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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노래

[지금, 이 노래] 도치(Doechii), ‘나쁜 계집애’―래퍼의 완성형

by 북드라망 2025. 3. 24.

도치(Doechii), ‘나쁜 계집애’―래퍼의 완성형

송우현(문탁네트워크)

 


도치(Doechii) - CATFISH / DENIAL IS A RIVER (Live From The 67th Grammy Awards/2025)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지금 가장 핫한 여성 아티스트를 소개해 볼까 한다. 팝 장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사브리나 카펜터’나 ‘찰리 xcx’ 같은 아티스트도 있지만, 역시 내가 주목하는 이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힙합 앨범 상을 받은 ‘도치’(Doechii)다.


도치는 ‘Daniel is a River’라는 곡으로 빠르게 유명세를 탔는데, 이 곡은 도치의 전 남자친구가 다른 동성 친구와 바람이 난 일, 헤어진 이후 전 남자친구가 다시 도치 집에 찾아와 폭력을 행사한 일, 도치 본인이 그 사건들 이후로 마약 중독을 겪었던 심각한 일들을 마치 뮤지컬처럼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이 밖에도 ‘Catfish’, ‘Nissan altima’ 등의 곡들을 들어보면 그녀가 훌륭한 ‘스토리 텔러’라는 것과 ‘나쁜 계집애’(Bad Bixch Shxt) 스타일의 완성형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스토리 텔러’는 지난번 ‘허클베리 P’를 다룬 글에서 설명했는데, ‘나쁜 계집애’ 스타일이라는 건 무엇인가? 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도치의 음악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나는 이번 글에서 여성 래퍼들이 힙합을 전유해 온 간단한 역사를 정리해 보려 한다.

내가 여기서 설명하려는 ‘힙합’은 단순한 음악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힙합’은 자신의 취약성을 자부심으로 반전시키는 형태의 행위이다. 1980년대 슬럼가에서 벌어진 ‘블록 파티’는 빈민가에서 핍박받으며 살아가던 흑인들에게 중요한 장소였다. ‘블록 파티’는 차별과 가난에서부터 벗어나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고, 어려움 속에서 피어난 공동체성의 발현이었다. 그때의 에너지와 스타일이 음악 산업과 만나 힙합 장르가 형성 되었다. 이를 통해 경제적 성공을 거머쥔 래퍼는 가사와 스타일에서 자신의 출신을 숨기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자부심으로 여긴다. 래퍼들의 이런 행위를 ‘샤라웃Shout out’이라 부르며, 자신을 키워준 빈민가에 이 공로를 돌리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행위이다. 이렇게 전형적인 ‘힙합의 서사’가 완성된다. 요컨대 힙합 곡에서 ‘자기 자랑’처럼 보이는 가사들은 자신이 겪어온 취약성을 고백하며 그를 자부심으로 반전시키는 행위이자, 자신을 형성해 낸 사회적 요소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힙합의 서사’는 주로 남성 래퍼들의 서사였으며, 빈민가에서의 여성들은 래퍼라는 정체성을 갖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이는 여성 래퍼들의 남성 래퍼들에 비해 랩 실력이 뒤떨어지는, 그러니까 커뮤니티 형성을 통한 여성-랩의 기술적 발전이 늦었던 이유이다. 하지만 이런 관념은 ‘니키 미나즈’(Nicki Minaj)와 ‘카디 비’(Cardi B) 이후로 뒤집히기 시작한다. 니키 미나즈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며 혐오적인 관점이 녹아있는 ‘계집애’(Bixch)라는 표현을 자신의 테마로 삼았고, 오히려 자신을 남성 래퍼들보다 더 마초적이고 거침없는 래퍼로서 그 표현을 재전유했다. 스트리퍼 출신인 카디 비는 이러한 테마를 더욱 발전시켜 여성의 성적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비슷한 스타일을 가진 ‘도자 캣’(Doja Cat)은 자신을 ‘여성-보스(Boss bixch)’라 부르며 사회적 권력이 남성이 아닌 자신(여성)에게 있음을 선포했다. 하지만 니키는 훌륭한 랩 실력에 비해 음악적 스펙트럼이 아쉬웠고, 카디는 강렬한 캐릭터에 비해 랩 실력이 아쉬운 면이 있었다. 랩 실력과 캐릭터를 모두 만족시키며 그야말로 ‘나쁜 계집애의 완성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래퍼가 도치인 셈이다.

도치는 자신을 ‘Swamp Princess’라고 부르며 자신의 출신 플로리다 탬파의 정체성(탬파 지역엔 늪(Swamp)이 많다.)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앨범 곳곳에 늪에 사는 악어를 배치하며 자신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수상한 앨범의 제목 역시 <Alligator Bites Never Heal>이다. 도치는 <Alligator Bites Never Heal> 자신이 래퍼로서 성공하는 과정에서 느낀 성차별적 문제를 탁월한 래핑(Rapping)으로 풀어내고 있다. 특히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모습과 라이브에서의 그 연출력이 정말 돋보인다. 불편해 보이는 의상을 입고 강렬한 안무를 소화하면서도 전혀 흔들림 없는 래핑을 보고 있으면, 정말 ‘난 사람’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추천하는 건 ‘그래미 어워드’에서 선보인 무대이다. 마치 ‘그래미’의 품격을 조롱하는 듯한 파격적 연출과 정말 이게 라이브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의 실력은 왜 세계가 ‘도치’를 주목하는지 알려주는 듯 하다.

 

출처 - 도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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