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의 먹거리
1. 석기 시대의 고기전(展)
인간과 동식물이 ‘고기’의 차원에서 존재론적으로 동등하다는 점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본다. 이런 만물 동등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선사의 전시가 있다. 전곡 선사 박물관 웹페이지에서 지금도 열어 두고 있는 온라인 〈고기전〉(링크)이다. 나는 24년 초겨울 이 전시회에 직접 다녀왔다. 그런데 전시 공간의 전체 색감 구성(선혈이 낭자한 고기핑크)이라든가 관람 동선이 주는 역동성(구불구불 소장의 형태) 부분만 빼면 온라인 전시회를 보는 것으로도 고기로서의 인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실제 전시 공간은 여러 가지로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 우선 입구에 다양한 고기들을 동물 별로, 주로 먹는 부위 별로, 저장 방식 별로 매달아 전시해 두었는데 머리 위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두려울 정도로 생생했다. 게다가 전체관 전체가 고기 빛이고 군데군데 마블링처럼 하얀 줄무늬가 있기도 해서, 내가 고기인가 고기가 나인가 어지러웠다. 바닥의 화살표를 따라 이리저리 전시물을 볼 때에는 음식물이 잘 소화되는 편안한 기분이 아니라, 가다 막히고 가다 막히고 하는 식이라 체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날은 관람 느낌을 두 번은 들어갔다 나오기 어렵다!로 간단히 정리했다. 동물을 잔인하게 도륙하는 기분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불쾌한 느낌은 ‘나는 (너와는 달리) 절대로 고기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작동한 까닭이었던 것 같다. 전곡 선사 박물관의 〈고기전〉은 고기에게 고기임을 각성토록 한 과감한 전시였다.
〈고기전〉은 고기를 대하는 선사 인류의 모습을 ‘고기를 먹기 시작하다’, ‘고기를 잡는 법’, ‘먹은 고기의 종류’, ‘고기를 해체하는 법’, ‘고기를 요리하는 법’의 차원에서 하나씩 설명한다. 중간에 고기가 되기 어려웠던 개 이야기가 잠깐 나오고, 과도한 육식에 반대하는 채식 문화가 소개되다가, 마지막에 이 모든 과정을 남긴 선사인의 쓰레기 터에 대한 이야기로 끝이 난다. 오늘 이 글에서는 만물 동등성을 고기의 차원에서 다시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세 개의 전시물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것은 ‘반드시 잡아라’, ‘선사의 고기 vs 현대의 고기’, ‘풍미의 발견’이다.
2. 반드시 잡아라
‘반드시 잡아라’라는 전시물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전면에 제시되어 있는 커다란 수묵화이고, 다른 하나는 수묵화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사냥도구(石器)들이다. 화면에서 재현된 선사의 사냥 장면이 기가 막힌다. 사냥꾼이 창을 들고 높은 언덕 위에서 매머드, 야생 들소, 사슴, 말과 하이애나 등을 내려다보며 겨냥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동물들은 원근법 때문에 작게 표현되어 있다. 다행히 동물들을 지나치게 왜소화시키지는 않았다. 오른쪽 하단의 들소들은 눈매에 살기가 어려 있는 듯도 하다.
문제는 선사의 인간을 어떻게 표현했는가다. 왼쪽 화면 전체가 두 명의 사냥꾼으로 채워져 있다. 한 사람은 아예 그림 밖의 나무 창을 쥐고도 있다. 화면은, 마음만 먹으면 그의 창이 저 멀리 메머드 등 위에라도 꽂힌다는 인간중심주의적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과연 그럴까? 화면 아래에 놓인 석기들은 지나치게 깨끗하다. 모조품이니까 당연하지만, 이런 재현물은 사냥이라는 행위 자체가 ‘잡고 싶으면 잡고, 먹고 싶으면 먹는다’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이제, 저 화면 속으로 들어가보자. 계곡 아래를 박력 있게 걸어가고 있는 동물을 대하는 저 사냥꾼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런 상상에는 현대에까지 수렵에 주력하는 민족들의 생활상에 대한 보고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북극권의 코유콘Koyukon족 신앙은 자연을 대하는 행동 지침으로 가득하다고 한다. 자연은 불경하거나 모욕적인 인간의 행동 또는 헛된 낭비에 즉각 벌을 내릴 수 있는 강력한 정령인 때문이다. 이들은 동물을 죽이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무례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코유콘족은 동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고, 동물에 대해 떠벌리는 법이 없으며 언제나 주의 깊게 말한다. 죽일 때에는 고통이 없도록 해야 하며, 상처 입은 사냥감을 포기해서도 안 된다. 이 점은 특히 인상적인데, 내가 쏜 창에 맞고 도망간 사슴이라면 끝까지 쫓아가서 죽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놈 쏴보고 안되면 저 놈 쏴보고 하는 식이 아니라, 죽이게 된 그 동물에 대해 최선의 예를 다하기 위해 끝까지 추적하여 죽인다는 것이다. 참으로 올바른 태도가 아닌가. 나에게 목숨을 내어 주기로 결심했을 그 동물의 뜻을 존중한다면 절대로 그 생명을 포기하지 않고 거두어들여야 한다.
