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람살라 유학기

[다람살라 유학기]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다! – 학교에 관한 단상들

by 북드라망 2025. 11. 25.

새로운 학교에 입학하다! – 학교에 관한 단상들

이 윤 하(남산강학원)

 

지난 6월 말 (한국에서) 인도로 돌아온 뒤, 곧이어 이사를 했다. 새로운 학교 ‘고등 티베트 연구 대학’, 일명 ‘사라스쿨(학교가 위치한 지명이 Sarah다)’로 불리는 작은 티벳 대학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한 학년에 서른 명 정도의 학생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4년제 대학이고, 외국인을 위한 어학과정이 부속으로 있다. 티벳 역사와 문학을 석사 과정으로 이수하는 작은 그룹이 있고, 티벳 교사가 되기 위한 사범교육 과정, 그 외 2-3년에 한 번 신입생을 뽑는 3년짜리 불교 기초 논리학 과정도 있다. 내가 등록한 수업은 외국인을 위해 개설되어있는 어학과정이다. 공식적으로는 2년 과정인데, 운 좋게도 올해 간만에 학생 수가 많아서 3학년 과정이 생겼다. 과정의 이름은 ‘불교 과학과 불교 철학’이다. 이 과정을 들으며 사라학교에서 생활한지 한 달째. 문제도 다소 있지만 제외하고 학교생활의 몇 가지 즐거운 점에 대해서 써보도록 하겠다.

1. 기숙사
내 방은 학교 안에서 전망이 좋은 방으로 손 안에 꼽힐 것 같다. 다른 방에 많이 가본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럴 것 같다. 꼭대기 층인 4층이라 복도에서는 아래로 아담하게 우거진 나무와 수풀을 탁 트인 하늘과 함께 볼 수 있고, 방 안 창문으로는 학교 본관 너머로 흐릿한 히말라야 산맥의 윤곽을 볼 수 있다. 여름철 밖보다 안이 더운 찜통현상은 시원한 뷰에 지불하는 대가다. 어쨌든 수풀 등과 가까이 있어서 여러 곤충, 날벌레들과의 동거는 당연한데, 이번엔 큼직한 도마뱀도 하나있다. 도마뱀은 정말 빠르다. 곁눈으로 흰 벽에 선득 지나가는 검은 물체를 보더라도 휙 고개를 돌리면 사라져 있다. 그래도 그 물체가 도마뱀인 것은 문득 고개를 들면 벽에 잠시 가만히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는 모른 채 봉지 안을 들여다보다가 봉지 안에서 쉬고 있던(?) 도마뱀의 점프 습격을 받기도 했다.

 

기숙사 방 복도에서 보이는 풍경

 

동거 중인 도마뱀

 

기숙사 건물 수도에서 나오는 물은 근처의 강물에서 온다고 한다. 때때로 흙탕물이 나오고, 늘 물이 투명하지 않은 것은 녹슨 수도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물을 그대로 가져오기 때문인 것 같다. 처음에는 탁한 물 색깔에 약간 거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물고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샤워할 때 입은 꾹 다물라는 조언을 들었다. 요즘 다른 기숙사 빌딩에서는 주말마다 물이 안 나온다고 하던데, 이사 온 뒤 한 번의 단수를 경험하고 나서는(여기 사람들은 허리께만큼 오는 물통에 물을 받아 놓고 단수에 대비하기도 한다) 물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듯한 물도 나오긴 하는데 태양열인지 태양광으로만 데우는 시스템이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것에 감각적 쾌락을 느끼면서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죄책감을 느끼던 나에게 딱이다. 해가 없는 아침과 밤에는 따듯한 샤워가 불가능, 비가 오는 날도 불가능이다. 해가 고개를 내밀 때를 잘 맞춰야 따듯한 샤워를 할 수 있다.

