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로 태어나서
1. 채식주의자는 어디에 있는가?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 문학상을 탔다. 세계 문학의 시류를 타기 위해 『채식주의자』를 집어 들었다. 그림 형제가 수집한 유럽의 민담들, 그리고 우리의 옛이야기 등에서 보면 늘 먹고 먹히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풀을 먹는다’라는 테마에 관심이 갔다. 그런데 『채식주의자』는 먹고 먹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오직 ‘먹는’ 문제밖에 나오지 않는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몽고반점」,「나무 불꽃」의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두 부분은 오직 ‘누가 먹을 것인가’를 두고 다툰다. 절대적 육식 거부에서 절대적 식사 거부로까지 나아가는 중심 인물의 행보가 산업 사회의 포악한 육식 문화를 비판하는 것 같지만, 실은 철저하게 ‘나는 나만 먹겠다!’를 고집하는 작품이다. 마지막 「나무 불꽃」에서는 ‘먹는다’를 ‘먹인다’로 바꾸기는 하는데 끝내 ‘먹힌다’의 관점은 없다. ‘먹히는’ 문제에 엄청 집중하는 동화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채식주의자』는 반인류학적 동화가 된다.
인류의 모든 이야기는 ‘먹고 먹힌다’라는 테마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주 먹거리로는 ‘고기’를 떠올린다. 사실 호모 사피엔스는 초식형에 가까운 이빨을 가졌다. 대형 육식 동물의 상징인 뾰족하고 큰 어금니 대신에 맷돌처럼 아래 위에서 잘 찧어 부수고 갈기 좋은 어금니가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푹신한 나무 정령 토토로도 엄청 큰 몸집을 가졌는데, 웃을 때 보이는 이빨은 그가 풀을 뜯고 산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우리 시대야 일주일에 닭 몇 마리쯤 잡아 먹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선사 시대에 육식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호랑이나 곰 류의 대형 포식 동물을 잡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자연학적 지식이 필요하고, 또 이웃끼리의 협력 기술도 있어야 한다. 작은 동물들은 대부분 날래기 때문에, 이 또한 매번 성공할 수 있는 사냥은 아니다. 사철 나무 열매나 독성을 중화할 수 있는 풀들을 채집해서 먹고, 때때로의 보양식으로 고기가 상 위에 올라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동물’을 떠올리면서 먹고 먹히는 문제를 생각한 것이다.
인류는 언제부터 육식을 하게 되었을까? 보통 동물들은 음식의 종류를 바꾸지 않는다. 섭취나 소화를 위한 몸의 구조를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는 채식 위주의 식단을 육식을 추가한 잡식으로 바꾸었다. 인류가 고기를 식단에 추가한 것은 그 출현 뒤 즉 600만 년 혹은 7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직립을 시작한 이후 최소 400만 년 정도가 지나서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250만 년 전 찾아온 지구 빙하시대에, 바다의 해류와 대기의 순환구조가 바뀐 기후 변화 탓에 북극지방에 두껍게 빙하가 쌓이기 시작했다. 이 영향으로 지난 250만 년 동안 인류는 가장 추운 기후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생존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 기후 변화가 애초의 인류가 살았던 지대의 자연 식생을 바꾸고, 인류의 식단에서 고기를 추가하게 했다.
보다 살 만한 기후를 찾아 아프리카로부터 다른 대륙 쪽으로 몸을 옮길 수밖에 없었던 인류는 변화되는 경관에서 새로운 식물을 찾아 적응하기보다는 고단백질류의 육식에 눈을 돌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신체 구조에 점차 변화가 생겼다. 채식을 주로 하는 동물은 큰 창자가 길고, 육식을 주로 하는 동물은 작은 창자가 길다고 한다. 창자가 길면 돌돌 말게 되어 배가 커진다. 채식주의자였던 저팔계가 그토록 빵빵한 몸을 가졌던 것은 소장이 보통 이상으로 길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육식 덕분에 인류는 아담한 배를 갖게 되었다.
