잭슨 폴록Jackson Polock이라는 독일 미술가의 물감 뿌리기 기법을 배웠다. 아이들은 소근육이 덜 발달 되어 있어 붓에 물감을 묻혀 손으로 튀기는 일이 쉽지 않아 그들에게는 챌린지 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Show and Tell day는 어린이들이 자기 물건을 어린이집에 가져와 자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매주 화요일이 되면 아이들은 물건이 든 작은 손가방을 가져온다. 그리고 모겐 크라이스 시간에 친구들 물건을 앞에서 보여주고 설명할 기회를 가진다. 만약 물건의 주인인 아이가 허락한다면 다른 아이들도 한 번씩 만져볼 수 있다. 이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굉장한 집중력과 함께 고요해진다. 다들 물건을 바라보느라 호기심에 반짝인다.
이러한 이벤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개인의 자립을 추구하는 몬테소리 철학이 많이 녹아있다. 아이들은 장난감으로만 하루를 때우지 않는다. 몬테소리 기구들과 함께 놀면서 아이들은 숫자나 모양을 배우거나,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들로 감각의 다양성을 확장 시키는 놀이를 한다. 아이들은 자기가 원할 때 과일이나 야채를 직접 잘라 먹을 수 있다. 껍질을 벗기고 잘라 아이들과 나눠 먹은 후 접시를 설거지하고 자리까지 직접 치우는 것이 아이의 책임이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많은 자극들에 쉽게 정신이 팔리기에 방해를 최소화하고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에 그들의 영혼을 다시 되돌려 놓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생각하기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하루는 한 아이가 응가를 하고 도움을 요청해 응가를 닦아주면서 변기 안을 봤는데, 생각보다 응가가 커서 놀랐다. 네살짜리도 이렇게 큰 응가를 싸는구나...
어린이집에서 일했던 첫날, 청소 중 몬테소리 교구를 서랍장에 정리하면서 나는 보기 좋게 서랍장 가운데에 배치했다. 그걸 본 유치원 원장인 사라가 내게 일러줬다. 아이들은 키가 작아 깊숙이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몬테소리에서는 교구들을 서랍장 맨 앞에 붙여 배치하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한다고. 아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맛보기를 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내게는 부족했다. 아이들이 말썽을 부린다면 언제 멈춰 세워 어떻게 경고와 설득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동시에 어린이들과 상호작용하는 매 순간마다 이들이 내게서 보고 듣고 자랄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해 새로 알게 되었다. 똥 싼 후 솔로 변기 닦는 어린이, 밥 먹을 때 내 몫을 챙겨주는 어린이, 자기주장이 확실한 어린이, 물을 엎고 스스로 치우는 어린이, 우는 친구를 달래주는 어린이, 규칙을 어기는 친구를 설득하는 어린이. 아이들이 뭔가를 잘 못 했을 때도 조금만 들어보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이들은 참 재미있는 사람들이다. 뭐든지 금방 잊어버리고, 다양한 욕구들이 있어서 손도 많이 가지만 동시에 자기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며, 존중받는 것을 좋아한다.
어린이들은 실제로 잘 잊어버린다. 그들은 이 세상의 규칙을 정말 모르기 때문에 계속 반복해서 말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규칙만 알려 주고 따르라고 하면 어린이들은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야 한다. 왜 조용히 앉아서 선생님이 하는 말을 들어야 하는지, 왜 혼자 빨리 무언가를 끝내고도 다른 친구들을 기다려야 하는지 말이다.
배움은 상호작용이다. 아이들로부터 나도 너무 많이 배운다. 한번은 학교 과제의 일환으로 아이들과 그림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된 아이가 새로운 땅에 정착하면서 겪는 외로움과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적응하는 이야기를 담요라는 매체를 통해 풀어나가는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작은 천 조각을 자신만의 담요라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 후, 마지막에는 모두의 작은 담요 조각을 연결해 큰 담요 하나를 만드는 활동이었다.

Zuhause kann überall sein
Zuhause kann überall sein: deutsch-arabische Ausgabe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던 책 'Zuhause kann überall sein'(집은 어디든 될 수 있어)
아이들과 의미 있는 활동을 했다는 뿌듯함과 동시에 언어적 한계나 어린이적 사고의 부족함을 동시에 느꼈던 시간이었다. 원장 사라와 프로그램 이후 피드백 시간을 가졌다. 사라는 내게 진행하며 어떻게 느꼈는지를 먼저 물었고, 먼저 칭찬을 해줬다.
작은 담요 조각을 각자 칠하고 연결해 큰 담요를 만든다는 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어, 네가 자주 아이들과 아이컨택을 하고 늘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는 게 좋았어.
그녀는 곧이어 개선점도 말해주었다.
네가 말할 때 ‘echt schön’(진짜 예쁘다는 뜻이다)을 자주 쓰는데 물론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너에게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지만, 예쁘다고 말하는 것은 평가가 들어가는 일이야. 그 대신 네가 고른 색이 마음에 든다, 네가 색칠한 담요가 정말 아늑해 보여 등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사라는 덧붙여 말했다,
네가 고른 동화책, 나는 정말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아이들이 그 책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어. 만약 아이들이 오늘 활동을 돌이켜본다면 책보다는 천에 색칠하는 활동이라고 더 기억할 것 같아. 네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기 전과 후에 관련 질문들을 던졌지. 하지만 그 질문들이 책에 관련된 건 아니었어. 만약 차라리 이주 배경이 있는 아이들에게 물어봤으면 어땠을까? 너희는 어떻게 느꼈니? 독일에서 편하니? 등 말이야. 비슷한 말도 어떻게 쓰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들이 나오는 것 같아.
사라가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가 드러나는 자리였다. 생각해보니 머리 속에서 ‘이주’라는 개념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며 한계를 정하고 쉽게 넘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 이 피드백 시간 동안 나는 무언가를 진짜 배우는 기분이 듦과 동시에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을 찾은 것 같아 기쁜 미소가 실실 났다.
아이들을 만나고 난 후에는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모부는 날 키울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들이 나를 키운 방식에 대해 나는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았던가. 내가 애를 낳는다면 그 애는 어떻게 생겼을까. 아기와 24시간을 함께해야 한다면 어떨까. 만약 너무 힘들어서 애 키우는 걸 포기하고 싶으면 어떡하지? 내가 내 애를 안 사랑하면 어떡하지?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상상은 자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의 대답을 찾아가는 일은 재미있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을까? 어떤 친구들이 있었고, 어떤 선생님들을 좋아했을까? 기억나지는 않지만 분명 내게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지금 기억하지는 못해도 한 어린이의 평범한 하루를 완성 시키는 일에는 분명히 많은 노동과 운이 깃들었을 테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아이들이 훌쩍 자란 후에는 어린이 집에서의 시간을 기억하기란 어렵겠지만, 그들이 살아가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낯선 이름과 자신과 비슷하지 않은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일에 대해 무의식 어딘가에 편안함이 있기를 바란다.
'현민의 독국유학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현민의 독국유학기] 실패하는 이야기 (0) | 2025.10.23 |
|---|---|
| [현민의 독국유학기] 나 아시아 여자 (0) | 2025.09.11 |
| [현민의 독국유학기] WG투어 터키편 (0) | 2025.08.21 |
|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4) | 2025.07.14 |
| [현민의 독국유학기] 입원기 (1) | 2025.06.25 |
| [현민의 독국유학기] 유학점검기 (3) | 2025.05.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