죽인 동물에 대해서도 다루는 방식은 엄격하다. 해체와 고기 나눔에 있어서는 엄격한 격식이 있어 누가 어떤 부위를 가르고 만지고 운반하며 요리할 것인가에 대한 철저한 금기가 많다. 〈고기전〉에서는 동물을 어떻게 해체하는가에 대한 소개도 전시물 오른쪽 옆 캡션으로 간단히 소개한다. 프랑스 아브리 빠또Abri Pataud에는 후기 구석기 유적지가 있는데, 여기서 총 53,294점의 순록뼈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중 4,386점에 뼈에서 자른 자국이 발견되는데 귀뼈를 제외한 모든 부위에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머리뼈에는 가죽을 벗긴 흔적이 있고 몸통뼈에는 불규칙하게 자른 자국도 있고 팔 다리에는 관절마다 자른 자국이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자국들이 함부로 마구 그은 듯하지는 않은가보다. 분명히 어떤 규칙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해체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고기를 먹을 때에도 역시 누가 무엇을 먹는가에 대한 질서가 있고, 만약 먹을 수 없는 부위가 있다면 존경의 마음을 다 담아 땅에 묻거나 태운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고래 사냥을 하는 인도네시아의 라말레라 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바다 사냥에 있어서도 작살을 던지거나, 잡아서 해체를 할 때 하나하나 다 의례가 있다고 한다(브라이언 페이건,『위대한 공존』, 38~39쪽 참고; 더그 복 클락,『마지막 고래잡이』참고). 코유콘족에게 숲은 인간이 살아가는 제2의 사회다. 숲속을 거닐 때 그들은 인간 아닌 것들에 둘러싸이는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현현했을 수도 있는 수많은 정령들과 함께이다.
북극 쪽의 사냥꾼들이 이렇다면 남쪽의 사냥꾼들은 어떨까? 아프리카 남부의 수렵인 산San족은 거대한 영양 무리, 누, 얼룩말 등 다양한 유목 동물들 속에서 살아간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냥하는 동물들에게서 아주 친밀한 느낌을 가지는데 특히 이들의 영양 춤은 인류학자들 사이에 유명하다. 최근까지도 산족의 샤먼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영양의 사체 옆에서 춤San Bull Dance을 추었다고 한다. 샤먼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식은땀을 흘리면서 코피까지 쏟는데, 죽어가는 영양 또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땀을 흘리고 벌어진 입으로 피 섞인 토사물을 쏟아낸다고 한다. 영양 춤은 죽어가는 영양의 고통을 자기 안에 체화하면서, 죽어가는 영양을 본다. 어쩌면 그는 환각 속에서 죽어가는 영양의 눈으로 자신의 일족을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코유콘족이 죽어가는 동물에게 예를 다하고 산족이 죽어가는 동물의 환각을 체험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과 숨과 숲과 우주를 나눈 존재들임을 깊이 느끼기 때문이다.
3. 선사의 고기 VS 현대의 고기
사냥하지만 형제를 죽이는 마음으로였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그런 마음으로 동물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고기에 대한 현대인의 시선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고기전〉의 전시물은 바로 ‘선사의 고기와 현대의 고기’이다. 선사 시대 한반도에서 발견된 동물 뼈로는 옛코끼리, 쌍코뿔이, 하이에나, 원숭이, 털코끼리 등 지금은 우리나라에 살지 않는 것들과 사슴, 노루, 호랑이, 너구리, 말 소 등 현재에도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한반도는 토양이 산성이라 동물의 뼈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남아 있는 것은 전부 동굴 유적지에서 나왔다. 동굴에 남은 뼈들을 전부 사람이 먹었다고는 볼 수 없을 텐데 그래도 사슴은 확실히 많이 사냥되었다고 보인다. 충북 단양 구낭굴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 뼈 들 중 사슴 뼈는 무려 97%나 된다고 한다.