육식을 많이 하면 두뇌의 크기와 구조에도 변화가 생긴다(〈인간은 사냥꾼인가? - 선사시대의 기술, 사냥〉, 전곡선사박물관, 16쪽). 기후 변화에 따라 새로운 환경 적응력을 시험받았던 인류는 엄청난 정보를 처리하면서 창의적으로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렇게 머리를 힘차게 굴려야 하다보니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에 더욱 흥미를 보이게 되고, 그 결과로 머리를 더 쓰게 되고, 그 결과로 고기를 더 찾게 되고 ……. 이런 되먹임에 걸린 것이다. 그러더라고 해도 사실 고기는 주식의 차원에까지는 잘 오르지 않았다. 인류는 먹는 주체로서 자기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인류는 종의 역사 대부분을 피식자로 보냈다. 그러므로 먹히고 먹히는 전체 관계에 대해 늘 시야를 열어 두고 살았을 것이다.
2. 육식의 신화론
채식 위주의 식생활에서 육식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신체에만 변화가 찾아왔을까? 더 큰 변화는 마음에서 일어났다. 인류학자 스티븐 미슨에 따르면, 야생의 사체 청소부에서 초원의 사냥꾼으로 지위가 격상하게 되는 과정에서 인류에게는 새로운 윤리적 짐이 부과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동물과의 관계다. 네안데르탈인이나 북경 원인처럼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인류는 지능에 네 가지 활동 모듈이 있었다고 한다. 박물학적으로 우주 자연 전반에 대한 지식을 처리하는 자연사 지능, 그 자연을 인간적 편의에 응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고민하는 기술사 지능, 인간들 끼리의 가족 혹은 이웃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사회사 지능, 그리고 인간들끼리의 대화를 돕는 언어사 지능이 그 네 가지다. 이 개별 지능 모듈은 원래 각자 자기 임무에만 충실했는데, 직립과 육식이 탄탄하게 결합되어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러 그 영역 사이에 구멍이 뚫려 각 모듈에서 처리하던 정보들 간의 교환과 간섭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예를 들면,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무덤에는 부장품이 들어가게 된다. 다양한 장신구들이 대표적인데 돌이라는 자연물에 망자에 대한 사회적 존경을 담았다. 자연사 지능과 사회사 지능을 ‘조각’이라고 하는 기술사 지능을 활용해서 결합한 것이다(스티븐 미슨,『마음의 역사』).
이런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 유동성은 그들이 동물을 바라볼 때에도 독특한 느낌을 갖게 했다. 자연계에 속하는 동물이 마치 인간처럼 희노애락을 느낄 것 같기도 하고(자연의 인간화), 각각의 집단들이 서로를 표상할 때 까마귀-부족이나 범고래-부족과 같은 식으로 동물상을 통해 정체성을 대리표상하는(인간의 자연화) 일도 일어났다. 네안데르탈인의 눈에는 그저 포식자나 피식자로만 비쳤을 동물들을, 호모 사피엔스는 조상이나 이웃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을 고기로도 보지만 영혼을 지닌 존재로도 보게 된 것이다.
이 하나의 예를 현대 마우리족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마우리족은 ‘하우’라는 개념을 갖고 있고, 이 하우가 만물의 생명력을 증식시킨다고 하는 애니미즘적 사고를 발달시켰다. “이 힘[하우]은 물건의 영이자 숲과 그 속에 있는 사냥거리(무생물과 식물 포함)의 영으로서 증여의 순환이 멈추는 지점을 파괴하려고 한다(마르셀 모스,『증여론』, 65)” 마우리족은 동물이나 인간의 몸에 깃든 영혼들은 서로를 먹이는 과정에서 전체 자연을 풍요롭게 하는데, 그 순환의 고리가 멈추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여 적극적으로 먹고 먹히는 관계를 열어가는 사회 조직을 만든다고 한다.
후기 구석기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도 먹기를 윤리적 사건으로 취급하면서, 먹고 먹힘의 순환 고리에 대한 우주적 철학을 개진했을 것이다. 많은 인류학 연구들은 이런 조건에서 야생의 부족들은 주로 두 개의 전략을 만든다고 한다. 하나는 ① 신화 만들기이다. 침시아족의 신화를 살펴보자.