이 건물에는 한 층에 네 개의 방이 있다. 첫 번째 방에는 베트남에서 온 젊은 비구니 스님 T가 사신다. 사라학교에서 공부하신지 2년차로 지금은 어학과정 2학년에 계신다. 그 말인즉슨 우린 말이 잘 통할 듯 잘 안 통한다. 이 정도 수준의 사람 둘이서(거기에다 각자의 외국 억양까지 더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나는 말했는데 왜 모르지?’의 연속이기 때문에 ‘오잉? 오잉?’하다가 간단한 인사로 헤어지기 일쑤다. 스님은 우리 층 사람들 중에는 이번 학기 가장 늦게 기숙사 방에 돌아오셨는데, 스님이 오시자마자 학교 안에 자유롭게 사는 몇몇 개들이 우리 층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밥을 잘 챙겨주셨다고 한다. 어느 날부터 그중 하나가 내 방문 앞에 와서 자거나 누워있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 내 방문 앞이 가장 물에 젖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날 아침은 문을 열고 청소를 한 뒤 비스킷을 먹는데 그 친구가 문 밖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비스킷을 주었더니 잘 먹더라. 이후 모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물과 비스킷을 챙겨준다.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아니다보니, 가까이 가기 어려울 정도로 냄새가 아주 심하다. 이렇게 종간의 우정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방문 앞에 자주 오는 개. 이름은 제마(베트남 스님이 붙여주신 티벳어 이름으로 '미인'이라는 뜻)

 

2. 교실
‘불교 과학과 불교 철학’반 친구들은 10명, 나를 포함해 11명이다. 과목은 ‘불교 과학’, ‘불교 철학’, ‘불교 수행’, ‘문법과 글’ 4개이고, 무려 세 분의 게셰 스님들이 가르쳐주신다. 뾰족이 정해진 커리큘럼은 없고, 정해진 과목명과 기본 교과서를 가지고 스님들이 각자 가르쳐주고 싶으신 걸 가르치신다. 때로 책을 한 줄도 읽지 않고, 딴 얘기(라고 하지만 물론 불교 이야기다)만 한 시간을 하실 때도 있지만 그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을 때가 있다. 적어도 가르치는 사람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는가!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고, 서로 다른 티벳어 수준, 목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11명의 학생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이번에 ‘문법과 글’ 수업에서 스님께서 재밌는 걸 하자고 하시며, 티벳어로 시 짓기를 가르쳐주셨다. 티벳 시는 한문시처럼 행마다 음절수를 똑같이 맞춰서 짓는다. 티벳어로 시는 ‘듣기 좋은 말’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 쓰는 단어보다는 문어적인 단어, 글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표현들을 이용한다. 전하고자 하는 말을 정해진 음절의 개수 안에 아름답게 끼우는 것이 티벳 시 짓기의 매력이다! 한 행에 음절의 개수는 6~9개 정도가 보통이다. 우리는 그 첫 단계로 세 음절 시 짓기를 시도해보고 있다. 숙제로 써간, 내 첫 티벳 시 하나를 적어본다.

སྐབས་སྐབས་རེ།།  (가끔씩)
ནང་ཁྱིམ་དྲན།། (집이 그리워)
འཁོར་བའི་ནང་།། (이 윤회계 속)
ག་པར་ཡིན།།  (어디던가?)

 

일명 보살되는 법 7단계를 배우는 중

 

티벳어 시 쓰기를 가르쳐주고 계신 스님. 오늘은 네 음절 시 쓰기를 배웠다

 