전시에 따르면 현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고기는 돼지고기다. 혹시 여러분은 닭이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니다. 여전히 삼겹살의 힘은 치킨을 능가한다. 1년 동안 한국인 한 사람이 약 55.3kg의 고기를 먹는데 이 중 돼지고기가 32.3kg이며, 2위는 역시 닭고기로 19.5kg, 3위는 소고기로 12.4kg이라고 한다. 선사 시대에는 닭, 돼지, 소가 먹거리가 아니었다는 점도 흥미롭고 현대인은 확실히 가축만 먹는다는 점도 새롭게 다가온다. 동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가축을 먹게 된 것이다. 내가 먹은 것이 나라면, 신성한 정령으로서의 사슴이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고기를 먹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간단한 차이가 아닌 것이다. 이런 설명 바로 옆에 고기를 어떻게 부위별로 나누는가에 대한 소개가 있다. 숲 정령의 보호를 받고, 인간과 피를 나눈 동물로서 존경을 받던 동물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정의된다. 부위별로 나눈 고기를 잘라 붙으면 다시 그 닭이 되고 그 돼지가 되고 그 소가 될까? 선사의 사냥에 대해 한참 생각하다보니, 도축용 칼로 매끈하게 자른 저 부위들을 다시 붙인다고 해서 원래의 그 동물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 아찔하게 다가온다. 나도 정육점에 가서 “갈비 주세요, 등심 주세요”라고 한다. 하지만 삶이란 부위별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삶에도 생명력이 들어 있다. 정말 무엇을 어떤 마음으로 먹어야 할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일본의 농생태학자 후지하라 다쓰시는 먹거리의 정의를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찾는다. 비내구성, 자연성, 정신의존성이다(후지하라 다쓰시,「제4강 먹거리의 종언」,『전쟁과 농업-먹거리와 농업으로 본 현대문명의 그림자』참고). 비내구성이라는 것은 먹거리라면 썩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매주 이마트 냉장고에서 뽑아 들고 우리집 냉장고로 신속히 옮기기 위해 허덕거리며 장을 보는 나에게 이 정의는 참 낯설다. 신선한 것이 아니라 썩는 것이야말로 먹거리라니. 자연 상태의 모든 것은 그 개체의 생애 주기에 따라 자연의 거대한 리듬에 따라 나고 죽으며 썩어간다. 각자가 처한 저마다의 삶 리듬이 썩음이라는 사건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으로 전환된다. 그러므로 ‘썩어가는 것을 먹는다’는 ‘먹는 때를 알다’, ‘나고 죽는 리듬을 보다’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겠다. 나는 유통 기간이 긴 제품을 골라 한꺼번에 많이 사두는데, 먹는 것들의 생애는 물론이고 그것을 먹고 있는 내 나이도(늙어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음을 알겠다.
비내구성은 자연성과 바로 연결된다. 죽고 썩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생명이며 생명에게는 생명만이 밥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에는 결코 썩는 일이 없을 것들로 무엇을 떠올릴 수 있는가? 방사능 물질이 있다. 인체에 흡수되면 칼슘을 대체해서 뼈 구성 성분이 되고 골수암과 백혈병을 일으키는 스트론튬90은 반감기가 28년이다. 이것이 28년이 지나면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니다. 처음 생성량의 4분의 1이 되려면 56년이 걸리고 8분의 1이 되려면 112년이 걸린다. 폐암을 일으키는 플루토늄94는 반감기가 더 긴 88년이다. 요오드129는 반감기가 무려 1570만년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나고 죽는 것을 먹어야 하는데, 자신은 자연이 도저히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을 생산해내고 있다.
후지하라 다쓰시에 따르면, 한때 살았던 것(자연성)을 먹기 때문에 인류는 오래 전부터 먹거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심지어 요리는 살아 있었던 것을 먹는다고 하는 윤리적 부하감 때문에 개발한 특별한 기술일 수 있다고도 한다. 날 것으로 먹기보다는 다양한 형태로 조리해서 동물의 원래 상태를 다르게 바꾸어 본다는 것이다. 화식을 하거나 발효를 하는 까닭은 영양가가 높아지고 보존에 용이하기 때문이 아니라 동물을 동물로서는 먹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대상을 몸 안에 들이는 것의 숭고함을 생각해서라는 의미다. 산족이나 코유콘족을 떠올리면서 유추해보면, 선사 인류의 식사에서는 확실히 이 세 가지 먹거리 특징 중 세 번째가 가장 문제가 되었을 듯하다. 요리란 본디 먹거리와의, 먹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정하고 예를 다하는 일이다.
4. 의미에서 풍미로
후지하라 다쓰시는 먹거리의 정신의존성을 지적하면서 요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 요리란 먹거리에 인간이 의미를 쏟아붓는 행위다. 의미가 잔뜩 들어가면 맛도 풍부해진다.
먹거리라는 물질과 의미라는 정신이 서로 섞여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이라는 변용과 화합의 물질이 필요하다. 〈고기전〉에서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돼지고기 발골’의 동영상을 지나면, ‘고기의 풍미’에 대해 소개하는 그림과 그 밑으로 화덕에 놓였던 구워진 돌이나 탄화된 곡식이 있다. 그림에는 꼬챙이에 고기를 끼워 불에 굽는 장면이 있다. 인류는 불을 언제부터 다룰 수 있게 된 것일까? 불 자체는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지만 불을 길들이는 기술은 인간의 발명품이다.