침시아족의 어느 마을의 공주가 ‘수달의 나라’에서 임신했는데, 신기하게도 그녀는 ‘새끼수달’을 낳았다. 공주는 아이와 함께 그녀의 아버지인 추장의 마을로 돌아온다. ‘새끼수달’은 큰 넙치를 잡아왔기 때문에 그의 할아버지는 자기 동료들, 즉 모든 부족의 추장들에게 그것으로 잔치를 베푼다. 추장은 ‘새끼수달’을 그들에게 소개하면서, 이 아이가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만약 고기잡이할 때 만나더라도 그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부탁한다. “이 아이가 내가 여러분에게 대접하는 이 음식물을 가져온 내 손자요.” 이렇게 해서 할아버지는 겨울의 굶주리는 때에 ‘새끼수달’이 가져오는 고래, 바다표범, 신선한 생선을 먹으러 올 때 사람들이 주는 갖가지 종류의 재물로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한 추장을 초대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어느 날 이 빠뜨린 부족의 카누 일행이 바다에서 큰 바다표범을 입에 물고 있는 ‘새끼수달’을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 카누의 활잡이는 ‘새끼수달’을 죽이고 바다표범을 빼앗았다. 할아버지와 부족 사람들은 ‘새끼수달’을 찾아다닌 끝에, 마침내 그 잊어버린 부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았다. 이 부족은 ‘새끼수달’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사과하였다. 그의 엄마인 공주는 상심 끝에 죽었다. 뜻하지 않게 죄를 진 부족의 추장은 속죄의 뜻으로 갖가지 종류의 선물을 할아버지 추장에게 가져왔다. [중략] 따라서 추장이 아이를 낳아 이름을 지어줄 때에는, 그 아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끔 사람들은 큰 잔치를 베풀었다.(마르셀 모스,『증여론』, 157~158쪽)
일단, 침시아족의 공주가 수달과 결혼하여 아들-수달을 얻는다니, 만물은 원래 전부 자연과 인간의 이종교배를 통해 태어난다. 이런 호혜적 은혜 입음 때문에 서로는 끊임없이 상대를 먹이고 살리기 위해 힘쓴다. 그래서 새끼수달은 고래, 바다표범, 신선한 생선 전부를 인간 부모를 위해 잡아 왔다. 그렇지만 이 관계는 순환적이어야 한다, 순환의 핵심은 새끼수달이 인간의 일족임을 잊지 않는 데에 있다. 만약 이 순환의 고리를 잊게 되면 큰 화가 닥친다. 여기서 마을 사람들이 새끼수달이 갖고 온 것을 먹고 마침내 새끼수달까지 먹어 치우려 든다면, 그들은 자식을 먹고 입을 싹 닫는 괴물이 될 것이다. 동물과 맺는 이런 상호 의존적 관계에서 서로는 서로를 충분히 먹지만, 핵심은 네가 나의 핏줄임을 잊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두 번째는 ② 겨울 의례 하기이다. 아메리카 북서부 해안 인디언들에게는 포틀래치라는 겨울 의례가 있다. ‘포틀래치’라는 말에는 ‘식사를 제공하다’ 또는 ‘소비하다’, 또는 ‘포식하는 장소’(마르셀 모스, 앞의 책, 54~55쪽)라는 뜻이 있다. 인디언들은 포틀래치를 하면서, 숲의 영들인 그들의 신에게 막대한 재물을 바치고 다음 해의 풍요를 기대했다. 이때 바치는 것은 자신이 한 해 동안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 전부 즉 자신의 생명이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인신공양을 하는 것은 아닌데, 힘들여 얻은 재물이나 귀하게 짠 직물 등을 엄청나게 쌓아 놓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잡수세요~’했던 것이다. 포틀래치에서는 최종적으로 부족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동판을 부수어 바다에 내 던져 버리는 의식을 하는데, 굳이 부수는 이유는 신이 동판을 먹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포틀래치는 신의 음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벌이는 감사의 의례다.