외국인들의 어학수업은 학교의 경계에 걸쳐있다. 학교라면 ‘훈육’이 기본인데(교장선생님과 학생주임 선생님이 공식 자리에서 티벳 친구들에게 하는 일종의 잔소리는 여기가 학교임을 종종 일깨워준다), 외국인들은 교실에 자발적으로 앉아 있기 때문이다(학교에서 만난 한 티벳 친구는 여기에 엄마가 보냈냐고 스스로 왔냐고 내게 묻기도 했다). 한 마디로 훈육이 필요가 없고, 그럴 나이도 지났다. 특히 우리 반 친구들은 다들 불교 공부에 각자 방식으로 진심이다(그래서 불교 철학과 불교 과학이라는 이 수업도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각자 수행의 스승으로 삼는 구루가 있고, 학교수업 외 불교 수업을 받는 친구들도 있다. 유럽계인 두 분은 티벳불교로 출가한 스님이시다. 학교 수업시간 한 칸 한 칸은 수행해야 할 과제 같지만, 일련의 과정을 각자의 빛깔로 소화해나갈 친구들을 보면 내가 기대가 된다. 개성도 강하고, 말도 잘 안 통해서인지 서로 뭉치는 분위기는 없지만, 그 자리에서 같은 것을 들으며, 특히 ‘불교 철학’과 ‘불교 과학’을 들으며 앉아있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매일 아침 6시 반 30분씩 학생들은 학교 안의 법당에서 함께 기도를 한다. 어학과정을 듣는 외국인을 제외하고는 수업처럼 의무 참석이라 대학생 친구들은 출석체크도 한다. 나도 아프거나 일어나기 힘든 날만 제외하고는 기도하러 간다. 이른 아침을 기도로 시작하는 상쾌함이 있다. 아직 기도문의 90퍼센트는 뜻을 모르지만 일단은 귀에라도 익으라고 열심히 따라 읽는다. 저녁에는 한 시간 기도시간이 있다. 불교 논리학반 학생들만 의무 참석이라 어린 스님들의 목소리가 기도를 채우는 시간이다. 스님들은 다른 기도들보다 <반야심경>을 독송할 때 가장 신나시는데, 다른 대부분의 기도문들은 행마다 음절 개수가 같은 반면, 반야심경은 산문 형식이기 때문에 독특한 리듬을 가지고 독송하기 때문이다. 속도는 읽기의 속도가 아니라 달달 외운 사람만 쫓아갈 수 있는 속도라서, 반야심경을 기도할 때는 마치 랩을 하는 것 같다. 세 번 박수를 치는 대목(왜인지는 모르겠다)도 있어서, (신나라고 하는 기도는 아니지만) 다들 흥겨워 보인다.

기도문은 대략 귀의의 마음을 내고, 부처님과 보살들의 훌륭함을 찬탄하고, 보리심을 내겠다는 원을 담고 있다. 기도문을 읊으면서 마음의 방향을 내가 읊고 있는 내용에 맞춰내는 것이다. 기도하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렇게 마음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에 능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아직 나는 ‘쌍곌라 꼅쑤치오(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귀의하는 마음을 내어보자, 그건 뭘까? …’ 하다가 다음 구절인 ‘쵤라 꼅쑤치오’를 말해야 하는 식이다. 기도문의 뜻을 조금씩 번역해서 한 줄씩 이해해보고, 입에 말들이 익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학생들이 모인 기도시간

 

학교의 식당과 음식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유머의 주제가 되곤 한다. 학생들은 오늘 밥이 뭔지 공유하면서 식당이 아니라 우르르 매점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하고, 식사시간이 시작된 후 15분 안에는 음식이 떨어지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재깍 혹은 3-4분 일찍 수업을 마쳐주신다. 반 친구 하나가 학교 식당에서 밥 먹을 땐 잘 들여다보며 먹으라고 반찬에 들어있던 작은 곤충 사진을 단톡방에 보냈는데, 다들 (그 친구의 놀란 심장을 위해) 슬퍼하긴 했지만, 별로 놀라워하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자기는 뭘 발견했다는 답변들이었다). 단톡방에 있던 친구 중 하나는 그 곤충이 무슨 종인지 검색해서 이름을 올리며(black earwig) 독은 없다고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식당을 둘러싼 유머는 모두의 공감을 살 수 있는 주제로, 한 번은 수업시간에 ‘딱딱함’의 예시로 사라의 빵이 등장했다. 그래도 다들 그리 불만은 없다(불만이 있다면 직접 밥을 해먹는다). 먹을 것에 대한 오픈 마인드와 위생에 무감각함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서비스’를 요구하고, 비난에 익숙한지 느끼게 한다.

 

티벳학교지만 급식은 인도식이다

 

여기까지가 한 달간의 학교생활에서 즐거웠던 것들이다. 그 외에도 여러 일이 있었지만 이만 줄이고, 곧 다른 글로 돌아오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