불을 어떻게 길들였을까? 전곡 선사 박물관 상설 전시실에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연천의 선사인들을 재현한 영상을 보여준다. 거기에 보면 처음에는 번개가 남긴 조그만 불씨가 있었다. 불씨가 메마른 풀줄기에 달라 붙고, 점차로 번진다. 호모 에렉투스로 추정되는 연천인 중 한 사람이 타다 남은 붉은 빛의 나무토막을 들기 시작한다. 그는 그것을 들고 친구들과 불씨를 나누어 가진다. 그런데, 정말 불을 길들일 수 있을까? 인간은 불을 길들일 수 없다. 사실 어떤 존재도 길들일 수 없다. 우리는 나중에 신석기 유적지를 방문하여 이 길들임의 문제에 대해 더 논의해볼 것이다.
아무튼 불은 인류 진화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열과 빛을 제공했고 호신 수단이 되었고 개간이나 방충 목적으로 질러진 뒤에는 경관을 바꾸기까지 했다. 최초의 모닥불을 누가 언제 발명했는지 알아보기란 불가능하다. 화덕 자리가 이 긴 세월에 남아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은 같은 장소에서 두 번 이상 모닥불을 피웠을 경우, 주변 토양이 지하 15센티미터까지 그을리고(자연 발화의 경우 토양이 지하 1~2센티미터 이상 그을리지 않는다) 그 일대의 자성도 바뀐다는 점에 착안해 최초의 모닥불 발화 지점을 유추해냈다. 최초의 모닥불은 160만 년 전 케냐에서 피워졌다고 한다. 최소 네댓세 동안 불을 피운 흔적이 나왔는데, 이 주변에서는 수천 점의 석기와 뼛조각도 발견되었다. 이 중에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잔해는 발견되지 않아서 고기를 굽지는 않았다고 분석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60,000년 전의 동굴 화덕자리도 발견되었다. 주변 풍경을 바꾸기 위해 불을 사용한 증거는 BC 10000년 경 이후에 나타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애보리진과 아메리카 원주민 등 오늘날의 수렵-채취 부족 가운데 상당수가 사냥감을 유인하기 위해서 초목을 태워 새로 식생을 조성하는데 불을 사용한다. 선사 시대에도 그랬을 것이다. 선사 시대 경관 변용의 불 사용의 대표적인 예는 BC 9500년 경 요크셔의 스타카다. 이곳 호수의 퇴적층에서 나온 숯 조각을 조사했더니 갈대밭을 태웠다는 증거가 나왔다.
불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일단 요리에 집중해보자. 오직 인간만이 요리한다. 선사의 식재료에 고기만 있었던 것은 아닌데 식물은 뼈를 남기지 않으므로 선사의 채식 문화를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고기를 굽고 익히는 도구를 바탕으로 식물 요리를 포함해 선사 주방을 상상해보자. 일반적으로 선사의 요리법은 크게 두 가지다. 굽기와 끓이기다. ① 꼬챙이에 꿰서 굽기와 불 위에서 직접 굽기. 꼬챙이에 꿰서 굽거나 석쇠 위에 음식물을 올려놓고 구우면 지방은 동일하지만 열량과 단백질 함량이 20% 가량 는다고 한다. 지방은 녹아 밖으로 흐른다. ② 죽과 스튜. 큰 짐승의 고기나 물고기를 땅 위에 파 놓은 구덩이에, 혹은 나뭇가지로 삼발이를 만들어 그 안에 화덕자리에서 끄집어낸 자갈돌을 집어넣은 가죽 주머니에서 끓이기다. 〈고기전〉에서는 통구이와 꼬치구이만 그리고 있다. 토기가 없어서 못 끓였을 거라고? 아니다. 짐승의 내장도 있고 가죽 주머니를 이용할 수도 있다.
〈고기전〉의 요리 재현 그림은 결정적인 아쉬움을 각자 자기 일만 열심히 하는 주방 요리사들만 있다는 점이다. 함께 조리를 하거나 먹지는 않더라도 불 앞에 도란도란 모여 있는 장면을 그릴 법도 한데 말이다. 레비 스트로스도 말하지만, 인류는 먹기 위해 살지 않는다. 잘 살기 위해 먹고,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잘 사는 일일지를 줄기차게 생각했다.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 참고문헌 •
더그 복 클락, 양병찬 옮김,『마지막 고래잡이』, 소소의 책
브라이언 페이건, 김정은 옮김,『위대한 공존』, 반니
질 들뤽·브리지트 들뤽·마르틴 로크 지음, 조태섭·공수진 옮김,『선사시대의 식탁』, 사회평론
후지하라 다쓰시, 최연희 옮김,『전쟁과 농업-먹거리와 농업으로 본 현대문명의 그림자』,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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