3. 고기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고기로
인간은 먹는 자이기도 하지만 먹히는 자이기도 하다. 이 점을 끝까지 견지하려고 애쓰는 것이 야생의 신화와 제의다. 야생의 인류는 동물과 식물, 인간을 존재론적으로 동등하다고 보았다. 그들이 먹고 먹히는 관계의 근친성과 동등성을 깊이 느끼는 수준은 ‘고기’이다. 까마귀는 하늘을 날고 연어는 헤엄을 치지만 둘은 모두 인간의 고기이다. 개에게는 꼬리와 털이 있고 인간에게는 그것이 없지만 둘 모두 썩어 대지의 밥이 된다.
‘고기’란 무엇인가? 현대인들은 고기를 오직 감각적 측면(씹는 맛, 혹은 단짠)과 영양소적 측면에서만 생각하고 평가한다. 이런 고기 개념은 ‘누가 누구의 고기가 되는가’에 따른 상호 책임에 눈돌릴 수 없게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 역시 동물의, 더 나아가 자연의 고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발 플럼우드라는 인류학자는 악어에게 잡아 먹힐 뻔한 큰 위험에서 겨우 살아남았는데, 그 이후로 악어가 자신을 뜯어 먹으려 했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해 성찰하면서 새로운 관점의 육식론을 제시했다(발 플럼우드,『악어의 눈』, 156). 그도 고기를 둘러싼 감각적이고 영양학적 분류를 강력하게 거부한다. 플럼우드는 고기를 ‘개념’의 차원에서 접근한다. 고기란 ‘자기 위치를 상실하는 것’이다. 한때 숨 쉬던 것의 존재 바꿈이다. 그러면서도 ‘고기’란 여전히 생명의 한 유형이다. 고기라는 관점을 견지할 때 식물과 동물, 인간은 중단 없이 연속하는 관계의 그물망을 나누게 된다.
플럼우드는 또한 비판하는 것이 급진적 채식주의다. 어떤 동물성도 섭취하기를 거부하는 절대적 채식주의는 동물을 죽이는 것에 대한 동정심에서 비롯되는데, 그 자체가 동물을 지나치게 인간화하는 것이며 서로 먹고 먹히는 사이인 자연계로부터 인간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이 된다. 이렇게 육식을 대상의 범위 문제로 놓고 생각하면, 동물과 인간의 경계만 더욱 공고해진다. 인간과 닮은 점을 기준으로 자연의 모든 종들을 줄 세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플럼우드가 보기에 어떤 대상을 완전히 부정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고 정지’다. 동물이 인간처럼 고통을 느낄 것이기 때문에 먹지 않아야 한다면,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는 것 전부를 먹지 말아야 한다. 그럼 최종적으로 남는 답은 ‘다 굶자!’가 된다. 그럴 수가 있는가? 그것은 고통 없는 삶에 대한 환상이다. 자기도 상처 입고 싶지 않으므로 남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주장은 가당치도 않지만 가능하지도 않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어떻게 먹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위의 침시아족이 보이듯 인간은 호혜적 먹이 잔치의 일부로 활약한다. 이들이 굳이 ‘육식’을 넣어 신화를 만든 까닭은 내가 다른 존재로 인해 살고 있기 때문에 나도 다른 존재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점을 깊이 이해하려 해서다. 중요한 것은 고기에 대해, 내가 먹고 있는 그 존재에 대한 감수성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 참고 도서 *
마리아 마르티논 토레스, 김유경 옮김,『불완전한 인간』, 현암사, 2024
마르셀 모스, 이상률 옮김,『증여론』, 한길사, 2002
발 플럼우드, 김지은 옮김,『악어의 눈』, 연두, 2023
스티븐 미슨, 윤소영 옮김,『마음의 역사』, 영림카디널, 2001
〈인간은 사냥꾼인가? - 선사시대의 기술, 사냥〉, 전곡선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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